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편]썸녀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만난 썰-2

전편을 쓴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요즘은 SNS 덕분인지, 마음만 먹으면 예전 연인이나 지인, 동료의 소식을 알아보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다.
아이디만 기억하고 있다면, 그들의 근황쯤은 손바닥 보듯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이니까.
그렇게,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K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 몇 년이 흘렀다.
어느 날은 남편이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며, 자신이 기획 중인 어떤 일을 도와달라는 연락이 오기도 했다.
하지만 K에게 느낀 실망이 꽤 컸던 나는, 그런 연락이 올 때마다 모른 척 지나치곤 했다.
그러다 ‘이혼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한창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는 말도 함께.
그 후로는 정신적으로 꽤나 소모적인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 일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혹시라도 K의 정체가 드러날까 염려되니. 다만,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서로 온라인으로 가끔 안부를 묻는 정도의 거리, "언제 한번 보자"는 인사만 주고받는 그런 사이로 남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내가 먼저 “다음 주에 시간 언제 돼?”라며 진짜 약속을 잡아버렸다.
약속일이 다가오는 일주일 내내 머릿속엔
‘네가 먼저 약속을 취소해라.
나는 그럴 용기가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약속장소를 정하려 통화를 하는데, K는 그저 편하게 자기 집 앞에서 보자고 했다.
그렇게, 어색하게도 싱겁게도 흘러가버린 10년이 지나, 그녀와 다시 마주 앉게 되었다.
약속시간은 그녀의 일이 끝난 뒤를 감안해 밤 9시로 정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K는, 세월의 변화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얼굴살이 많이 빠져, 길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볼 뻔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더 예뻐졌다’는 말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흘렀다.
가게 문이 닫힐 시간이 되자, 아쉬운 마음을 안고 그녀의 집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또 볼 수 있을까?”
“너는 어떤 요일이 괜찮아?”
“화요일, 목요일은 괜찮아. 주말엔 남자친구 만나러 지방에 가야 해.”
그제야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K 같은 외모를 가진 여자를 세상이 가만 둘 리가 없지.
그렇게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그날 밤, 그녀의 SNS를 살펴보니 역시나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 있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의 스타일은 뚜렷했다.
조금은 가냘프고, 어딘가 기생오라비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잘생긴 남자.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외모에 걸맞은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다만, 남자는 먼 지방에 살고 있었고, 그녀가 매번 그를 보러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그날은 약속에 앞서 내가 먼저 말했다.
“내일 연차를 냈어. 오늘은 늦게까지, 새벽까지도 괜찮아.”
“나도 그래,” 그녀가 답했다.
그날 그녀를 만났을 때, 솔직히 말해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초미니 스커트를 입은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치마를 살짝살짝 추스르곤 했고, 투명한 테이블 아래로 레이스가 달린 팬티가 언뜻언뜻 보였다.
나는 웃으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 보인다, 레이스 달린 빨간 팬티.
브래지어랑 세트지?”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응큼하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오빠 많이 대담해졌네~”
하지만 그날은 뭔가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날이었는지, 그냥 웃고 떠들다 그렇게 헤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좀 더 용기를 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음날, 나는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또 언제 볼까? ^^”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오빠, 나 남친도 있고, 오빠도 임자 있잖아.
나 같은 사람이 뭐가 좋다고 자꾸 만나자 그래~”
그 말에 더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러냐…”라고만 답하고는 한 달가량 연락을 끊었다.
사실, 그녀 말대로 그런 상황에서 계속 연락을 하는 건 모양 빠지는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지.
사람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한 게,
한 번 마음을 줬던 사람을 다시 만나면, 잊었던 감정들이 불쑥불쑥 되살아나는 법이다.
가볍게, 그녀가 사는 동네에 대한 뉴스 기사를 링크로 보내며 말을 걸어봤다.
“아~ 너희 동네 뉴스가 있길래~”
그녀는 물음표 하나만을 남겼다.
다음 날, 나는 차를 정비소에 맡겼는데 하루 더 걸린다고 연락이 왔다.
