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3-3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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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09:11
第3章 복수구마(復讐九魔)의 최후
"으음! 왜 나를 살렸느냐? 나는 너를 죽일 뻔한 적이거늘!"
불회마곡에서 건곤일척의 대접전이 벌어지는 것을 알 리 없는 무저연
의 깊은 곳에 자리한 석실에서는 한줄기 곤혹한 여인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석실 안에는 이검한과 백색마녀가 마주 앉아 있었다.
백색마녀는 이검한 덕분에 한독의 침습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할 수 있
게 되었다.
지금 그녀의 백색 눈은 온통 곤혹함과 갈등의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왜 살렸느냐고요? 그런 어리석은 질문이 어디 있습니까?"
이검한은 침중한 백색마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인간의 목숨은 하늘이 내리신 것입니다. 비록 부인이 적이라 해도
어찌 죽어가는 것을 방치해 둘 수 있겠습니까?"
이어 그는 백색마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비록 불가피한 상황이었지만 소생은 부인의 정조를 유린했습니다.
그 처분은 부인께 맡기겠습니다.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는 말하며 백색마녀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백색마녀의 눈빛이 파르르 떨리며 흔들렸다. 이검한의 태도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안 것이었다.
그런 그의 진실한 태도는 편협하고 왜곡된 성격을 지닌 백색마녀의
심금까지 흔들어 놓았다. 인간이 진심으로 인간을 사랑한다는 감정을
그녀는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너… 너는 정말 좋은 녀석이다!"
백색마녀는 감격에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의 어조에서 이검한은 그녀가 자신을 용서했음을 알아차렸다.
아니 단순히 용서한 정도가 아니었다. 백색마녀는 삽시에 이 헌앙한
청년에게 영혼의 밑바닥까지 감동을 받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하여간 놀라운 일입니다. 연못 속에 이런 석실이 있다니 말입니다!"
이검한은 어색함을 모면하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나도 무저연 속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백색마녀 역시 놀라운 눈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런 두 사람의 눈으로 석실의 끝 또 다른 곳으로 통하는 듯한 석문
하나가 들어왔다.
"무저연이 외부로 통하는 통로라는 전설은 사실인 듯하구나!"
백색마녀는 그 석문을 가리키며 몸을 일으켰다.
그 말에 이검한은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이 외부로 통하는 통로란 말씀입니까?"
그는 따라 일어서며 백색마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
했다.
"이십 년 내에 두 명의 배신자가 이 불회마곡을 탈출했다. 십방금천
대진을 뚫고 나갈 수 없는 일이니 어딘가에 외부로 통하는 비밀 통로
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확신에 찬 말과 함께 백색마녀는 석문을 향해 다가섰다.
"그 비밀통로가 바로 이곳이란 말씀이군요!"
이검한은 중얼거리다 문득 흠칫하며 되물었다.
"불회마곡을 빠져 나간 자가 두 명이란 말입니까? 천패력왕 운천황
한 명이 아니었습니까?"
백색마녀는 고개를 저으며 두 눈에 분노의 빛을 번득였다.
"아니다. 이 년 전에도 한 놈이 불회마곡에 침투해서는 비급 한 권을
훔쳐 달아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앞을 가로막고 있는 석문을 밀며 말했다.
"그자가 누구입니까?"
이검한도 같이 석문을 밀며 의혹이 담긴 음성으로 물었다.
"그자는 철… 흑!"
누군가 이름을 말하려던 백색마녀는 갑자기 두 눈을 부릅뜨며 신음을
발했다.
"엇!"
이검한도 깜짝 놀라며 전면을 주시했다.
굉음과 함께 열려진 석문 안은 전혀 뜻밖의 광경이 두 사람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 아닌가?
석문의 안쪽은 놀랍게도 한 칸의 규방이었다.
아담하게 치장된 여인의 규방 가운데 커다란 하나의 침상이 놓여 있
었는데 그 침상 위에는 누군가 누워있지 않은가?
"천잔성모(天殘聖母)!"
이검한은 침상 위의 인물을 주시하며 신음하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우리 천잔마맥을 있게 하신 분이다!"
