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6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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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전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06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아내의 과거를 고백한 편지를 읽고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방바닥에 짚은 상태로
목이 메이도록 통곡하며 처제는 진심으로 언니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제 옆에 떨어져 있던 USB와 처제의 손에 쥐어져 있던 편지를 집어 들고 조용히 안방을 나와 작은 방으로
건너갔다. 테이블을 내동댕이칠 때 지난 밤 처제가 올려놓았던 물병과 물컵이 떨어지면서 깨진 유리 파편이
방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파편에 찔린 발바닥 한쪽에서 피가 철철 흘렀지만 모르고 있었다.
아내와 나 그리고 그들 사이에 처제가 개입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장 9층으로 내려가 어떤 사고든 사고를 쳤을 직전의 상황에서 처제는 나의 광기 어렸던 흥분을 막아준 셈이었고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다행한 일이었는지 몰랐다.
작은 방으로 건너온 뒤 내게 벌어지고 있는 악몽에 현기증을 느끼며 벽에 기대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야 아내의 편지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지석씨!
제가 당신께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고민을 하게 되네요. 하지만 당신을 만난 그 순간부터 단 하루도
내 인생의 중심에서 내보낸 적이 없었던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으므로,
사랑한다고 말하더라도 저를 용서해 주세요.
.......................
지석씨!, 모든 걸 다 말씀드린다고 했으니 그렇게 하겠어요. 혹시라도 저의 고백이 당신을 불편하게 만들지라도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래요.]
편지를 몇 줄 읽어나가던 무렵, 발에서 많은 피가 흐르는 것을 알았다. 연신 파고드는 통증이 더해지며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잠시 편지 읽는 것을 멈추고, 상처 부위에 휴지를 덧대고, 입고 있던
런닝셔츠를 벗어 발을 꽉 묶어버린 후, 다시 편지를 펼쳤다.
[대학 4학년에 올라가던 겨울방학 때,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웠어요, 비정규직으로 일하시던 엄마는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막내 은철이마저 수능을 마치고 대학진학을 앞둔 상태였거든요.
다시 한 두 학기 휴학하고 돈을 벌어야했지만, 이미 1년을 휴학했던 마당에, 또 다시 휴학하게 되면
졸업 후 취업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에 많이 망설이고 있었어요.
그때 하루에 50만원 이상을 보장한다는 그런 종류의 광고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런 곳이 어떤 곳인지 대충
알고 있었고, 가면 안 되는 곳인지도 알았지만, 어느 겨울날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면접을 보게 되었어요.
.........................
그렇게 첫 남자에게 얼이 빠진 채로 몸을 내준 뒤, 어떻게 옷을 갈아 입었는지도 모르게 오피스텔에서 나와
버렸어요. 실장이라는 사람이 쫒아오더니 제 손에 만원짜리 몇 장을 쥐어주고는 언제든 다시 오라고 하더군요.
8만원이었어요.
엄마와 나, 은희 그리고 은철이까지 네 명이서 사는 지하 단칸방에서 소리 내 울지도 못하고, 겁에 질린 채 몇날
며칠을 웅크려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며칠을 보내는 동안에도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생활비는 나가더군요.
반찬값이며, 교통 카드비며....쓰레기통에 버렸어야할 8만원마저 다 나가버리자,
내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 그 막막한 현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리고 8만원을 모두 써버렸던 다음날, 저는 다시 그 오피스텔로 제 발로 걸어갔답니다.]
눈물이 맺혀 글자들이 제대로 읽혀지지 않았다. 아내가 이런 얘기를 진작 했었다면 절대로 그녀를 아프게 하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아내의 인생을 혼자서 힘들어하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마음이 아프고 슬펐다. 아내는
그 후 한 달 반 동안, 하루에 대여서명의 남자를 상대했었다고 적고 있었다.
[처음 호텔 맥주 바에서 당신을 보았을 때, 당신 목소리가 참 좋게 느껴졌어요.
당신이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도 알았고요. 그리고 몇 달 동안 당신이 우리 회사 앞에서 저를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도, 당신 앞을 무심히 지나치곤 했었지요.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강남에서의 그 경험 이후로,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두지 않겠다고
맹세했었고, 그런 제 과거를 숨기며 어느 누구하고도 사랑에 빠질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당신을 멀리했었어요.
.....................
그런데 당신이 내게 사랑을 고백하기 전에, 이미 당신한테 빠져있는 제 모습을 발견했던 거예요. 많이 고민했지만 당신께 정말 잘하겠다고 수없이 다짐하고 다짐한 끝에 감히 당신의 청혼마저 받아들이게 됐고요.
