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2-15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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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5章 무서운 조법(爪法)
칠흑 같은 밤이다.
스읏!
무산의 어느 골짜기로 하나의 인영이 소리 없이 날아들었다.
그자는 한 명의 청년으로 마치 얼굴에 한 겹의 얼음을 깐 듯 차디차
고 오만한 모습이었다.
특히 그자의 눈가에는 푸르스름한 광채가 서려 있는 것이 눈길을 끈
다. 아마도 어떤 특이한 무공을 연마한 흔적인 듯했다.
계곡 끝에는 하나의 동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스읏!
청년은 그 동굴 안으로 거침없이 날아들었다.
"어서 오십시요, 소종사(少宗師)님!"
순간 동굴 안쪽에서 음산한 노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청년은 곧 동굴의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
동굴 끝에는 하나의 널찍한 광장이 자리하고 있는데 몇 개의 광솔 횃
불이 걸려 있는 광장의 석벽 아래 세 명의 사내가 서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음침한 인상의 회의노인이었고, 두 명은 흑의검수들
이었다.
흑의검수들은 바로 지옥마교의 정예검수들인 지옥검사(地獄劍士)들이
었다.
"소종사님을 뵙습니다!"
청년이 광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삼 인은 일제히 포권하며 허리를
숙여 보였다.
"이 계집이로군!"
청년은 그들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광장의 벽쪽으로 다가갔
다.
주위에는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곳의 벽에는 한 명의 여인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
양 손목이 커다란 쇠못으로 박혀 있는 여인의 형상은 실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신의 의복은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으며 드러난 나
신은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끔찍하게도 그녀는 열 개의 손톱, 발톱이 모조리 빠져나가 있었으며
탐스럽던 젖무덤은 불인두로 지져져 형체를 잃고 있었다.
고문을 당한 부분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다량의 피는 여인의 하체와
동굴 바닥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실로 목불인견의 끔찍한 광경이
었다.
격심한 고문에 시달린 듯 여인은 고개를 떨군 채 인사불성되어 있었
다.
"정말 지독한 계집입니다. 이 지경이 되고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
니다!"
회의노인이 청년의 뒤에 시립한 채 이마의 땀을 닦으며 허리를 굽신
거렸다.
"실망스럽군. 잔인마조(殘忍魔爪)! 그래도 마교백강(魔敎百强) 중 당
신의 고문 솜씨가 최고라고 해서 믿었거늘……!"
청년은 냉막한 얼굴에 한 가닥 싸늘한 조소를 띠며 말했다.
"용… 용서하십시요, 소종사님!"
청년의 질책에 잔인마조라 불린 회의노인은 사색이 되어 허리를 굽신
거렸다.
-잔인마조(殘忍魔爪)!
그자는 바로 지옥마교 최강의 고수들이라는 마교백강의 일 인이었다.
그런 자가 손자 같은 이 냉막한 청년에게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고 있
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마도 냉막한 인상을 지닌 이 청년이 바로 지옥마교의 소종사인 듯
했다.
잔인마조는 창백한 안색으로 급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속하에게 반 각만 더 여유를 주신다면 반드시 천년여제(千年女帝)의
거처를 알아내겠습니다!"
천년여제!
그녀는 바로 신비의 백야여인맹의 맹주가 아닌가? 그렇다면 무참하게
고문당하고 있는 여인은 바로 백야여인맹의 여전사란 말인데…
소종사라 불린 청년은 냉막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유감스럽게도 본좌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잔인마조! 본좌 직속의
무적구마(無敵九魔)가 신녀묘(神女廟) 주위에 은신한 채 명령을 기
다리고 있다. 더 이상 그들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다!"
말을 마침과 함께 그자는 백야여전사의 머리채를 움켜쥐어 뒤로 홱
젖혔다.
여인의 고개가 힘없이 들려졌다. 청순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이
십 세 가량 되어보이는 미인이었다.
