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2-9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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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9章 지옥혈경(地獄血經)의 저주
꽈르르릉!
마지막 삼 초 중 제 일초의 권경이 후려쳐졌다.
퍼엉!
그러나 괴인은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그것을 막아냈다.
그자는 도무지 지칠 줄 모르는 불사신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금강불
괴지체라도 일격에 으깨버릴 수 있는 파천황강살을 연속 열 두 번이
나 받아내고도 거뜬하지 않은가?
이검한의 안면이 참담하게 이지러졌다.
'빌어먹을!'
그는 아득한 절망감을 느끼며 사력을 다해 다시 제 이초를 내쳤다.
콰콰쾅!
가공할 굉음이 사위를 뒤흔들었다.
헌데 바로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콰드드득!
괴인의 호신강기가 허무하게 부숴지고 이검한의 손끝에서 일어난 파
천황강살의 파괴력이 그대로 괴인의 가슴을 강타하는 것이 아닌가?
퍼억! 우두두둑!
다음순간 뼈가 으깨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괴인의 몸뚱이가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콰아아앙!
뒤로 날아간 괴인의 몸뚱이는 이십여 장 밖의 석벽에 세차게 부딪치
고 말았다.
그 돌연한 사태에 이검한은 아연했다.
'이…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는 불신과 회의, 그리고 경악이 뒤범벅된 눈을 부릅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완강하게 버티고 있던 괴인의 내공이 한순간
에 허무하게 소진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마치 팔팔하기만 하던 청년이 한순간에 늙은이로 변해버리듯이 말이
다. 이것은 이검한의 상식으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헌데 그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아… 아미타불! 역시… 천기(天機)가 옳았군! 소시주가 바로 천괴성
(天魁星)이었어!"
석벽 아래에 널브러진 혈포괴인은 자신에게 다가서는 이검한을 보며
힘겹게 불호를 외우는 것이 아닌가?
'승… 승려였단 말인가?'
이검한은 경악으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뜻밖에도 그를 궁지로 몰
아넣었던 괴인은 승려였던 것이다.
"아미… 타불! 이… 이리 오게나 시주! 노납이 입적하기 전에 시주에
게 해줄 말이 너무나 많다네!"
혈포괴인은 전신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석벽에 기대앉아 가쁜 숨
결을 토했다.
그는 이검한이 떨친 파천황강살을 가슴에 맞아 오른쪽 가슴이 완전히
박살난 상태였다. 부러진 늑골이 옷자락을 뚫고 삐죽삐죽 빠져나온
모습은 실로 끔찍했다.
"스, 스님이셨습니까?"
이검한은 뜻밖의 상황에 당혹한 신음성을 발하며 괴인의 앞에 멈추어
섰다.
괴인은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노납은 포달랍궁의 장경각(藏經閣) 각주인 천우(天牛)라
마라는 우매한 인간일세!"
그는 자조어린 탄식을 발하며 대답했다.
스읏!
이어 그는 피묻은 손으로 얼굴에 쓴 핏빛 복면을 벗었다.
그러자 드러난 것은 깡말랐으나 지극히 인자해 보이는 노승의 얼굴이
었다.
눈을 씻고 봐도 결코 악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선한 인상을 지닌 노승
의 오공에서는 피가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 그의 두 눈은
온통 고뇌의 빛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검한은 노승의 모습에 당혹함과 함께 죄책감을 느꼈다.
"왜… 왜 소생을 공격하셔서 이런 화를 자초한 것입니까?"
그는 노승의 앞에 한 무릎을 꿇고 앉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노승은 인자한 눈빛으로 이검한을 주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
"죄책감을 가질 필요없네! 노납이 이 번뇌의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발
원했던 소망이 바로 자네의 손에 죽는 것이었으니까!"
그 말에 이검한은 흠칫했다.
"소생을 아십니까?"
