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2-26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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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6章 남해(南海)로부터의 폭풍
콰르릉!
남해(南海)는 폭풍(暴風)에 잠겨 있었다.
포효하는 광풍에 대양은 몸살을 앓으며 뒤틀거리고 있었다.
집채만한 파도와 휘몰아치는 강풍!
아무리 튼튼한 거선이라도 이 거친 자연의 노호에는 가랑잎같이 흩날
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 거칠디 거친 바다 위를 늠연히 떠도는 한 척의 거선이 있었다.
하지만 말이 배일 뿐 그것은 이미 배라고 부를 수 없는 엄청난 규모
의 떠도는 섬이었다.
능히 수만 평은 됨직한 갑판 위에는 선실 대신 화려하기 이를 데 없
는 전각들이 세워져 있었다.
전각 뿐만 아니라 곳곳에는 잘 가꾸어진 정원과 연못까지 설치되어
있지 않은가?
-부유주(浮流舟)!
이것이 그 엄청난 거선의 이름이었다.
남해를 오가는 선원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지는 떠도는 섬으로 능히
몇만 명의 인원을 태우고 원하는 곳 어디라도 오갈 수 있다는 신비
의 거선이 지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 부유주가 폭풍군도의 총단임은 남해의 뱃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고 있으리라.
부유주의 중앙에는 족히 오백 명이 일시에 들어갈 수 있는 웅장한 대
청이 자리하고 있었다.
<군림사해청(君臨四海廳).>
그같은 글이 새겨진 삼 장 길이의 거대한 무쇠편액이 걸려있는 대청
에는 지금 백여 명의 인물들이 이 열로 마주앉아 뜨거운 설전을 벌이
고 있었다.
"네 분 천왕께서 중원에 들어가신 지 벌써 일 년 하고도 반이 지났오
. 더 이상 기다릴 수는 없소!"
"그렇소. 지금까지 서신 한 통 없는 것으로 미루어 사천왕들께서는
변을 당하신 것이 틀림없어요!"
"당장 중원으로 상륙합시다. 스스로 중화라 뻐기며 우쭐대는 그자들
에게 우리 남해무림의 무서움을 보여줄 때요!"
좌측에 도열해 있는 인물들이 열변을 토해내었다. 그자들의 눈빛은
전의로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소맷자락에는 그림자 영(影)자와 핏빛의 륜(輪)이 새겨
져 있었다.
-무영도(無影島)!
-신륜도(神輪島)!
그것은 바로 폭풍군도 중 무영, 신륜, 양 파의 표기였다.
"중원침공이라니, 그 무슨 망발이오? 대륙은 넓고 기인이사는 모래알
같이 많으니 결코 중원에는 발을 딛지 말라는 폭풍천신(暴風天神) 조
사님의 유훈을 잊으셨소?"
"네 분 도주님의 경인할 무예를 못 믿는 거요? 고독마야 섭장천이 죽
은 지금 누가 있어 네 분 천왕님을 시해할 수 있단 말이오?"
"무영, 신륜 양도의 고인들께서는 잊으셨소? 우리의 배후에는 동해
마음도(魔音島)와 부상 신풍검막(神風劍幕)이 호시탐탐 남해 침공의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중원침공론에 맞서 격론을 펴고 있는 인물들의 표기는 바람 풍(風)자
와 검은 이무기의 문양이었다.
-폭풍도(暴風島)!
-해룡도(海龍島)!
양 파의 인물들은 바로 폭풍군도 사대가문 중 폭풍, 해룡 양 파의 수
뇌들이었다.
폭풍도는 폭풍사가(暴風四家)의 수령이랄 수 있는 가문이다.
그것은 폭풍일족이 그 옛날 남해를 제패하여 폭풍군도를 연 시조 폭
풍천신의 직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좌의 자리는 다분히 형식일 뿐이었다.
폭풍군도의 운명을 좌우할 대사는 사대가문의 원로 일백 명의 모임인
백인평의회(百人評議會)에서 결정된다.
폭풍백인평의회의 의장은 역대 폭풍도의 도주가 맡는 것이 전통이다.
지금 상좌에는 한 명의 인물이 곤혹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이는
이십대 후반 정도이며 시원시원한 용모에 해맑은 피부를 지닌 청년
이었다.
만일 당당한 육 척의 체격과 일신에 걸친 검은 장포가 아니면 여자라
고 착각할 만한 미모의 청년이었다.