백색마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 눈에 눈물을 글썽였다.
침상 위에 누워있는 여인은 바로 천잔성모였다. 천잔마맥의 근원이
되는 천잔마종의 애첩!
천잔성모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헌데 지금 이검한과 백색마녀가 바로 그 천잔성모가 최후를 마친 곳
을 발견한 것이었다.
사실 천잔성모는 자살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아홉 남매가 모두 장
성하자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기고 이곳 무저연 속의 비밀통로
로 내려와 쓸쓸하게 여생을 보냈던 것이다.
천잔성모가 잠들어 있는 석실의 맞은편에 반쯤 부서진 또 다른 하나
의 문이 보였다.
그곳은 아마도 외부로 통하는 밀로의 입구인 듯했다.
그 문을 발견한 이검한과 백색마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침상가로 다가갔다.
"이… 이런 천인공노할!"
침상을 향해 다가가던 두 사람의 눈이 한껏 부릅떠졌다.
백색마녀는 무엇을 보았는지 분노에 치를 떨었다.
침상 위 한 명의 여인이 자는 듯 누워있었다.
여인은 비록 몇백 년 전에 죽었으나 생시와 똑같은 미모를 지니고 있
었다. 무저빙담의 극저온과 여인이 생시 이루었던 주안공(朱顔功) 덕
분에 시신은 전혀 손상됨이 없었다.
그녀는 곱게 화장을 한 모습으로 일신에 화사한 궁장을 걸친 채 누워
있었다. 죽어서도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이 여인의 소망인가?
여인은 천잔성모, 바로 그녀였다.
헌데 지금 천잔성모는 궁장의 하의가 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그 때문에 그녀의 탐스러운 하체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상의만 걸치고 하의는 벗은 채 누운 천잔성모의 눈같이 희고 미끈한
두 다리는 민망하게 좌우로 활짝 벌려져 있었다.
이검한과 백색마녀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
"어, 어떤 놈이 이런 언어도단의 만행을!"
백색마녀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푸들푸들 몸을 떨었다.
오늘의 천잔마맥을 있게한 천잔성모의 유체가 누군가에 의해 유린된
것을 확인한 것이다.
천잔성모의 무참한 모습이 백색마녀를 미칠 듯한 분노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검한 역시 침중한 안색을 지었다. 그는 서둘러 벗겨진 궁장 하의로
민망하게 드러난 천잔성모의 하체를 가려주며 두 눈을 번득였다.
'이것은 일이 년 내로 자행된 일이다!'
천잔성모의 알몸을 가려주던 이검한은 사내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예
리한 눈빛으로 내심 염두를 굴렸다.
'그렇다면 천잔성모의 시신을 모독한 자는 이 년 전 불회마곡을 탈출
했다는 바로 그자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자 백색마녀는 침상의 모서리를 잡고 선
채 분노로 전신을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이검한은 그런 그녀를 향해 침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범인은 이 년 전 불회마곡을 탈출했다는 그자가 틀림없습니다!"
그 말에 백색마녀는 두 눈에 무서운 살광을 폭사하며 이를 바득 갈았
다.
"철목풍!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 네놈을 육시를 내고 말겠다!"
그녀는 원한에 사무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순간 이검한은 대경실색하였다.
"철목풍이었습니까? 두 번째로 불회마곡을 빠져나간 자가?"
놀람을 금치 못하는 이검한의 모습에 이번에 백색마녀가 오히려 흠칫
하며 되물었다.
"철목풍이란 자를 아느냐?"
"알다마다요!"
이검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자신이 신강을 여행하던
중 패륜아 철목풍과 조우한 전말을 백색마녀에게 들려주었다.
"으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백색마녀는 이검한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혔
다.
또한 그녀는 이검한과 자신이 공통의 적을 지녔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안도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이 년 전 어느날 철목풍이란 놈이 심한 부상을 입고
본곡으로 흘러들어왔다. 이제 보니 그놈은 우리 천잔마맥의 존재를
알고 일부러 다친 척했던 것 같구나!"
이검한은 침중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물었다.