노승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모르네! 다만 이 사실만을 알고 있지. 소시주야말로 노납의 실
수로 태어난 흉살성(兇殺星)을 쓰려뜨려줄 천괴성이라는 것을……!"
이검한은 검미를 모았다.
"흉살성은 무엇이고 천괴성은 또 무엇입니까?"
"궁금하겠지만 우선 저쪽을 보게!"
노승은 숨을 할딱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시체!'
다음순간 이검한은 두 눈을 부릅떴다.
노승 천우가 가리킨 곳에는 아주 오래 전에 죽은 듯한 한 구의 시체
가 누워있었다.
여전히 살아있는 듯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그 시체의 주인은 한눈
에 보기에도 혐오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아주 추괴한 인상을 지닌 노
인이었다.
이 세상의 온갖 사악함과 음험함이 모두 그자의 일신에 응집되어 있
는 듯했다.
이검한은 그 시체를 보고 있자니 자신도 모르게 섬뜩한 오한이 일어
남을 느꼈다. 그저 시체에 불과한 것임에도 말이다.
"신비마인(神秘魔人)?"
이검한의 입에서 앓는 듯한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천우라마는 번뇌의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자가 바로 지금으로부터 육백 년 전, 현의대라마(玄衣大
喇 )께서 이곳 금마동천에 가둔 지옥인마(地獄人魔) 마극렬(馬剋烈)
이라는 자일세!"
'지옥인마 마극렬!'
이검한은 입안으로 나직이 그 이름을 되뇌였다. 그자가 바로 이곳 금
마동천에 갇혀있던 인물인 것이다.
-지옥인마(地獄人魔) 마극렬(馬剋烈)!
이 자는 고금최강의 마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무서운 마력
을 소유한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검한은 한 번도 그자의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
다. 그 사실이 이검한으로 하여금 알 수 없는 의혹을 느끼게 했다.
천우라마는 그런 이검한의 심정을 아는 듯 그에게 아주 놀라운 고사
를 들려주었다.
* * *
지금으로부터 육백 년 전, 포달랍궁에는 서장(西藏) 무림 사상 최강
이라 불리는 한 명의 고수가 있었다.
-현의대라마(玄衣大喇 )!
포달랍궁 제 칠대법종으로서 라마교의 밀종절예를 최상승으로 이끈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천기를 보는 데 탁월한 안목을 지녔을 뿐더러 각종 기관토
목지학(機關土木之學)에도 능통했다.
헌데 어느날 현의대라마는 천기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중원의 어디
선가 한 명의 거마가 탄생한 것을 안 것이다.
만일 그 거마를 방치해두면 중원뿐 아니라 서장과 천축까지 온통 그
자의 마기로 뒤덮이고 말 것이다.
이에 현의대라마는 그 거마를 자신의 힘으로 제거할 작정을 했다.
비록 현의대라마가 밀종 최고의 고수이긴 하지만 그 신비거마는 너무
나 강했다. 이미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이른 그자의 마공은 인
간 세상에 존재하는 무공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현의대라마는 결국 한 가지 편법(編法)을 쓰기
로 결심했다.
먼저 현의대라마는 포달랍궁 후면의 단애에 자리한 천연동굴을 이용
하여 금마동천을 세웠다.
기관지학의 달인인 현의대라마에 의해 금마동천은 가히 난공불락(難
攻不落)의 함정으로 화했다.
금마동천을 완성한 현의대라마는 비로소 예의 신비거마를 찾아갔다.
-지옥인마(地獄人魔) 마극렬(馬剋烈)!
그것이 바로 신비거마의 이름이었다.
이 자는 전설적인 마문(魔門)인 지옥마맥(地獄魔脈)의 마지막 후예였
다.
비록 마성에 빠지긴 했지만 고금에 적수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오성(
悟性)을 지녔던 지옥인마는 본래 패도적이고 사악하던 지옥마맥의 마
공을 더욱 더 흉폭하고 잔인하게 강화시켰다.
