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썰] 9살 연하 슬기 닮은 미용실녀 (2편)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나 우린 약속이라도 한 듯, 애매하게 반 걸음 거리를 두고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자리에 채 안기도 전에 그녀는 나에게 가운을 두르고 정신없이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고, 나는 아래로 눈을 내리깐 채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아있었다. 지난 30분이 찰나와 같았다면, 이 3분도 채 안되는 어색한 시간은 영원같았다. 머리를 볼 새도 없이 가운을 벗고 겉옷을 받아 입었다. 우리의 대화는 끊겨있었다. 좁은 미용실 공간을 나와 카운터에서 결제하려고 카드를 내밀었다.
"저녁,, 드셨어요,,?"
"어,, 네,,? 아뇨,,?"
"아,, 음,,, 그러면 혹시,,, 저랑 맛있는 거 같이 드실래요..?! 이 동네에 숨은 맛집이 많다고 들었는데..! 혼자 가기 어려운 곳들이 많은 것 같아서요..! 어.. 아.. 아! 제가 마감을 하긴 해야하는데 금방 할 수 있거든요..?! 한 10분?! 아니 5분만 기다려 주시면 될 것 같은데...! 그리고 같이 드시면 제가 사드릴게요!! 아 혹시 부담스러우실 수도 있으려나,,,"
레몬나무에도 꽃이 피는진 모르겠지만, 혹 내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레몬나무의 꽃을 보고 향기를 맡게 된다면 그건 이 순간에 그녀에게서 풍겨온 향기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횡설수설하는 그녀를 보며 왠지 모르게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음,,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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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 동네에서 꼭 그 가게 고기를 먹고 싶었거든요' '근데 여긴 친구들도 없고, 미용실 분들은 아직 어렵단 말이죠..?!' '어 오늘 밤은 날씨가 좀 선선한 것 같아요!' '평소에는 주로 어떤거 드세요?!' '아직 제 실력이 부족하긴 한데 오늘 머리는 괜찮으셨어요?!' '이 정도 날씨면 밖에서 걷기 좋지 않아요?!' 그녀는 무언가 안심이 되었는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건지 조곤조곤하지만 밝게 떠들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벼운 미소를 띈 채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적당히 낡고 적적한 거리가 마치 풍경 같았다.
분명 동네에 숨어있는 맛집이었지만, 정확히 어떤 메뉴들을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슬기에 대한 것 뿐이었다. 20대 초반의 슬기는 나와 9살 차이였는데, 중3 때 집안이 아주 어려워졌다는 것,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연락도 자주 끊긴다는 것, 친구와 연애, 여행 같은 요즘 00년대 생들에게 아주 평범한 것들도 그녀에겐 평범하지 않다는 것, 그녀의 '그쵸 좋죠'라는 한결같은 대답과는 다르게 마음 깊숙히 꽤나 깊은 우울이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오라버님이 너무 고마웠던거 있죠"
천천히 식사를 하며 가볍게 소주도 한 잔 걸치고 있었는데, 계속 '고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색했는지 슬기는 혼자 "'고객님?' '선생님??'은 너무 먼데,, '오빠..'는 좀 버릇없어 보이고,, 애매한 '오라버니' 어때요?"라며 내 호칭을 저렇게 굳혔다. 슬기에게 언니가 있었으나, 3년 전에 본 것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외모를 보나 성격을 보나 분명히 인기가 많았을 고등학교 시절에도 연애는 커녕 괴롭힘을 당했었다고 한다. 때때로 집에 수도와 전기가 끊겨 제대로 못씻는 일도 있을 정도였고, 용돈은 사치였기 때문에 친구들과 놀 생각은 하지도 못했으며, 통상 그 때의 10대들이 그렇듯 예쁘장 하지만 행색이 초라한 슬기를 주변에서 좋은 먹잇감을 삼았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누구를 오빠라고 부를 일이 잘 없어서 저 호칭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던 것 같다. 감정이 복잡했다. 그 흔한 친구도 없고, 찾아오는 손님도 적은 그녀에게 내 두 번의 연속된 예약이 마치 새로운 기회 같았다고 했다. 그깟 만원 이만원이 뭐 얼마나 대수라고.
가족들이 모두 흩어진 슬기에게 연속으로 예약도 해주고, 편하게 대화를 받아주는 내가 고마웠지만, 자기 실력이 부족해 떠날까봐 두려웠다고 했다. 그래서 원장님과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물어보니 몸부터 들이밀라고 조언해줬던 것이다. (여자 디자이너들이 남자 고객들을 호구 혹은 단골로 만드는 아주 손쉽고 빠른 방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눈 딱 감고 몸을 들이댔고,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 같아서 해명하려고 저녁을 먹자고 했다며 울먹이는 말로 털어놓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앞으로 내 머리는 쭉 니가 책임져라. 색을 바꾸라면 바꿀 것이고, 볶으라면 볶을테니 열심히 실력을 키워서 내 머리를 항상 멋지게 만들어줘라. 실력만 충분하다면 기꺼이 낼 만큼 내겠다는 말 정도가 나의 최선이었다.
자리를 옮겨 그렇게 소주를 계속 기울이며 슬기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었던 것 같다. 천천히 마셨지만 나나 슬기나 꽤 취했던 것 같다. 처음에 밥을 먹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혹시나 하는 흑심부터 품었지만, 그녀의 팔을 가볍게 잡고 데려다주는 길에는 가여움과 기특함이 반반이었던 것 같다. 나보다 조금 더 취했던 슬기는 집 근처로 갈수록 점점 비틀거렸다. 슬기를 부축한 채 집 근처에 도착했는데, 슬기가 살던 곳은 낡고 허름한 동네에 5평도 안될 것 같은 오래된 원룸이었다. 침대도 없이 얇은 매트만 있는 곳에 슬기를 눕혔다. 힘겹게 누운 슬기가 '오늘.. 고마워요 많이' 라고 속삭이며 반쯤 누운채 안겼다. 그저 안아주는 것 말곤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슬기가 잠든 것을 보고 나오는데, 낡은 책상인지 화장대인지 모를 탁자 위에는 여전히 가격표가 붙은 채 반쯤 차있는 2천원 짜리 레몬향 스프레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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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두었던 것을 꺼내 저 때의 기억을 되새기다보니 생각보다 길어지네요. 한 두 편이면 마무리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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