"그자가 어느 분의 비급을 훔쳐 달아났습니까?"
"무지마(無指魔) 오라버니의 적혈마경(滴血魔經)이다!"
백색마녀는 심각한 음성으로 대답하고는 적혈마경에 대해 설명해 주
었다.
-적혈마경(滴血魔經)!
천잔마종이 지은 복수구마경 중에 제 육마경이다.
비록 복수구마경 중 서열 육위에 불과했지만 그 적혈마경에는 한 가
지 고금최강이라 할 만한 절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적혈착천지강(滴血鑿天指 )!
이름 그대로 하늘이라도 꿰뚫을 수 있는 위력을 지닌 지법으로 빠르
기가 섬전같으며 금강지체라도 꿰뚫어 버리는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력을 시전하기 직전 손가락의 끝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는데 그 모습
이 마치 핏방울이 배어 흐르는 것 같다하여 적혈이란 이름이 붙여졌
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내공을 집중시켜야 하는 탓에 손가락을
하나 남기고 모두 잘라 버려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복수구마 중 여섯째인 무지마의 손가락이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었다.
백색마녀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검한에게 일러주었다.
"놈을 만났을 때는 주의해야만 한다. 놈의 손가락 끝이 핏빛으로 물
들면 그 즉시 사정권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이검한은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백색마녀는 그윽한 눈빛으로 이검한을 바라보았다.
"백리예향이란 아이는 내가 돌봐주마. 그러니 너는 저리로 빠져나가
거라!"
그녀는 석실의 한쪽으로 나있는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이검한은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저리로 나가셔야 하는 것은 제가 아니라 부인입니다!"
"무슨 소리냐?"
백색마녀는 흠칫하며 이검한을 주시했다.
이검한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무저연 밖으로 나가면 안됩니다. 지금쯤 불회마곡은 초토화되
었을 것입니다!"
이어 그는 십방철혈대진이 깨어졌을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현재 불회마곡에 남아있는 사람은 복수구마 중 여섯 명뿐이다. 비록
그들이 희세의 고수들이긴 하지만 중과부적이리라.
지옥마교 측에서 동원된 인원은 십대천마를 비롯하여 마교삼태상, 수
호사신장 등 개개인이 이미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는 경
지에 이른 인물들이었다.
물론 지옥마교 측에서도 희생은 나겠지만 승부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복수구마 중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 그럴 수가……!"
이검한의 이야기를 듣고난 백색마녀는 사색이 되었다.
"안돼! 오라버니들이 변을 당하고 있는 것을 방치해 둘 수는 없다!"
그녀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급급히 입구 쪽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안됩니다, 부인!"
이검한이 급히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놓아라! 놓으란 말이다!"
백색마녀는 처절하게 울부짖으며 몸부림쳤다.
"이러시면 안됩니다. 부인마저 돌아가시면 천잔마맥은 영원히 끝장나
고 맙니다."
이검한은 필사적으로 백색마녀를 끌어안으며 만류했다.
백색마녀의 육체는 연체동물과 같아서 아무리 이검한이 억세게 끌어
안아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이검한은 그런 백색마녀를 저지하려들다보니 어느 덧 그녀와 한몸이
되어 바닥에 나뒹구는 꼴이 되고 말았다.
"흐윽! 놓아라! 안 그러면 너라 해도 용서치 않겠다!"
백색마녀는 이검한의 품에 안긴 채 빠져나가려 기를 썼고 이검한도
지지 않고 맞섰다.
"부인께서 돌아가시면 천잔성모님을 욕보인 철목풍은 누가 응징한단
말입니까?"
그가 필사적인 심정으로 외치자 백색마녀의 몸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
키며 경직되었다. 천잔성모의 육체를 모독한 철목풍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있었다.
현재 불회마곡은 지옥마교 정예들의 침공을 받은 상태였다.
설령 백색마녀가 형제들에 가세한다 해도 승패는 불을 보듯 뻔한 일
이다.
그것을 깨달은 백색마녀는 처연한 표정으로 눈물을 떨구었다.
"알았다. 네 말에 따르겠다!"
