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수지역 식당, 유부녀 사장3
3.
어떤 지역이든 어떤 거리든 그 장소가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이 분위기에 맞는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내가 복무했던 깡촌 시골에선 뽀글파마를 하고 냉장고 바지를 입은 아줌마들이 쓰레빠를 신고 다니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아줌마가 여의도 금융권 거리에 뚝 떨어지면 부조화가 생겨 버리지 않던가.
그 여자를 본 순간 느낀 감정이 그랬다.
부조화
깡촌 시골에 어울리지 않는 얼굴과 피부 애써 깡촌에 융화되려 대충 걸쳤지만 그 거적대기를 뚫고 나오는 몸매.
단지 색기가 있다거나 잘 빠졌다의 느낌이 아니었다.
아마존 원주민들 사이에서 그들과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지만 홀로 금발에 흰 피부를 가진 사람처럼 부조화가 느껴졌다.
"뭐 드릴까요?"
그 기이함에 빠져 딴 생각을 하던 나는 급하게 메뉴를 찾았다.
소불고기, 낙지 볶음, 제육 볶음, 떡볶이, 김밥, 오뎅......
당최 무슨 식당인지 알 수가 없는 난잡한 메뉴를 보자니 뭘 먹어도 함정이겠구나라는 생각에 그냥 김밥과 라면을 시켰다.
그 부조화스런 여인은 어쩐지 안도하는 표정으로 작게 숨을 쉬며 요리를 시작했다.
그 식당엔 TV도 없었다. 나는 핸도폰도 없었고.
당연하게도 내 시선은 그 여자에게 향했다.
예전에 만났던 관상가가 그런 말을 했다.
과거엔 험지에서 태어난 가희의 운명과 귀족가에서 태어난 추녀는 비슷하게 불행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이동과 변화에 자유가 있는 세계라 어디서 태어나든 자신의 운명을 따라간다고.
험지에서 태어났어도 가희라면 연예인이든 방송이든 귀족가에 시집을 가고.
귀족가에서 태어난 추녀는 자신을 변화 시키지 않으면 결국 험지와 같은 인생을 살게 된다고.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이 여자는 자신의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이었다.
시골 특유의 얼굴만 이쁜 양아치년의 느낌도 보이지 않고, 식당 일을 하면서도 추잡하게 보이지 않는다.
낡은 앞치마는 깨끗이 빨래를 한 듯 음식물이 묻어 있지 않았고,
살짝 걷은 티셔츠 사이로 보이는 가녀린 팔은 그녀가 힘든 일이 익숙치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얼굴엔 고아함이 있었다. 많이 배우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의 얼굴.
예쁜 얼굴에 잘 빠진 몸매와 지성미까지 갖춘 아나운서 같은 여자가 삼십년은 된 듯한 고물들 사이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니 어울리지 않는 건 당연했다.
최근에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비슷한 장면을 봤기에 링크를 걸어 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M8xdxafesmo
이 영상이 떡상해서 1천만 조회수가 달성 했던 것도 그 부조화 때문이라 생각한다.
라면도 못 끓일 것 같은 미소녀가 능숙하게 기름과 불을 다루며 볶음밥을 만든다니 시선이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나는 이 영상을 보고 맨 처음 떠오른게 위수지역 식당 사장이었다.
물론 이 영상의 주인공은 20대에 아이돌스런 미모를 가졌지만 위수지역 식당 여자는 좀 더 차가운 인상에 몸매가 두드러졌었다.
아무튼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주변을 둘러 봤다.
테이블은 이전보다 절반으로 줄어 있었고, 그 싸가지 없는 할매가 휴식을 취하던 공간은 어쩐지 본격적인 생활감이 가득했다.
정확하게는 아이의 흔적이랄까? 커다란 장론 아래로 영어와 숫자가 적힌 포스터. 낙서한 스케치북 가방 장난감 같은 것들.
아이가 있어 보이는 나이는 아니었기에 그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음식이 나왔다.