이제 지옥인마 마극렬의 마공에 필적하는 것은 고금을 통틀어도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있다면 저 고금오대고수의 제일인자인 원시천존(元始天尊)의 신공절
예 정도였다.
현의대라마는 그런 지옥인마에게 감연히 도전장을 던졌다.
지옥인마는 일개 승려 따위가 자신에게 도전해오자 어이가 없었다.
그는 한눈에 현의대라마가 자신의 십초지적(十招之敵)도 안됨을 알아
본 것이다.
-너 중대가리가 본좌의 십초를 받아내고도 살아 있다면 본좌가 패한
것으로 하겠다!
지옥인마는 현의대라마를 비웃으며 그렇게 호언했다.
그것이 지옥인마의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만일 노납이 이기면 시주는 금마동천에 갇혀야만 하오!
현의대라마의 그같은 충동질에 지옥인마는 순간적으로 이성을 상실하
여 십초승부를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사실 그는 능히 현의대라마를 십초 안에 죽일 자신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같은 자신의 오만함이 얼마나 치명적인 실수였는지 지옥인
마는 오래지 않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형편없이 약해 보이던 현의대라마가 놀랍게도 너끈히 지옥인마의 십
초를 받아낸 것이 아닌가?
아니 단순히 받아낸 정도가 아니었다.
현의대라마는 지옥인마에 맞서서 놀랍게도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
았다.
그는 너무나 당당하고 대등하게 지옥인마와 맞선 것이었다.
마치 천우라마가 이검한의 파천황강살에 십여 초나 당당히 맞선 것처
럼 말이다.
-이럴 수는 없다! 네놈이 사술을 썼구나!
지옥인마는 땅을 구르며 분통을 터뜨렸으나 후회해도 이미 늦은 후였
다.
약속은 어디까지나 약속이었다.
지옥인마는 다시 없이 흉포한 마인이었지만 마공이 강한 만큼 자존심
또한 극고했다.
-본좌가 금마동천을 깨뜨리고 나오는 날이 너희 포달랍궁이 초토화되
는 날일 것이다!
지옥인마는 그같은 저주를 남긴 후 자기 발로 금마동천으로 걸어 들
어갔다.
지옥인마 마극렬!
사상 최강의 마종은 그렇게 세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지옥인마를 금마동천에 가둔 현의대라마도 결코 무사치는 못
했다.
간신히 지옥인마를 금마동천에 가둔 그는 오래지 않아 전신의 심맥이
끊어져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고 만 것이다.
사실 현의대라마는 한 가지 서역(西域) 밀종(密宗)의 마공을 써서 지
옥인마와 맞섰었다.
이 밀종마공(密宗魔功)은 순간적으로 내공을 두 배 이상으로 증폭시
켜 준다. 다시 말해서 오갑자의 내공을 지닌 인물이라면 잠시나마 십
갑자의 내공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 * *
"잠능증폭심공(潛能增幅心功)! 현의조사께서 지옥인마와 십초를 겨루
고도 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달리 증폭마공(增幅魔功)이라 불리
는 그 마공 덕분이었네. 방금 전 노납이 시주와 맞서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도 잠능증폭심공의 능력 덕분이었다네!"
천우라마는 힘겹게 숨을 할딱이며 신음했다.
"증폭… 마공!"
이검한은 경이의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비로소 그는 포달랍궁의 일개
장로가 나한절예를 연마한 자신을 오히려 핍박할 수 있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하지만 이 증폭마공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증폭마공을
십초 이상 운용하면 기본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유지 시켜주는 원정
지기가 고갈되어 죽고 만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내공이 배로 증폭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생명력을 유지
해주는 잠재능력(潛在能力)까지 모조리 끌어내어 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같은 치명적인 약점 때문에 포달랍궁에서는 증폭마공의 연마를 금
기시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의대라마는 지옥인마 마극렬을 금마동천에 가두
기 위해 증폭마공을 썼고, 그 결과 지옥인마를 가둘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대가로 그 자신도 온몸의 심맥이 갈가리 찢겨 지독한 고통
속에서 죽고 만 것이다.