.....................
미안해요 지석씨! 그때 당신의 고백과 청혼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내의 글에서는 몇 번이고 멈췄다가 다시 써내려간 흔적이 역력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당신과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돼, 산산조각나기 시작했어요. 결혼식 10일 전에 회사의 오너가
바뀌면서 오너의 사위라는 사람(당신이 보았던 남 경식이라는 자)이 전문 경영인으로 취임해 왔었어요.
신혼 여행을 다녀와서 2주 가량 지났는데, 어느 날 남사장이 저를 사장실로 부르더군요.
그리고는 대뜸 요즘은 강남에서 아르바이트 안하냐고....혹시 자기 모르겠냐고.... 자기는 첫눈에 알아봤다고
그러더군요. 곧장 사표를 내고 회사에 출근도 안했지만 소용없었어요.
회사 출근 안하면 바로 당신한테 전화하겠다고 했거든요.
...................
남사장은 그렇게 한 달 넘게 집요하게 협박하고 겁주면서 계속 내 몸을 요구했어요. 당연히 저는 죽을힘을 다해
거부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어느날 퇴근 시간이 다될 무렵, 비서를 퇴근시킨 사장실로 저를 또 불렀어요.
그러더니 이메일 화면 하나를 보여주었어요.
이메일의 수신자는 당신이었고, 거기에는 강남에서 일했던 제 과거에 대한 글이 적혀있었고, 1시간 뒤에
예약 발송을 해놓은 상태였어요.
지금 자기 방에서 나가든지, 아니면 1시간 안에 자기의 그것을 사정시킨 다음, 이메일 발송을 중지시키든지,
선택은 내가 하라고 말하더군요.
울고불고 매달려 봤어요. 하지만 시간은 계속 흘렀고, 오히려 마지막에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쫒겨,
남사장의 몸을 사정시키기 위해 안달까지 하고 있는 제 모습이 그곳에 있었어요. ]
1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갇혀진 아내의 모습이 잠시 머리 속에서 스케치되듯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1년을 넘게, 1주일에 한 두 번씩은 당신을 속이며, 남사장의 요구를 받아들이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6개월 쯤 전에 더 끔직한 일이 생겨났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자가 우리 아파트로 이사를 와버린 거예요. 남사장이 일부러 이사를 온 건지, 우연히 그렇게 된 건지, 전 지금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부터 남사장이 저를 대하는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그래도 (이렇게 말씀드리면 당신이 많이 속상하실 테지만)
몸이든 마음이든 조금은 버틸 수 있었는데....]
이 부분에서 아내는 설움에 복받쳐 올라 한참동안 편지를 잇지 못한 듯 했다. 글씨도 조금은 엉망으로 휘갈겨지기 시작했고, 군데군데 눈물 자국이 번져 있기도 했다.
[...................
그런데 남사장이 이사 온지 일주일 쯤 지나서 출근하려던 나를 태워 어디론가 데려갔어요. 우리 아파트 길 건너에 있는 오피스텔이었어요. 맘껏 만나려고 오피스텔을 임대 얻었다고 그러더군요.
바로 집 앞인데....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정말이지 아무런 방법이 없었어요.
어떻게 집이 뻔히 보이는 바로 그곳에.....
아예 오피스텔로 출근시켜 그곳에서 퇴근시켰던 날도 여러 번 됐었고, 교회 다녀오는 길에 들러야 했던 날도
많았어요. 하지만 더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오피스텔에서 만나면서부터,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일들을 겪어야했다는 거예요. 이 부분은 제가 차마 여기에서는 말씀 못드려요.
대신 여기 이렇게 동봉하는 USB 안의 파일들로 대신 할께요.
한 달 쯤 전에, 우연히 남사장의 횡령 사실에 대한 자료를 찾아냈었어요. 어쩌면 남사장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다
싶어서, 남사장에게 더 이상 나를 건드리면, 횡령 자료를 경찰에 보내겠다고 했었는데, 남사장이 그냥 피식 웃기만 하더군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딴 생각하지 말라며 동영상 파일이 담겨있는 USB 하나를 주며
여차하면 인터넷에 깔아버리겠다고 하더군요. 바로 여기 있는 USB에요.]
아내가 안방에서든 거실에서든 우두커니 창밖을 바라보던 모습이 생각났다. 돌이켜보면 지난 1주일 동안 유독
그 횟수와 시간이 오래됐을 뿐, 그 전에도 아내는 그렇게 창밖을 바라보던 일이 많았던 것 같았다.
