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엄마 이야기

경북 영양군 일원면 xx리..강원도 산골보다도 오지인곳이야.
믿든 안믿든 그저 이 플랫폼에서 다들 썰이니 주작이니 그런건 개인판단에 맡기면 되는거니까 서로 제발 주작이니 인증이니 그딴 개소리는 안해줬으면해. 반말로하는건 이해해줘 형이 나이가 올해 46이거든 옛날 이야기고 워낙 아직도 내 마누라 아이들 볼때마다 죄책감 아니 어떤 배덕감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조금 망설여졌어. 글을 쓸지 안쓸지 근데 요즘 대선도 끝났고 어수선한 분위기 끝나서 우리 썰게시판 친구들 외로운 딸잡이들을 위해 글을 투고하겠어.
참고로 난 다른 커뮤니티 썰 게시판에서도 이글을 썻다가 그놈의 인증충 사진충 벌레들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입고 다시는 글 안올릴라고 다짐도 했어어. 근데 요즘들어 권태기인지 마누라가 너무 별로고 딸을 잡을때마다 자꾸 생각나서 이글을 쓰는거야. 머 자기취향이아니든 말든 난 상관없어 그냥 끄적이는거고 니들이 이글보고 좋아하든 말든 난 그냥 그저 끄적어볼까해.
머 주제는 제목보고 들어왔겠지만 엄마에관한 이야기야. 여기 글쓰는 분들 글쏨씨가 대단들하시더라구. 나도 그래서 좀 부족하지만 상세한게 그냥 있었던 일이니 머 근친이나 맘토라레쪽 취향이 아니면 안읽으면 될것같아. 머 굳이 강요도 필요없고 본인들의 취향에 맞으면보고 딸잡고 상상하고 즐기면 그만인거니까. 시작해볼께. 욕을하건 칭찬을 하건 그건 니들 마음이야.
난 79년생이고 정말 산골 오지에서 살았어. 지금이야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잘몰라. 93년도에 구미로 이사했다가 지금은 천안에 산지도 꽤 되었으니까. 경상도라고하면 다들 대구 부산 이런 대도시를 생각하기 쉽지만 내가 태어난곳은 정말 산골촌동네였어. 내가 중학교2학년때 엿을꺼야 엄마는 당시에 49이었어 결혼을 서른넘어늦게 했었고 울 아부지가 88올림픽때 그러니까 내가 8살때 트랙터사고로 돌아가셨어. 94년도였나 95년도였나 암튼 그때도 내 기억으로는 가정형편이 정말 암울할정도로 가난했었어. 가장이 없으니 엄마는 매일같이 봉화에 있는 사과농장이랑 곶감 껍질까는 일을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정도였어.
정말 오지산골짜리 촌동네다보니 밭농사나 깨농사도 땅있는 사람들이나 하는거였고 엄마는 우리동네 잡일있을때는 언제나 빠지지를 앉았어.
마을이라고 해봐야 우리집 바로뒤에 두집 그리고 한 400미터내려가서 아랫마을에 다섯집이 전부였으니까 7집이 그냥 마을 전부였어. 정말 찢어지게 가난해서 그당시 90년대 초반이었지만 난 지하철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어. 뉴스에서 처음으로 접하고 지하철 모양만 본시절이니까. 우리집은 일월산 줄기 바로밑에 있었고 말이 집이지 그냥 흙집에 슬레이트지붕하나 덮어놓고 담이라고는 그냥 돌무더기 허리춤까지 쌓은 전형적인 깡촌 시골 마을이었어. 믿을진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변변한 화장실도 없었고 물도 앞에 흐르는 개울물 길러다가 목욕하고 그런 형편이었어.
무슨60 70년대냐고? 90년대에도 정말 가난한 집들은 시골에 이런집들 허다했어. 암튼 뒷집에도 가족이 한집 살았는데 명진이라고 내 불알친구놈 집이었어. 사실 본명을 슬까말까 고민하다 그냥 실명으로 적는거니까 머 이상할껏도없어. 명진이 위로는 3살터울 누나가 하나 있었는데 우리가 17살 되던해에 취직한다고 대구로 집나갔다가 소식이 두절되어서 여기서는 그냥 생략하도록할께. 사실 명진이는 나보다 한살 위였는데 그러니까 나보다 1년먼저 태어난 78년생이었지만 학교를 늦게들어가서 친구가 된거였어. 당시에는 다들 그랬어.