그녀는 모진 고문과 다량의 출혈로 인해 안색이 밀랍같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으며, 코와 입에서는 연신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실로 처참하고 애처롭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내 눈을 봐라, 계집!"
청년은 냉혹한 어조로 말하며 여인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에 바싹 갖
다댔다.
"퉤!"
힘없이 눈을 뜬 여인은 청년의 얼굴에 침을 탁 뱉아냈다.
그러나 청년은 냉막한 표정으로 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자는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흐! 그래. 증오심이 강해야 본좌의 섭백마안술(攝魄魔眼術)이
잘 먹혀들지!"
그자는 냉혹한 어조로 중얼거리며 냉소했다.
섭백마안술이란 말에 여인은 움찔 놀라는 기색을 지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쩌어엉!
일순 청년의 두 눈에서 사악한 광채가 확 번졌다.
"으으음!"
그리고 그것을 직시한 여인은 그대로 청년의 눈동자에 이지를 제압당
하고 말았다.
"너는 나 운중악(雲中岳)의 노예다. 묻는 말에 대답해야만 한다!"
청년은 사악한 안광을 번득이며 음산한 어조로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주인님!"
여인은 멍청한 표정으로 순순히 대꾸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잔인마조는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녕 무섭구나! 그토록 끈질기게 버티던 저 계집을 일별하는 것으로
최면을 걸다니……!'
손자뻘에 불과한 소종사의 무서움을 지금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
는 순간이었다.
마교소종사 운중악은 다시 여인의 눈을 직시하며 음산한 어조로 물었
다.
"천년여제가 지금 신녀묘 내에 있느냐?"
"이… 있습니다!"
여인은 홀린 듯한 표정으로 순순히 대답했다.
"천년여제를 수행한 병력에 대해서 상세히 말해 봐라!"
그 물음에도 여인은 거침없이 털어놓았다.
"칠백 명의 백야여전사(白夜女戰士), 일총관(一總官), 사대호법(四大
護法), 일교(一蛟), 그리고… 금강신녀(金剛神女)가 여제를 수행했습
니다!"
운중악과 잔인마조는 흠칫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일총관과 사대호법은 그렇다고 쳐도 일교와 금강신녀는 또 누구란
말인가?'
운중악은 의아한 표정으로 검미를 찌푸리다가 재차 여인에게 물었다.
"일교와 금강신녀에 대해서 설명해 봐라!"
여인은 운중악이 묻는 대로 순순히 대답했다.
"일교에 대해서는 사대호법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럼 금강신녀는 누구냐?"
운중악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그분은… 저희 백야여전사들의 교두(敎頭)입니다!"
"교두?"
운중악은 검미를 꿈틀하며 여인을 직시했다.
그러자 여인은 여전히 멍청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
"아주… 강한 분입니다. 우리 모두 그분이 개정대법(開頂大法)으로
경맥을 타통시켜준 덕분에 고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그럴 수가?"
듣고 있던 잔인마조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백야여인맹에는 무려 삼천을 헤아리는 백야여전사가
있다.
그녀들은 본시 무공을 전혀 모르거나 알았어도 보잘것없는 수준이었
으나 그녀들이 백야여인맹에 가입한 후 돌연 절정고수로 변신하게 된
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임독이맥이 타통되어 무궁무진한 내공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잔인마조에게 잡힌 이 여인도 지옥검사를 다섯 명이나 때려 죽인 후
겨우 생포할 수 있었다.
그런 백야여전사들의 임독이맥을 단 한 명의 여인이 타통시켜 주었다
는 것이 아닌가?
운중악 또한 경악과 불신을 금할 수 없었다.
'믿어지지 않는군! 금강신녀란 여인 혼자서 삼천 명이 넘는 계집들의
임독이맥을 타통시키다니!'
그자는 내색치 않고 계속 여인을 심문했다.
"천년여제는 신녀묘 어디에 머물고 있느냐?"
"신녀묘 후원의 칠선녀동(七仙女洞)에 계십니다!"
"경비 상태는?"