-폭풍잠룡(暴風潛龍) 군옥(君玉)!
그 청년은 중원에서 실종된 폭풍천왕의 일점혈육으로 부친 대신 폭풍
백인평의회(暴風百人評議會)를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장내의 누구도 폭풍잠룡 군옥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것은 그가 폭풍사가 중에서도 단연 막강한 폭풍일족의 종손이기 때
문만은 아니었다. 비록 젊은 나이지만 군옥이 이미 실종된 부친 폭풍
천왕만큼 강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사실 폭풍일족의 율법은 약육강식의 철칙으로 이루어졌다. 누구든지
강한 자가 가주에게 도전하여 이기면 그 순간 이긴 자가 새로운 가주
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폭풍잠룡은 지금까지 여러 차례 가중의 도전을 받았으며
, 이때까지 단 한 번도 패배를 당하지 않았었다.
지금 폭풍잠룡 군옥이 백인평의회의 수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같은 사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정말 아버님과 세분 숙부께서 변을 당하신 것일까?'
폭풍잠룡 군옥의 잘생긴 이마가 찡그러졌다. 해맑은 피부에 선이 확
실한 눈썹은 미인의 그것과도 같이 아름다워 보였다.
일 년 반 전 군옥의 부친 폭풍천왕 군유명과 다른 삼천왕에게 도전장
이 날아들었다. 중원 모처에서 누가 우내제일의 자인지 가리자는 내
용이었다.
호승심이 강한 폭풍사천왕이다.
게다가 고독마야 섭장천이 타계하여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중원무
림에 은근히 회가 동했던 참이었다.
폭풍사천왕은 중원의 내실을 영탐할 겸해서 도전에 응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수행원도 대동하지 않은 채 중원으로 들어
간 폭풍사천왕은 일년 반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전혀 연락이 없는 것
이다.
초조해질 대로 초조해진 폭풍사가들 중 일부는 이 기회에 중원으로
진공하자는 과격한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폭풍잠룡 군옥이라고 해서 어찌 부친의 생사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단지 두 가지 사실이 그를 망설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중원에 발을 디뎌서는 안된다. 고금오대고수(古今五
大高手)의 맥이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한 패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
다!
폭풍군도의 시조인 폭풍천신은 그같은 유언을 남겼었다.
시조의 유언이 군옥의 발을 묶는 첫번째 이유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를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는 달리 있었다.
-동해(東海) 마음도(魔音島)!
-부상(扶桑) 신풍검막(神風劍幕)!
동해와 동영을 지배하고 있는 그 막강한 해상세력들이 호시탐탐 남해
의 패권을 노리고 있었다.
남해는 서역과 중원을 잇는 중요 해로(海路)다. 그 남해를 장악하고
있기에 폭풍군도의 창고는 늘 재화(財貨)로 가득할 수 있었다.
그 남해상권을 동해의 패주 마음도와 부상의 해적떼인 신풍검막이 노
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 해적으로 전락한 부상 신풍검막의 발호는 폭풍군도로서는 골칫
덩어리였다.
호전적이고 악랄한 왜구는 마치 아귀의 무리처럼 탐욕스럽고 집요했
다. 만일 폭풍군도가 대군을 동원하여 중원으로 진공한다면 신풍검막
의 무리들은 그 즉시 폭풍군도의 본거지를 공격할 것이다.
그같은 배후의 화근때문에 폭풍잠룡 군옥은 결단을 못내리고 있었다.
"잠시 정회하겠소. 일각 후에 다시 이 자리에 모여주시오!"
끝없이 되풀이 되는 논쟁들을 듣다못한 군옥의 일갈에 장내는 숙연해
졌다.
그는 이어 예의상 자리에서 일어선 원로들을 등 뒤로 하고 거친 걸음
걸이로 군림사해청을 걸어나왔다.
콰아아아!
대청을 나서는 군옥의 훤칠한 몸을 세찬 비바람이 후려쳤다.
삽시에 군옥의 온몸은 흠씬 젖어들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고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이내 군옥은 부유주의 갑판 끝에 이르렀다.
우르릉!
성난 맹수처럼 으르렁대는 바다…
부유주의 흑단목으로 짜여진 선수에 파도가 부딪히며 허연 이빨을 드
러내보였다.