명진이네 엄마는 당시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고학력자였고 우리집보다 훨씬 잘살았어. 원래 우리집이 만들어져서 세를 살기전까지는 우리집터가 명진이네 창고였으니까. 엄마하고 나는 그렇게 세간살이를 하였고 명진이네 엄마는 그래도 우리집을 많이 도와줬어. 아 명진이네 아부지는 당시 대구에서 한복집을하다가 크게 망하고 산골로 이사왔다고 들었었고 부자는 망해도 3년간다라는 말이 밎을 정도로 시골산골에서는 방귀 좀 뀌고 살정도로 풍요로웠어.
이렇게 두집이 윗마을이고 나머지 다섯집은 아랫마을인데 아랫마을이야 머 생략할께. 너무 ㅈ같은 기억이 많아서 기억하고 싶지는 않아. 시골마을에서도 차별과 천시하는게 그런게 많았거든.
97년인가 IMF가 터지기전이라 아직도 기억하는데 이때부터 시작이야. 18살이되어서 고2가 되어야하는데 학교를 늦게 들어가서 그런지 고1로 입학을하게 되었어. 그런데 학업? 시골 촌넘이 그걸 따라갈 여유가 있나? 명진이랑 나는 읍내에있는 애들이랑은 차원이 다를정도로 학식이 떨어지는거지. 그래서 학부모 면담도 겨우겨우해서 학업에 몰두해보려했는데 결국 나랑 명진이는 학업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지. 당시 수준이 난 이제 더하기 빼기 하는데 애들은 듣도보지도 못한 미분 적분에..이상한걸 하더라구..그러니까 수준이 공부할 수준이 아니었어.
어려운 가정형편에 논일 밭일 산일 몸만 건강하지 중학교입학할 당시에도 할줄아는건 글 읽을줄아는거 그게 다였거든. 머 당시에는 과학 교련 자연탐구생활 이딴거는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한 시골놈들한테는 박사논문이었던였어~..
아무튼 그렇게 중졸인 나하고 명진이는 군내에 있는 곶감 만드는 공장에 어린나이에 취업해서 18살이지만 돈을벌기 시작했어. 그렇게 첫월급을 타고 두달지나서 일이 터졌는데 명진이네 엄마하고 아부지가 군위에 아착같이 모은돈으로 다기 재기하시려고 한복집을 열었는데 사기를맞고 빚쟁이들이 하루걸러 귀신같이 그 시골집까지 찾아오고 난리도 아니게된거야.
자세한건 모르지만 보증문제는 아니었고 확실한건 돈을 여기저기 많이 빌려서 친척들 그리고 아랫마을 이장집도 찾아오더라구. 결국 명진이네 엄마하고 아부지는 슬픈이야기지만 아랫마을 저수지에서 농약을 마시고 음독자살하셨어. 명준이네 엄마는 그래도 의식이 있어서 대구에 큰병원으로 이송하셨는데 역시나 4일뒤에 폐경변으로 돌아가셨지. 참 현실..ㅈ 같은데도 장례치르는데도 당시에 빚쟁이들 명진이한테 그나마 있는 집문서 밭떼기 받으려고 찾아오는거보고 세상참 ㅈ같고 쉽지않다는걸 처음 느꼈어.
그렇게 남아있던 군위에 한복집은 친척들이 채무상환 명목으로 넘어갔고 명진이네집이랑 밭떼기 그리고 우리집도 아랫마을 채권자 이장한테 넘어가서 졸지에 우리집도 이장한테 세간살이하게 하게되었어. 문제는 명진이었는데 살곳이 없어져 버렸는데 이장새끼놈이 장례식 끝나고 일주일만에 이제 18살된 명진이한테 집을 비워달라고했어. 세상 ㅈ같아도 이건 아니다 싶은데 그때는 서로다들 먹고살기 힘든시기라 그러려니했었지.
97년이라고하면 다들 먹고살만한 시기 아니야? 하는데 경상도 시골은 니들이 생각하는거랑 다르게 상상 이상으로 척박하고 가난했었어.
