달빛소나타 1~2
wuji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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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2 18:03
현식이 퇴근하는 발걸음은 가볍다.
근 이십년 만에 자유로운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총각시절 객지생활을 하면서 직장에 다니다가, 지금의 마누라인 미선이를 회사 동료의 소개로 만나서 사귀게 되었는데, 인물이나 성품이 현식이의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처음에 만났을 때, 별로 마음에 들지않아 아프터 신청을 하지 않고 돌아와 버렸는데 미선이쪽에서 현식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소개했던 현식이 회사동료를 통해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을 간곡히 전해왔고, 그 동료의 입장 때문에 마지못해 다시 만나게 된 것이 서너 번을 더 만나게 되고, 급기야는 현식이의 하숙집까지 찾아와서 방 청소나 밀린 빨래 등을 해주고, 퇴근시간이 되면 장을 봐 가지고 와서 식사준비도 해놓곤 했다.
처음에 현식이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웠고,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만류도 하였으나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대하는 미선이를 차츰 가까이 대하게 되고, 객지생활을 하다 보니 외로운데다 가족의 정이 그리웠던 현식이는 어느 새 그런 생활에 익숙이 되어 갔다.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었고 결혼할 마음이 없었으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둘 사이의 관계는 당연한 것으로 되어 버리고, 주위에서는 약혼녀 정도로 인정을 하게 되었다.
하숙집에서도 미선이가 찾아가면 당연하다는 듯이 현식이 방의 열쇠를 맡기게 되었다.
하루는 회사 동료들과 술을 얼큰하게 마시고 하숙집으로 돌아왔는데, 하숙방에 앉아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미선이를 보고는 취중에 미선이를 범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임신으로 이어져 결국은 미선이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현식이가 결혼을 결심할 당시에는 자기 이상형은 아니었으나, 어차피 책임을 져야 할 행동을 했고 세상에 별 여자가 있겠나 하는 생각과 여자는 남자 하기에 달린 것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에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됐다.
결혼하고 같이 살면서 여러가지로 미선이의 단점이 나타나게 되고, 성격차이로 인한 부부싸움이 잦아지면서 세월이 흐를수록 틈이 벌어져갔다.
가장 큰 문제는 미선이의 게으름이었다.
현식이가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자리에 누워 현식이를 맞이하기 일수였고, 집안청소와 정리정돈을 제대로 하지않아 집안 꼴이 엉망이었다.
그 문제로 몇 번을 다투었으나, 이십년의 세월이 흐를 동안 고쳐지지 않았다.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남편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미선이의 아집이었다. 현식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알려고 했고, 퇴근 후 친구를 만난다든지 직장동료와 술을 한잔한다든지 하게 되면 어디에 있는지.. 누구랑 있는지.. 일일이 알아야 했고, 심지어는 현식이가 있는 곳까지 확인하러 가곤 했다.
그 바람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으나 미선이의 그런 행위는 고쳐지지 않았고 두 사람의 골만 깊어 갔다.
결혼하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결혼하기 전에 임신을 했던 아이가 태어났는데, 계집아이였지만 원래 내가 계집애를 원했던 터라 바로 정관수술을 해버렸다.
가정생활이 원만치 못한데 아이가 더 있어 봤자 제대로 키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결혼한지 오년이 지났을 때, 미선이의 그런 행동이 현식이의 직장생활이나 대인관계에 적잖이 영향을 끼치고 있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미선이에게 정식으로 이혼문제를 꺼내게 되었다. 당신이랑 나랑은 안 맞으니까 도저히 같이 못살겠다고… 아이 문제나 다른 문제는 모두 당신이 하자는 대로 할 테니까 이쯤에서 갈라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러나, 미선이의 집요함과 막무가내 때문에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떤 년이 생겼느냐고… 자기는 당신하나 바라보고 사는 데 그럴 수 있느냐고.. 절대 당신이랑 헤어질 수 없다고 떼를 썼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살다 보니, 아이는 점점 자라고 결혼 십년이 되었을 때 다시 이혼 문제를 꺼냈으나 미선이의 막무가내 때문에 역시 허사였고,
결혼생활 십오년이 되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현식이의 결혼생활은 이혼을 하기 위한 투쟁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드디어, 이십년째에 접어든 지금 이혼이 성사되었다.