마침내 그녀는 몸에서 힘을 빼며 말했다.
'휴우! 이제 되었다!'
이검한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백색마녀를 놓아주었다.
백색마녀는 바닥에 엎드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뜨거운 눈물만이 그녀의 희디흰 밤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릴 뿐이었
다. 그 모습은 실로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이검한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소생이 가능한 희생을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니 부인께서는
어서 이곳을 빠져 나가십시요!"
말과 함께 그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이곳을 빠져나가신 뒤 우선 북망산의 귀왕궁으로 가십시오. 소생 이
검한이 보냈다고 하면 섭섭치 않게 대우해 줄 것입니다!"
그는 백색마녀를 향해 당부의 말을 잊지 않고 서둘러 석실을 나섰다.
"흐윽! 오라버니!"
그런 그의 뒤를 백색마녀의 숨죽인 오열이 들려왔다.
* * *
-성모동!
이검한은 급히 성모동 안으로 들어섰다.
"휴우! 한걸음 늦었군요, 이공자님!"
들어서는 이검한의 귓전으로 처연한 탄식이 들려왔다.
널찍한 성모동 안은 텅 비어 있었는데 한쪽에는 한 명의 여인이 전라
의 몸으로 혈도가 찍힌 채 누워 있었다.
백리예향, 바로 그녀였다.
백리예향의 육감적인 알몸을 본 이검한은 얼굴이 벌개졌다. 그녀는
자신이 의형으로 모신 운중악의 아내가 될 여인이다. 본의아니게 형
수가 될 그녀의 알몸을 본 이검한은 민망해서 몸둘 바를 몰랐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백리예향의 몸에 능욕당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었
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형수님?"
이검한은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그녀에게 다가가 혈도를 풀어주었다
. 혈도를 풀어주기 위해 이검한이 자신의 알몸에 손을 대는 순간 백
리예향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고… 고마워요!"
혈도가 풀린 백리예향은 급히 일어나 앉아 얼굴을 붏히며 몸을 오므렸다.
무릎을 세운 채 필사적으로 치부를 가리려는 그녀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우선 이걸로 가리십시오!"
이검한은 그녀에게 등을 보인 채 자신의 겉옷을 벗어주었다.
그리고는 비로소 주위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성모동 어디에도 설옥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동굴의 한쪽 벽에 면한 벽장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마 그곳에는
무엇인가 소중한 물건이 들어 있었던 듯했으나 지금 그 벽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이검한의 겉옷으로 알몸을 가린 백리예향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매는… 복수구마경을 챙겨서 이곳을 빠져나갔어요!"
이검한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예상대로 벽장에는 천잔마종이 남긴 복수구마경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설옥상이 훔쳐 달아난 것이다.
그것은 장차 천잔마종의 마공을 이어받은 무서운 마녀의 탄생을 의미
하는 것이었다.
이검한은 침중한 안색으로 백리예향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설소저는 언제쯤 떠났습니까?"
그의 물음에 백리예향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추적하기에는 이미 늦었어요. 그보다 밖의 전황은 어떤가요?"
그녀의 두 눈에는 근심의 빛이 가득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약혼자
인 운중악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검한은 성모동의 입구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곳으로 급히 오느라 전장에는 들르지 못했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
"네."
백리예향도 대답과 함께 급히 일어섰다. 겉옷 아래로 드러나보이는
뽀얀 하체가 고혹스럽다.
두 사람은 총총히 성모동을 나섰다.
성모동!
이곳은 설옥상이라는 장래의 희대마녀를 탄생시킨 운명의 장소였다.
* * *
불회마곡 전면에 자리한 평지!
모두 여섯 군데에서 일대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지만 어느덧 격전의 승패는 가려지
고 있었다.
복수구마의 첫째인 독목마(獨目魔)는 마교삼태상 중 첫째인 심마(心
魔)와 겨루고 있었다.
피차 지옥마교와 천잔마맥의 최강의 고수자들인 두 사람은 장을 맞붙
인 채 내공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이 인의 내공이 얼마나 강한지 그
들 주위의 지면이 방원 삼십 장 정도의 넓이로 사발처럼 움푹 파여져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무서운 무형잠경이 양인 사이에 휘몰아쳐 그들 주
위로는 누구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독목마쪽이 심마보다 내공이 약간 더 앞섰다.
