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엄마 명숙이(그녀의 이야기4)

그날밤 명숙은 나와의 첫 경험에서 그랬듯 늘씬한 두 다리로 과수원집 막내아들의
허리를 꽉 조였을 것이다. 마치 그러지 않으면 그 밤이 끝나고 그가 그녀를
떠나가 버릴 것처럼. 과수원집 아들은 그런 그녀의 구멍을 강하게 공략했을 것이다.
그게 성욕이든, 아니면 자신의 상실과 외로움을 타인에게 처음으로
이해받았다는 감정의 분출이었든 간에 말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첫 경험을 상상하는건 나로써는 괴로운 일이지만
나는 그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을수 밖에 없었던 그 절박함을 알것만 같았다.
허름한 강원도 산골의 여관에서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그리고 그 자신을 위로했다.
두 사람은 그들이 나고 자란 고향에서 이방인이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고 누구보다 그곳을 떠나려 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현실은 과거의 그들의 조부가 그리고 아버지가 쌓아온 결과이며
그들은 그 역사의 산증인이들이고 어쩌면 피해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제대를 하고 학교졸업을 할 무렵 그녀의 자궁속에서는
내 인생의 유일한 절친 d가 복숭아만한 크기로 자라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의 결과물이었다.
명숙의 시부모들은 명숙을 탐탁치 않아했다.
서울 명문대에 다니는 마을 최고의 수재와 몰락한 가문의
중졸 여식의 결혼은 누가봐도 한쪽이 손해보는 장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수원집 막내아들의 조모는 명숙 집안의 화려한 과거를 똑똑히 기억하는
마을의 몇 안되는 어르신이었다.
“저 집이 예전에는 마을에서 대대로 존경받던 먹물집안이었다”
죄인처럼 고개를 푹숙이고 있던 명숙의 지원군이 된건 과수원집의 조모였다.
나는 훗날 명숙의 결혼사진을 본 적이 있다.
행복해야할 신부의 표정이 경직되고 어두워보였다.
“그때만 생각하면 정말… 어찌나 시댁이 무서웠던지…”
그녀는 한탄하듯 말했다.
과수원집 막내아들은 졸업후 서로 모셔가려 애쓰는 대기업을 마다하고
학교 선배가 먼저 입사한 외국계 기업에 들어갔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양적으로 팽창을 거듭하던 시기였다.
우후죽순으로 공장들이 들어섰고, 그런 기업들에 장비와 기계를 납품하고
설치된 장비를 점검 수리하는 일을 맡았다.
이름없는 회사여도 월급은 어떤 대기업보다 높았다.
무엇보다 번거로운 사회생활보다 그저 자기일만 하면되는 근무환경이 맘에 들었다.
그 시기는 명숙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든든한 남편과 뱃속에는 그와의 사랑의 결실이 자라고 있었다.
무엇보다 고향이 아닌 서울에 사는것이 맘에 들었다.
대도시의 화려함이 명숙을 사로잡은게 아니었다.
대도시의 익명성. 자신의 과거를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그렇지만 세련된 현대인으로써 서로 예의를 지키며 적당한 선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런 환경이 너무 좋았다.
남편의 배경이 좋았던 탓에 변두리 단칸방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되었다.
명숙은 아파트 생활도 맘에 들었으나 남편은 갑갑한 성냥갑 같은 아파트를 싫어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로서는 젊은 신혼부부가 꿈도 꾸지 못할 신축주택을 지어 입주했다.
자그마한 마당이 있는 빨간벽돌집. 마당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심어져있는
이제 막 태어난 아들이 걸음마를 떼면 위대한 첫 걸음을 디디게될 그 집 말이다.
그리고 훗날 내가 그녀를 처음만나게 되는 그 집 말이다.
명숙의 남편은 한달에 많게는 20일이상. 적게는 일주일 정도를
출장을 다녔다. 그녀는 가끔 외롭기는 했지만, 견디기 어려운 정도는 아니었다.
누구보다 다정한 남편은 매일 저녁 전화를 걸어 그녀와 그들의 사랑의 결실인
d의 안부를 물었다. 때로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때로는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남편이 집으로 퇴근을 하는 날이면 명숙은 아침부터 장을 봐서
궁중에서 임금이 대접받을만한 상을 차려놓고 남편을 마중했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껌딱지처럼 남편의 옆을 졸졸 따라다녔다.