미선이 역시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에 지쳤을 수도 있고, 끊임없이 오년마다 이혼을 꺼내는 현식이에게 자괴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집이나 아이는 모두 미선이에게 주고, 다달이 양육비를 보내주는 조건으로 이혼을 했다. 말 그대로 현식이 몸만 빠져 나온 셈이다.
어쨌든 그렇게 바라던 이혼이 되었으니, 당장은 아무것도 없는 빈 몸이라 하더라도 직장생활은 하고 있으니 먹고 살 걱정은 없다.
지금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다는 사실이 현식이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은행에 신용대출을 좀 하고, 친구에게 돈을 조금 빌려서 주택가가 밀집한 동네에 원룸 아파트를 전세로 빌리고, TV나 냉장고, 세탁기, 침대등 가제도구를 사서 혼자
살기에 별로 불편함이 없도록 꾸며 놓았다.
요즈음은 마트에 가면 반찬 같은 것은 바로 먹을 수 있게 만들어 파는 게 있으니 사다 먹으면 되고, 밥은 하루에 한번 해서 보온 밥통에 넣어두면 크게 손이 갈 일은
없다. 빨래 같은 것은 속옷은 세탁기에 돌리면 되고, 겉옷은 아침 출근 길에 세탁소에 맡겼다가 퇴근하면서 찾아오면 되니 별로 불편할 일은 없다.
요즘 세상은 독신남녀가 살아가기에는 참 편리한 세상이다.
퇴근하고 이제 자신만의 보금자리가 된 원룸 아파트로 돌아와서, 간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먼저 욕실로 들어가서 씻고 나온다.
이혼하고 여기 원룸으로 이사 온지 이제 일주일이 되어간다. 아직도 나 혼자만의 자유가 믿겨지지 않는다. 뭘부터 할까? 먼저 저녁식사부터 해야지..
쌀통에서 쌀을 꺼내 물에다 씻고 전기 밥솥에 올린다.
총각 때부터 객지생활을 하다 보니, 밥은 물론이고 간단한 찌개나 반찬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밥이 될 동안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한대 꺼내 피운다. 이젠 집에서 담배를 피워도 뭐라 할 사람도 없고, 자유가 좋긴 좋다.
휴대폰이 울린다.
“여보세요”
-아빠! 나 혜진이…
딸아이인데, 지금 대학 1학년에 다니고 있다.
“응! 웬일이야?”
-웬일은 무슨 웬일? 아빠… 나 안보고 싶었어?
“그래! 많이 보고 싶었다! 학교는 잘 다니고 있지?”
-지금 학교 잘 다니는 게 문제야? 아빠가 그렇게 나가 있는데..
“혜진아! 아빤 괜찮아!”
-아빠! 내일 학교 마치고 아빠한테 갈려고 하는데… 거기 위치가 어떻게 돼?
“여기 오는 건 괜찮은데, 엄마한테 허락을 받아!”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여기 위치가 OO동 로타리에서 OO동 쪽으로 삼백미터 정도 가다 보면, 도로가에 우측으로 OO원룸 아파트라고 있어! 3동 305호야! 아빠가 회사 마치고 집에 오면 여섯시 정도 되니까 오려거든 시간에 맞춰서 와!”
-알았어!
사실은 이혼을 하면서 제일 마음에 걸렸던 게 아이 문제였다. 부부간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한테는 못할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다 자라서 대학생이 되었으니, 조금이나마 부모의 입장을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혜진이는 지 엄마보다 아빠인 현식이를 많이 따랐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자기가 커서 어른이 되면 아빠에게 시집을 오겠다고 했으니…
혜진이가 초등학교 삼학년 때인가? 일요일이라서 가족끼리(현식이, 미선이, 혜진이) 안방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데, 혜진이가 아빠를 보고
“아빠! 아빠는 하필이면 엄마하고 결혼했어?”
현식이와 미선이가 TV를 보다 말고 혜진이를 쳐다본다. 현식이가 혜진이에게
“왜? 엄마랑 결혼하면 안돼?”
“아빠는 잘생겼고 엄마는 못 생겼잖아! 아빠! 이 다음에 내가 크면 나랑 결혼해야 돼!”
갑자기 미선이의 얼굴이 하얘지고, 할말을 잊는다.
