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으로 깨닫게 된 여자로서의 본성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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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그 교실에서 서둘러서 빠져나갈 때 내 눈에 들어온 반짝거리는 물건은 바로 작은 삼각대가 달려 있는 초소형카메라였습니다.
아마 명수 새끼는 그걸로 날 따먹는 장면을 찍어서는 그걸로 날 협박해서 날 완전히 자신의 성노예로 삼을 작정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거기에는 명수 일당이 3대 1로 기영이를 폭행하는 장면과 셋이서 같이 날 윤간하려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난 당연히 그걸 경찰에게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학교 측에서 무슨 로비를 했는지는 몰라도 그 카메라의 메모리 카드를 경찰에게 가져간다면 그걸 없애버리고서 내 주장을 무시할 게 틀림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난 그 메모리칩을 제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에게 가져갔습니다.
명수의 두 똘마니 중의 한명에게는 매우 잘 나가는 아빠가 있었습니다.
국가대표 축구선수 출신으로 곧 있을 월드컵 예선에 국가대표 감독으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유명인이었습니다.
난 곧바로 그 사람을 찾아갔고 이미 내 얘기를 알고 있는 그 사람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난 그 사람에게 그 메모리카드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협상을 했습니다.
일단 난 그 메모리카드를 건네주고 그 사람의 아들이 거기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절대로 발설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영이와 난 곧바로 다른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을 가는 것으로 말입니다.
대신 난 1억원 상당의 보상금(?)과 기영이의 병원비 전액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그냥 명수가 혼자서 그 건물에 놀러갔다가 실수로 떨어진 걸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뭐 돈을 얼마나 썼는지 누구에게 로비를 했는지 몰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건은 바로 그렇게 종결되었습니다.
명수가 선생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혼자서 그 건물 4층 교실로 가서 술을 마시다가 너무 술에 취해서 실수로 떨어져 버렸다고 말입니다.
뭐 죽은 명수를 제외한다면 모두가 윈윈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명수의 가족까지도 그 장기를 판 대가로 거액의 보상금을 얻었다고 했으니까요.
그렇게 난 더 이상 학교를 가지 않은 채 병원의에서 기영이를 보살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영이가 수술을 마치고 의식을 되찾은 순간 이 멍청한 새끼의 머리와 뺨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학생, 그러다가 남자친구 진짜로 죽는다고.” 라고 간호사 언니가 날 말릴 정도였습니다.
“야! 이 기영 너 진짜 죽으려고 작정했어! 왜 그런 바보같은 짓을 한 거야!”
내가 울면서 그렇게 말을 하자 기영이는 날 보고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건물 4층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널 사랑해, 유리야.”
난 울면서 기영이를 꼭 껴안아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몇 달 후 마침내 기영이는 퇴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고아원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고아원으로 돌아가봤자 틀림없이 이상한 소문이 날 게 틀림없었습니다.
난 아무에게나 가랑이를 벌려주는 걸레가 되어 있을 것이고 기영이는 살인자가 되어 있을 테지요.
결국 우린 일자리가 많다고 소문이 나 있는 경기도의 부천시로 향했습니다.
신도시 개발붐 때문에 건설 현장에 일자리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우린 보상금으로 받은 1억원을 사용해서 작은 원룸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기영이는 건설현장에서 쉽게 일용직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전 미용실에서 알바 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기영이는 일을 하면서 틈틈이 대형면허를 따기 위해서 공부를 했고 전 미용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부천시에서 원룸을 구한 첫날 밤 우린 그 곳에서 진짜 첫날 밤을 보냈습니다.
난 기영이와 처음으로 진짜 섹스를 했고 15년 동안 고이 아껴둔 처녀막을 드디어 그에게 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첫경험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렇다고 해서 나빴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날 명수에게 당했을 때처럼 난 그렇게 쌀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당연히 첫경험이었기 때문에 기영이는 생각보다 내 보지구멍을 쉽게 찾지 못했고 (결국 내가 기영이의 자지를 붙잡아서 내 질구에 귀두를 맞추어야 했습니다.) 3분도 채 지나기 전에 싸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드디어 기영이와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에 정신적인 만족감은 매우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우리들의 동거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보상금으로 받은 1억원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난 그 돈을 두 통장으로 나누어서 이자를 제일 많이 주는 저축은행에 입금을 했습니다.
