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취한엄마 14
엄마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거웠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부터 어깨는 잔뜩 내려앉아 있었고, 손에 쥔 가방은 거실 바닥에 툭 떨어졌다. 제대로 눈도 맞추지 못한 채 방으로 직행하는 뒷모습을 보며,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엄마 왔어?"
"응~ 후..."
엄마는 옅은 한숨을 섞어 대답하며, 입고 있던 재킷의 단추를 천천히 풀었다. 단추를 쥐고 있는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좀 쉬어야 되는 거 아니야? 요즘 엄청 피곤해 보여."
"그래?... 후.. 말이라도 고마워. 밥은?"
지친 기색이 역력한 눈빛으로 나를 돌아보는 엄마의 눈가에는 묘한 그늘이 져 있었다. 내가 벌인 일이지만, 핼쑥해진 엄마를 보면 심하게 밀려오는 죄책감이 발목을 잡았다.
익명 뒤에 숨어 엄마를 몰아세우고, 화면 속에서 비참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흥분했던 놈이 나다. 엄마를 내 뜻대로 주무르는 그 지배의 쾌감은 솔직히 중독적이었다. 하지만 현관문에서 마주치는 엄마의 처진 어깨를 보면 가슴 한구석이 아릿했다.
'내 손으로 이렇게까지 해야 엄마가 내 곁에 남는 건가?'
매번 혼란스럽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하는걸까.
"먹었지. 엄마 맛있는 거 해줄까?"
"아니야~ 배 안 고파. ㅎㅎ 엄마 씻으러 갈게."
엄마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은 이내 힘없이 흩어졌다. 서둘러 고개를 돌려 욕실로 향하는 걸음걸이는 어딘가 쫓기듯 도망치는 인상을 주었다.
철컥, 하고 욕실 문이 닫혔다.
잠시 후, 세차게 물이 쏟아지는 샤워 소리가 거실을 채우기 시작했다. 거실 소파에 다시 앉아 멍하니 욕실쪽을 바라보았다.
엄마의 외도를 알게 된 이후,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평온했던 우리 집의 공기도, 나를 대하던 엄마의 다정한 태도도 전부 어긋나 버렸다. 나는 하루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 엄마가 다시 예전의 평범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물소리에 섞여 전해지는 묘한 긴장감 속에서,
다시금 불신이 피어나온다.
'아직도… 그 새끼랑 연락할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살금살금 엄마의 방으로 다가갔다. 문은 살짝 열려 있었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둡고 가라앉은 방 안. 책상 위에는 휴대폰이 무방비하게 놓여 있었다. 잠금조차 걸려있지 않은 폰을 집어 들고, 나는 홀린 듯이 카톡을 열어 그놈과의 대화창을 확인했다.
그리고 화면에 떠오른 내용에, 내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발신함에는 엄마가 보낸 메시지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오빠, 저 지금 난처한 상황이에요. 제발 도와주세요."
숫자 1은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놈은 이미 엄마를 차단한것 같다. 읽지도 않은, 허공에 대고 부르짖은 그 구차한 문장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숨이 턱 막혔다.
'난처한 상황? 내가 엄마 하나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이 지랄을 떨고 있는데, 고작 난처한 상황이야? 그렇게 수치스러워하며 다 포기한 줄 알았더니… 뒤에서는 나 몰래 이딴 새끼한테 매달려 도와달라고 빌고 있었어?'
배신감에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나는 엄마가 망가질까 봐 밤잠을 설쳐가며 괴로워했는데, 엄마는 그 눈물 뒤에서 고작 3천만원 때문에 버린 그 어플남 새끼에게 구원을 바라고 있다. 내가 그동안 안쓰러워하며 망설였던 시간들이 순식간에 바보 같은 짓으로 전락해 버리는 기분이다.
떨리는 손으로 화면을 거칠게 빠져나오다, 내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앙톡. 그 어플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구석에 버젓이 남아있었다.
'아니..저게'
황급히 어플을 눌러 접속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새로운 대화 목록은 없었다. 하지만 그 화면속 남자들이 보낸 메세지와 읽지 않은 꼬리표 99가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당장이라도 삭제했어야 할 어플을 굳이 남겨두었다는 것. 그것은 언제든 조건만 맞으면 엄마가 또다시 낯선 남자들을 찾을 거란 확신을 심어주었다.