이검한은 힘겹게 숨을 할딱이는 천우라마를 주시하며 침음했다.
'결국… 이분도 나의 파천황강살에 격중되지 않았다 해도 심맥이 고
갈되어 죽음을 면치 못하실 것이다!'
그는 침중한 안색으로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함께 그는 마음 속에 강렬한 의혹이 솟구쳐 올랐다. 천우라마는
왜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과 겨루려 했단 말인가?
그 의문은 곧 풀렸다.
"지금으로부터 사십 년 전이었네. 한 명의 어린 소년이 중원으로부터
와서 노납의 제자가 되기를 원했네!"
천우라마는 회한에 찬 음성으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영호진(令狐眞)!
이것이 그 소년의 이름이었다.
당시 갓 포달랍궁의 장경각주가 된 천우라마는 한눈에 영호진에게 반
하고 말았다. 영호진은 무공연마에 가히 천부적 자질을 지니고 있었
기 때문이다.
눈가에 서린 살기가 다소 마음에 걸렸으나 천우라마는 소년 영호진을
제자로 삼았다.
천우라마 덕분에 포달랍궁의 제자가 된 영호진은 경이적인 속도로 무
공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그의 그런 모습에 포달랍궁의 원로들은 현의대라마를 능가하는 고수
가 탄생할 것을 기대하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영호진은 그같은 칭찬에도 겸손하게 처신하며 늘 장경각을 떠나지 않
았다.
포달랍궁의 장경각에는 수십 만 종의 고서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영
호진은 무공을 연마하는 시간외에는 그 고서들을 읽는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그같은 그의 학구열에 천우라마는 대견함을 금치 못했다.
어느새 그는 처음 영호진을 보았을 때 느꼈던 한 가닥 꺼림칙했던 느
낌마저도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우려가 결코 기우가 아니었음이 밝혀진 것은 지금으로부
터 이십 년 전이었다.
어느 날 영호진의 모습이 돌연 포달랍궁에서 사라졌다.
걱정이 되어 영호진을 찾던 천우라마는 한 가지 놀라운 사건이 벌어
졌음을 알게 되었다.
즉, 장경각의 깊은 곳에 보관되어 포달랍궁의 궁주와 장경각주인 그
자신만이 볼 수 있는 한 권의 비급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구중천관(九重天關) 설진도해(設陣圖解)!
바로 금마동천에 설치해 놓은 구중천관의 기관도해다.
놀랍게도 그것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모를 천우라마가 아니었다.
그는 질겁하여 금마동천으로 달려갔으나 한 걸음 늦고 말았다. 금마
동천을 방호하던 구중천관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돌파당한 후였던 것
이다.
영호진!
물론 범인은 그였다.
애초부터 그는 장격각에 숨겨진 구중천관의 기관도해를 노리고 천우
라마의 제자가 된 것이었다.
천우라마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 금마동천 안으로 들어갔으나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다.
금마동천 안에 당연히 있어야만 할 두 가지 물건이 흔적도 없이 사라
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지옥혈경(地獄血經)!
지옥인마 마극렬이 금마동천에 갇힌 이후 창안한 무공이 수록되어 있
는 마경이다.
지옥인마는 금마동천에 백 년 간 갇혀 있는 동안 전보다 두 배 더 강
해지고 더 악독해졌다.
그런 지옥인마의 최후마공이 수록되어 있으니 지옥혈경상의 마공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으리라. 가히 고금최강이라 할
수 있는 마공이 그 지옥혈경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다.
-원정내단(元精內丹)!
두 번째로 사라진 물건은 바로 이것이다.