“혜진아! 잘생긴 사람끼리 결혼하고, 못생긴 사람끼리 결혼하는 것은 아니야! 잘 생기든 못 생기든 서로 사랑하고 마음이 맞으면 결혼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 혜진이는 이 다음에 커서 아빠보다 훨씬 잘 생기고 멋진 사람한테 시집가야지?”
“싫어! 나는 꼭 아빠한테 시집갈꺼야!”
물론 혜진이가 커가면서 그런 말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았지만…
식사를 하고 나서 설거지를 하고, 커피를 타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TV를 본다. 혜진이 전화 때문인지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미선이를 생각하면 너무 홀가분하다는 느낌이다. 그 동안 이십년을 같이 살면서 미선이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이 마음 속 깊이 사무쳤는가?
TV에 특별히 볼만한 프로도 없고 TV를 끈다. 그리고, 이번에 세간살이를 장만하면서 특별히 신경을 써서 장만한 전축에 LP판을 넣는다.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좋아하던 ‘John Baes’의 노래다.
‘River in a pine’이 흘러 나온다. 애절한 멜로디에 여자가수 특유의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가 좋다.
냉장고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고 발렌타인 17년산을 꺼내어 유리잔에 반쯤 따르고, 냉동실의 얼음조각을 꺼내 잔에 집어 넣는다.
소파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노래를 듣는다. 스물 일곱에 결혼하여 사십일곱이 된 지금까지 이십년 동안 이런 여유를 단 한번이라도 가져본 적이 없다.
이제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혜진이는 자기 방에서 책상에 앉아 아빠하고 통화를 끝낸 뒤 생각에 잠긴다. 문득 아빠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아빠 나이가 오십인데, 저렇게 혼자 나가서 사시면 얼마나 외로우실까?'
하지만, 외로움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있었기에 저렇게 나가 사시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 동안 자라오면서 곁에서 엄마, 아빠를 지켜봐 온 혜진이는 충분히 아빠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여자인 자신이 봐도 엄마의 게으름은 도가 지나쳤고, 아빠의 퇴근시간만 되면 아빠의 행적을 캐는 엄마를 보면, 지금까지 아빠가 이 십년 간을 참고 사신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예전에 몇 번씩 아빠가 엄마한테 이혼하자고 하신 것을 알고 있다. 제발 그렇게 되기를 자신이 빌 정도였으니까…
막상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하시고, 아빠가 집을 나갔을 때는 나를 낳아준 엄마지만 엄마가 얄미워 죽을 지경 이였다.
한편으로는 이제 아빠가 그런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 났다고 생각하니, 아빠의 남은 인생을 봐서라도 오히려 잘된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고… 게다가 좋은 아줌마라도 만나서 재혼한다면 더욱 다행일 것이고…
갑자기 아빠가 얄밉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난데, 집에서 나가시고 난 뒤 일주일이 되도록 어떻게 자기한테 전화 한 통화하지 않을까? 일단 내일 아빠한테 찾아가기로 했으니까, 내일 아빠 만나면 투정을 좀 부려야지…'
아빠가 엄마한테 말씀 드리고 오라고 했지만, 엄마한테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만에 하나라도 안 된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다음날, 학교에 갔다가 강의는 네 시쯤 다 끝났지만, 아빠 퇴근시간을 맞추려고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섯시 반경에 학교를 나선다.
엄마한테는 동아리 모임이 있어서 늦는다고 전화를 해둔다.
시내버스를 타고 아빠가 가르쳐준 OO동 사거리를 조금 지나서 차에서 내린다. 이리 저리 둘러보니, 조금 위쪽으로 아빠가 이야기해 준 OO원룸 아파트가 보인다.
아파트로 가는 길에 꽃집에 들려 백합꽃을 한 묶음 산다.
아파트에 도착하여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빠가 이야기해준 3동 305호 앞에 서서 벨을 누르니 아빠가 먼저 와 있었던지 문이 열리고, 미소 띤 표정으로 반갑게 맞이한다.
“우리 공주! 어서 와!”
혜진이가 갑자기 울컥 울음이 복받쳐 아빠 품에 뛰어든다.
“아빠!”
현식이가 자신의 품에 안긴 딸애의 등을 토닥거려 준다.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 아기구나!”
이렇게 딸애를 안아본 지가 언제인지… 중학교 시절에 마지막으로 딸애를 안아봤던가?
