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였던 이야기 1
고스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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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분전
1화. 평범한 일상 공유
이건 지금 이야기가 아니다.
이십여 년 전, 스마트폰도 카카오톡도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평범하면서 단정한 유부녀를 섹파로 길들여서 맘껏 즐겼던 기억을 조심스럽게 꺼내본다.
그시절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
퇴근하고 누군가와 말을 섞고 싶으면 컴퓨터를 켜야 했고, 모뎀 접속음이나 메신저 로그인 소리를 들으며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때였다.
나는 그때 스무 살 중반이었다.
건설회사에 다녔고 경기도 현장에 나와 있었다.
콘크리트 타설이 있는 날은 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다. 아침부터 안전모를 쓰고 현장을 돌아다니다가 밤이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작업복에는 늘 먼지가 묻어 있었고, 안전화 속 양말은 눅눅했다. 현장에서는 반장의 욕설과 장비 소리가 하루 종일 귀에 붙어 있었다.
차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닦아놔도 저녁이면 앞유리 아래와 운전석 문짝에 회색 먼지가 내려앉았다.
손바닥으로 운전대를 잡으면 손끝이 까슬했다.
숙소라고 해봐야 현장 근처 원룸이었다.
침대 하나.
조그만 냉장고 하나.
전자레인지 하나.
그리고 책상 위 컴퓨터.
현관문을 열고 불을 켜면 형광등 한쪽이 늘 한 박자 늦게 들어왔다.
먼저 하나가 하얗게 켜지고, 다른 하나는 몇 번 깜빡거리다가 마지못해 따라왔다.
그 방에 혼자 있으면 하루 종일 사람들 속에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사람이 그리웠다.
정확히 말하면 여자였다.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면 여자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가능하면 마음에 드는 여자와 만나고 싶었고, 그다음까지도 생각했다.
스무 살 중후반 남자가 혼자 현장 근처에서 살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문제는 그런 마음을 그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그런 남자로 보이는 게 싫었다.
여자만 밝히는 남자.
채팅방을 만들어 놓고 들어오는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남자.
몇 마디 나누지도 않고 나이를 묻고, 사는 곳을 묻고, 사진을 요구하는 남자.
그런 부류가 세이클럽에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그들과 다르게 보이고 싶었다.
평범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평범해 보이고 싶었다.
말이 통하고, 직장이 있고, 자기 생활이 있고, 여자한테 굶주리지 않은 남자.
혼자 있어도 별로 외롭지 않은 사람.
굳이 누군가를 찾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심심해서 채팅방 하나 만들어놓은 사람.
실제로는 정반대였지만.
그날도 원룸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세이클럽에 접속한 뒤 한참 방 제목을 고민했다.
‘직장인 대화.’
너무 딱딱했다.
‘외로운 사람.’
너무 솔직했다.
‘심심한 사람 들어오세요.’
그건 더 싫었다.
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부터 들키는 기분이었다.
몇 번을 지웠다가 결국 이렇게 적었다.
「평범한 일상 공유」
적고 보니 마음에 들었다.
아무 뜻도 없어 보였다.
그래서 더 좋았다.
나는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사실은 평범한 여자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주 예쁠 필요도 없었다.
말이 통하고, 너무 거칠지 않고,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여자.
그런 여자가 들어오면 천천히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관심을 보이면 안 된다.
나이를 바로 물어도 안 되고, 어디 사느냐고 캐물어도 안 되고, 사진 얘기는 더더욱 하면 안 된다.
나는 나름대로 순서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평범한 이야기를 한다.
일 얘기.
밥 얘기.
날씨 얘기.
그다음 조금씩 가까워진다.
상대가 나를 경계하지 않을 만큼만.
나는 그런 계산을 하면서 라면 물을 올렸다.
방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컴퓨터 화면에는 내가 만든 방 제목만 덩그러니 떠 있었다.
괜히 한 번 새로고침을 했다.
아무도 없었다.
냄비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접속음이 들렸다.
닉네임 하나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보통의하루.
나는 잠깐 손을 멈췄다.
여자일까.
먼저 그것부터 생각했다.
그리고 곧바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처럼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나: 안녕하세요
잠시 뒤 답이 왔다.
그녀: 안녕하세요.
마침표가 있었다.
그게 눈에 들어왔다.
채팅에서는 보통 마침표까지 찍지 않았다.
특히 처음 들어온 방에서는 더 그랬다.
나는 괜히 그 마침표에서 여자의 성격을 짐작했다.
조심스러운 사람인가.
아니면 그냥 글 쓰는 습관인가.
나는 나이를 묻고 싶었다.
참았다.
어디 사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것도 참았다.