"크흑!"
심마는 독목마와의 내공대결에서 패하고 말았다. 그는 오공에서 피를
토하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죽엇!"
그때 한소리 벼락같은 외침이 일었다.
"크악!"
독목마의 머리통이 무참하게 박살나며 날아갔다.
관전하던 마교삼태상의 둘째인 비마(飛魔)가 유령같이 날아들어 독목
마의 머리통을 박살내버린 것이었다.
복수구마의 첫째인 독목마의 허무한 최후였다.
그같은 상황은 복수구마의 다른 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복수구마의 둘째인 사비신마(四臂神魔)는 마교의 호법사신장(護法四
神將)이 동시에 내친 합벽잠경에 네 개의 팔이 으깨져 죽었다.
셋째인 일각마(一脚魔)는 십대천마 중 천수마야(千手魔爺)와 철수마
황(鐵手魔皇)에게 협공당해 하나뿐인 다리가 으깨져 이승을 떠났다.
죽기 직전에 휘두른 그자의 발길질에 철수마황은 가슴팍이 으깨져 즉
사하고 말았다.
복수구마의 다섯째인 열양마(熱陽魔)는 무서운 열양강살로 십대천마
의 두 사람에게 심각한 화상을 입혔다. 그러나 그 직후 탁탑신마후(
托搭神魔后)가 휘두른 대라철삭(大羅鐵索)이 열양마의 상반신을 으깨
어 버렸다.
복수구마의 여섯째인 무지마는 가장 무서운 지법인 적혈착천지강을
펼쳐 독목마처럼 십대천마의 일인을 저승길의 동무로 삼았다. 십대천
마 중에서도 최강의 호신강기를 지녔다는 고죽마옹(枯竹魔翁)이 바로
그 인물이었다.
고죽마옹은 마치 대나무처럼 비쩍 말랐다. 하지만 그의 깡마른 몸은
철죽마벽공(鐵竹魔壁功)이란 외가마공으로 단련되어 어떤 신병이기로
도 다치지 못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지마의 적혈착천지강에 맞자 그의 몸에 구멍이 뚫
리고 만 것이 아닌가?
고죽마옹이 심장 부위에 동전만한 구멍이 나 꺼꾸러지는 순간 그의
동료인 승천마도(昇天魔刀)가 무지마의 몸뚱이를 두쪽내 버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령마(幽靈魔)는 가장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었다.
유령마의 유령십마신(幽靈十魔身)의 경신술은 그의 몸이 열 개로 나
누어지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했다.
이에 당황한 십대천마 중 삼 인이 차례로 중상을 입고 거꾸러졌다.
하지만 그자가 마지막 십대천마의 인물을 공격했을 때 그자 역시 심
각한 타격을 입고 말았다.
-생사여제(生死女帝)!
섬뜩한 이름을 지닌 여마종은 타인을 공격할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그 대신 누구도 그녀를 공격할 수 없다. 그것은 생사여제가
지닌 한 가지 특이한 마공 때문이었다.
-생사탄앙마벽강(生死彈殃魔壁 )!
바로 그것이었다.
그 옛날 신강 십왕총에서 죽은 십왕 중 절앙마녀(絶殃魔女)의 마공이
바로 그것이다. 절앙마녀가 지옥마교 십대천마중 일인이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절앙마녀가 연마한 생사탄앙마벽강은 압력이 가해지면 그 즉시 다섯
배의 반진력으로 되돌려 보내는 무서운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을 몰랐던 신륜천왕이 섣불리 절앙마녀를 공격했다가 반격당해
죽었다.
헌데 이백 년 전 신륜천왕이 범했던 우를 유령마가 똑같이 범하고 말
았다.
십대천마 중 세 명을 쓰러뜨려 기고만장해진 그자는 무방비 상태로
서 있던 생사여제를 별 생각없이 공격했던 것이다.