지옥인마는 생시에 가공무비한 마공진력을 지녔었다. 그 때문에 그는
죽은 후 자신의 생시마공진력을 하나의 내단 형태로 응결시켜 두었
다.
만일 누군가 그 원정내단을 복용하여 융해할 수 있다면 그는 그 옛날
지옥인마만큼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천우라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검한은 오싹한 한기가 치밈을 느꼈
다.
'그러고 보니 지옥인마 마극렬의 단전(丹田) 부분이 찢겨져 있었다!'
그는 한쪽에 누워있는 지옥인마의 시신을 돌아보며 신음을 흘렸다.
지옥인마의 거대한 시신 아랫배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 찢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천우라마가 점점 낮게 잦아드는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지옥혈경상의 마공이 얼마나 흉험한지 실감이 가지 않을 것이네. 시
주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겠네!"
그는 할딱이며 말했다.
"소시주도… 고금오대고수(古今五大高手)의 일 인인 흡혈마조(吸血魔
祖)라는 자에 대해서 들어보았을 것이네!"
"흡혈마조!"
이검한은 나직이 부르짖으며 두 눈을 번득였다.
그가 흡혈마조를 모를 리 없었다.
지금으로부터 오백 년 전, 혈교(血敎)를 세워 전 무림을 피로 잠기게
만든 전설적인 거마!
염라대왕도 저승으로 데려가는 것을 꺼려했을 것이라던 그자가 남긴
혈마대장경 때문에 우내제일인인 고독마야가 죽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현재 이검한의 품 속에는 세 권의 혈마대장경 중 연혼경의 전반부가
들어있기도 했다.
천우라마의 입에서 가히 믿어지지 않는 말이 흘러나왔다.
"흡혈마조는 바로 지옥인마의 세 제자 중 가장 약한 자였다네!"
"그… 그럴 수가!"
이검한은 경악으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흡혈마조!
그가 누군가? 고금오대고수의 일 인이며 동시에 고금제일마종으로 불
리는 거마가 아닌가!
헌데 그런 흡혈마조가 지옥인마의 제자였다니!
그것도 세 명의 제자 중 가장 약했던…!
이검한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그저 경악과 불신으로 입이 벌어질
뿐이었다.
흡혈마조가 지옥인마의 제자 중 가장 약한 자였다면 이 세상 어딘가
에 흡혈마조를 능가하는 마공을 지녔던 지옥인마의 다른 두 제자의
후손들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검한은 비로소 세상이란 넓고 넓다는 것을 절감했다. 스스로 우내
최강자라 자부했던 것이 우물 안의 개구리 꼴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
을 수 없었다.
천우라마가 사색이 완연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지옥인마는 현의대라마님께 어이없이 패해 미처 제자들에게 후사(後
事)를 맡기지도 못하고 금마동천에 갇혔네! 이에 지옥인마의 제자들
은 스승이 돌아오기까지 은인자중하며 침묵을 지켰었지. 하지만 그
중 둘째 제자였으며 가장 야심이 컸던 흡혈마조가 끝내 참지 못하고
무림으로 뛰쳐나와 피보라를 일으켰던 것이네!"
천우라마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옥일맥의 마공은 이토록 무섭네. 한데 노납의 한때 실수로 인해
제이(第二)의 지옥인마가 탄생하게 된 것이네!"
그는 고통과 회한에 물든 표정으로 탄식했다.
"노납은 절망했네.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하지만 오래지 않아서
노납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님을 깨닫고 오늘까지 이곳에서 자네가 오
기를 기다렸다네!"
그는 꺼져드는 두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이검한을 주시했다.
"노납은 현의조사님께서 남긴 법문(法文)을 통해서 다소나마 천기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고… 비로소 내가 키운 흉살성을 제
거할 천괴성이 머지않아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네!"
"……!"
이검한은 침중한 안색으로 천우라마의 말을 듣고 있었다.
천우라마는 그런 이검한을 주시하며 말했다.