아무튼 명진이는 졸지에 오갈데가 없게 되었고 결국 울 엄마가 명진이를 설득해서 우리집에서 같이 세간살이를 하게되었지.
우리집뒤에 명진이네 집은 이장새끼가 다른집에 세준다고 뻥치고 결국 곶감말리고 고추말리고 농기구창고 용도로 써버리더라구. 그래서 기분이 더 ㅈ같았지만 참을수밖에 없었어.
그렇게 부엌하나달린 창고방 하나에 뒷간하나 그리고 펌프식개수대하나 덜렁있는 마당이 전부인 집에 나랑 명진이 그리고 엄마랑 살게 되었어. 세간살이는 간단하게 명진이꺼만 옮기다보니 나머지 가구나 장롱등 돈나가는건 전부 이장새끼가 치워준다면서 다 팔아처먹더라구.
전기는 들어오지만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부엌에 우리집은 가스레인지가 없었어 등유로 때는 곤로라는게 있는데 그걸로 밥도해먹고 다 해결했었지. 방안에는 이부자리넣는 장롱하나에 밑에 서랍에는 옷가지를 넣어서 보관했고 그 옆으로 금성 로고박힌 17인치 티비하나가 다였어. 반대편벽에는 부엌으로 통하는 미닫이 문이 하나있었는데 그문은 아주 조그마한 창호지달린 문이었지.
출입문을 열고나가면 흙바닭에 나무 판자떼기 맞추어놓읒 마루가 있었는데 말이 대청마루지 그냥 사람앉을수있는 그런 마루였어. 마루를 벗어나면 바로 펌프로 지하수를 기를수있는 시멘트공구리로된 마당이 3평정도가 다였고 그옆으로 담장둘러 퍼세식 화장실이 우리집의 전부였어.
문제는 18살의 혈기넘처흐르는 남자두명에 49살먹은 미망인이 한방에서 자고먹고 하면서 생활을 해야하기네 처음에는 좀 불편했지반 점차 익숙해져가더라구. 일단 씻는게 가장문제였는데 나는 아들이라서 별로 상관없었지만 명진이나 엄마한테는 꽤나 불편했을 그런상황인거지. 명진이가 외출을하거나 할때는 엄마는 크게 신경 안쓰는듯 보였는데 명진이와 같이 셋이서 있을때는 아들인 내가 있으니까 이게 참 오묘한 상황이 되더라구.
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성에 크게 관심을 두거나 그런 상태가 아니었어. 여자의 나체를 본다거나 그거에 이끌려서 자위를 한다거나 그런것도 없었어. 또래의 남자들에 비하면 매우 늦은거였지.
물론 명진이의 행동과 말투에서 조금씩 여자에대한 갈망 그리고 관심사를 배우기 시작했고 엄마가 일을 나갈때면 집에서 일을 안나가는 경우가 잦아지고 여자에대한 야한 이야기나 상상하면서 누구나 그랬듯이 청춘기행을 이어나가기 시작한 시기가 된거야.
곶감공장에 4개월치 월급을 떼이고 그만두고서 명진이랑 나는 아랫마을 이장새끼가 운영하던 비닐하우스에서 버섯을 키우기시작했어. 많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활에 보탬이될정도는 되었어. 보통 오전에 일나가서 저녁 8시나 되어야 오시는 엄마와 다르게 우리는 4시쯤되면 집에돌아와서 빈둥빈둥 시골산골짜기에서 시간떼우기가 다였어. 철공소에서 잠시 기술도 배워보기도 했지만 말이 기술이지 그냥 노다다중에 최하급 노가다여서 그냥 떼려치고 결국 버섯농장일만 하게 되었어.
그렇게 20살 군입대만 기다리게 된거지. 가난하고 배우지도 못하고 게으르고 있는거라고는 건강한 신체 그리고 이제막 눈을 뜬 성욕에대한 갈망이 전부였을 시기라 지금 돌이켜보면 참 후회도 많이되지만 그때 시골 청년들은 다들 그렇게 살았어.