이젠 다 컸구나.. 성숙한 혜진이 몸의 감촉때문에 잠시 부담스럽다.
혜진이가 아빠의 품에서 떨어지며 뾰루퉁하게 한마디한다.
“아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나에게 전화 한 통화도 안 해주고?”
“미안! 미안! 여기 입주하고 얼마 안되다 보니 이것 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내가 깜박했다! 식사 안 했지? 지금 식사 준비하는 중이었는데 들어와서 같이 식사하자!”
“참! 아빠! 이거…”
혜진이가 손에 든 백합 송이를 현식이에게 건넨다.
“웬 꽃을 다 사가지고 왔어? 네가 무슨 돈이 있다고?”
“아빠 독립 축하한다고…”
“혜진아!”
헤진이가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서,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건다. 반소매 스웨터를 입은 혜진이의 모습은 몸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 이젠 완전히 성숙한 처녀다.
엊그저께만 해도 어린 꼬마로 생각했는데…
“야!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된장찌개 끓이고 있었어?”
“그래! 네가 온다길래 아빠가 솜씨한번 부려봤다!”
“아빠가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그럼! 안 해서 그렇지.. 아빠가 음식을 얼마나 잘하는데? 아이쿠! 된장찌개가 다 쫄았겠다! 여기 식탁으로 와서 앉아!”
“아닙니다! 아버님! 제가 차릴게요!”
“얘가? 갑자기 철이 들었나? 웬 존대를 다하고? 네가 앉아 있어! 아빠가 혜진이 밥을 한번 차려 주고 싶어서 그래!”
“그럼! 부탁해요!”
혜진이가 식탁에 앉고, 현식이가 밥상을 차린다.
냉장고를 열고 마트에서 사온 밑반찬과 된장찌개를 식탁 위에 차리고 밥통에서 밥을 펀다
“참! 너.. 손부터 씻고 와야지?”
“알았어! 아빠!”
헤진이가 욕실로 들어가서 손을 씻는다. 욕실이 오히려 집보다 더 깔끔하게 해 놓은 것 같다. 차라리 엄마가 나가서 돈을 벌고 아빠가 집에서 살림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혼자 피식 웃는다.
헤진이가 욕실에서 손을 씻고 식탁으로 돌아와 앉으면서 현식이에게 말한다.
“아빠! 방금 욕실에서 손을 씻으면서 무슨 생각을 한 줄 알아?”
“무슨 생각을 했는데?”
“아빠가 집에서 살림하고 엄마가 나가서 돈을 벌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봤어!”
“너.. 별 생각을 다하는구나? 빨리 밥이나 먹자!”
“그래! 이야! 된장국 맛있는데? 이 반찬 모두 아빠가 다 한 거야?”
“아니! 요즘 마트에 가면 다 그렇게 만들어서 팔아!”
현식이가 식사를 하다 말고, 혜진이가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본다. 혜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한 밥을 먹어 보는 것일 게다. 그러고 보면, 나도 백 점짜리 아빠는 못 되었나 보다. 아니.. 백 점짜리가 아니라 오십 점짜리도 못될 것이다.
혜진이가 식사를 하다 말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현식이를 바라보며
“아빠! 식사 안하고 뭐해?”
“하도 네가 맛있게 먹어서 그걸 보느라고…”
“아빠가 한 밥이 정말 맛있어!”
“그래? 천천히 많이 먹어라!”
어느 듯 식사를 다하고 현식이가 그릇들을 치운다.
“아빠! 설거지는 내가 할게!”
“그냥 소파에 앉아서 테레비나 봐요! 공주님!”
“씨이! 내가 설거지 할거야! 아빠한테 맛있는 밥을 얻어 먹었는데, 설거지 못하게 하면 울거야!”
“하! 하! 하! 알았어! 그럼.. 부탁한다!”
헤진이가 설거지를 하고 현식이는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문다.
“아빠! 집안에서 담배 피워?”
“왜? 싫어? 피우지 말까?”
“아니야! 피워! 그 동안 집에서 아빠 담배 피운다고 밖에 나가는 걸 보면 마음이 안 됐는데 잘됐지 뭐! 특히 겨울철에는 추운데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면 아빠가 불쌍하더라!”
혜진이가 설거지를 끝내고 소파로 와서 현식이의 곁에 앉는다.
“너.. 커피한잔 할래?”
“아빠! 내가 타 가지고 올까?”
