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 넘치는 룸메이트와 살았던 썰 3
쑤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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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쪽지에는 전화번호가 써 있었어요.
혼자 야근을 하던 중이라 사무실에 아무도 없어서 바로 전화를 했죠.
전화를 받은 여자는 제 목소리에 멈칫 하더니 깔깔 웃기 시작했어요.
남자 목소리라서 당황했다며 자기는 당황하면 웃음이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쪽지를 보고, 당연히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다는 이유였어요.
너무 부드러운 말투로 썼나? 어색하고 미안해서 같이 따라 웃었죠.
(이때까진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전화기 너머로 전철 정차역 안내 목소리가 들리길래
지금 집에 가시냐고 했더니
자기는 거의 매일 야근이라서 항상 이때쯤 집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야근 중이라고 하니까 같은 처지라며 또 깔깔 웃고
왜 자꾸 웃으시냐고 술 한잔 하신 것 같다고 하니까 또 깔깔 웃고
웃음이 참 많은 분이었어요.
그렇게 그분이 내릴 때까지 신나게 수다를 떨다보니
원래 알던 친구 같은 느낌도 들고… 친밀감이 생겼어요.
아참 ㅋㅋㅋ 집 때문에 ㅋㅋ 전화 주신거잖아요!! ㅋㅋㅋ
아 ㅋㅋ 네 그랬었죠 ㅋㅋ
결국 집에 대해서는 별로 물어보지도 않았고 (궁금한 것도 없었지만)
그냥 내일 밤 11시에 집을 보기로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었어요.
집 보러 가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그 시간 정도 되어야 집에 온다니까...
한밤 중에 여자 혼자 사는 자취집에 간다는 생각을 하니 살짝 두근거렸어요.
다음 날 저도 야근을 한 다음 사가정으로 갔어요. (그 회사는 야근이 참 많았어요)
서울 태생이지만 처음 가본 동네였어요.
역에서 나와서 골목길로 들어가니까 죄다 빨간 벽돌 다가구… 완전 옛날 동네였어요.
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 늘어선 집들이 다 똑같이 생기다 보니 잘못 찾아가기도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여자네 집을 찾아서, 2층 현관에서 문자를 보내니까
거실 불이 켜지고 여자가 다가오는 게 현관문 엠보싱 유리를 통해 보였어요.
여자는 현관문을 살짝만 열고는 얼른 들어오시라고 했어요.
들어가서 보니 수수한 외모와 적당한 체형을 가진 20대 후반 여자였어요.
혼자 사는 걸로 월세를 깎고 들어온 거라 주인이 보면 안된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장난스럽게 ‘둘 만 있다고 이상한 짓 하시면 안돼요!’ 라고 해서 웃었어요.
여기서 이 여자랑 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집에 들어가니까 마치 대학교 시절 친구 자취방에 온 듯한 익숙한 느낌이었어요.
방 2개와 화장실, 거실 겸 주방 구조였는데
테이프를 붙인 장판과 누런 벽지, 내려앉은 싱크대가 눈에 띄었어요.
화장실엔 어두운 갈색 변기와 청색 통돌이 세탁기가 있었고 세면대는 없었어요.
그리고 담배 냄새가 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아… 그리고… 욕조…
화장실 앞에 욕조가 놓여 있었어요!! 심지어 작은 방 앞에… (뭐야? 데자뷔인가??)
을지로 처럼 화장실이 없는 것도 아니고 왜 욕조를 거실에 가져다 놨을까…
거실 욕조가 요즘 트렌드인가?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여자는 부끄러워 하면서, 사실 욕조에서 거품 목욕 하는 게 로망이라서
화장실에 놓고 쓰려고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배송 온 걸 보니 너무 커서 화장실에 안 들어가서 그냥 문 앞에 놓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급수 배수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처음 샀을 때만 딱 한 번 써봤다는 것이었어요.