9월인데도 무척이나 더웠어. 그 흔한 선풍기하나 없었고 잠자기전에 모기향 하나 피우는게 전부였어. 너무 덥다보니 나무 판떼기로된 문을 열어두고 모기장망을 잘라서 문모양으로 잘라서 걸어두고 자연풍을 기다리는게 할수있는 전부였지.
항상 엄마는 벽쪽 tv앞 구들장에서 주무셨고 그옆에는 나 그리고 명진이는 출입문쪽에 자리를잡고 그 좁디좁은 좁은 한방에서 생활을했어.
엄마가 늦게 오는날에는 방안에서 아랫마을 또래여자애들 험담이나 가슴 엉덩이 얼굴 평가질 해가면서 바지벗고 누워서 둘이서 딸잡고 음담패설이나해대기 일쑤였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난 나이많은 중년여자들에는 관심조차 없었어. 생활환경이 그렇게 만든것인지 아니면 누구나 내면의 성욕역역에 포함되어 있는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중년에대한 성적욕망이나 갈망이 명진이 즉 내친구놈과 같이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거라고 보면될것 같아.
엄마는 허드렛일을 그만두시고 평일에는 읍내에있는 인형공장에 다니셨고 당시 시절에는 토요일도 일을 나갔기에 쉬는날은 일요일과 공휴일이 전부였어. 엄마는 인형공장에 일이 없는 날에는 이장버섯농장 농막에서 우리랑 같이 품삭을 벌어서 그래도 예전보다는 생활이 꽤 괜찮아졌어.
제일 불편한것은 씻는거 이게 문제였는데 방에 명진이와 내가 있으면 바로 방이랑 이어진 창호지문이 있어그런지 엄마가 씻는 물소리와 비눗칠하는 소리까지 다들리는데 나는 아무렇지 않은듯이 조금이나마 그소리를 줄이려고 tv소리도 좀더 키워보고 했는데 의미가 없더라구.
혹시나해서 tv를보고 양반다리로 앉아있는 명진이의 그곳을 힐끗 처다보았는데 역시나 츄리닝바지가 볼록튀어나왔는것을 손등으로 살짝 가리면서 자연스럽게 tv보는척 하는게 느껴지라구.
순간 존나 짜증나고 화가 났는데 머라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나만 조용히 넘어갔어. 생각해보니 그 좁은 방하나에 같이 사는데 그리고 한창때인 남자가 그럴수도있지~라고 넘겨버렸어. 그러다가도 자꾸 그 볼록 튀어나온 검정색 츄리닝을 볼때마다 화가 나기도 했었어.
tv소리보다도 크게 들려오는 물 끼얹는 소리에 엄마가 타올로 비눗칠을 할때마다 그 어딘가 부디쳐 소리나는 착~착 ㅊㅊ 감기는 소리가 너무나 야해서 나도 순간 내가 이게 정상인가? 미친놈인가? 하는 오만가지 잡생각이 다 나더라구. 정신차리고 tv에 집중하려하는데 또다시 물소리가 들리고 착착 흐르르~들리는 그소리를 짐작할수 있었어.
그러지 말아야하는 배은망덕한 쓰레기라고 생각되는 상황에서도 내 ㅈ이 갑자기 서는게 너무 부자연스러웠고 최대한 그상황을 모면하려했지만 내 ㅈ이 서는것을 인지한후에 나는 병진이가 용서되고 이해가 되더라구. 엄마의 가슴을 통과하는 비눗칠된 타올이 내는 착착소리 그리고 엄마의 사타구니와 엉덩이골을 쓸어내리는 소리~ 너무 야했고 참기 힘들정도였어. 처음으로 엄마라는 생각이 안들더라구. 그냥 여자가 씻고있다는 소리가 너무 야하게 들리다보니 심장이 터질것 같았어.
그렇게 오묘한 상황이 엄마가 씻을때마다 생기니까 이게 적응이라는게 아니라 호기심이 성적욕망으로 변해가는데 정신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웠어.
이걸 명진이한테 이야기도 해볼까 했지만 엄마와 내친구라는 영역이기에 최소한의 도덕적인 영역이기에 난 지키려고 노력했고 참아냈어. 나만 그런게 아니라 명진이도 목젓에 침을 억지로 넘기면서 무척이나 참아내는듯 보였지만 나에게는 들키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는게 보였어.