"사대호법과 금강신녀가 칠선녀동에 계십니다!"
여인은 멍한 표정으로 계속 대답했다.
운중악은 대충 알아낼 만한 것을 알아냈다고 여기자 비로소 섭백마안
술을 풀었다.
여인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최면상태에서 깨어났다.
"이… 이놈! 내게 무슨 짓을 했느냐?"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운중악의 최면술에 걸려들었음을 알고 악을 썼
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운중악은 잔인마조를 향해 냉혹한 음성으로 말했다.
"뒷처리를 깨끗이 하고 신녀묘로 와라!"
스읏!
말을 마침과 함께 그자는 유령같은 신법으로 동굴을 빠져나갔다.
잔인마조와 두 명의 지옥검사들은 운중악이 사라질 때까지 깊숙이 허
리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잔인마조는 입술을 깨물며 여인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네 년 때문에 노부는 소종사님께 찍혔다. 그 대가를 네년
이 치르어야만 한다."
그자는 음산한 어조로 말하며 잔인하게 웃었다.
"흐흐흐! 네년을 가장 처참하게 죽이지 못한다면 노부의 화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말과 함께 그자는 시커멓고 긴 손톱이 달린 손으로 여인의 턱을 움켜
쥐었다.
"흐흐흐! 그냥 죽이기엔 정말 아까운 얼굴이군!"
그자는 여인의 얼굴을 손으로 받쳐든 채 잔혹하게 웃었다.
"죽… 죽여라! 더러운 늙은이!"
여인은 죽음을 각오했는지 독기서린 눈으로 잔인마조를 노려보며 악
을 썼다.
"죽어 귀신이 되어서라도 네놈에게 복수하겠다!"
그녀가 독기 서린 앙칼진 음성으로 외치자 잔인마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오싹 끼침을 느꼈다.
"카캇! 오냐! 전신의 껍질을 몽땅 벗겨내 죽여주마!"
그자는 내심 오한을 떨치며 더욱 음산하게 웃었다.
"자, 어디부터 껍질을 벗겨줄까?"
그자는 날카로운 손톱으로 여인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미 죽을 각오를 한 여인이었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잔인마조의 칼
날같은 손톱이 뺨을 스치자 자신도 모르게 몸을 경련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껍질이 벗겨져야 할 놈은 바로 네놈이다, 늙은이!"
돌연 잔인마조의 배후에서 싸늘한 냉갈이 터져나왔다.
"웬놈이냐?"
잔인마조는 질겁하며 홱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 그자의 시야 속으로 일남일녀가 유령같이 동굴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손을 맞잡고 들어서는 남녀 중 사내는 아주 영준한 용모를 지닌 훤칠
한 키의 청년이었다. 그리고 여인은 사십 전후로 보이는 아름다운 비
구니였다.
두 남녀는 물론 이검한과 유령부인 해옥정이었다.
두 사람은 주대인(朱大人)이란 비범한 문사를 대동하고 삼협에서 가
장 가까운 파동(巴東)의 현청(縣廳)까지 다녀온 길이다.
원래는 악양(岳陽)까지 주대인과 함께 갈 생각이었으나 삼협 일대에
지옥마교와 백야여인맹의 고수들이 운집하는 것을 발견하고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어 발길을 돌린 것이다.
이검한은 원래 혼자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딸이 아직 무산일대를 떠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은 유령부인을 떼놓을 수가 없어
대동하게 되었다.
무산으로 접어든 두 사람은 누군가 이곳 계곡으로 날아드는 것을 발
견하고 뒤따라 들어왔었다. 이검한이 발견한 그 인물은 물론 마교의
소종사인 운중악이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운중악은 이곳을 떠난 후였다.
"아… 아미타불! 어찌 이런 끔찍한 짓을……!"
무참한 고문을 당한 백야여전사의 끔찍한 모습에 유령부인 해옥정은
부르르 몸을 떨며 신음을 발했다.
잔인마조는 나타난 상대가 젊은 청년과 연약한 인상을 지닌 중년의
비구니임을 보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크크! 이건 또 웬 버러지들이냐?"