그 순간 형언무비한 반진력이 생사여제의 몸에서 튕겨나왔고 유령마
는 두 팔이 몽땅 으깨져 버렸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운중악이 장내로 뛰어들었다.
운중악의 십절마검(十絶魔劒)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유령마의 목은
동체에서 분리되고 말았다.
그렇게 복수구마는 몰살 당하고 말았다.
그 옛날 천잔마종이 한을 품고 불회마곡으로 도망쳐 들어와 세운 천
잔마맥이 완전히 단절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지옥마교 내의 분란이 이로써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그
것은 여러 경로로 복수구마경이 모두 외부로 유출된 탓이었다.
천패력왕에 의해 유출된 수라칠식은 이검한의 수중에 들어갔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적혈착천마지력이 수록된 적혈마경은 저 오이랍
부의 효웅 철목풍이 훔쳐 달아났으며 나머지 칠마경은 설옥상이 모두
갖고 도망치지 않았는가?
천잔마맥이 완전히 뿌리까지 뽑히지 않은 이상 언제고 십절마맥과 천
잔마맥의 재격돌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비록 복수구마는 몰살시켰지만 십절마맥 측이 완벽하게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십절마맥 쪽에서도 십대천마 중 두 명이 죽고 마교삼태상의 첫째인
심마를 비롯한 다섯 명이 중상을 입은 피해를 당했다.
지옥마교 최정예 중 거의 절반의 인원이 살상당했으니 지옥마교로서
도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이다.
이검한과 백리예향이 함께 장내에 나타난 것은 유령마의 목이 운중악
의 손에 잘려지는 순간이었다.
* * *
-망해진(望海鎭)!
복건성의 남단에 자리한 항구로 중원대륙에서 남해로 나가는 중요한
관문이다.
그 망해진의 외곽에는 하나의 무림문파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해선방(四海船房)!
복건성과 그 근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문파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무림의 문파라기보다는 해적집단이라
할 수 있다. 망해진을 중심으로 인근 해역을 오가는 상선들을 털거
나 통행세를 받는 것이 그자들의 주수입원이었다.
팔월 말의 어느 날 새벽 망루에 서서 졸음을 쫓던 사해선방의 수하들
은 질겁했다. 바다가 온통 수많은 전선으로 빼곡하게 뒤덮인 것을 발
견했기 때문이다.
선체를 칠흑같은 검은색으로 칠하고 돛대 역시 시커먼 색인 대형전함
들이었다.
-풍(風)!
그 흑선들의 돛대에는 힘찬 필체로 그와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폭풍군도(暴風群島)!
그것이야말로 공포의 해상세력인 폭풍군도의 상징이 아닌가?
사해선방의 해적들은 질겁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백 척의 전선에서 수만 명의 가공할 고수들이 한꺼번에 쏟
아져 나온 것이다.
한식경도 채 되지 않아 사해선방은 폭풍군도의 일개 분타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새로운 겁풍이 시작되었다. 머나먼 남해에 웅거하고 있던 전
설적인 해상제국 폭풍군도가 중원정복의 제일보를 내디딘 것이었다.
-너희 중원의 버러지들에게 시해당하신 폭풍천왕(暴風天王)님의 복수
를 하러 왔다!
폭풍군도의 무사들은 그같은 명분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명분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 누구도 폭풍군도가
단지 폭풍천왕의 복수를 위해 중원에 상륙했음을 믿지 않았다.
망해진에 상륙한 폭풍군도는 무서운 기세로 복건성의 제문파를 휩쓸
며 북상했다.
그 어떤 문파도 폭풍군도의 강력한 군세 앞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그
들의 기세는 이름 그대로 폭풍과 같았다.
또한 폭풍군도의 무공은 이제껏 중인들이 겪어보지 못한 패도적이고
실전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폭풍같은 기세는 일거에 전중원을 휩쓸 듯했다.
하지만 복건성에서 폭풍군도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 진격을 저지당했
다.
-벽력당(霹靂堂)!
복병이란 바로 그들이었다.
천험의 절지 유황곡에 은둔한 벽력당은 마치 견고한 바위가 파도를
막아내듯 폭풍군도의 진격을 저지했다.