다시 보니 투박한 욕조가 아니라, 약간 공주 욕조 같은 예쁜 디자인이긴 했어요.
제가 쓸 방은 안쪽 작은 방이었는데
을지로 작은 방보다는 컸지만, 폭이 좁고 길쭉한 모양이라서 비슷해 보였어요.
창문이 있긴 했지만 그냥 환기용. 옆 집 빨간 벽만 보였어요.
방에는 이전에 살던 사람이 썼던 작은 책상과 의자, 왕자헹거가 있었고
베란다와 보일러실로 통하는 알루미늄 문이 하나 더 있었어요.
낡고 오래된 만큼 월세는 저번 을지로랑 비슷한 저렴한 편
어찌되었든 여기는 최소한 사람이 사는 집 느낌은 났어요.
여자는 단정한 외출복 차림이었는데, 자기도 방금 퇴근해서 집에 왔다고 했어요.
담배 피우냐고 해서 그렇다고 하니까 같이 피우자면서 안방으로 절 데려갔어요.
넓은 안방엔 큰 침대와 책상, TV, 옷장 같은 것들이 있었고, 실내 자전거도 있었어요.
방바닥에 발 디딜 틈 없이 옷이랑 책이랑 박스 같은 게 잔뜩 어질러져 있었어요.
그 와중에 남자가 온다고 건조대를 안방에 가져다 놨더라구요. (속옷이 엄청 걸려 있었음)
자긴 영상에 자막 입히는 일을 한다고 했어요.
부모님이 뭔가 사기를 당했나 그래서 지방에서 전문대 나오고 바로 서울로 돈 벌러 왔다며
여러 알바를 전전하다가 지금 일을 시작한지는 2-3년 쯤 됐다고 했어요.
연봉은 너무 적지만, 일도 재밌고 사람도 좋고 야근해도 딱히 불만이 없다면서
조만간 편집을 배워서 영상 PD가 되고 싶다는 말도 했어요.
그렇게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12시가 넘어버렸어요.
서둘러 나와서 사가정 역으로 갔더니 집에 가는 전철은 이미 끊겨 있었죠.
다시 밖으로 나와서 택시 타야되나 하고 있는데 여자에게서 문자가 왔어요.
오래 붙들고 있어서 미안하다, 전철은 타셨냐고 물어보길래 이미 끊겼다고 하니까
그럼 혹시 내일 출근 괜찮다면 그 방에서 자고 가도 된다고 했어요.
어차피 저는 출근 복장이 정장이라 딱히 상관은 없어서 그럼 신세 좀 지겠다고 했어요.
여자는 그럼 오실 때 맥주 좀 사오실 수 있냐고 해서 편의점에서 맥주랑 과자를 사갔죠.
집에 다시 들어가서 물어봤어요. 처음 보는 남자인데 어떻게 집에서 재울 생각을 했냐고.
여자는 저랑 대화를 해보니까 재밌고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그랬다고 했어요.
안방 침대에 앉아서 캔맥을 부딪히면서 다시 수다를 떨었어요.
회사 얘기, 집안 얘기… 나이도 연차도 비슷해서 서로 공감이 잘 됐어요.
올 때 4캔 만원 짜리 샀는데도 맥주랑 안주가 떨어져서 중간에 편의점도 다녀오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현실 자각해서 내일 출근하려면 자야 한다면서 수다를 끝냈어요.
여자는 저에게 작은 방에서 덮고 자라고 옷장에서 이불을 갖다 줬고
옷 갈아입으라고 자기 티셔츠와 반바지도 함께 갖다 줬어요.
저랑 키 차이가 많이 안 나서 사이즈는 대충 맞았지만, 티셔츠에 귀여운 그림이 있었죠.
씻을 때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니까… 갑자기 현타가…
그저 집 보러 온 것 뿐인데, 그 여자의 옷을 입고 잠을 자는 이 상황은 대체 뭘까요?
그날, 저는 작은 방에 누워서
여기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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