하필이면 그날, K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라버니~ 오늘 저녁에 시간 돼요?
한 잔만 사줘요~”
“아이고, 어쩌냐. 차가 없어서 움직이질 못하겠네…”
“크~ 알았어.
그럼 다음에 두 잔 사줘요~”
며칠 후,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녀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조금 지쳐 보였고, 말수도 줄어 있었다.
"요즘 일이 잘 안 풀려…
계약자들도 많이 빠져나가서 수입이 반토막이 났어.
아무래도 내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아."
그녀는 한참을 말없이 커피만 들이켰다.
괜히 마음이 쓰였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뭐든 말해.
정말 뭐든지."
"돈 빌려달라는 말은 안 할게.
대신… 진짜 좀 도와줘."
그 말 이후, 우리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꾸준히 만났다.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엑셀로 가계부를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자격증 공부 중 IT 파트는 아예 1:1로 과외를 해주었다.
"나는 표현이 서툰 사람이지만,
오빠한테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
발렌타인데이를 앞둔 어느 날, 그녀가 상자를 내밀었다.
"요즘 잠 못 잔다고 해서 준비했어.
기절 쥬스 한 박스. 이거 마시고 좀 자, 응?"
집에 와서 상자를 열어보니 초콜릿과 함께 작은 카드가 들어 있었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 있는 오빠,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갑고 요즘 너무 즐거워.
나 많이 심심하니까, 나랑 자주 놀아줘~”
심장이 살짝 덜컥였다.
하지만 그 문장, 낯설지 않았다.
10년 전에도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요즘 그녀는 주말마다 남자친구를 만나러 지방에 내려간다고 했지만
그 빈도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 날 밤 11시, 카톡이 왔다.
“이제 일이 끝났는데, 잠깐 시간 돼?”
나는 당연히 나갔다.
한강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간의 마음을 꺼내놓았다.
"10년 전,
너 많이 좋아했던 거 몰랐지?
그때 네가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했을 때
솔직히 다 정리하고 너한테 달려가고 싶었어.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면,
그때 ‘우리 사귀자’고 말하지 못한 거야."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오빠가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내 얘기 한번 해볼까?
사실…
나 지금 남자친구랑 헤어지는 중이야.
헤어졌다고 말하긴 애매하지만,
요즘 거리를 두고 있어.
사실은…
그 사람이 날 좀 붙잡아줬으면 했거든.
근데, 그런 마음이 없나 봐.
나는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었는데,
그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아…
이런 말, 오빠니까 하는 거야."
나는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으며 말했다.
"잘 생각해서 결정해.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늘 네 편이야."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너 배고프지 않아?
우리… 라면이라도 먹을까?"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강물만 바라보고 있었다.
"차 타.
집까지 데려다줄게."
그녀를 데려다주고 집 앞에 한참을 서 있다 출발해, 자유로에 진입했을 무렵—문자가 왔다.
“라면 먹고 싶다.”
“지금 바로 차 돌릴게. 조금만 기다려.”
“아냐.
지금 라면 먹으면 얼굴 붓고 엉망돼.
다음에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 다음 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딘가 말을 빙빙 돌리는 기색이 느껴졌다.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본론이 뭐야.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조금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나… 부탁이 있어.
자격증 시험을 온라인으로 봐야 하는데,
오픈북이긴 해도 아침일찍 시작해도 오후 늦게 끝나는 거라…
누가 옆에서 자료 좀 찾아주면 좋겠더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빠가 제일 잘할 것 같아서…"
"그래, 도와줄게.
그런데… 어디서 볼까?
카페는 오래 앉아 있긴 좀 그렇잖아.
여러 군데 옮겨 다니면서 해야 할지도 모르겠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냥… 우리 집으로 올래?
나는 괜찮은데… 오빠는 어때?"
이쯤에서 살짝 끊어봅니다.
잠시잠깐 2년남짓의 기간동안 K를 다시 만나면서 있었던 일들을
주욱~~적어보렵니다.
불끈거리는 스토리보다는 이런 자잘한 스토리라인이지만
이런 글을 어디에 또 적어보겠습니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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