처음부터 목적이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 방 제목 보고 들어오셨어요?
그녀: 네. 그냥 볼 겸이요.
‘그냥.’
마음에 들었다.
나 역시 그냥 들어와 있는 사람처럼 보여야 했다.
나: 오늘 뭐 하셨어요
그녀: 일요. 늦게 끝났어요.
나: 저도요. 맨날 늦어요
그녀: 무슨 일이세요.
나는 조금 망설였다.
건설회사라고 하면 너무 거칠게 보일까 싶었다.
그렇다고 회사원이라고만 하는 것도 싫었다.
괜히 감추는 것 같았다.
나: 건설이요. 경기도 현장
그녀: 힘드시겠어요.
나: 익숙해요. 저녁은요
익숙하다고 썼지만 사실 별로 익숙하지 않았다.
숙소에 혼자 돌아오는 것도,
빨래를 주말에 몰아서 하는 것도,
저녁마다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것도.
하지만 힘들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 만난 여자에게 외로운 남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 집에서 대충요. 혼자라서요.
‘혼자라서요.’
그 문장을 읽자 마음 한쪽이 조금 움직였다.
혼자 산다는 뜻인가.
남자친구가 없다는 뜻일까.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스스로 멈췄다.
너무 빨리 가지 말자.
나: 저도 원룸에서 라면이요
그녀: 주말엔 올라가세요?
나: 잘 못 올라가요. 현장이 애매해서
그녀: 그렇구나.
나: 그쪽은 주말에도 일하세요?
그녀: 주말은 잘 안 들어와요. 여기요.
나: 아 세이요
그녀: 네.
나는 그 말을 두 번 읽었다.
주말에는 잘 안 들어온다.
그럼 평일에는 들어온다는 뜻인가.
또 볼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 사실이 생각보다 반가웠다.
하지만 반가운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나: 그럼 오늘은 특별한 날인가
조금 가볍게 썼다.
너무 기다렸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그녀: 그냥. 켜져 있길래.
그 답을 보고 나는 웃었다.
나 때문에 들어온 게 아니라 방이 켜져 있어서 들어온 사람.
그 정도 거리가 좋았다.
오히려 안심이 됐다.
나는 냄비에 라면을 넣었다.
끓는 물에 면이 가라앉았다.
형광등 한쪽이 몇 번 깜빡거리다가 늦게 켜졌다.
나는 모니터 앞에 앉았다.
처음 방을 만들 때 가졌던 생각은 여전히 있었다.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잘되면 만나고 싶다는 마음.
그보다 더한 마음도.
그런데 이상하게 그 순간에는 그걸 서두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괜찮은 남자로 보이고 싶었다.
적당히 무심하고,
적당히 성실하고,
여자에게 목매지 않는 남자.
그녀가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래서 내가 먼저 욕망을 창밖에 내놓았다.
잠깐만.
조금만 밖에 있어라.
나: 점심은 뭐 드셨어요
그녀: 김밥이요. 시간이 없어서.
나: 현장은 국밥 아니면 편의점
그녀: 날 추우면 국밥이 낫죠.
나: 오늘은 추웠어요
그녀: 버스 기다리기 싫더라고요.
나는 버스라는 단어에서 그녀의 하루를 상상했다.
퇴근해서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여자.
코트인지 점퍼인지 알 수 없었다.
얼굴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장면은 그려졌다.
나: 저는 차로 다녀요. 자가용
쓰고 나서 조금 민망했다.
굳이 ‘자가용’이라고 덧붙인 건 왜였을까.
차가 있다는 걸 은근히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내 마음이 우스웠다.
평범해 보이고 싶다면서 또 한편으로는 조금 괜찮아 보이고 싶었다.
그녀: 파견인데 차 있으세요?
나는 그 질문이 반가웠다.
관심을 보인 것 같아서.
하지만 또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나: 있어서 내려왔어요. 현장 가면 차도 회색이에요
그녀: 먼지죠.
나: 맞아요. 운전석만 닦아요
그녀: ㅋㅋ
나는 그 두 글자를 한동안 바라봤다.
처음이었다.
그녀가 웃었다.
그게 별것 아닌데도 기분이 좋았다.
나: 처음으로 웃으셨네
치고 나서 조금 후회했다.
괜히 상대를 너무 보고 있었다는 티가 난 것 같았다.
그녀: 그냥요.
역시 짧았다.
나는 한 발 물러섰다.
나: 말씀 짧으신 편이에요
그녀: 글이 어색해서요.
나: 여기 익명이라 더 어색하죠
그녀: 오히려 편할 때도 있어요.
그 말이 조금 뜻밖이었다.