'저 너머 먼곳에 중원이 있다!'
군옥은 갑판을 굳게 디딘 채 멀리 파도 너머를 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거친 파도 너머에 신비와 무궁히 드넓은 중원대륙이 있는 것이
다.
'대륙이란 어떤 곳일까?'
군옥은 중원대륙이라는 미지의 대상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그러나 바다에 점점이 더있는 섬만을 보고 자라온 그의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광활한 대륙을 연상할 수가 없었다.
'어찌해야만 하는가? 아버님을 믿고 기다려야만 하는가? 아니면, 내
가 직접 아버님을 찾아 나서야만 하는가?'
군옥의 미려한 아미가 갈등으로 모아졌다.
헌데 바로 그 때였다. 저 멀리 파도 너머로 배 한 척이 위태롭게 일
렁이는 것이 보이지를 않는가?
불길하게도 돛대에 검은 휘장을 달고 있는 그 배는 금방이라도 가라
앉을 듯이 위태위태해 보였다.
'남해의 배는 아닌데……!'
군옥은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염두를 굴렸다.
스악!
다음 순간 그의 몸은 질풍처럼 바다 위를 날으고 있었다.
굽이치는 파도를 밟으며 군옥은 삽시에 검은 휘장을 단 배에 가까이
접근했다.
확실히 그 배는 남해에서 만들어진 배가 아니었다. 둔탁한 배의 형태
는 그 배가 원양항해용(遠洋航海用)이 아니라 연근해용(沿近海用)의
어선임을 한눈에 보여주었다.
'이런 조각배가 용케도 이런 먼바다에까지 흘러왔군!'
군옥은 염두를 굴리며 파도를 차고 배 위로 올라섰다.
"관이 아닌가?"
갑판으로 올라서던 군옥은 흠칫 몸을 떨었다.
인적 하나 없는 음산한 조각배의 갑판에는 하나의 커다란 관 하나만
이 덩그라니 놓여있었다. 그 관은 굵은 쇠사슬로 갑판에 고정되어 있
었다.
'어떻게 된 건가? 사람은 한 명도 없고 관 하나만이 놓여있다니!'
군옥은 의아해하면서 관으로 다가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관뚜껑을 열
어제꼈다.
"헉!"
군옥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떠졌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는 관뚜
껑이 자신의 발 위로 떨어지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과연 관 안에 무엇이 있기에 그를 그토록 놀라게 만든 것일까?
관 속에는 한 명의 거구의 장한이 반듯이 누워있었다.
호방한 인상의, 군옥에게는 너무나 낯익은 얼굴이었다.
"아, 아버님!"
군옥은 후들후들 떨며 비명같은 신음성을 터뜨렸다.
시체의 주인은 바로 폭풍잠룡 군옥의 아버지였다.
-폭풍천왕(暴風天王) 군유명!
폭풍사천왕의 첫째이며 천지육강(天地六强)의 한 사람으로 꼽히던
남해무림의 패자가 지금 시체로 변해 고향의 남해로 돌아온 것이다.
-중원지적(中原之賊)!
-경망되이 중원무림을 넘본 죄가를 이 자로 본보기로 삼는다!
폭풍천왕의 시체 위에 그같이 적힌 천조각이 덮여 있었다.
그리고 폭풍천왕의 심장 부위에는 한 자루 쇠말뚝이 깊숙이 박혀있었
다. 뿐만 아니라 폭풍천왕의 팔다리는 동체에서 떨어진 처참한 모습
으로 관에 담겨있지를 않은가?
"우아악!"
처절한 부친의 주검에 접한 폭풍잠룡 군옥의 입에서 상처입은 짐승의
그것같은 울부짖음이 토해졌다.
"보라! 하늘이여! 들으라! 어머니이신 바다여!"
군옥은 울부짖으며 관 아래 무릎을 꿇었다.
"나의 맹세에 증인이 되라. 남해의 바다여! 하늘이여! 중원의 인간을
씨를 말리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님을 살해한 흉수를 나 군옥의 손으
로 처단할 것이다!"
울음섞인 폭풍잠룡의 울부짖음은 마치 노룡이 창해를 뚫고 비상하듯
남해의 하늘을 뒤흔들었다.
사랑하는 부친을 잃은 남해의 젊은 영웅 폭풍잠룡 군옥의 분노는 남
해의 거친 하늘조차 숙연케 만드는 것이었다.