엄마가 집에 없을때에더 둘이서 음담패설을 늘어놓으며 딸을 잡을때에도 중년여자나 엄마에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명준이도 그런이야기를 일체 꺼내지 않았어.
명준이가 엄마에 대해서 성욕을 느끼거나 여자로서의 감정을 나에게 말하지 않는한 난 먼저 이런상황을 굳이 이야기해서 꺼낼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 물론 이게 근친의 영역이나 지금 시대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네토라레 혹은 맘토라레의 영역이겠지만 당시에는 그런건 알지도 못했을 시기였어.
엄마가 씻을때마다 그 오묘한 상태는 나에게 처음으로 배덕의 감정과 성욕을 느끼게해준 그런 상황이 되버린거야. 물론 이상하게 명진이가 없는 날에는 그런 감정이 잘 안느껴져서 혼자서 엄마의 씻는 모습을 창호지 문틈으로 훔쳐보면서 ㄸ을 잡아도 보았지만 그런 배덕한 느낌은 오지않았어. 이상하게 명진이가 있어야 배덕의 감정과 온몸에전율이 느껴지는게 참 이상했어.
엄마는 당시49이었고 다음해에 50이되는 나이였지만 시골농사일과 공장에 다져진 몸이라 그런지 맵시가 굉장히 좋았고 피부도 좋았어. 얼굴은 갸름한 강아지 미인상이었지만 아주 이쁜정도는 아니었어. 그냥 아줌마들 모아놓으면 눈에띌 돋보이는 미인이지 아주 이쁘다는건 아니야. 가슴은 브래지어 사이즈로 95a 였고 팬티사이즈는 105였는데 가슴은 옆으로퍼진 가슴이었고 늘어지지진 않았었어. 엉덩이는 보름달같이 둥근데 약간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엉덩이아랫살이 조금 처져서 약간 아래로퍼진 수박같은 엉덩이었어.
그래도 그 가슴과 엉덩이가 너무 야해서 기분이 매우 좋았었어. 부엌 전구등이 어두어서 ㅂㅈ 그곳을 보고싶었는데 가까운거리여도 보이지는 않았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는 무의식적으로 방어적으로 부엌문 창호지쪽으로는 그곳을 오픈하지는 않았어. 무엇인가 의식하는 그런 방어적 자세였어. 난 아들이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모르는것 자체가 이상하기도했고 범죄를 저지르는 느낌이 들기도해서 츄리닝속에 넣은 내 오른손을 순간 빼기도 했었지만 그놈의 성욕이라는게 먼지 결국 다시 손을 넣어 ㅈㅈ를 흔들기 시작했어.
창호지와 나무 판떼기 틈으로보는 엄마의 모습은
젊은여자들의 날씬하고 매끈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중년기에 들어서있는 오독한 가슴과 풍만하게 살이찐 엉덩이는 살짝 밑으로 쳐져있었지만 내 눈이 호강하기에는 너무나도 충분했어. 그때 처음으로 걸치지않은 여자의 순수한 살집을 보면서 자위를 하게 된건데 그 대상이 엄마라는 사실은 어떻게보면 패륜적이고 반사회적일수 있지만 그때 나는 하나의 수컷이었을뿐이었어.
당시에는 야동이나 야한잡지도 구하기아려웠기에 아랫마을 또래여자애들 팬티나 훔쳐보던게 다였는데 실오라기하나 안걸친 중년의 나체를 보면서 자위를 하는 그 기분은 아직도 지워지질 않았어.
가을이 다가오는데도 무척이나 더웠어. 산골마을이라 저녁 6시만되면 어두웠고 적막만 가득했었지 위마을에는 나 엄마 명진이 이세명이 결국 다였어. 이따금씩 이장 할배새끼가 명진이네 창고에 일보러 오거나 월세받을때 아니고서는 인적이 정말 없었어. 저녁이되면 밥먹고 대청마루에앉아 모기향도피우고 머 시골살이가 다들 그랬었어.
그러던 날중에 그일을 처음 목격하게되었는데...
2부에서
[출처] 시골엄마 이야기 ( 야설 | 은꼴사 | 성인사이트 | 성인썰 - 핫썰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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