세영이와의 며칠 전 주차장에서의 섹스가 떠올랐다. 아내의 아픔이 서려있는 오피스텔인지도 모르고,
섹스에 정신없었던 내 모습이 한스러워졌다.
[집 앞에 있는 오피스텔 출입이 시작되면서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어요. 정말이지 많이 생각했었어요.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진작 그러지 못했던 내 자신을 한탄하면서 자책하고 또 자책하고 후회했어요.
하지만 이제 더는 후회하지 않으려고요. 이 편지를 다 쓰고 나면, 나는 당신 곁을 떠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결심을 비로소 오늘에서야 굳히고 실행하게 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편지를 끝마치려고 해요.]
[사랑하는 지석씨! 사랑하는 지석씨! 사랑하는 지석씨!....]
죽음을 결심한 아내가 나를 불러대고 있었다. 얼마나 외로웠으면 사랑한다는 말을 그리고 나를 부르는 말을 이토록 여러 번 적었던 것일까?
[어제, 남사장이 집에 왔었어요. 초인종 소리도 없었는데 불쑥 안방에 들어왔어요. 당신이 작은 방에 있을텐데... 너무 놀라 큰 소리로 당신을 불러댔지만, 당신한테서 끝내 대답이 없었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들어왔는지, 도대체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는지 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모르겠어요.
분명한 사실은 남사장이 제집 드나들 듯이 들어와서는 저를 범하고 갔다는 것이에요.
이제 저는 이 하늘 아래, 잠시라도 숨 쉴 곳마저 없어졌다고 생각해요. 당신과 내가 사랑을 나눠온 우리집에서,
그것도 안방의 침대 위에서조차 저는 결국 당신을 배신하고 말았으니까요.
그래요. 지석씨! 저는 내 몸 하나 지켜내지 못했고, 당신과의 사랑도 지켜내지 못했고,
심지어는 우리집과 우리의 침대조차 지켜내지 못했어요.
이게 바로 오늘 당신 곁을 떠나려고 하는 이유에요.
내 죽음으로 당신께 속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테니까요.
그래서 오늘 저는 당신 곁을 떠나요. 지석씨!]
아까 안방에서 미친듯이 날뛰게 만들었던 부분에 이르자. 다시 한 번 피가 솟구쳐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 새끼는 도대체 어떻게 들어왔던 것일까?’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혹시 내가 나가면서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던 것일까?’
‘게다가 초인종 소리도 없었다는데 그렇다면 마치 내가 없는 것을 알고 태연히 들어왔다는 얘기가 아닌가?
도대체 그게 가능한 일일까?’
‘골프장에서 돌아온 그 새끼가 때마침 나와 세영이가 함께 나가는 것을 보았던 것일까?
안방에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숱한 의문이 한 순간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을 추론하기에는
아직 정상의 머리 상태가 아니었다.
[‘모든 걸 다’ 말씀드렸어요. 지석씨! 당신한테는 미안하지만, 정말 속이 후련해지네요. 진작 털어놨어야 했어요.
미안해요. 지석씨!.... 정말 미안해요 여보!
그리고 정말, 정말 고맙고 감사했어요.
저 세상에서는 당신을 만나 행복했던 일만 기억났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용서해 주세요...
그리고 저 같은 여자 때문에 힘들어하지 마세요.
안녕! 안녕!
사랑하는 우리 지석씨!]
처음 때와는 달리 아내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복받치기 시작했다. 편지를 가슴에 얹고 꺼이꺼이 울어댔다.
런닝 셔츠로 대충 묶었던 발바닥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거실 TV 테이블에 가정용 비상 의료박스가 있었지만
상처의 치료를 복잡한 내 감정이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다시 편지를 읽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또 다시 편지를 읽었다. 미안하고 미안해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또 다시 편지를 읽었다. 용서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다시 또 편지를 읽고만 있었다.
“똑똑!”
“..................”
“똑똑”
“..................”
처제리라. 언니의 죽음만으로도 힘겨울 텐데, 내 불행의 중심부로 들어와 버린 처제를 볼 낯이 없었다. 하지만
내게 언니의 용서를 구하던 모습! 그것만은 바로잡아줘야 했다. 노크 소리에 대답은 하지 않은 채,
문고리를 돌려주었다. 처제가 들어왔다.
처제의 손에는 의료박스가 들려 있었다. 안방에서부터 흘린 핏자국을 보고는 들고 왔으리라!
처제의 두 눈이 퉁퉁 불어 있었다.
