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 오피녀 만난 썰(6 마지막)

아마 이 이야기가 보라와의 추억을 풀어내는 마지막 편이 될 것 같다. 사실 소소하게 떠올릴 수 있는 장면들이야 아직 여러 개 남아 있지만, 그것들은 이렇게 시간을 들여 길게 적을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편을 끝으로, 나와 보라의 지난 시간들을 마무리하려 한다. 아마 그래서, 다른 편들보다 내용이 조금 길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나에게는 이 마지막 기록이 꼭 필요했다.
지난번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내가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받았던 순간 이후로 보라와는 따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카카오톡도, 전화도, 우연한 만남도 없었다. 그렇게 2~3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그 사이 나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했다. 드레스, 예식장, 신혼집까지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끝내 우리는 파혼하게 됐다. 서로 쌓아온 사소한 갈등들이 결국은 감당하기 힘든 골짜기가 되었고, 결혼이라는 무거운 현실 앞에서 우리의 관계는 버티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 즈음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내려놓고 어머니가 운영하시던 작은 사업체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서류 정리부터 잡무까지, 작은 일부터 하나둘 익혔다. 지금은 내가 물려받아서 운영하고 있는 그곳이지만, 당시의 나는 무너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서보려 애쓰던 시기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듯 살아가면서 ‘이제 다 정리됐다’고 스스로를 달래곤 했지만, 의식 저편에서는 전 여자친구의 기억이, 그리고 뜸하게 스쳐 가는 보라와의 장면들이 내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마치 다 사라진 줄 알았던 감정들이 불쑥불쑥 올라와 가슴을 쿡쿡 찌르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한 밤이었다. 친구와 술자리를 갖던 중, 이성의 끈이 풀리고 말았다.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는 충동처럼 손이 휴대폰을 향했다. 그리고 나는… 결국 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보라는 금세 전화를 받았다.
“연락… 많이 기다렸어.”
취기에 젖은 내 귀에 그 말은 충격처럼 다가왔다. 정말 기다려줬던 걸까? 아니면 그냥 건성으로 한 말일까? 궁금했지만, 그 순간 나는 그저 그 목소리가 반가웠다. 바쁠 뿐이었다는,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는, 변명 같고도 핑계 같은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다가 결국 참아왔던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보고 싶다.”
보라는 한참의 정적 끝에, 정말로 내가 있는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를 소개해야 하는 자리에 있던 내 친구에게는 “최근에 서로 호감이 생겼다”는 정도로만 둘의 관계를 설명했다. 그렇게 친구를 먼저 돌려보내고, 남은 술자리는 이제 오롯이 나와 보라의 몫이었다.
내가 말하기도 전에, 보라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때… 오빠 여자친구한테 전화 왔던 거. 그게 계속 마음에 쓰였어. 그래서 미안했어.”
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솔직히 잘못한 건 보라가 아니라 나였다.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허전함을 다른 이에게 기대려던 내 마음이 문제였는데. 보라는 그런 내 잘못까지 스스로의 짐처럼 안고 있던 것이다. 그 마음 씀씀한 모습에 도리어 내가 부끄러워졌다.
잔이 오가고, 말이 이어졌다. 술기운에 머리는 점점 흐려졌지만, 그 시간만큼은 선명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다시 서로를 향해 넘어졌다. 술로 흐릿해진 기억 탓에 몇 번을 그러했는지조차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단 하나 분명했던 건, 그날 밤 우리는 지난 시간 동안 억눌러왔던 모든 그리움의 무게를 쏟아냈다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보라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돌아서려는 순간, 보라가 말했다.
“그냥… 집에 들어와서 해장하고 가. 같이 있자.”
그 말에 잠깐 망설였다. 보라의 집에 들어가 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8개월, 거의 1년 가까이 서로 알고 지내면서도 언제나 ‘가게’, 혹은 밖에서만 만났던 우리였다. 하지만 이제, 그 마지막 경계마저 허물어졌다. 그럼에도 마음이 쓰여 보라를 먼저 올려보내고, 나는 근처 마트에 들러 작은 간식과 음료, 그리고 보잘것없지만 작은 선물을 사 들고 집으로 향했다.