나: 어떤 때요
그녀: 그냥. 오늘 하루가 길었을 때요.
나는 손을 멈췄다.
그전까지 우리는 그냥 밥 얘기, 차 얘기, 일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문장은 조금 달랐다.
오늘 하루가 길었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을 수도 있었다.
왜 길었느냐고 물을 수도 있었다.
나는 묻지 않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깊이 들어가는 것도 욕심 같았다.
대신 이렇게 썼다.
나: 오늘은 길었어요?
잠시 답이 없었다.
그리고.
그녀: 네.
그 네 자가 오래 남았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 그녀의 얼굴보다 하루가 궁금해졌다.
무슨 일을 하는지.
왜 늦게 끝났는지.
버스를 기다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왜 집에 돌아와 굳이 세이클럽을 켰는지.
처음 방을 만들었을 때 내가 궁금했던 건 여자의 나이와 얼굴이었다.
조금 전부터 궁금한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아직 인정하지 않았다.
나: 닉이 보통의하루네요
그녀: 그쪽은 피터팬이네요.
나: 그냥 지었어요
사실 그냥 지은 건 아니었다.
피터팬.
나이를 먹으면서도 어딘가 철들지 않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조금은 낭만적인 남자로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설명까지 하면 우스워질 것 같았다.
그녀: 저도요.
나: 내일도 이 시간에요?
치고 나서 또 너무 빨랐나 싶었다.
나는 급히 덧붙였다.
나: 늦을 수도 있어요
마치 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듯이.
내가 바쁜 사람이라는 듯이.
그녀: 일 끝나면요.
나는 모니터를 보고 웃었다.
나: 들어오실 거예요?
그녀: 오늘은 들어왔잖아요.
나: 내일이 보통이 아닐 수도
그녀: 내일이 보통이면 또 들어올게요.
그 말이 좋았다.
내일이 보통이면.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특별한 약속은 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그러면서 다음 날을 약속했다.
나: 알겠어요
그녀: 라면 식기 전에 드세요.
나는 냄비를 봤다.
면은 이미 많이 불어 있었다.
나: 어떻게 알았어요
그녀: 혼자 원룸이면 맨날 그거잖아요.
나는 웃었다.
조금 전까지 그녀의 얼굴을 상상하려던 마음이 사라졌다.
그녀가 나를 조금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게 좋았다.
나: 맞아요. 들어가세요
그녀: 네. 내일요.
그녀의 닉네임이 사라졌다.
채팅창은 다시 회색이 됐다.
나는 한동안 컴퓨터를 끄지 않았다.
방 제목도 그대로였다.
「평범한 일상 공유」
웃음이 났다.
처음엔 꽤 영리한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내 속마음을 감추기에 좋은 제목.
나는 평범한 척하고 싶었다.
외롭지 않은 척.
여자를 찾는 게 아닌 척.
아무 기대도 없는 척.
그런데 그날 밤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평범한 척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정말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고.
누군가를 급하게 소유하려 하지 않고,
그냥 하루를 묻고,
밥을 묻고,
추웠냐고 묻는 사람.
물론 욕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도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
얼굴은 어떨까.
몇 살일까.
남자친구가 있을까.
만날 수 있을까.
생각은 계속 그쪽으로 갔다.
다만 그 모든 질문보다 하나가 조금 앞에 생겼다.
내일도 들어올까.
다음 날 현장은 또 늦게 끝났다.
나는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에 회색 먼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손바닥으로 한 번 털었다.
시동을 걸었다.
라디오를 켰다가 다시 껐다.
집에 가면 씻고 라면부터 먹을 생각이었다.
아니었다.
사실은 이미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원룸 문을 열고,
늦게 켜지는 형광등을 기다리고,
컴퓨터부터 켤 것이다.
그리고 방을 만들 것이다.
「평범한 일상 공유」
혹시 이미 들어와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나는 혼자 웃었다.
목적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여자를 만나고 싶었다.
그녀가 마음에 드는 여자라면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 마음까지 깨끗한 척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는 달라져 있었다.
전날 밤까지 나는 여자를 기다렸다.
그날부터는,
보통의하루를 기다렸다.
| 이 썰의 시리즈 (총 8건) | ||
|---|---|---|
| 번호 | 날짜 | 제목 |
| 1 | 2026.09.27 | 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8 (1) |
| 2 | 2026.09.27 | 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7 |
| 3 | 2026.09.27 | 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6 (2) |
| 4 | 2026.09.27 | 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5 (1) |
| 5 | 2026.09.27 | 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인 이야기 4 (3) |
| 8 | 2026.09.27 | 현재글 평범했던 유부녀 길들였던 이야기 1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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