과연 젊은 영웅의 분노는 또 어떤 파란을 불러 일으킬 것인지!
이곳은 대해의 지배자 폭풍일족의 고향인 남해였다!
* * *
-태양곡(太陽谷)!
난주 교외에 자리한 그곳에서는 대역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되어 하나의 웅장한 장원이 재건되고 있었다.
태양장(太陽莊).
한때 신주사패천(神州四覇天)의 하나로 불리던 태양장이 재건되고 있
는 것이다.
태양장은 십 육 년 전 어느 여름날 의문의 대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된
후 귀역으로 방치되어 왔다.
그러다가 실로 십 육 년 만에 재건되고 있는 것이다.
태양장을 재건하는 인물은 난주 일대에 태양공자(太陽公子)란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물론 태양공자는 이검한이었다.
그가 혈황 영호진을 쓰러뜨려 무림의 우환이 사라지자 그의 여인들과
친구들이 태양곡의 태양장을 재건하고 있는 중이다.
이 대공사의 총지휘는 누란왕후 흑요설이 맡고 있었다.
흑요설 외에 이검한과 결의남매를 맺은 두난향과 인간이 된 여와음교
, 달단여왕 나유라의 딸 철산산과 그녀의 시위장인 철부신장 포대붕
등이 태양장에 상주해 있었다.
그 외에 이검한의 두 명의 의누이인 음월방과 나유라, 그리고 무정모
모 화소연 등은 귀왕궁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 세 여인은 사이가 아
주 좋아져 결의자매를 맺은 상태였다.
가장 나이가 많은 무정모모 화소연이 큰언니가 되었고, 음월방이 둘
째, 그리고 달단여왕 나유라가 가장 나이가 어려 셋째가 되었다.
그녀들은 자신들을 한물 간 세대라 자조하며 스스로 낙영삼고(落影三
姑)라 불렀다.
그녀들 외에 무정모모의 양아들이 된 철룡풍은 살부능모(殺父凌母)의
원수인 철목풍의 종적을 찾기 위해서 현재 천하를 주유 중이었다.
독성부를 떠난 이검한이 태양곡으로 돌아왔을 때 한 장의 초청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초청장은 지옥마교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마교 제 이십삼대 교주의 취임식이 있으니 부디 참석하시어 자리를
빛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지옥마교의 집법당주(執法堂主)의 이름으로 보낸 것이었다.
바로 운중악의 교주 취임식 초청장이었다.
혈황과의 일전 후 지옥마교는 강호로 내보냈던 문하 제자들을 모두
소환했다.
또한 지옥마교는 공식적으로 무림제패의 야망이 없음을 내외에 천명
했다.
전임(前任) 교주인 마교지존 운천손이 영호성에게 암산당해 행방불명
(行方不明)되었기 때문에 현재 지옥교주의 지위는 공석(空席) 중이었
다.
현재로서는 운천손이 불귀객이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할 수 있었다
.
지옥교주의 지위는 한시도 비워 둘 수가 없어 운천손의 아들인 운중
악이 부친의 뒤를 이어 지옥마교의 지존으로 등극하게 된 것이었다.
본래 지옥마교의 전통은 극히 폐쇄적인지라 교주의 취임식에 외부 인
사를 초청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검한의 경우는 달랐다.
이검한 덕분에 지옥마교는 괴멸의 위기를 모면했기에 지옥마교의 원
로들이 이검한만 특별히 초청한 것이었다.
초청을 받은 후 두난향은 이것이 함정이 아닐까 우려했다.
지옥마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검한이야말로 자신들의 무림제패에 최
대 걸림돌이 될 것이기에 유인하여 암살을 기도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검한은 운중악의 인격을 믿었다.
비록 한때는 적이었으나 지금은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친구 사이가
된 까닭에 그는 선선히 운중악의 초청에 응했다.
그는 지옥마교가 있는 운중산으로 가는 길에 혁련검호각(赫連劍豪閣)
에 한번 들를 작정이었다. 그곳에도 이검한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은
원이 남아있는 것이었다.
* * *
-종남산(終南山)!
도가(道家)의 영산인 그곳에 강호 뭇 검호들의 성지이자 신주사패천
의 일파인 혁련검호각이 있음은 천하가 알고 있다.