"흉살성인 영호진을 말살할 수 있는 천괴성! 그것이 바로 소시주일세
!"
이검한은 흠칫했다.
"소생이 천괴성의 주인이란 말씀이십니까?"
무슨 옛날 얘기를 듣는 것만 같아서 이검한은 절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천우라마는 침중한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스스로 아니라 해도 소용없는 일이네. 영호진과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시주의 운명이니까!"
힘겹게 말을 잇는 그의 숨결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거칠게 할딱였
다. 그와 함께 늙어 진무른 눈가에 급격히 생기가 소멸되어 갔다.
"노납이 증폭마공으로 시주를 시험했던 것은 과연 시주에게 영호진과
맞서 싸울 능력이 있는가 하는 의심이 갔기 때문이네. 다행히 그것
은 기우에 불과했지만 말일세!"
그는 거칠게 숨을 할딱이면서도 계속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시주의 능력으로는 제이의 지옥인마가 되어있을 영호진
의 삼십초(三十招)도 받아내기 힘드네. 불쾌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네!"
천우라마의 말에 이검한은 어이가 없었다.
'내가 영호진의 삼십초지적에 불과하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이내 영호진이 지옥인마가 남긴 지옥혈경 상의 마공을
모두 연마해냈다면 그럴 수도 있으리란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래서 그는 반박하지 않고 천우라마의 말을 기다렸다.
천우라마는 그런 이검한의 얼굴을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시주가… 영호진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네. 바로 고
금오대고수의 최강자인 원시천존의 최후심득을 얻는 일일세!"
이검한은 흠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자신은 이미 신강의 대과벽에서 원시천존이 남긴
최후심득 초연심결(超然心訣)을 얻지 않았던가? 비록 그 뜻을 이해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검한은 눈을 번득이며 내심 염두를 굴렸다.
'결국 영호진을 이길 수 있는 열쇠는 이미 내 손 안에 들어왔다는 얘
기로군!'
그렇게 생각하자 무겁던 마음이 다소 가벼워졌다.
그때 천우라마의 미약한 음성이 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시주가… 천괴성의 화신임을 확인했으니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구먼!"
그는 할 말을 다한 듯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지옥인마의… 시신 옆에 노납이 시주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 있으니
탕마행(蕩魔行)에 다소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네!"
그 말을 끝으로 천우라마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다.
'입적하셨군!'
이검한은 천우라마의 숨결이 끊어졌음을 느꼈다.
그는 침중한 안색으로 천우라마의 시신에 합장했다.
비록 죽었으나 천우라마의 얼굴은 아주 평안해 보였다. 이승에서 자
신이 해야할 의무를 다했다고 여긴 탓일 것이다.
이검한은 잠시 눈을 감고 천우라마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리고는 그는 천우라마의 말대로 지옥인마의 시신 옆에서 자단목으
로 만들어진 하나의 길쭉한 나무 상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폭이 한
자 정도에 길이는 네 자 정도 되는 제법 큼직한 나무 상자였다.
삐꺽!
나무상자의 두터운 뚜껑은 열자 그 안에서 네 가지 물건이 나타났다.
첫 번째 물건은 일 장 길이의 기이한 철봉(鐵棒)인데 무엇으로 만들
었는지 제멋대로 휘어지며 형태가 원하는 대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쥐자 마치 고무처럼 탄력있는 감촉이 느껴졌다.
-천마묵장(天魔墨杖)!
가래떡처럼 둘둘 말린 채 나무 상자 안에 들어있던 그 철봉 위에는
그같은 글이 전자체(篆字體)로 음각되어 있었다.
이검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한 무기로군!'
그는 천마묵장이란 철봉을 왼쪽 팔뚝에 둘둘 말아 보았다.
그러자 천마묵장은 마치 뱀처럼 그의 팔뚝에 휘감기는 것이 아닌가?