라면과 김밥은 그냥 딱 그 정도 맛이었다.
더 맛있을 것도 없고, 더 맛없을 것도 없고.
내가 밥을 먹는 동안 여자는 주변을 정리하고 식재료를 준비했다.
기구, 장비 모두 낡았지만 여자가 깨끗하게 정리를 해서 예전처럼 더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먼저 말을 걸었다.
본래라면 절대 말을 걸지 않았겠지만, 병장이 되고 부대에서 왕고가 되면서 말할 때 생각을 안 하는 습관이 붙었던 탓이다.
"여기 사장님이세요?"
여자는 왜인지 화들짝 놀라며, 조심스레 '네'라고 답했다. 마치 혼날 일이 있는 사람처럼.
"아니, 다른게 아니고 예전에 다른 사장님이 계셨던 것 같은데. 바뀌신 거 같아서."
"아...... 네......."
뭔가 대답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분명 대답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기에 본래의 나라면 머슥함에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근데 사장님.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네?"
그 사장이 놀란 만큼 나도 놀랐다. 시발 아무리 내가 뻔뻔해졌어도 이런 말이 그냥 튀어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미 내뱉은 이상 대한민국 병장에게 무서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 말씀 많이 듣지 않으세요?"
"아........."
사장의 인상이 점점 찌푸려지는 것 같았다. 상대가 싫어하는 반응이 분명했음에도 나는 위축되기는 커녕 점점 가슴을 크게 폈다.
"근데 진짜 제 이상형이랑 똑같으세요. 분위기나 그런 것들이."
내 말을 멍하니 듣고 있던 사장은 이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곤 다시금 일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하고 그런 반응을 봤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심장의 떨림도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고 그게 자랑스럽다는 생각이 들뿐.
오히려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 뭔가 여자 사장에 대해서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달까.
나는 천천히 밥을 먹고 계산을 했다.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네."
여자 사장은 뜨뜨미지근 하게 돈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을 떼우다 복귀를 했고, 나는 여자 사장에 대해서 잊어 버렸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다시금 2박 3일 휴가를 받게 된다.
#
연대에서 주최하는 사격 대회가 열렸다.
대대 대표로 나와 우리 소대 막내가 나가게 되었다.
근데 이놈이 좀 특이한 놈이었다.
얼굴은 곱상하게 잘 생겼고 귀티가 났는데.
공부엔 취미가 없었던 건지 공고를 나와 카센타에서 일을 하다 왔단다.
왕고였던 나를 어려워하긴 했는데 유난히 잘 따랐다.
사격 대회가 열린 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한테 찰싹 붙어서 사격 훈련을 시켜 달라고 했다.
다른 놈들하고 같이 묶어서 훈련을 하려고 물어봤으나 다른 놈들은 내가 어려운지 참여 하지 않았고 녀석과 일대일로 매일 특훈을 해줬다.
일과 시간이 끝난 후엔 개인 훈련하고. 막내는 왕고 옆에 자는 거다 보니 거의 마누라처럼 붙어 있게 되었다.
"와, ㅇ병장님 몸이 미치셨습니다."
그 당시 삼시 세끼에 단백질 쉐이크까지 줜나 처먹고 할일 없이 죽어라 쇠질만 했기에 중학교 때에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불어 있는 상태였긴 했으나.
이 새끼가 야릇하게 근육을 만지는 바람에 하마터면 주먹이 날아갈 뻔 했다.
가뜩이나 곱상한 미소년 외모에 여리여리한 몸매이고 털이라곤 고추 근처에밖에 없고, 피부도 하얗다 보니 더 이상하게 느껴졌달까.
어쨌든 막내가 왕고랑 친한게 녀석의 군생활에 별로 좋을 건 없다는 걸 알았기에 너무 나만 졸졸 따라다니지 말라고 얘기 했다.
"그냥 ㅇ병장님 멋있어서 말입니다. 그래도 해주신 말씀은 세겨 듣지 말입니다."