우리가 벌어오는 돈과 은행에서 주는 이자를 합하면 우리 둘의 생활비로는 충분했습니다.
그렇게 우린 꿈을 위해서 나아갔고 1년이 채 안되서 기영이는 대형면허를 땄고 난 미용사 자격증을 딸 수 있었습니다.
기영이는 드디어 노가다의 일용직에서 벗어나서 한 대형운수회사에 취직을 해서 덤프 트럭을 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난 동네의 작은 미용실을 인수해서 혼자서 장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날 너무나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었고 둘 다 조금만 더 고생하면 도시 빈민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단지 사소한, 매우 사소한 문제가 두 가지 정도 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의 전재산 중 무려 20%인 2천만원을 (권리금, 전세비, 시설비 등등) 투자한 미용실이 내가 원래 생각했던 만큼 잘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이유였을지도 모릅니다.
미용실에서, 그것도 동네 미용실에서 주로 돈을 쓰는 고객들은 4, 50대의 아줌마들입니다.
그런데 아직 스무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 아가씨가 원장이라고 앉아 있으니까 그런 아줌마들이 올 턱이 있겠습니까?
오는 손님이라고는 근처 중고등학교에서 내 미모(?)를 보고 머리를 깎으러 온 어린 학생들이 전부였는데 보통 학생들은 빨라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머리를 깎았고 컷트비가 5천원 정도였으니까 전혀 돈이 되지 않았어요.
월세며 전기세,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적자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두 번째 사소한(?) 문제는 그 사건(?)이 있은 후로 기영이가 약간 변태처럼 변했다는 거였습니다.
뭐 엄청난 변태는 아니고 그냥 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 아니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게, 아니 강요하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니까 그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린 서로 사귀는 사이라는 것을 남들에게 비밀로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고아원의 수녀님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릴 엄청 귀찮게 할 거라는 것이 뻔했고 최악의 경우에는 둘 중 한 명을 다른 고아원으로 보낸다거나 해서 우릴 떼어놓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가서는 이성교제를 해서는 안 된다는 교칙 때문에 당연히 남들 앞에서 애정 행각을 하는 것을 최대한 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평시로 와서 우리 둘 만이서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동거를 하게 되자 기영이는 그 동안 참았던 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우릴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체고에서 고아원으로 무슨 연락이 갔을 테지만 일부러 경찰에 신고까지 해서 우릴 찾으려고 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원장수녀님이 매우 사려가 깊은 분이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시 고아원으로 오면 무슨 소문이 날지 잘 알고 있었을 테니까요.
부평시에서 자리를 잡은 후 한 번 원장님과 전화 통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원장님은 그냥 잘 알겠다고만 하고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꼭 연락하라는 말씀만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남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자 예전에는 길을 걸어갈 때 손도 잡지 않고서 떨어져서 걸어갈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손을 잡는 것은 물론이고 한손으로 허리를 감거나 심지어 손을 뒤로 해서 내 엉덩이를 붙잡고서 마구 주물러댈 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미니스커트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서 팬티 위로 엉덩이를 주물러댈 때도 있었고요.
네, 그것도 주위에 사람들이 있는 길거리에서 말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아마 크리스마스 이브날이었던 것 같은데 젊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는 시내 한복판에서 날 꼭 껴안고서 진하게 키스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물론 그 때는 우리 말고 다른 커플들도 키스를 하는 커플이 몇 명 있었으니까요.
뭐 그 정도는 요즘 젊은 커플이라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엉덩이를 붙잡고서 걸어가는 커플도 심야의 지하철 안에서 서로를 껴안고 키스를 하는 커플도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볼 수 있을 정도니까요.
나도 그 정도의 조금 과한 스킨십 정도는 귀엽게 봐줄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문제는 나에게 노출을 강요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이나 야한 수영복이나 란제리 모습을 SNS에다 올리는 유부녀들을 요즘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잖아요.
아마 남편도 그 비슷한 심정이었던 것 같네요.
나처럼 미인에다 몸매도 매우 죽여주는 여자가 자기 아내라는 사실을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던 것 같아요.
나에게 항상 몸매가 잘 드러나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게 강요한 거예요.