벽력당이 자리한 유황곡 주위는 열화대진이라는 난공불락의 진세로
방호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화포를 소유하고 있었다.
열화대진 안에 숨은 채 강력한 화포를 쏘아대는 벽력당의 저항은 폭
풍군도에 막대한 타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구중연환포(九重連環砲)가 작렬하여 벽력굉천뢰(霹靂轟天雷)라
는 치명적인 화탄을 삼십 리 밖까지 쏘아대는데 폭풍군도의 무사들도
공포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구중연환포는 가공하게도 하루만에 폭풍군도의 무사 삼천 명을 저 세
상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이같은 벽력당의 선전으로 폭풍군도는 부득불 진격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벽력당을 그냥 지나쳐 진격할 수도 있었으나 배후에 비수가 겨
누어진 듯 불안한 형세라 아니할 수 없었다.
이에 폭풍군도 측도 전력을 기울여 벽력당의 공략에 몰두하기에 이르
렀다. 그들도 자신들의 배에 싣고온 포대로 벽력당을 공격하기 시작
한 것이었다.
-홍의포(紅衣砲)!
색목인(色目人)들이 발명한 강력한 화포다.
폭풍군도는 자신들의 전함에 장착했던 홍의포들을 복건성의 오지인
이곳 벽력당까지 이끌고 와서 공격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로써 무림세력 간에는 그 유례가 없었던 포격전이 유황곡 일대에서
벌어졌다.
물론 화포의 위력은 벽력당 쪽이 더 강력했으나 벽력당 또한 폭풍군
도의 홍의포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무엇보다도 식량이 문제였다. 폭풍군도의 홍의포가 벽력당의 식량 창
고를 날려버린 것이다.
이제 벽력당은 꼼짝없이 유황곡의 열화대진에 갇힌 채 굶어 죽던지
항복을 해야할 지경이었다.
실로 진퇴양난의 고비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 벽력당의 유일한 희망은 개전 초기에 그들의 전서구로 귀왕궁에
날려 보낸 구원 요청이 제때 도착하기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과연 구원의 손길이 제때 벽력당에 이를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
다.
* * *
운중악의 마교지존 취임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십대천마의 태반이 죽고 다치는 불상사가 벌어진 마당에 취임식 같은
것은 할 형편이 못 되었기 때문이다.
운중악의 취임식은 졸지에 복수구마와의 싸움에서 전사한 철수마황과
고죽마옹의 장례식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검한은 원래 두 거마의 장례식에 참석한 후 지옥마교를 떠나려 했
다.
하지만 그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황망히 지옥마교를 떠나야 했
다. 그것은 귀왕궁에서 날아온 한 마리 전서구 때문이었다.
-폭풍군도 남해안 상륙! 현재 벽력당을 맹공격 중임!
음월방이 보낸 전서에는 그같은 간략한 글이 휘갈겨 써져 있었다.
벽력당으로부터 귀왕궁에 구조요청의 급전이 날아든 것은 하루 전이
었다. 이에 놀란 음월방은 우선 지옥마교에 있는 이검한에게 전서구
를 띄운 것이다.
동시에 그녀 자신도 달단여왕 나유라와 무정모모 화소연 등과 함께
정영들을 이끌고 남진하기 시작했다.
음월방의 전서구를 받은 이검한은 즉시 운중악과 마교삼태상에게 사
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했다.
운중악과 마교삼태상 등도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벽력당을 구원하러
남진할 것을 약속했다.
이검한은 그런 그들에게 감사하며 급히 철익신응을 타고 남쪽으로 날
아갔다.
탁탑신마후가 함께 가길 원했으나 그녀까지 철익신응에 탈 경우 속도
가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이검한은 혼자 떠나기로 한 것이다.
혈황 영호진의 죽음으로 잠시 평온을 유지하던 무림은 또 다시 세찬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검한 뿐만 아니라 중원무림의 정영들은 속속 복건성을 향해 남진했
다.
폭풍군도와 중원무림 사이에는 건곤일척의 대접전이 이렇게 막이 올
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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