'하여간 어딘가 쓸모가 있겠지.'
이검한은 다른 물건들로 시선을 돌렸다.
나머지 세 가지 물건은 한 권의 비급과 한 권의 봉서, 그리고 높이
한 자 정도의 정교한 법등(法燈) 하나였다.
그 중 비급은 최근에 쓰여진 듯 한두 가지의 내공심법이 적혀 있었다
.
-잠능증폭심결(潛能增幅心訣)!
-복마사자후신공(伏魔獅子吼神功)!
이것들이 비급에 수록된 심법의 제목이었다.
잠능증폭심결!
그것은 바로 이검한을 당혹하게 만들었던 서장밀종의 기괴한 마공 증
폭마공(增幅魔功)의 심결이었다.
그리고 증폭마공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 복마사자후신공은 포달랍궁의
사실상 제일신공이었다.
한소리 외침으로 일만 장 안쪽의 마기를 일거에 사그라뜨릴 수 있는
위력을 지닌 불문신공으로서 최소한 육갑자(六甲子) 이상의 내공을
지닌 자만이 시전할 수 있다는 점이 단점이라 할 수 있었다.
두 권의 비급을 대충 살펴본 이검한의 시선이 법등(法燈)에 이르렀다
.
"이건 뭐지?"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기묘하게 생긴 법등을 들어 살펴보았다.
그 법등은 일견하기에도 밀종의 법회(法會)에 쓰이는 법기(法器)로만
보였다.
-금강법등(金剛法燈)!
법등의 갓에는 그와 같은 뜻의 상고 범문이 음각되어 있었다.
이검한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천우라마께서 남기신 물건이니 무엇인가 신묘한 쓰임새가 있을 것이
다.'
그는 법등을 치우고 마지막으로 봉서(封書)를 집어들었다. 그 봉서
안에는 제법 두툼한 양의 지편이 들어있었다.
이검한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경건한 자세로 봉서를 개봉하여 지편
을 꺼냈다.
<이름 모를 천괴성의 화신에게 우매한 불자 천우가 남기노라!>
봉서의 글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 봉서는 일종의 유서(遺書)였다. 천우라마는 만일 자신이 유언을
남기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것을 남긴 것이다.
편지의 전반부 내용은 이검한이 천우라마에게서 들어 알고 있는 것이
었다. 현의대라마와 지옥인마 마극렬이 대결한 고사와 자신의 실수로
영호진을 제자로 받아들인 일 등등이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이검한은 봉서의 전반부를 대강 훑어본 후 계속 이어지는 후반부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中略- 이제 시주에게 남긴 세 가지 물건에 대해 설명할 차례일세.
비급에 적혀있는 두 가지 신공은 시주의 탕마행(蕩魔行)에 조금이나
마 도움이 될까하여 폐사가 소장하고 있는 신공절기들 중 가장 위력
이 강한 두 가지를 필사(筆寫)한 것이네. 탕마행에 그것들을 사용해
도 좋으나 타인에게 전수하는 일은 없도록 당부 드리네.
함께 들어있는 물건들은 불(佛), 마(魔) 양가의 지고지보(至高至寶)
로서 경천동지할 위력을 지니고 있네.
그 중 하나인 금강법등은 저 불문의 성지인 천축 대뢰음사(大雷音寺)
로부터 유래된 것으로 그 안에는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진신내단(眞
身內丹)인 금강보주(金剛寶珠)가 들어있네!>
"석가세존의 진신내단!"
이검한은 경이의 음성으로 나직이 부르짖었다.
-금강보주(金剛寶珠)!
그것은 바로 석가세존이 입적 후에 남긴 내단이었다.
일종의 사리(舍利)인 금강보주에는 실로 신묘한 효능이 담겨있었다.
즉, 금강보주에서 번지는 보광은 모든 사악함과 마기를 사그라뜨리는
위력이 있는 것이다.