비록 각주인 유성신검황 혁련휘의 실종으로 예기가 꺾여 있기는 하나
혁련검호각은 여전히 무림검도계의 태두로 군림하고 있었다.
-남천암(南天庵)!
종남산의 서남단에 자리한 아늑한 암자로서 이곳 주위 십 리 일대는
혁련검호각의 가장 중요한 금지 중 하나였다.
다수의 혁련검호각의 정영들이 항상 남천암 일대를 경계하고 있었다.
그것은 남천암에 한 명의 귀부인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유성신검황의 아내인 자애검모(慈愛劍母) 고숙향(高淑香)이 이곳 남
천암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삭발을 하고 불문에 귀의했다.
아직 정식으로 법계(法戒)를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가 왜 갑자기
비구니가 되었는지는 오직 한 사람, 그녀의 친동생인 철사자검(鐵獅
子劍) 고숙정(高淑晶)만이 그 이유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 비밀 또한 영원히 고숙정의 가슴 속에 묻혀 있을 테지만 말
이다.
한여름의 오후다.
짙은 먹장 구름이 종남산 일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 금방이
라도 한줄기 비가 쏟아질 듯한 기세였다.
우르르!
은은한 우레성마저 하늘 일각을 흔들며 울려나왔다.
"어느 분이 이 누추한 곳을 찾아오셨나요?"
우수 어린 여인의 음성과 함께 남천암의 본당 문이 조용히 열리며 한
명의 여인이 모습을 나타냈다.
나이는 삼십대 중반 정도이며 후덕한 용모에 넉넉하게 살이 올라 다
소 비만한 체격을 지닌 여인이었다. 풍만하게 살찐 여인의 몸에는 회
색 승포가 걸쳐져 있었다.
자애검모 고숙향!
바로 그녀였다.
"시… 시주는!"
본당의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던 고숙향은 경악의 음성을 발하며 눈
을 크게 떴다.
"……!"
남천암의 뜨락에는 언제부터인지 한 명의 청년이 유령처럼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일신에 검은 장포를 걸친 헌앙한 용모의 청년으로 비단천
으로 감싼 하나의 길쭉한 물건을 들고 있었다.
바로 이검한이었다.
고숙향은 몇 달 전 이검한을 본 적이 있었다.
물론 눈앞의 이 청년이 바로 최음제에 취한 자신을 구해준 장본인임
은 알지 못했다.
"수행에 방해를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이검한은 고숙향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는 이 가엾은 여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고 있었다.
비록 불가항력의 상황이었지만 그는 고숙향의 고결한 육체를 범했었
다.
그 뿐만이 아니라 고숙향의 남편인 유성신검황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
지 않았던가?
고숙향은 인자한 눈빛으로 이검한을 주시하고 있었다.
'인중룡이다. 전대의 은원만 없었다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숙정이와
짝을 지어주련만……!'
그녀는 내심 중얼거렸다. 자신의 동생인 고숙정과 이검한을 짝지워
주고 싶은 충동을 느낀 것이다. 매부로 삼고 싶은 이 청년이 이미 자
신의 육체를 범했음을 까마득히 모른 채…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 모르나 우선 들어오세요! 대접할 것은 없지
만 곡차 한 잔 정도는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고숙향은 그윽하게 미소지으며 이검한에게 말했다.
그녀의 미소를 접한 이검한은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고숙
향의 자애로운 미소에서 왠지 모를 따스한 정이 느껴진 것이다.
'이런 분께 나는 씻지 못할 죄를 지었다.'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씀은 고맙지만 갈 길이 바빠서……!"
그는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소생이 부인의 청수를 방해한 것은 한 가지 물건을 전해드리기 위해
서입니다!"
그는 비단천으로 감싼 철목신검을 고숙향에게 내밀었다.
"이것이 무엇인데 첩신에게……?"
고숙향은 의아한 표정으로 철목신검을 받아들었다.
"흑!"
하지만 비단천을 풀어보던 고숙향의 입에서는 숨넘어갈 듯한 신음성
이 터져나왔다.
텅!
검붉은 광채가 도는 목검(木劒) 한 자루가 비단천을 빠져나와 고숙향
의 발치에 떨어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유성신검황의 애검인 철목신검(鐵木神劍)이었다.
남편의 애검을 보는 순간 고숙향은 유성신검황의 신상에 어떤 일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크나 큰 충격을 받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검한은 그 모습에 침중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부군의 일은 실로 유감입니다!"