나는 홀린 듯이, 가장 상단에 고정된 대화창을 눌렀다. 'elephant'라는 아이디였다.
[elephant : 지혜 씨, 보지 안은 털 다 밀었어? 검은 레이스 팬티 입은거 상상하니 꼴리네.내 손가락이 오늘 거기 얼마나 깊숙이 쑤셔 박힐지 상상하니까 벌써 좆이 딱딱해지는데.]
[엄마 : 으응.. 다 밀었어요.. 오빠 만나면. 치마 속엔 아무것도 안 입고 나갈게.. 오빠 차에 타면 바로 오빠 거 빨아줄래..]
[elephant : 하, 씨발.. 진짜 미치겠네. 차 타자마자 내 거 입에 물고 정액 한 방울도 안 남기고 다 받아먹어. ]
[엄마 : 응.. 응.. 나 빨리 오빠한테 박히고 싶어.. 젖어서 팬티 다 젖을 것 같아..]
[elephant : 근데 지혜 씨, 우리 언제 만날까? 벌써 몸이 근질거려서 참기 힘든데.]
[엄마 : 에이, 오빠 급하긴~ 더 친해지면 봐요~~]
[elephant : 이미 친해진거 아니었어?ㅋㅋ]
[엄마 : 히히, 못 살아 정말. 그래도 조금만 더 애태워줘요.. 오빠가 나한테 얼마나 안달 났는지 더 보고 싶으니까.. ^^]
화면 속에서 엄마는 마치 여왕이라도 된 양 여유롭게 남자를 조련하고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 뒤에서 즐겼던 그 가증스러운 밀당이 고스란히 드러나자, 아까까지 나를 괴롭히던 죄책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걷잡을 수 없는 배신감과 비틀린 악의가 채웠다.
'대체 왜 안 지운 거지? 그렇게 울고불고 매달려놓고, 속으로는 언제든 딴 놈한테 갈 여지를 남겨둔 거라고?'
카메라 앞에서 수치심에 몸을 떨며 자위하게 만들었던 일조차 엄마의 미련을 끊어내진 못했다. 행여나 엄마가 완전히 무너질까 봐 눈치 보며 적당히 멈췄던 내 알량한 배려가 우스워졌다. 아직도 그놈에게 매달리고 어플을 쥐고 있는 꼴을 보니, 가슴속에서 억눌려있던 악의가 다시 뜨겁게 끓어올랐다.
적당히 겁만 주면 알아서 예전으로 돌아올 거란 내 착각이 완전히 부서졌다. 고작 방 안에서 수치스러운 짓을 시키는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저 쓸데없는 미련을 뿌리째 뽑아버리려면, 훨씬 더 숨 막히고 지독한 자극이 필요했다.
방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어두운 방 안, 선불폰의 파란 액정 불빛만이 내 번들거리는 눈을 비추고 있었다. 심장이 쿵쿵 울릴 정도로 거칠게 뛰었지만, 화면을 두드리는 손가락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나 :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ㅎㅎ]
한참 뒤에야 짧은 진동이 울렸다.
[엄마 : 하.. 네...]
억지로 쥐어짜 낸 대답. 나는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다음 문장을 보냈다.
[나 : 밖에 선선하던데. 산책 좋아하시죠?]
[엄마 : 네? 갑자기 또 뭐를 요...]
화면 너머로 파랗게 질렸을 엄마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나 : 앙톡 보니까 친하게 지내던 남자들 많던데 ㅎㅎ 오늘 그중 한 명 만나서 노는 건 어때요?]
메시지 옆의 숫자 1이 사라졌지만 답장은 한동안 오지 않았다. 패닉에 빠져 손만 덜덜 떨고 있겠지. 이내 채팅창 위로 상대방이 입력 중이라는 표시가 미친 듯이 깜빡거리더니, 다급한 문장들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엄마 : 이보세요 진짜.. 시키는 거 다 했잖아요 대체 뭘 더 원하세요 제발 그만 좀 하시면 안 될까요]
[엄마 : 돈 원하시면 드릴게요 대출을 받아서라도 드릴 테니까 제발요]
구차하게 돈으로 무마하려는 태도에 웃음이 났다.