그자는 가소롭다는 듯 냉소를 터뜨렸다.
"노부의 심기를 건드린 대가다. 죽여라!"
그자는 옆에 서 있던 두 명의 지옥검사를 향해 손짓을 했다.
스팟! 쐐애액!
그 즉시 두 명의 지옥검사는 섬전같은 속도로 장검을 휘두르며 이검
한을 덮쳐들었다. 그자들이 시전한 검법은 사망칠대검식의 제일식이
었다.
사망제일식은 가장 무서운 실전검법으로 무림의 일류고수들이라 해도
그 일초의 검법을 피해내기는 어려웠다. 얼마나 많은 무림인들이 그
일초의 검식에 목숨을 빼앗겼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망검식도 이제 이검한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
다. 사망칠대검식 중 사식을 이미 자신의 것으로 만든 이검한 앞에서
는 그저 가소로울 뿐이었다.
"흥!"
피잉!
이검한은 냉소하며 슬쩍 손가락으로 지력을 튕겨냈다.
"케엑!"
"크악!"
직후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두 명의 지옥검사는 이마에 구멍
이 뻥 뚫린 채 바닥에 나뒹굴었다.
'저럴 수가!'
잔인마조는 이 뜻밖의 사태에 눈을 부릅떴다. 비로소 그자는 이 청년
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 보았다.
"네놈은 혹시 벽력당에서 냉혈마검작을 살해한 고독전신(孤獨戰神)이
냐?"
"고독전신?"
이검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되뇌였다. 그로서는 처음 듣는 별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지금 무림에서는 자신이 고독전신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독전신(孤獨戰神)!
그 이름은 백야여인맹의 맹주인 천년여제(千年女帝), 지옥마교의 교
주인 마교지존(魔敎至尊)과 함께 우내삼정(宇內三鼎)으로 일컬어지기
도 했다.
단시일 내 유성신검황의 혁련검호각과 유령마제의 귀왕궁을 휩쓸어버
린 이검한의 명성은 중천(中天)의 태양처럼 빛나고 있는 중이었다.
혹자는 이검한이 이미 그의 스승인 고독마야 섭장천을 능가하는 강자
가 되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잔인마조는 놀라움을 추스리며 이검한을 노려보았다.
"크크크! 하여간 좋다! 냉혈마검작의 딸과 마누라 대신 노부가 원수
를 갚아 주어야겠군!"
이검한은 눈을 번득이며 잔인마조의 양손을 주시했다.
'조법(爪法)이 특기인 자로군!'
검푸른 빛을 띤 칼날같은 그자의 손톱을 일별한 이검한의 눈이 이채
를 발했다. 거의 반 자 가까이나 되는 그자의 시커먼 손톱은 극독에
절어 있어 스치기만 해도 온 몸이 썩어 들어갈 것이다.
쩌저저정!
잔인마조가 필생의 내공을 응집시킨 그 시커먼 손톱 주위로 검푸른
광채가 배어 흐른다. 그 손톱은 가히 철벽이라도 종이짝처럼 찢어버
릴 가공할 위력을 지녔으리라!
'조심해야겠군!'
이검한은 내심 긴장했다. 독이야 두려울 게 없지만 잔인마조의 손톱
이 지닌 예리함은 무시할 수가 없다.
이검한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자신의 몸으로 해옥정의 앞을 가로
막았다.
'착한 아이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이검한의 무의식적인 행동에 가슴 뭉클함을 느끼
는 유령부인이었다. 그것은 이기적이고 무정하기만 하던 자신의 남편
유령마제에게서는 결코 기대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어디 마교백강의 일 인이라는 늙은이의 솜씨를 좀 볼까?"
그 사이에 이검한은 잔인마조를 노려보며 장강수룡 하군모의 독문병
기였던 분수아미자를 쳐들었다.
"카캇! 각오해라, 애송이!"
스팟!