이어 그는 간략하게 유성신검황이 죽은 경과를 설명해 주었다. 자신
이 유성신검황을 죽인 사실도 굳이 감추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듣고난 고숙향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비록 불가피한 상황이었으나 부군을 시해한 것은 소생입니다. 부인
의 동생분이나 제자들이 제게 복수를 하고자 도전해 온다면 언제라도
응해 드리겠습니다!"
이검한은 침중한 음성으로 말을 덧붙였다.
사실 유성신검황은 그의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유성신검황 덕
분에 이검한은 비로소 심검(心劍)의 경지에 눈뜨게 된 것이었다.
이검한으로서는 혁런검호각의 제자들의 도전에 응해주는 것 외에 달
리 유성신검황에게 입은 은혜를 갚을 방법이 없었다.
이검한은 무거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흐윽! 상공!"
그의 등뒤로 고숙향의 처연한 오열이 들려왔다.
이검한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훌쩍 남천암 아래로 날아내려갔다.
이검한이 남천암 아래로 사라지고 나자 고숙향은 처연한 표정으로 고
개를 들었다.
'죽자! 상공께서 이미 고인이 되신 것을 알았으니 무엇을 더 망설이
랴?'
그녀는 사실 오래 전에 죽을 작정을 한 몸이었다.
저주스러운 지난해 여름 어느날 밤, 유령잠룡 유마운학에게 겁탈당했
을 때 그녀는 이미 자결하리라 마음 먹었었다.
그러나 그때 바로 자결하지 않았던 것은 남편 유성신검황에게 죄를
받기위해서였다. 그녀는 남편이 폐관을 마치는 대로 자신의 정절이
이미 더럽혀졌음을 고백하고 깨끗이 죽으려 작정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녀에게는 그럴 기회마저 없었다. 유성신검황은
그만 혈황에게 납치 당하고 만 것이다.
그후 고숙향은 이제나 저제나 유성신검황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남
천암에 칩거한 채 지냈고, 그러던 중 오늘 남편의 부고(訃告)를 접하
게 된 것이다.
'상공! 이제 천첩이 참회하러 상공 곁으로 갑니다!'
고숙향은 눈물 젖은 처연한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는 한 자루 비수를
꺼내 가슴에 들이댔다.
그리고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비수로 자신의 왼쪽 젖가슴을 찔러갔다.
날카로운 비수의 끝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소리가 들린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아니됩니다, 사모!"
한소리 다급한 사내의 외침이 고숙향의 귓전을 울리며 그녀의 손목에
짜릿한 통증을 느꼈다. 누군가 지력을 날려 그녀의 맥문을 친 것이
다.
하지만 이미 한걸음 늦어 날카로운 비수는 그녀의 왼쪽 젖가슴에 깊
숙이 박혀든 상태였다.
고숙향은 참담한 고통과 함께 아득하게 정신을 잃으며 옆으로 쓰러졌
다.
"아아! 이게 무슨 어리석은 짓입니까? 사모님!"
가물가물 의식이 멀어지는 고숙향의 귓전으로 예의 사내의 침통한 음
성이 파고들었다.
-천자검(天子劒) 종리백(鍾里伯)!
바로 유성신검황의 대제자인 그의 음성이었다.
* * *
꽈르르릉! 쏴아아!
뇌성을 동반한 우레성과 함께 굵은 빗줄기가 종남산 전역을 거세게
두드리기 시작했다.
장대발같이 쏟아지는 세찬 빗줄기에 종남산은 뿌연 폭우의 장막으로
뒤덮였다.
폭우가 쏟아지는 종남산의 어느 산곡,
콰아아아!
십여 장 높이의 거대한 폭포가 거센 물줄기를 뿜어내며 기세좋게 쏟
아져 내리고 있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수천 갈래의 물줄기로 쏟
아져 내리는 폭포는 일대장관이었다.
"……!"
그 폭포 앞에 한 명의 인물이 석상처럼 우뚝 서 있었다.
장대발같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흠씬 맞으며 서 있는 인물은 일신에
헐렁한 마의(麻衣)를 걸치고 있었다.
아무렇게나 질끈 묶어 넘긴 머리, 육척(六尺)에 가까운 훤칠한 체격
등 어느 모로 보나 당당한 제격을 지닌 무사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인물의 몸매에는 실로 미묘한 부분이 있었다.