[나 : 돈 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 ㅎㅎ]
[나 : 제가 얘기했죠?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지. 잠시만요.]
[나 : 회사 팀 단톡방에 사진 좀 뿌려볼까요? 5명이면 인원이 좀 적긴 한데. 이거 다들 여자라 재미는 없어할거 같네요ㅋㅋ]
[엄마 : 아 제발요 진짜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살려주세요 제발]
이성이 뚝뚝 끊어지는 소리가 텍스트 너머로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내 배신감은 그 정도로 가라앉지 않았다.
[나 : 그건 내 알 바 아니고요.]
[나 : 회사 사람들이 부담스러우면, 아들한테 보낼까요?]
[나 : 어제 손가락 넣고 울던 영상. 한창 혈기 왕성할 나이인데 아들이 보면 참 좋아하겠네 ㅎㅎ]
'아들'이라는 단어가 꽂히자마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미친 듯이 답장이 날아왔다.
[엄마 : 아 제발 진짜 그만 가족은 안돼요 제발요]
[엄마 : 가족은 건드리지 마세요 알겠으니까 시키는 거 다 할게요 뭐든 다 할게요]
[엄마 : 약속해요 가족한테는 절대 안 보낸다고 제발요.
다른건 다할테니..제발 부탁해요]
완벽한 굴복. 그놈한테 도와달라고 매달리던 희망도, 앙톡을 남겨두었던 미련도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형체도 없이 바스러졌다. 납작 엎드린 항복 선언을 보며 나는 등줄기가 저릿해지는 쾌감을 느꼈다.
[나 : 네 약속할게요. 예전에도 말했죠?]
[나 : 전 지혜 씨 일탈을 다른 사람이 아는 건 싫어요. 나만 보고, 나만 즐길 겁니다.]
[나 : 그러니까 딴생각 말고 얌전히 도와주세요.]
내 답장에 화면 너머로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고 있을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순간,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파왔다.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알량한 죄책감과 고뇌가 또다시 고개를 들이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침없이 타자를 치던 손가락이 허공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내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여기서 멈춰버리면, 엄마는 내가 쥐여준 알량한 안도감 뒤에 숨어 또다시 그 더러운 어플을 기웃거릴 게 뻔했다. 완전히 혼을 빼놓을 만큼 강한 자극이 필요했다.
나는 망설임을 지워내고 다시 액정 위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나 : 앙톡에서 대화하던 남자 중에 'elephant'라는 사람 있죠?]
엄마의 휴대폰에서 방금 보았던, 차마 입에 담기조차 더러운 대화 내역을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그저 불쾌함뿐이었지만, 지금은 그 잔상들이 내 안의 억눌린 지배욕을 자극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나 : 기억나죠? 이 새끼랑 했던 대화들.]
[나 : 야한 대화 주고받으면서 젖어 들던 그 모습, 아주 잘 봤어요.]
[나 : 지금 당장 앙톡 켜서 그놈한테 연락해요. 오늘 밤 당장 보자고.]
[나 : '팬티 안 입고 검은 레이스만 걸치고 나갈 테니, 차 타자마자 빨아주겠다'고 ㅋㅋㅋ]
손끝이 떨릴 정도로 격렬한 분노와 쾌감이 뒤섞였다.
[나 : 5분 내로 만나자고 답장받은 화면 캡처해서 보내요.]
전송 버튼을 누르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화면 속에서 엄마가 굴복하며 이번엔 자신이 원치않던 상황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갈 모습을 상상하니,
죄책감과 연민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억지로 그 감정들을 속 깊이 밀어 넣었다.
여기서 멈추면 엄마는 다시 저 구덩이로 기어 들어가 저놈들이랑 뒹굴며 몸을 굴리는 게 엄마의 일상이 되겠지.
죄책감은 엄마를 지키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다시는 딴생각 못 하게 완벽히 짓밟아야
환한 미소를 보여주던 나의 사랑스런 엄마를 되찾을수 있을것이다.
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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