잔인마조는 이검한이 자세를 잡자마자 음독한 일갈과 함께 맹렬하게
양손을 그어왔다.
쩌저저정!
그자의 손톱에서 시퍼런 조강(爪 )이 뻗어나오면서 사위가 온통 손
톱 그림자로 뒤덮였다. 그와 함께 비단폭 찢는 듯한 파공음이 터져나
왔다.
쉬잇!
이검한도 그 즉시 분수아미자를 휘둘러 잔인마조가 일으킨 조영(爪影
)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
카카캉!
직후 요란한 쇳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읏!"
"크윽!"
이어 두 인영이 후딱 뒤로 물러섰다.
이검한이 움켜쥔 분수아미자에는 몇 가닥의 흠집이 나 있었다. 이 분
수아미자는 북해의 해저에서 캐낸 한철강모(寒鐵鋼母)로 만들어진 것
으로 무쇠를 흙베듯 하는 날카로움과 단단함을 지닌 병기였다.
헌데 잔인마조는 그런 분수아미자에 손톱 자국을 낸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분수아미자를 쥔 이검한은 손아귀가 뻐근해짐을 느
꼈다. 그만큼 잔인마조의 내공은 막강했다.
하지만 잔인마조도 결코 무사치 못했다. 그자의 양어깨는 뼈가 드러
날 정도로 깊숙이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잔인마조는 경악으로 두 눈을 부릅떴다.
그자가 놀라는 것은 일초의 대결에서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이검한이 사망칠대검식의 제 이초를 사용했다는 사실
이었다.
"이놈! 잘도 냉혈마검작의 검법을 훔쳐 배웠구나!"
잔인마조는 이검한을 노려보며 이를 부득 갈았다. 그자는 이검한이
냉혈마검작에게서 사망칠대검식을 훔쳐 배웠다고 여긴 것이다.
"바득! 살려두지 않겠다!"
그자는 이를 부득 갈며 양손을 쳐들었다.
쩌저저정!
그러자 그자의 열 개의 손톱이 시퍼런 노을에 휘감겼다. 뿐만이 아니
라 그의 회색 장포가 바람도 없는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것이 아
닌가?
그 모습을 본 이검한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심상치가 않다!'
그는 잔인마조의 모습에서 그자가 필살의 일초를 시전하려는 것을 알
아차렸다.
물론 전궁만리비의 경공을 시전하면 이검한은 그자의 일격필살의 수
법을 충분히 피해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바로 뒤쪽에는 유령부인 해옥정이 서 있어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리없이 이검한은 나한부동결을 극한까지 일으키며 분수아미자를 움
켜 쥐었다.
쩌러렁!
그 사이 잔인마조의 열 손가락은 완전히 반투명하게 백열되고 있었다
.
"비폭쇄강조(飛爆碎 爪)!"
쩌저정! 푸하아악!
다음순간 잔인마조의 입에서 한소리 사나운 폭갈이 터져나오며 동시
에 열 개 손톱이 폭발하듯 손가락에서 빠져나와 이검한의 열 군데 사
혈(死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우웃!"
이검한은 그자가 설마 내공의 힘으로 손톱을 쏘아보낼 줄은 모르고
있었던지라 질겁했다.
콰우우웅!
이검한의 몸 주위로 열 겹의 호신강기가 벼락같이 일어났다.
빠가가각!
직후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암기처럼 날아든 잔인마조의 손톱이 이검
한의 호신강기에 부딪히며 시퍼런 불꽃을 일으켰다.
헌데 잔인마조의 손톱들은 그냥 쏘아진 것이 아니었다.
기이이잉!
그것들은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며 이검한의 호신강기 속으로 파고드
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이검한은 소름이 오싹 끼침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순간 가슴팍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크윽! 부동신공이 깨지다니……!"
쓰러질 듯 신형을 휘청하며 물러서는 이검한의 가슴에서 세 줄기의
피분수가 확 일어났다. 잔인마조가 날린 열 개의 손톱 중 세 개가 마
지막 열 겹째의 호신강기까지 깨뜨리고 파고들어 그의 몸에 박혀든
것이다.