다정한 남편은 그런 그녀를 그리고 d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다.
존경과 사랑. 그녀가 남편을 바라보는 당시의 감정은 이 두가지가 전부였다.
명숙은 d에게도 누구보다 깊은 사랑을 베풀었다. 마치 그것이
방치된채 양육된 자신의 과거를 보상하는 방식이라도 되는 양.
덕분에 d는 누구보다 밝고 건강한(내눈엔 텐션이 지나치게 과도한) 아이로 자랐다.
무엇보다 구김살이라는게 없었다. 돌아켜보면 내 주위의 아무도 그와 같은 친구가 없었다.
d는 아무런 열등감도 지나친 자의식이나 인정욕망도 없었다.
타인에 대한 어떤 편견도 군림하려는 욕망도 없었다.
진정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현명한 줄도 모르다고 했던가?
그가 그랬다. 그는 자기자신이 건강하고 현명한 인간인줄
몰랐다. 다만 내가 보기에 d는 그냥 그런 인간으로 살았다.
그의 그런 낙천적이고 건강한 성격은 그의 부모님의 덕분이었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활달한 d의 성격탓에 그의 집에는 언제나 또래 친구들이 들락거렸다.
한바탕 왁자지껄 집안을 어지럽히고 난 뒤 그 뒷정리를 하는것은 명숙의 몫이었다.
그래도 명숙은 d가 구김살없이 밝고 건강한 모습이 좋았다.
d가 새학년이 시작되고 저녁시간에 새로운 짝꿍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말이 많지않고 항상 책을 보는 아이라 친해지기 어려웠는데
만화책 이야기를 꺼내자 눈이 반짝이며 수다를 줄줄 늘어놓았다고 했다.
명숙은 d가 또 새로 사귄 친구구나 하고 아무 생각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며칠 뒤 d는 그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명숙은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때 그저 평범하게 아들친구에게 할만한 말과 행동을 보였다.
“니가 새 짝꿍이구나. 얘기 많이 들었어. 집에 자주 놀러오렴”
그리고 눈가에 주름이 잡히는 그 치명적인(허나 그녀 자신은 모를)
눈웃움을 날렸다. 명숙은 알았을까? 그때 그 아이가 그 눈웃음에 반해서
평생을 허우적대리라는 걸.
그렇다. 눈치챘겠지만 그 아이가 바로 나다.
“내가 그렇게 까지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어?”
훗날 우리가 사랑을 나눌때 내가 다소 삐친듯한 말투로 말하자 그녀가 말했다.
“d가 데려온 친구가 어디 한둘이었는줄 아니? 수십명은 될거야.
어떻게 내가 그 애들을 다 기억해?”
그녀는 변명하듯 대답했다.
“그래도 넌 좀 특이하긴 했어”
“뭐가?”
“그냥 뭐랄까… 애늙은이 같달까? 다른 애들은 어찌나 시끄러운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너는… 그냥 조용했어”
그게 내가 그녀에게 준 첫 인상이었다.
“내가 너한테 첫 눈에 뻑간건 눈치도 못챘겠네?”
내가 다소 억울한듯 이야기 하자 명숙은 나를 달래듯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명숙은 그 아이가 처음 자신에게 인사한 그 순간 그의 눈이 잠깐 얼어붙는 것을 보았다.
뭇 남성들의 관심어린 눈빛을 받아보았고, 당시에도 받고 있었기에
그 눈빛은 지겹도록 친숙하면서도 어색한 것이었다.
’고작 11살인 아이가? 나를?‘
그 뒤에도 그 아이는 뭔가 이상했다. 누가 뚫어지게 쳐다보는것 같아
뒤가 뜨거워 눈을 돌리면 그 아이는 재빨리 눈길을 돌리고 다른짓을 하는척을 했다.
라면을 끓여주거나 간식을 주며 같은 테이블에 있을때 관심을 보이며
질문을 하면 아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들릴듯 말듯 대답했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짝사랑하는 누나를 대하는 어린 아이의 태도같았기에
명숙은 그 아이가 귀여우면서도 신기했다.
‘11살짜리가? 혹시 나를 여자로 보는거야? 풉! 귀엽네 이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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