빗물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은 의복을 통해 그 인물의 기묘한 육체의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다.
특히 그의 가슴에는 터질 듯 부푼 한 쌍의 육봉이 볼록하게 솟아있지
않은가?
뿐만 아니라 허리는 잘록하여 한줌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으며 그 아
래에는 육감적인 둔부와 미끈하게 뻗어내린 허벅지가 자리하고 있었
다.
마의인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다.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용모지만 매끈한 피부와 섬세한 얼굴의 곡선이
그녀가 여자임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었다.
-철사자검(鐵獅子劍) 고숙정(高淑晶)!
바로 그녀였다.
유성신검황 혁련휘의 제자이며 자애검모 고숙향의 동생인 그녀는 비
록 여자의 몸이지만 유성신검황이 없는 혁련검호각 내에서 사실상 제
일검수로 손꼽힌다.
스으으! 스으!
고숙정의 전신에서는 무형의 예기(銳氣)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
다.
지금 그녀의 손에는 한 자루 목검(木劒)이 수평으로 뉘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면 그 목검의 주위로 아지랑이 같은 검기가 피어오르고 있
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현재 심신을 기울여 강력한 무형검기(無形劍氣)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었다.
-무형천리검강(無形千里劍 )!
복마신검결의 궁극적인 단계로서 무형의 검기를 일으켜 천 리 밖의
적을 죽일 수 있는 경지다.
이 무형천리검강에 비하면 진기로 검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어검술(
馭劍術)도 장난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지난 반 년 간 고숙정은 사부 유성신검황이 남긴 불완전한 복마신검
결로 무형천리검강을 연마해왔다.
그것은 위력이 막강한 대신 극도의 정신집중이 필요했다. 일점의 잡
념이라도 끼어들면 검기가 흩어져버리고 오히려 상대로부터 치명적인
반격을 당하게 된다.
스악!
고숙정은 무형의 검기가 극한으로 응결된 목검을 천천히 수평으로 그
어내었다. 그러자 다음순간 실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쩌어억!
삼십여 장 밖의 석벽이 마치 두부처럼 베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
가?
그 검흔은 목검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여 폭포수 줄기로 접근해
왔다.
극도의 긴장으로 인해 현재 고숙정의 몸뚱이는 마치 용광로처럼 달아
오른 상태였다.
'조금만 더……!'
고숙정은 이를 악문 채 삼십 장 밖으로 폭포수를 긋는 시늉을 했다.
그에 따라 실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콰아아!
기세좋게 쏟아져 내리던 폭포수가 마치 국수줄기가 잘리듯 싹뚝 잘려
나가는 광경은 가히 장관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고숙정의 입가로 득의의 미소가 떠올랐다.
헌데 그녀가 일으킨 무형의 검기가 폭포수를 거의 잘랐을 때 저녁 호
수같이 고요하던 그녀의 뇌리에 돌연 하나의 충격적인 장면이 떠올랐
다.
바로 이검한이 자신의 언니인 자애검모 고숙향을 최음제의 중독에서
풀어주기 위해 교합하던 모습이었다.
"흑!"
콰당탕!
그 장면이 떠오른 순간 고숙정은 한 모금의 선혈을 울컥 토해내며 뒤
로 벌렁 나뒹굴었다. 기억하기도 싫은 몇 달 전의 비극이 그녀의 내
부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던 것이다.
제멋대로 휘도는 내공잠력의 광란에 고숙정은 몇 군데 심맥이 파열되
었으나 다행히 주화입마에 들 정도의 타격은 아니었다.
"크흑! 이, 이럴 때 하필 그놈이 생각나다니, 육시를 해도 시원치 않
을 그 고독일문의 악귀가……!"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입가의 피를 닦아내는 창백한 두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대공을 이루기 직전에 깨어진 것에 대한 억울함
때문이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흐흐흐! 실로 치졸한 격공검강(隔空劍 )의 수법이로군!"
고숙정의 귓가로 한가닥 음산한 비웃음이 들려왔다.
"웬놈이냐?"
고숙정은 버럭 소리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다음순간 그녀의 두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언제였을까?
쏴아아아!
"……!"
세차게 퍼붓는 폭우 속에 한 명의 흑의인이 유령같이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훤칠한 체격에 일견하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도를 지닌 인물로 얼굴을
손수건으로 가리고 있었다.