만일 마공을 연마한 자가 금강보주의 보광을 쬐면 잠시 동안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해진다.
그 금강보주를 담은 금강법등은 평시에는 굳게 닫혀 있는다.
그러다 유사시 정교한 장치로 된 기관을 누르면 팔각의 창문이 열리
며 금강보주의 복마법광(伏魔法光)이 사위로 폭사된다.
천우라마의 서신에는 그 금강법등의 창문을 개폐하는 방법이 자세히
수록되어 있었다.
이검한은 경이와 흥분을 금치 못하며 이어지는 서신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천마묵장(天魔墨杖)의 주인은 바로 지옥인마일세. 그는 현의조사께
패해 독문병기인 천마묵장을 빼앗긴 것이네. 천마묵장은 조화연철(造
化軟鐵)이란 것으로 만들어져 극히 부드럽고 변형이 자유로운 것이
특징이네. 하지만 일단 내공을 주입하면 하늘 아래 가장 강인한 물질
로 바뀌어 부딪치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무서운 위력을 지니고 있네.
육백 년 전, 만일 지옥인마가 현의조사를 얕보지 않고 애초부터 천마
묵장을 썼다면 현의조사께서 증폭마공을 운용하고 계셨다 해도 오 초
내에 쓰러지고 마셨을 것일세!>
이검한은 검미를 모으며 불신의 눈빛을 지었다.
"믿어지지 않는군!"
그는 의혹의 표정으로 천마묵장을 풀어 움켜쥐었다.
쩌어어엉!
내공을 주입하자 정말 부드럽기만 하던 천마묵장이 삽시에 강인한 철
봉으로 바뀌었다.
'어디 한 번 시험해 볼까?'
이검한은 눈을 번득이며 지옥인마의 시신쪽을 돌아보았다.
지옥인마 마극렬은 비록 죽었으나 그의 시신은 하늘 아래 가장 단단
한 물체라 할 수 있었다. 오죽 강인했으면 독행왕 단뢰가 열 알의 굉
천벽력탄을 쓰고도 그를 죽이지 못했겠는가?
"용서하시오, 지옥인마!"
이검한은 나직한 일갈과 함께 지옥인마의 시신을 향해 천마묵장을 후
려쳤다.
퍼억!
직후 둔탁한 폭음과 함께 지옥인마의 머리통이 산산이 으깨져 날아갔
다.
'이… 이럴 수가!'
이검한은 경악으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천우라마의 서신의 내용
대로 천마묵장은 과연 불사지체인 지옥인마의 시신을 단번에 박살낸
것이다.
꽈르르릉!
이검한은 시험삼아 이번에는 파천황강기를 일으켜서 지옥인마의 시신
을 강타해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옥인마의 시체는 그저 피부가 약간 갈라지는 정도
의 흔적만 남았을 뿐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천마묵장의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
을 것이다.
경악과 불신을 감추지 못하던 이검한은 이내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제마(以魔制魔)다! 지옥인마의 병기로 장차 그가 뿌린 마의 씨
앗들을 제거할 수도 있겠구나!'
그는 천마묵장을 자신의 한쪽 팔뚝에 감고 다시 서신의 마지막 부분
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호진은 지금쯤 인세에 보기 힘든 마인이 되었을 것이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놈이 왜 본격적으로 세상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인지 궁
금할 것이네!>
이검한은 두 눈을 형형하게 번득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그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참이었다.
그는 궁금증을 억누르며 다시 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영호진도 무시할 수 없는, 아니 내심으로는 두려
워하기까지 하는 다섯 명의 초강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네. 노납은 그
들 오대강자를 영호진과 합쳐서 천지육강(天地六强)이라 이름 붙였네
!>
"천지육강!"
이검한은 해연히 놀란 표정으로 부르짖었다.
"이 세상에 영호진이 두려워하는 초고수가 다섯 명씩이나 더 있단 말
인가?"
그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급히 다음 글을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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