가슴이 깊이 파여 있는 원피스라거나 소위 말하는 동탄 미시룩 같이 몸매가 완전히 드러나는 옷이거나 탱크탑에 핫팬츠 같은 옷차림 말이에요.
그리고 외식을 하거나 장을 보러 마트에 가거나 할 때면 브라를 하지 않고 노브라로 다니게 했어요.
심지어 반바지를 입거나 무릎까지 내려오는 긴(?) 치마를 입을 때면 그 안에 팬티도 못 입게 했어요.
물론 내가 “씨발! 야! 너 미쳤냐? 돌았냐?” 라고 길이길이 날뛰었으면 당연히 안 하겠다고 했겠죠?
문제는 나도 그게 그렇게 싫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실 10대 여고생에게 물어보면 거의 10중 8, 9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할 겁니다.
특히 저처럼 몸매가 좋은 여자애의 경우는 말이죠.
게다가 고아원에 살면서 수녀님들의 잔소리 때문에 한 번도 노출이 심한 옷을 입어보지 못했던 나로서도 전혀 싫어할 이유가 없었어요.
처음에는 조금 부끄럽긴 했지만 어느 새 나도 다른 남자들의 시선을 좋아하게 됐거든요.
자, 다시 첫 번째 문제로 돌아가서 미용실 장사가 너무 안 되니까 남편에게 이거 그만 하고 다시 다른 미용실에서 직원으로 일해야 할지 말지 상의를 했어요.
그러자 남편이 “그럼 옷을 야하게 입고 해 봐. 대신 컷트 가격을 기존 5천원에서 만원으로 올리고.” 라고 말을 했어요.
처음에는 나도 미쳤냐? 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어차피 망할 거 그렇게 3달 정도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냥 접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어차피 해 봐야 밑질 거 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한 번 해보기로 했어요.
대신 남편에게는 옷차림 때문에 절대 시비 걸지 말 것을 약속 받았고요.
역시 예상대로 남편은 오히려 더 좋아하더라고요.
그렇게 난 야하게 옷을 입고 장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예를 들면 매우 짧은 나시원피스나 배꼽이 다 드러나는 나시 크롭톱에 핫팬츠나 초미니스커트 같은 차림으로요.
심지어 상의 안에는 항상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노브라 상태였어요.
팬티도 항상 T팬티로 입었고요.
그런데 진짜 놀랍게도 장사가 잘 되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가격까지 올렸는데도....
그리고 나 또한 성적 쾌감까지는 아니더라도 노출의 재미에 점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귀여운 중학생 남자애들이 밖으로 드러난 내 허벅지가 젖가슴골을 보면서 얼굴을 붉히거나 자지가 서는 모습을 보니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리고 점점 소문이 나서 – 학생들끼리 나 몰래 속닥거리는 소리를 몰래 들으니까 완전 걸레 아가씨가 머리를 잘라준다고 소문이 난 것 같더라고요. - 이제는 가격을 만오천원까지 올렸는데도 머리를 자르려고 항상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어요.
그렇게 해서 난 점점 돈을 벌기 시작했고 제니가 태어났고 남편은 트럭을 사서 개인사업자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우린 분당으로 이사를 갔고 나도 거기서 새 미용실을 시작했습니다.
부동산에서 상가를 소개받고 처음으로 건물주였던 관장님을 봤을 때 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상가 건물이 너무 크고 5층이었기 때문에 전 건물주가 꽤 나이가 많은 분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보니까 나보다 겨우 10살 밖에 많지 않았고 너무 키도 커서 체격이 너무 좋아서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건 진철이 오빠도 마찬가지였다고 하더라고요.
미용실을 하겠다고 누가 찾아왔는데 3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아가씨인데 얼굴도 엄청 예쁘고 섹시한데다 몸매도 엄청 좋았다는 겁니다.
게다가 당시 난 이런 타입의 끈 없는 미니원피스를 입고 있었는데 육중한 젖가슴의 윗부분과 굵은 허벅지가 거의 다 드러나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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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 둘은 서로에 대한 첫인상이 너무 좋았고 오빠도 날 많이 챙겨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내가 유부녀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전 당연히 남편을 두고서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필 생각이 1도 없었기 때문에 우린 적절한 선을 지켜가면서 소위 말하는 썸을 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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