이목이 예민하기 이를 데 없는 고숙정이었으나 그녀조차 이 흑의인이
대체 언제 그곳에 나타났는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놀라움이 고숙정을 더욱 분노케 만들었다.
"누구냐? 누군데 감히 유성일문의 검예를 능멸하는 것이냐?"
그녀는 목검을 집어들며 서릿발 같은 음성으로 교갈했다.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하던 차에 흑의인의 도발적인 웃음이 그녀를 격분케 한
것이다.
빗속에 우뚝 선 흑의인은 그러한 고숙정의 내심을 훤히 읽고 있는 듯
했다.
"흐흐흐! 무릇 검수란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의 동요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그대는 상승의 검수가 되기는 틀렸다!"
그가 음산한 음성으로 고숙정을 비웃자 그녀는 대노하여 버럭 소리쳤
다.
"뭐라고? 오냐! 네놈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지녔기에 큰 소리 치는
가 보자!"
그녀는 오기와 분노, 그리고 호승심이 불끈 발동해 이글거리는 눈빛
으로 그를 노려보며 대뜸 목검을 겨누었다.
"죽기 전에 이름이나 밝혀라!"
그녀는 냉랭한 어조로 내뱉았다.
그러나 흑의인은 그런 그녀의 태도에도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
"죽기는 싫지만 이름 정도야 밝혀도 상관 없겠지. 본좌는 복사자(伏
獅子)라는 분이시다!"
그는 거만한 어조로 대꾸했다.
"뭐, 뭐라고?"
고숙정은 귓구멍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격노했다. 복사자란 말은 다
시 말해 사자를 굴복시킨다는 뜻이 아닌가?
사자라면 당연히 철사자검이라는 별호를 지닌 고숙정 자신을 지칭하
는 것이 아니겠는가?
고숙정은 분노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냉정해야만 한다. 이놈은 지금 나를 일부러 격동시키고 있다!'
그녀는 머리끝까지 노기가 치솟았음에도 불구하고 분노를 참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썼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흑의인의 눈가에 언뜻 감탄의 빛이 스쳤다.
'제법이로군. 내 도발에 말려들지 않다니!'
그때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은 고숙정이 나직하나 사나운 일갈을 토해
냈다.
"내 이름은 철사자검 고숙정이다! 염라대왕 앞에 가거든 내가 보냈다
고 고해라!"
스읏!
말과 함께 그녀는 손에 든 목검을 천천히 무찔러냈다.
일견하여 완만하기 이를 데 없는 검식이었으나 그 중에는 무궁무진한
변화가 내포되어 있었다. 상대가 검초에 반응을 보이는 순간 둑이
터지는 듯한 강맹한 검기가 그대로 상대를 박살내고 말 것이다.
흑의인의 눈가에 번득 신광이 떠올랐다.
'복마신검결의 정수를 거의 다 터득했군!'
고숙정이 지금 구사한 느릿한 검초는 바로 복마신검결의 검식이었다.
일단 복마신검결이 펼쳐지면 어느 방향으로도 피할 수 없다. 피하려
고 반응을 보이면 그 순간 두 배 빠른 속도의 반격이 가해지기 때문
이었다.
복마신검결은 그야말로 최강의 검예로 구극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숙정이 지금 구사하고 있는 복마신검결은 완벽한 것이라고
는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내공이 절정에 이르지 못헸고 또한 정신이
하나로 일치되기 못했기 때문이었다.
흑의인은 차가운 음성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검은 그렇게 쓰는 것이 아니다!"
스읏!
말과 함께 그는 훌쩍 뒤로 물러섰다.
순간 고숙정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비록 불완전하다고는 하지만 일
발필도의 위력을 지닌 자신의 일검을 이 흑의인은 너무나 수월하게
피해낸 것이 아닌가?
"으하하하! 진정한 검법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마!"
그는 조소와 함께 옆의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들었다.
그리고는 주저없이 그녀의 검세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럴 수가!'
순간 고숙정은 기겁했다. 흑의인이 휘두른 나뭇가지는 정확히 고숙정
의 빈틈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츠츠츳!
아연실색한 그녀는 사력을 다해 목검을 휘둘러 흑의인의 일검을 막아
냈다.
흑의인이 아무렇게나 휘두른 검을 막기 위해 그녀는 무려 열 다섯 번
이나 목검을 휘둘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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