나머지 일곱 개의 손톱은 이검한의 열 겹의 호신강기를 뚫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크크크! 어떠냐? 애송이!"
잔인마조는 이검한의 가슴에서 피분수가 이는 것을 보고 득의의 음소
를 지었다.
그러나 그것이 그자가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퍼억!
한 줄기 시퍼런 섬광이 번득인다 싶은 순간 그자의 목이 동체와 분리
되어 버렸다. 이검한의 분수아미자가 섬전같이 그어져 그자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후두둑! 퍼퍽!
피를 뿌리며 바닥으로 나뒹구는 잔인마조의 머리통에는 아직도 득의
의 표정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이검한이 그의 목을 벤 속도는 그만
큼 빨랐던 것이다.
쿠웅!
잠시 그 자리에 서 있던 잔인마조의 몸통이 고목처럼 뒤로 벌렁 넘어
갔다.
"아… 아미타불!"
해옥정은 목과 동체가 분리된 잔인마조의 끔찍한 시체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합장하며 불호를 외웠다.
이검한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잔인마조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
다.
'휴우! 위험했다!'
그는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가슴에는 잔인마조가 날린 세 개의 손톱이 한 치 깊이로
박혀 있었다. 잔인마조의 손톱은 맹렬히 휘돌며 날아들어 금강지체인
이검한의 몸에 상처를 낸 것이다.
만일 잔인마조의 내공이 삼성(三成) 정도만 더 강했어도 이검한의 심
장은 그 손톱들에 찢기고 말았을 것이다.
그 날카로운 손톱들에는 극독이 묻어 있었으나 무형독강을 익힌 이검
한에게는 별다른 해를 끼치지 못했다.
"끙!"
파팟!
이검한은 고통의 신음을 발하며 자신의 가슴에 박힌 손톱을 뽑아내었
다. 그리고는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일곱 개의 손톱들도 주워 들었다.
'훌륭한 암기 역할을 하겠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잔인마조의 날카로운 손톱들은 그자의 필생 내공이 응결되어 있었다.
이검한은 그것이 만년한철의 벽도 찢어버릴 수 있는 최강의 암기임
을 알아보았다.
"다… 다쳤군요, 이소협!"
해옥정은 비로소 이검한이 다친 것을 깨닫고 질겁했다.
"아아! 얼마나 아프시겠어요?"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이검한의 가슴의 상처를 눌러 지혈해 주었
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자식이 다치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어
느덧 그녀는 이 젊은 기린아에게 강렬한 모성애를 느끼고 있는 것이
다.
"괜찮습니다. 피부만 다쳤을 뿐입니다!"
이검한은 해옥정의 모습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끼며 멋쩍게 머리
를 긁적였다.
"그보다 부인께서 이분 소저를 돌봐 주십시요!"
그는 급히 벽에 박힌 백야여전사에게로 다가섰다.
"내… 내 몸에 더러운 손 대지 마라!"
백야여전사는 이검한이 다가오자 앙칼진 음성으로 외쳤다.
그녀는 지금까지 벌어진 일전을 놀란 눈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당연
히 이검한이 자신을 구해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잔인마조와 싸웠
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검한을 사갈(蛇蝎)보듯 했다. 아마도 어떤 이유로
인해 사내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지닌 듯했다.
유령부인 해옥정은 그런 그녀를 향해 그윽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안
심시켰다.
"아미타불! 안심해요, 시주! 이소협은 이 자들과는 다른 사람이니…
…!"
이검한은 재빨리 여인의 손목에 박힌 쇠못을 뽑아주었다.
그리고 해옥정은 쇠못이 뽑히면서 쓰러지려는 여인을 급히 받아 안아
조심스럽게 바닥에 누였다.
"그럼 이분 소저는 부인께 맡기겠습니다!"
이검한은 내상약이 든 옥병을 해옥정의 손에 쥐어주고는 일어서 밖으
로 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자… 잠깐만 기다려다오!"