그날은 특별한 일이 없었다.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 아무 영화나 함께 보았다. 창밖이 어둑어둑해지기 전까지 우리는 하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그러다 조용히 함께 머물렀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지만, 나에게는 그 어떤 기억보다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비로소 연인으로 발전했다. 손님과 아가씨로 만났던 관계가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서,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는 보라에게 가게 일을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묻기도 했다. 다른 일을 시작하면 좋겠다고, 내가 그녀 하나쯤은 책임질 수 있다고. 말은 무거웠지만, 내 마음은 진심이었다.
결국 보라는 어머니의 사업체에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서류 정리와 잡무를 도와주는 막내직원으로 시작했는데, 어머니도 어린 나이임에도 싹싹하고 성실한 모습에 금세 마음을 열었다. 나는 하루 종일 보라를 곁에서 볼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불편하지 않을까 두려웠지만, 오히려 하루 종일 그 사람을 곁에서 바라본다는 사실이 기적처럼 행복했다.
회사 일상은 단조로웠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작은 기쁨들을 만들어갔다. 금요일 저녁이면 둘이 함께 퇴근해 보라의 집에서 주말을 보냈다. 가끔은 근교로 짧게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서로를 향한 마음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매일 붙어 있는 시간이 더 즐겁고, 그 시간이 늘어나기를 바랐다. 보통 연애란 오래 만나면 권태가 찾아온다던데, 우리는 달랐다. 나는 보라와의 하루가, 그 곁에 머무는 순간순간이, 그저 눈부시게 행복했다. 이 시간이 영원하기를, 그렇게 마음속으로 빌었다.
보라가 회사에 들어온 지 2~3년쯤 지났을까. 사업이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은 회사를 문 닫을 수밖에 없었고, 나도, 어머니도 힘든 시기를 감내해야 했다. 다행히 거래처 사장님들이 도와주셔서 밀린 대금을 기다려 주셨고, 큰 문제 없이 시간을 넘길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한 거래처의 사장님이 보라를 눈여겨보셨다. 일도 똑부러지게 잘하고 성실하다며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이다. 상황이 어려웠던 내가 붙잡을 명분은 없었다. 그래서 보라는 그곳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떨어져 근무하니 오히려 더 애틋해졌다. 퇴근 시간만 기다리게 되었고, 다시 만나는 순간이 더 소중해졌다. 하루치 그리움을 저녁 데이트에서 풀어내며,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더욱 강하게 확인했다.
그때쯤, 나는 어머니께 처음으로 보라에 대해 솔직히 고백했다. 결혼을 하고 싶다고.
사실 두려웠다. 이미 한 번 파혼을 겪은 내가 다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미 눈치채고 계셨다. 예전에 보라를 ‘괜찮은 친구’라며 소개했을 때부터 알고 계셨던 모양이었다.
어머니의 반응은 따뜻했다. 그냥 조용히 웃으며 내 얘기를 들어주시고, 이해해 주셨다. 그 순간 나는 더욱 확신했다. 보라와의 미래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어려움이 닥치든, 서로 손을 붙잡고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믿었다. 매일이 설렘이었고, 하루하루가 기적이었다.
나는 보라와 함께라면 영원토록 웃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이 꿈이, 그때의 내가 보라를 떠올리며 가장 행복했던 이유였다.
그 무렵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보라와의 결혼까지 꿈꾸며 나아가고 있었다. 어머니께도 솔직히 털어놓았고, 보라는 내 옆에서 여전히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그 모습 속에서 나는 ‘이제 정말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 하고 믿었다.
하지만… 영원할 것 같던 그 시간에도 작은 균열은 보이지 않는 틈새처럼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보라는 종종 혼자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옆에 있던 내가 무심히 “무슨 생각해?” 하고 묻기라도 하면, 보라는 꼭 같은 대답을 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알 수 있었다. 보라의 마음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그림자가 있다는 걸.