“형부!.... 어디 좀 봐요”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를 하며 다친 발 곁에 무릎을 꿇으며 앉았다.
“괜찮아 처제!,,,,큰 상처 아니야. 그냥 놔둬도 돼! 그리고 좀 편하게 앉아! 응?"
하지만 처제는 내 말에 전혀 아랑곳 않고 런닝 셔츠를 풀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푹 패인 상처를 보고는
잠깐 인상을 찌푸리더니, 의료함에서 소독약을 꺼내 바르기 시작했다. 소독약을 바르고, 씨뻘겋게 번진 핏자국을 상처 주위와 발가락 사이사이까지 일일이 닦고, 상처에 지혈제를 뿌리고, 거즈를 대고, 테이핑을 하고, 압박붕대로 꽁꽁 둘러싸서 고정시킬 때까지 처제는 아무말 없이 능숙하지는 않지만 꼼꼼하고 정성스레 치료를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내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참 많이 닮았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지난 밤 몸을 더듬어대던 장면이 떠올라,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고마워 처제! 그리고....언니일 말인데....처제가 나한테 미안해하고 용서를 구할 거 하나두 없어. 처제는....”
처제가 얼굴을 돌려 내 얼굴을 보며 말을 가로 막았다.
“전 언니 동생이에요. 형부!.... 언니가 형부한테 잘못한 거.... 당연히 제가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해야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형부가 언니를 진정으로 용서할 때까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될꺼예요. 그러니 그런 말씀은 다시는 하지 말아주세요.”
의외로 처제의 뜻이 분명하게 전달되자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처제 역시 조용히 입술을 다물고는 방바닥
여기저기에 묻어있는 핏자국을 훔치고 있었다.
‘처제! 용서는 내가 빌어야 돼. 언니 죽음에 나도 책임이 있어....’
방을 훔치고 의료 박스를 챙긴 후에도 처제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는 눈치였다.
“저,,,,형부! 그리고 이거~요!”
처제가 내 앞으로 작은 주머니 하나를 내놓았다. 아내의 결혼반지가 들어있었던 소포 박스 안의 그 주머니였다.
“제가.... 당분간만....가지고 있으면 안 될까요? 형부?”
“.................”
당분간 갖고 있겠다는 게 무슨 큰일은 아니지만, 그 의미를 몰라 그저 물끄러미 주머니와 처제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부탁드려요. 형부, 당분간만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처제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언니의 유품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처제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해서 그 의미가 다른 무엇이든 간에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처제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사실 처제의 입에서 언니를 농락했던 남사장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느니,
원한을 갚겠다느니 하는 말이 나올까봐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그런 말은 나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내와 나, 세영이와 그녀의 남편 간에 얽히고 설킨 관계를 절대로 처제가 알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처제가 나간 후, 바지 주머니에서 꺼낸 까만색의 USB를 만지작거리고 있었지만, 선뜻 그 안의 파일을 봐야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예전에 어느 유명한 여배우가 자살한 뒤 개봉했던 영화가 있었다. 마지막 섹스 씬이 어떠니 하며 낯 뜨거운
광고카피가 시선을 끌었던 영화였는데, 케이블 TV에서 방영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 영화의
예고편조차 보질 않았다. 자살한 여배우의 알몸을 본다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꺼림직 했으며, 슬그머니 대중들의 관심에 편승하며 관음증을 즐기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자살한 아내가 농락당하고 있는 동영상을 본다는 것이 쉬운 문제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아내의 동영상을 본 후, 남사장에 대한 응징이 어떤 식으로 폭발할지, 또 얼마나 통제 불가능해질지 몰라 두려운 측면도 있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무거워질 무렵 노크 소리가 들린 후 처제가 다시 들어왔다.
“미음 끓여왔어요.”
쟁반을 받치고 있는 처제를 올려다보았다. 옷이 바뀌어 있었다.
‘어!’
‘어?’
많이 보아 온, 그 옷은 분명, 아내가 자주 입었던 옷이었다. 게다가 쟁반을 내려놓는 처제의 손에는 아내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어어! 처제~~~~!!!!!!”
처제가 무표정하지만 진지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이 썰의 시리즈 (총 7건) | ||
|---|---|---|
| 번호 | 날짜 | 제목 |
| 1 | 2026.06.14 |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7 (2) |
| 2 | 2026.06.14 | 현재글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6 (1) |
| 3 | 2026.06.14 |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5 (1) |
| 4 | 2026.06.14 |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4 (2) |
| 5 | 2026.06.13 | 아내.. 그리고 나와 그들 03 (3) |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윤지
민지삼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