“아니.. 내가 타 가지고 올게!”
현식이가 일어나서 싱크대로 가서 가스렌지에 물을 올리고 온다.
“혜진이 너.. 엄마한테는 이야기 하고 왔어?”
“아니…”
“왜 이야기 안 했어?”
“만일 가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해?”
“그래도 이야기 해야지! 엄마가 기다릴 텐데..”
“엄마한테는 학교 동아리 모임 때문에 늦는다고 했어!”
“너.. 거짓말하면 안 되는데..”
“일부러 그런 게 아니잖아! 오히려 엄마가 모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고..”
현식이가 다시 일어나서 커피를 두 잔 타 가지고 온다.
“마셔봐! 원두커피야!”
“아빠! 잘 마실게!”
“혜진이 너.. 이번에 아빠가 이혼하자고 해서 이혼했는데, 서운하지 않았어?”
“아빠! 나도 이젠 다 컸어! 오죽하면 아빠가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마.. 나라도 그랬을 거야! 아빠를 이해해!”
“고맙다! 혜진아! 이해를 해줘서…”
“아빠! 당장은 혼자 살고 싶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외로울 테고.. 좋은 아줌마 있으면 재혼을 해! 혹시 그런 아줌마 생기면 내가 선을 봐줄게! 아빠랑 잘 어울리는지..”
“글쎄… 이젠 정말 혼자서 살고 싶어! 정 외로우면 연애는 할지 몰라도…”
“아빠 집에 자주 놀러 와도 돼?”
“그럼! 엄마랑은 남이 됐지만, 너는 나에게 영원히 딸이야! 대신 아빠도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 오게 되면 미리 전화를 하고..”
“알았어!”
“그리고, 너무 늦게까지 있으면 집에서 엄마가 걱정하시니까 늦어도 아홉시에는 가야 돼!”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근데 여긴 남자 혼자 사는 집 같지가 않아!”
“왜?”
“거실도 그렇고, 욕실도 그렇고 너무 깔끔하게 해 놓았네?”
“글쎄다! 얼마나 갈는지…”
“엄마랑 살면서 많이 질렸나 보네? 내가 그런 부분을 메꾸어야 되는데, 나도 학교 다닌다고 바쁘고… 미안해! 아빠!”
“아니야! 네가 미안할 것은 뭐가 있어!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하지! 너한테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게 만들어서… 그런데, 너.. 이제 대학생인데 사귀는 남자친구는 없어?”
“아직은 없어! 아빠 닮은 남자가 안 보이네?”
“인석아! 아빠 닮은 남자 찾으면 안돼! 더욱 남자답고 잘생긴 남자를 골라야지!”
“그래도 난 아빠 같은 남자가 좋아! 내가 어릴 때.. 초등학교 삼학년 때인가? 아빠한테 시집간다고 한말 기억해?”
“그럼! 그 때 네 엄마가 뜨끔했지!”
“그 이후에 한동안 엄마 눈치를 봤어!”
“네가 임마.. 하필이면 아빠는 엄마랑 결혼했느냐고 해서 그랬겠지!”
“결과적으로는 이렇게 되었잖아!”
“네가 예언가인가 보다!”
“물론 어릴 때라 철없이 그런 말을 했겠지만, 어린 내 눈에도 아빠한테 엄마가 안 어울렸나 보다!”
“이제 좀 늦은 거 같은데 집에 가 봐야지?”
“벌써?”
“다 큰 처녀가 늦게 다니면 안돼!”
“피이! 아빠 아니랄까 봐… 그럼! 아빠! 나 갈게!”
“그래! 아빠가 차로 집까지 태워다 줄게!”
“괜찮은데…”
“네 얼굴을 보니 하나도 안 괜찮은 것 같다!”
“정말 그렇게 보여?”
“그래! 인석아!”
혜진이의 볼을 꼬집는다.
혜진이를 차에 태우고 집 앞까지 바래다 준다.
“잠깐만.. 혜진아!”
현식이가 지갑을 꺼내 돈 십만원을 혜진이에게 준다.
“너 용돈 해!”
“괜찮은데.. 아빠!”
“받아 넣어! 혹시라도 돈이 필요하게 되면 아빠에게 연락하고…”
“고마워! 아빠!”
혜진이가 현식이 볼에 뽀뽀를 하고 차에서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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