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다방 윤양은 어디갔을까

예전에 있었던 얘기를 풀자면 지역을 어느정도 어떻게 표시할까
사실 그거부터 약간 고민된다.
왜냐 까닥하면 내가 펼치는 얘기속의 당사자가 만에 하나
이글을 보게되면 어떤 머리 아픈 일이 벌어질 공산도 없지 않게 때문이다.
어떤 도시 오거리에 인근 재래식 시장과 연결된 상가 2층에 호다방이라고 있었다.
내가 당시 회사 출퇴근하던 중간 위치 쯤에 위치한 곳이다.
그러니까 내 노총각 31세 무렵이다.
내가 유흥가부터 방석 술집에 갖다바친 돈을 따지면 얼마일까
따져보지는 않아도 아마 상당한 금액이 될 것이다.
당시에는 가요방이나 다방 같은 유흥업들이 장사가 꽤 잘되던 시절이다.
회사는3교대 근무를 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오전반 마치고 오면 오후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특별한 여가없이 다방이나 술집여자를 만나는 것이 내 일과였다 시피 했으니까...
좀 떨어진 이웃동네에 대학 대니는 내 막내 여동생이 있었지만 거의 왕래가 없었다.
대학은 장학생으로 들어갔는데
학비는 해결되어도 한달 용돈과 방값 부담은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동생이 알바를 해서 거의 충당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계집년이 무슨 대학이냐 시집가면 남의 식군데" 지극히 가부장적 아버지 밑에서
맘고생도 많이 했던터였다.
물론 넉넉한 집안 형편도 못된다.
그 때는 몰랐지만 내가 한달 월급타면 흥청망청 유흥가를 전전하며
회류계 밑구녕으로 돈을 쳐 넣을때 동생은 1년 휴학계를 내고
미싱 자수 이불 공장에 알바를 하다 야간에 졸다가 미싱바늘이 검지손가락을 관통해서
119에 실려 응급실을 갔던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불업자가 얼마나 독종인지 손가락이 관통된 상태를 알면서
병원에서 붕대를 감은 손으로 나와 공장에 대려와 일을 시켰다는 소리를 듣고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다 지나간 일이었다.
어찌보면 이 못난 오빠의 부덕의 소치였던 거디였던 거디였다.
만내 동생이 졸업식날 나는 바로 밑 동생과 같이 막내 졸업식장을가서
사각모를 쓴 막내와 학교정원을 배경으로 몇장의 사진을 찍었다.
지금도 그 사진을 보면 옛날 생각이 많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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