밖으로 나가려는 이검한을 여인이 급히 불러 세웠다.
"무슨 분부라도 계시오, 소저?"
이검한은 빙글 돌아서며 물었다.
"너… 너는 정말 짐승 같은 다른 사내들과는 틀린 것 같구나!"
여인은 이검한을 향해 더듬거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과찬이오!"
이검한은 그녀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해, 해서 하는 부탁인데, 신녀묘에 가서 말을 좀 전해다오!"
"신녀묘!"
이검한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녀묘는 전설 속의 무산신녀(巫山神女)를 모신 사당이다.
여인은 놀라는 표정을 짓는 이검한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곳에… 내 동료들이 있다. 그들에게… 지옥마교의 강적들이 맹주
님을 노리고 암습할 테니 조심하라고 경고해다오! 백야(白夜) 이백칠
십이호(二百七十二號)가 보냈다고 하면 믿어 줄 것이다!"
"알겠소! 꼭 그리 전하리다!"
이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가 무산에 온 이유 중 하나는 천년여제의 정체를 밝히기 위
해서 온 것인데 백야여전사는 자청해서 천년여제의 위치를 가르쳐준
것이다.
이검한은 내심 기뻐하며 동굴을 나섰다.
"……!"
헌데 그런 이검한의 뒷모습을 주시하는 백야여전사의 눈가에 스치는
싸늘한 비웃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조심하세요, 소협!"
동굴을 나서는 이검한의 등 뒤에서 근심서린 유령부인 해옥정의 음성
이 들려왔다.
* * *
무산신녀를 모시는 사당인 신녀묘(神女廟)는 무산의 험협이 내려다
보이는 절경에 자리하고 있다.
비록 사당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사찰 같다.
무려 백여 채나 되는 고루거각들이 처마를 맞대고 줄지어 늘어서 있
는 것이다.
신녀묘에는 그 옛날 북위(北魏)의 양제(梁帝)가 이곳 무산 산록에서
꿈 속에서 만난 무산신녀(巫山神女)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
다는 고사가 서려 있다.
헌데 그 신녀묘는 한 달 전부터 일단의 신비의 여인들에게 장악된 후
사방 수십 리가 용담호혈로 변하고 말았다.
신녀묘 주위로 접근하는 사내들은 누구라도 예외없이 살해당하고 만
다.
그 바람에 늘 참배객이 끊이질 않던 신녀묘 주위에는 인적이 끊겨 음
산한 귀기만이 흐를 뿐이었다.
삼경 무렵이다.
스슷!
하나의 인영이 신녀묘 안으로 유령같이 날아내렸다.
"웬놈이냐?"
그 인영이 날아들자 거의 동시에 앙칼진 여인의 교갈이 터져나왔다.
스스슥! 화라라락!
이어 신녀묘의 담장 그늘에서 십여 개의 왜영(倭影)들이 날아올라 삽
시에 침입자를 포위했다.
"진정들 하시오! 본인은 귀맹의 적이 아니오."
날아든 인영은 침중한 음성으로 일갈했다.
그 인물은 바로 이검한이었다.
이검한은 잔인마조에게 고문당한 백야여전사의 부탁대로 이곳 신녀묘
를 찾아온 것이다.
이검한을 포위한 여인들 중에는 노소(老少)가 섞여 있었다.
이제 십 육칠 세 가량 되어 보이는 소녀에서부터 오십대의 중년여인
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눈빛이 아주 형형하고 섬뜩한 살기가 서려
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들이 바로 백야여전사(白夜女戰士)들이다.
백야여전사가 된 여인들은 대개 비참한 신세내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
에 한결같이 세상을 증오하고 특히 사내들이라면 이가 갈리도록 증오
했다.
그녀들의 눈빛이 살기로 번득이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였다.
이검한은 자신을 포위한 십여 명의 백야여전사들을 둘러보며 침중한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여러분들의 동료인 백야 이백칠십이호가 보낸 심부름꾼이오!"