아무튼 내 특훈 덕분인지 녀석의 노력 덕분인지 우린 연대 1,2등을 따냈다.
연대 1등이 3박 4일 휴가였는데 한 달 전에 휴가를 다녀왔고, 나가서 할 것도 없었기에 그냥 소대 애들 중에 하나를 주려고 했더니만 그건 안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 막내 새끼가 따낸 2박 3일 휴가랑 바꿔도 되냐 물었더니 그건 된다고 하더라.
멍청한 표정으로 서 있던 막내는 괜찮다며 거절을 하다 '시발 받아 이 새끼야'라는 얘기에 바꿨다.
얘도 백일 휴가 이후론 휴가를 한 장도 못 받았거든.
시발롬이 휴가증 바꿔주니까 바닥에 비누를 줏으려는 자세를 취하길래 냅다 걷어 차려 했더니 고개를 숙이는 거더라.
연신 감사하다고 하더라.
그게 눈물까지 흘릴 일인가 싶었지만 그냥 알았다 하고 넘어갔다.
아무튼 그렇게 처리하고 2박 3일 휴가를 어떻게 쓸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 시키가 휴가를 같이 나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미친새끼인가? 싶어가지고 꺼지라고 지랄을 했지만 끈질기더라.
그래서 결국 이 놈이랑 복귀 날짜를 맞춰 같이 들어오기로 했다. 지가 밥을 사고 싶다나 뭐라나.
그렇게 나는 정기 휴가 복귀한 지 한 달만에 다시 집에 갔고, 엄마 아빠는 왜 자꾸 집에 오냐고 타박을 하더라.
친구도 안 만나도 술도 안 마시고 내리 2박 3일 내내 잠만 자다 복귀했다.
터미널에서 막내를 만났다. 녀석의 표정이 엄청 밝아 보였다. 그래서 휴가증 바꿔주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녀석이 밥을 사겠다고 하는데 솔직히 아무리 군인이 돈이 없어도 어떻게 대한민국 병장이 막내한테 밥을 얻어 먹나. 그냥 내가 사겠다고 하니
이 새끼가 장난감 가게에서 땡깡을 부리는 애새끼마냥 염병을 떨더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았다고 한 후에 어딜 갈까 생각하다가 그 식당이 생각났다.
맛은 없지만 가격은 겁나게 쌌으니까.
막내 새끼가 내 목적지를 듣고는 더 비싼 곳으로 가자는 걸 지랄 말고 따라오라고 한 후에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여전히 장사가 드럽게 안되고 있었고, 여자 사장은 오늘도 혼자 일을 하고 있었다.
인사하며 들어서자 사장이 호구를 발견한 사기꾼처럼 밝게 인사를 해왔다.
"어서와요. 오랜만이에요."
이 여자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구나 하는 생각에 막내도 소개를 시켜줬다.
"제 쫄따구 입니다. 자알 생겼죠?"
사장은 이전과 달리 방긋 방긋 웃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난 병장이 더 나은 거 같은데요?"
"?"
시발 모지? 이 여자가 한달만에 쑥맥에서 술집여자로 전직을 한 건가 싶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갑자기 분위기가 확확 바뀔 순 없는 거니까.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난 대한민국 병장이니까.
"하하하! 사장님 남자 보는 눈 있으시네요!"
"정말이야, 나는 병장이 더 잘생겨 보여요."
"크으, 오늘 여기 메뉴 거덜 내고 가야겠네요."
난 라면에 김밥을 시켰고, 막내는 소불고기 정식을 시켰다.
소불고기를 반쯤 먹다 반찬만 뒤적이는 막내 새끼를 보며 속으로 존나 쪼개고 있을 때.
"이것도 먹어봐요."
여자 사장이 계란 말이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내 옆에 앉았다.
#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했다.
내가 본 1,265,435개의 미래 중에 이런 미래는 없었으니까.
