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해변에서 흑인한테 따먹힌 여친 (7편)

민지가 내 손을 잡고 이끄는 대로 내려온 절벽을 다시 걸어 올라왔다.
미오를 그렇게 무시하고 떠나버린 건 아마 처음인 것 같았다.
아무리 내가 미오와 싸웠어도 그렇게 미오를 생무시해버린 건 처음이었는데 후련하다기보다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분명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하고 있던 건 미오인데, 나도 민지와 애무를 해버렸고.. 그래서 그런지 뭔가 바람난 여친을 차버리는 기분이 아니라 나도 바람을 피다 걸린 듯한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무슨 생각해 오빠?"
아무 말 없이 손 잡고 길을 걸어오는 나를 보며 민지가 물었다.
"... 아무 생각 없어."
"오빠 이렇게 된거 그냥 오빠 내 남친 해줘."
"... 넌 지금 이 상황에 고백을 갈기고 싶어?"
"응 이보다 더 완벽한 상황이 어딨어? 미오 저 불여시는 전여친이 확실하잖아 이제. 저 흑인이랑 만나면 되고 오빠는 나랑 만나면 되지"
"..."
"그리고 그게 아니라면 아까 나한테 키스는 왜 했는데"
"..."
할 말이 없었다.
분위기에 취했었는지, 미오가 미워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난 민지에게 내가 먼저 키스를 해버렸다.
"하나만 물어볼게 민지."
"응"
"왜 나랑 만나고 싶은데"
"그냥.. 오빠 하는 짓이 귀여워서. 그리고... "
이건 미오가 하던 소리다. 하는 짓이 귀엽다고.
"그리고?"
"오빠보다 머리 좋은 사람은 못 봤거든. 난 그 아래에 달린 것보다 위에 달린게 섹시한게 좋은데?"
민지가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었다.
"난 머리 나쁜 애들이 제일 극혐이야. 마초끼 있는 애들이 제일 싫어. 말도 안 통하고. 오빠랑 얘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오빠는 아는 것도 많고 생각도 깊어."
"..."
이건 미오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던 소리라 신선했다.
한참을 걷던 우리는 차에 도착했다.
"해 져서 춥겠다. 입어"
차 트렁크에서 여분 자켓을 하나 꺼내 민지에게 주었다. 캘리포니아는 일교차가 심해 항상 가벼운 자켓을 트렁크에 넣고 다녔다.
"올. 매너남. 나 이런거 좋아"
"까불지 말고 빨리 타."
근처 힐튼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식당으로 향했다.
우리는 아무일 없다는 듯 웃으며 일 얘기도 하고. 세계 돌아가는 정세 얘기도 하고. 금리 인상으로 폭락한 주식시장과 그 속에서 사모펀드가 어떻게 한탕 털어갈지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저녁은 내가 살게요 오라버니"
"어허, 어디서 인턴 나부랭이가. 내 연봉 찍기 전에 내 앞에서 카드 꺼내기 없기라고 했지?"
"그건 내가 아직 학생이었을 때고 오빠는 인턴하면서 번 돈으로 사준거잖아. 이젠 내가 인턴했으니까 오빠 사주겠다는건데?"
"그때도 내가 너보다 돈 많이 벌었고. 지금도 내가 더 많이 버니까 내가 내야지"
"와 이 꼰대. 내가 언제 연봉 50만불을 찍어. 난 PE가 아니라 IB인데. 내가 아무리 에이스라도 5년차에 VP는 되야 겨우 오빠가 지금 받는 연봉 받겠다"
"원래 밥은 더 많이 버는 사람이 사는거야."
밥값을 두고 사소한 말다툼을 벌인 우리는 다시 시내로 가 와인바로 향했다.
술을 조금 마시니 어두운 불빛 아래 민지의 얼굴이 더 예뻐보였다.
술에 취해서인가, 민지는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말이 잘 통하고 잘 웃어주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해졌다.
"오빠, 나랑 사귀자는 말. 생각 해봤어?"
"..."
"솔직히 지금이 오빠가 가장 나한테 넘어오기 쉬운 상태라는 거 오빠도 잘 알지?"
내가 아무 대답이 없자 민지는 계속 혼잣말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이건 마치 재무위기 닥친 상대 기업 두고 현금을 쌓아놨는데 때마침 금리가 오른 상황이잖아. 적대적 인수하기 딱 좋은 시점"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인정했다.
"그래, 너 머리 좋은거 인정"
민지는 피노누아 와인 병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오빠 이 와인 좋아하지? 미오는 이 와인 한 병 살 돈도 못 벌어."
"... 아무리 미오가 능력이 없어도 그정도는 벌어."
"그 불여우가 왜 좋은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5년간 오빠랑 사귀면서 서로 모든 걸 다 아는 사이겠지"
내가 아무말 없자 민지는 마치 고양이가 궁지에 몰린 쥐를 쫓듯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오빠도 좀 있으면 20대 후반이고, 언제까지나 얼굴값 하는 애들이랑만 놀거 아니잖아. 아무리 첫눈에 반해서 사귄 사이일지라도"
"내가 그런 얘기도 했었냐?"
"도훈이오빠한테 다 들었어"
"... 김도훈 이 망할놈"
이놈의 한국인들은 입이 싸다. 먼 곳에서 다들 유학하면서 같이 전우애가 생기는건지 몰라도 소문이 너무나도 빨리 퍼진다.
"미오 그 불여시가 말한 두달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두달이 끝나기 전에 나한테도 결정을 해줬으면 좋겠어."
"그래, 나도 이런 일로 오래 시간끄는거 싫어해. 그래도 생각할 시간을 줘서 고맙다"
"그대신!"
"?"
민지도 다소 취했는지 얼굴에 살짝 붉은기가 돌았다.
"그때까지는 나랑 오늘처럼 데이트해줘"
"... 너랑 안 사귀기로 결정할 수도 있는데?"
"난 오빠랑 시간 보내는 거 재밌어. 오빠는 나랑 시간 보내는 거 재미 없어?"
생각해보니 오늘 하루 종일 민지와 단 둘이 보낸 시간들은 꽤 재밌었다. 많은 얘기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오랜만에 이렇게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신기할 정도로.
술을 다 마시고 호텔로 돌아온 우리. 민지는 오늘 밤을 함께하지 못해 퍽 아쉽다는 듯 내게 말했다.
"낼 아침에 나랑 같이 브런치 하는거다"
"알았어. 브런치 같이 먹고 LA다시 돌아가자. 나 월요일에 4시까지 출근해야돼"
"4시? 사모펀드는 진짜 어나더 레벨이구나"
"뉴욕시간이랑 맞춰 일해야 하니까"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들. 우리 오빠 잘 먹여서 출근시켜야겠당"
민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갔고 나 역시 내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핸드폰을 체크 못한지 시간이 꽤 지났다. 손목의 시계를 체크하고 순간 당황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파트너한테 이메일이 왔으면 어떡하지?
부재중 통화 7건.
모두 미오였다.
그리고 또 다시 걸려오는 전화.
역시 미오였다.
이 썰의 시리즈 (총 8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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