"백야 이백칠십이호?"
"그 아이는 어찌 되었느냐? 그렇잖아도 갑자기 실종되어 찾고 있는
중이거늘!"
여인들 중 몇 명이 앞으로 나서며 다그쳐 물었다.
"안심하시오. 모진 일을 당하기는 했으나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이오
!"
이검한은 말과 함께 백야 이백칠십이호가 당한 일을 여인들에게 설명
해 주었다.
"바… 바득! 그런 끔찍한 짓을 하다니! 지옥마교 놈들의 씨를 말려버
리고 말겠다!"
"하여간 세상 사내놈들은 살려둘 가치가 없다!"
이검한의 말을 듣고난 백야여전사들은 증오와 적개심에 가득한 섬뜩
한 살기를 토했다.
그 모습을 본 이검한은 절로 섬뜩한 오한이 일었다. 백야여인맹의 여
인들이 이토록 세상 사내들을 증오하는지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그같이 처절한 한을 지닌 여인들이 초절한 무공까지 지녔으니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이 여인들 때문에 무림에 피가 마를 날이 없겠구나!'
이검한은 내심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쉰 후 백야여전사들을 향해 정중
히 포권하며 말했다.
"소생은 임무를 다했으니 이만 물러가겠소!"
"잠깐만 기다리세요!"
삼십대의 독살스러운 눈빛을 지닌 미소부가 떠나려는 이검한을 급히
제지했다.
"호법(護法)님들을 모셔올 테니 그분께 직접 말씀해 주세요! 그동안
저쪽 객사에서 쉬시지요!"
그녀는 차가운 눈을 번득이며 한쪽의 객사를 가리켰다.
이검한은 사양하려 하였으나 여인의 태도가 너무나 간곡하여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럼 폐를 끼치겠소!"
이어 그는 여인들의 안내를 받아 객사 안으로 들어갔다.
"우선 차라도 드시지요!"
그가 객사 안으로 들어서자 영리하고 눈치가 빠르게 생긴 소녀가 공
손히 찻잔을 받쳐들고 들어왔다.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여 마치 인형
같은 소녀였다.
'이렇게 귀여운 소녀가 또 무슨 사연이 있어 백야여전사가 되었단 말
인가?'
이검한은 소녀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 소녀가 내미는 찻잔을 받아
들었다.
"고맙소. 실례지만 아가씨의 방명을 알 수 있겠소?"
"백야(白夜) 천사십이호(千四十二號)예요!"
소녀는 커다란 눈을 떼구르르 굴리며 대답했다.
이검한은 고소를 지으며 다시 말했다.
"백야여인맹 내에서 명칭 말고 진짜 이름을 듣고 싶소만……!"
순간 소녀의 두 눈에 언뜻 표독한 빛이 스쳐갔다.
그러나 소녀는 이내 배시시 미소지으며 말했다.
"꼭 소녀의 이름을 아셔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아니오. 그냥 호기심에 물어본 것뿐이오!"
이검한은 쓴 웃음을 지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좋은 향기가 나는군!"
그는 찻잔의 뚜껑을 열고 차를 한 모금 마셨다.
"……!"
소녀는 그런 이검한의 모습을 마치 먹이를 노리는 암코양이 같은 형
형한 시선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웁!'
헌데 소녀가 건네준 차를 한 모금 들이킨 이검한은 두 눈을 부릅떴다
. 갑자기 식도가 화끈해지는 느낌과 함께 순간적으로 목 부위가 뻣뻣
하게 마비됨을 느낀 것이다.
"도… 독을!"
쨍그랑!
이검한은 목을 움켜쥐고 손에 든 찻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의 손
에 들렸던 찻잔이 발치로 떨어져 깨지며 요란한 소리를 일으켰다.
"호호호! 걸려들었구나, 멍청한 놈!"
갑자기 소녀가 깔깔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그녀가 가져온 차 속에
는 아주 강렬한 극독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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