더구나 여자 사장에게서 풍겨오는 흐릿한 우유향의 샴푸 냄새와 달착지근한 화장품의 향기가 코를 간지럽혔다.
"군대 생활은 괜찮아요?"
"군 생활 한지는 얼마나 됐어요?"
장난스레 막내에게 하는 질문들 대부분은 흔히 여자들이 하는 아이스브레이킹처럼 보였지만.
"ㅇ병장이 잘 해줘요?"
"ㅇ병장은 군생활 잘 해요?"
질문들은 묘하게 나를 향해 있었다.
여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도 당황하지 않는 남자. 대한민국 육군 병장 그게 나다.
"야 솔직하게 얘기해. 거짓말로 하지 말고."
"복귀한 다음에 일은 걱정하지 말고. 사장님이 궁금해 하시잖아."
"진자 괜찮다니까. 연병장 열 바퀴만 돌면 되지."
정말 기이할 정도로 나도 너스레를 떨고, 여자 사장은 그게 또 그렇게 재밌는지 함지막하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웃을 때마다 하얀 이빨과 붉은 입술이 확대되듯 눈에 들어온다.
툭툭 팔로 치고 기대고 그 순간은 군인과 식당 여주인이 아니라 술자리에서 만난 남녀가 된 기분이었다.
덕분에 라면과 김밥을 절반씩 남겼지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다음에도 꼭 와요."
식당을 나온 뒤 부대 복귀를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던 때에 막내 새끼가 계속 고개를 갸웃 갸웃 거렸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말입니다."
"뭐가?"
"저 사장님, 병장님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뭐래 병신이."
요즘은 그런 곳이 없지만 예전 동네 식당이나 호프집에는 여사장이 테이블에서 손님과 함께 얘기하고 노는게 자연스러웠다.
일종의 영업 방식이랄까. 아마 저 식당 여사장도 그런 것의 일환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녀의 외모는 빌어먹게 맛이 없는 음식 솜씨를 충분히 커버 칠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그게 말입니다. 저도 저 식당 아는데. 저 사장님 원래 저렇지 않지 않았지 말입니다."
놈의 얘기론 부대 내에서 꽤 유명한 식당이었다고 한다.
동네에 저렇게 이쁜 여사장이 식당이 드믈고 할머니 치맛자락만 봐도 거시기가 빨딱빨딱 서는 새끼들 사이에서 저런 외모가 눈에 띄지 않을리 없으니까.
하지만 워낙 사장이 무뚝뚝하고, 때때로 전에 운영하던 할매가 종종 있으면서 여전히 싸가지를 보여준 관계로 차츰 발길을 끊었다는 이야기.
막내가 이 식당에 오기 싫었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곰곰이 듣던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왜 시발 나만 모르고 있었냐? 나 왕따냐?"
"어..... 그건........ 아니지 말입니다. 그 ㅇ병장님은 음담패설 같은 것도 안하시고 다들 어려워 하니..........."
아무튼 뒤의 이야기는 중요한 게 아니었고.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들었다.
더불어 이 막내 새끼가 한 이야기가 사실인지도 확인해 보고 싶었고.
"너 여기 있어라."
그리곤 다시 식당으로 향했다.
"어? ㅇ병장! 뭐 놓고 갔어요?"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뒤로 생활감이 가득한 공간에 놓여진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 같은 것이 보였다.
비루한 옷가지와 낡았지만 깨끗한 앞치마, 그 앞치마 주머니에서 빼낸 하얗고 길죽한 손을 본 뒤에 물었다.
"혹시 주말에 뭐 하세요?"
"..........네? 주말엔 왜....."
"저 이번주 주말에 외박 나오는 데. 같이 영화 보실래요?"
여자 사장의 표정은 내가 처음 이쁘다는 말을 했을 때처럼 표정을 굳혔다.
"..........."
[출처] 위수지역 식당, 유부녀 사장3 ( 야설 | 은꼴사 | 성인사이트 | 성인썰 - 핫썰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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