어느 날 술잔을 기울이던 자리에서, 보라는 마침내 조용히 혼잣말처럼 털어놓았다.
“나 같은 애가… 결혼해도 될까? 결혼… 하면 오빠 가족들도, 오빠 주변도 다 알게 될 텐데… 난….”
보라의 목소리는 끝내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 뜻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보라의 과거. 그 시간들이 그녀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이자, 한편으로는 감추고 싶은 흔적이었다. 나를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잊고 싶었던 과거였지만, 정작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더 큰 짐이 되어 보라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달랐다. 그녀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
“넌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괜찮지 않아. 오빠가 나를 붙들어줄수록… 오히려 더 무거워져. 나는 오빠 앞에서 늘 당당하고 싶었는데, 결혼 얘기가 나올수록 더 작아지는 것 같아.”
그 말이 끝나고, 잠시 흐른 고요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침묵이 우리 사이의 답이 되어버렸다.
그 후로 보라는 조금씩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전보다 연락이 뜸해졌고, 약속을 잡기보다 피하는 일이 잦아졌다. 나는 애써 붙잡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보라는 멀리 달아나는 것 같았다.
결국 어느 날, 보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다.
“정말 고마웠어. 나, 오빠 곁에서… 너무 행복했어. 근데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거 같아. 더 이상… 용기가 안 나.”
그렇게 보라는 내 곁을 떠났다. 잡을 수 있었던 걸까, 처음부터 그녀는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걸까. 지금도 그 답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보라는 진심으로 나를 사랑했다는 것. 그리고 더 큰 사랑을 주고 싶었지만, 스스로의 과거가 그녀를 계속 붙잡아 결국은 떠나야 했다는 것.
나는 오래도록 그 마지막 얼굴을 잊지 못했다. 아니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눈물이 아닌 미소로, 담담히 인사하는 모습. 그것은 분명히 그녀가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내린 결심이자, 마지막까지 내게 보이고 싶었던 당당함이었다.
나는 여전히 우리가 함께 보냈던 그날들을 떠올린다. 금요일 저녁 함께 퇴근하던 길, 주말마다 찾았던 근교 여행, 늦은 밤 영화를 보며 잠들던 순간들. 그 기억들은 여전히 내 삶 어딘가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어쩌면 영원한 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서로의 곁에서 웃음을 만들고, 그 웃음을 지켜내려 했던 시간만큼은 영원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얼마 전,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보라가… 결혼했다는 이야기였다.
나와 함께할 미래는 어렵다던 그녀가, 이제는 다른 사람 곁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것. 그 말이 내 귀에 닿는 순간, 마치 오래된 상처가 다시 벌어지는 듯 가슴 한가운데가 뜨겁게 찢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질투가 치밀었다. 그녀가 다른 사람과 웃으며 식장을 걸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내 안쪽 어딘가가 뜨겁게 뒤틀렸다. 한때 내 옆에서, 내 품에서 행복을 이야기하던 그 입술이 이제는 다른 이름을 부르며 웃고 있다는 사실. 그건 견디기 힘든 상상 속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둘이 함께 미래를 그리지 못한다는 걸, 그 길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그녀도, 나도 알고 있었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너무도 잘 알기에, 어쩌면 더 서운하고, 더 쓰라렸는지도 모른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 서운함은 쓰디쓴 잔향처럼 입 안을 맴돈다. 그녀는 결국 행복을 찾았는데,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무른 채 과거의 잔상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은 단순한 그리움도, 단순한 미련도 아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모든 시간이, 다른 사람의 손길 속에서 마침내 완성되었다는 사실 앞에서 느끼는… 절망과 애틋함, 그리고 놓아주어야 한다는 증명의 고통이었다.
보라와의 추억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인생에서 업소에서 만난 지명녀지만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이라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남들은 로맨스스캠이네 어쩌네 이런 말들을 하지만 저는 오히려 보라가 저때문에 포기한것들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ㅋㅋㅋㅋ 어쩔수 없는 호구인가 봅니다. 다음 시리즈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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