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2)
슬프게도… 우리는 언제 어른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우리의 선의가 배반당하는걸 처음 경험했을때라고 생각한다.
비록 극빈의 삶이었지만 세상 모든게 선의로만 가득차있다고
아예 악의라고는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명숙에게는
그해 여름이 그랬다.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며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명숙은 간단한 도움을 요청하는 동네아저씨를 따라갔다가 그만 겁탈을 당하고 만다.
명숙의 아버지를 “형님 형님” 하며 부르고 다니던 사람이었다.
명숙이 아직 2차성징도 시작하지 않은 나이였다. 처음에는 명숙도 그 아저씨가
하려는 행위가 무엇인지 몰랐다. 귀신도 뱀도 무서워하지 않던 명숙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몸을 덜덜 떨며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나중에 집에 돌아오고 나서야 그녀는 한꺼번에 밀려오는 여러 감정을
파도처럼 맞이해야했다.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분노의 감정이
선후를 가리지 않고 들이닥쳤다. 여자가 몹쓸짓을 당해도
여자에게 손가락질을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명숙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이후로 명숙은 동네어르신들에게 “이제 철 좀 들었네” 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 후로도 그녀를 향해 음흉한 미소를 띄며 다가오는 그 개자식을
피해다니느라 명숙은 항상 신경을 곤두세운체 다녔고
읍내 교회당에 나가 온몸을 부르르떨며 기도했다.
제발 그 자식이 벼락에 맞아 뒤지게 해달라고…
3년이 넘도록 매주 기도를 했지만 그 자식이 벼락은 커녕감기조차 안걸린다는것을 알고
그녀는 세상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그녀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 왜냐하면 당시 교회는
세련된 서양문물의 상징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읍내 교회에 나가면 멋있고 세련된 언니오빠들이 있었고,
그들은 일본풍의 가요가 아닌 세련된 복음성가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 교회에서 만난 언니에게 간호사가 되면 서독으로 갈수 있다는 말을 듣고
명숙은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서독이라는 나라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으나, 지겹고 갑갑한 그녀의 고향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았다.
그 시절 명숙은 자기전에 눈을 감고 서독의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자신을 상상하며 잠이 들었다.
당시에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상상이라, 명숙은 마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솟아나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집애가 글만 쓰고 읽으면 됐지 무슨 학교야?”
명숙의 아버지는 중학교에 진학하겠다는 명숙에게 나무라듯 말했다.
“큰오빠는 고등학교도 다니잖아. 왜 나는 중학교도 안되는데?”
“그래 말잘했다. 니 언니도 중학교 문턱에도 못갔는데 니가 무슨 중학교야?
조용히 집안일 거들다가 시집이나 갈것이지.“
그런 시절이었다.
명숙은 제법 공부를 잘했지만, 중학교는 선택받은 자들만이 다닐수 있는 곳이었다.
명숙이 단식과 가출을 감행해도 꿈쩍하지 않던 아버지 였지만,
당시 골방에서 술만마시며 산송장처럼 지내던 명숙의 조부가 던진
한마디에 결국 명숙의 아버지도 백기를 들고만다.
“나 곧 죽으면 이집에 입하나 덜것이니, 그 돈으로 저 원하는데로 해줘라”
이빨빠진 호랑이여도 아버지말에 거역은 못하던 시절이라 명숙은 두가지 조건을 걸고
결국 읍내 중학교 진학을 허락받게 된다.
첫째 새벽에 일어나서 오빠의 도시락을 쌀것
둘째 학교가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농사일이며 집안일을 거들것.
그리하여 명숙은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
그 시절을 회상할때면 명숙은 눈을 감고 행복한 미소를 띄곤했다.
“이래뵈도 내가 읍내에서 조금 유명했어.”
“뭘로?”
“이쁜걸로. 나 좋다고 쫓아다닌 남자애들 많았지”
내가 의심쩍은 눈초리로 쳐다보자 명숙은 앨범을 뒤져 기어이
빛바랜 흑백사진 한장을 꺼냈다.
20명이 넘는 단체사진이었으나 나는 금방 명숙을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명숙의 10대시절이 있었다.
작게 나온 사진이었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와 커다란 눈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 동네에서도 미스코리아 나오겠네 그려”
동네어르신들은 날이 갈수록 이뻐지는 명숙에게 이런 농을 던지며 허허 웃어댔다.
“명숙이 이뻐졌네. 크면 오빠한테 시집와라”
교회에 이런 농을 던지는 오빠들이 많았지만, 단 한사람만이 명숙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일요일마다 버스를 타고 나오는 과수원집 막내아들.
명숙의 큰오빠보다 한살이 많은 크고 건장한 체격의 오빠였다.
“그 집 막내아들이 아주 싹싹햐. 아버지 일도 어찌나 잘 거들던지.
돈복 있는 집이 자식복까지 있고 아주 조상묘를 잘 썼나봐“
”공부도 잘한담서? 내년엔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간다던디.
서울가기전에 우리 여식이랑 얼릉 혼인시켜야 할거인디“
”느그 딸래미 쟈(과수원집 아들)가 좋다고 하덩가?“
”보쌈이라도 하지뭐.“
”살다살다 여자도 아니고 남편을 보쌈한다는 얘기는 내 첨 들어봤네“
딸을 둔 동네어르신들은 사윗감으로 이미 과수원집 막내아들을 점찍어 두었다.
철모르던 시절 명숙이 과수원에 몰래 들어가 서리를 할적에
과수원집 오빠는 그런 명숙을 봐도 모르는척 하거나 아니면
잘익은 복숭아 같은 것을 몰래 건내기도 했다.
명숙은 어느 순간부터 교회를 간다기보다는 과수원집 오빠의 얼굴을 보러 읍내에 다니기 시작했다.
“명숙아! 이제 처녀가 다 됐네. 시집가도 되겠다.”
과수원집 오빠는 다정다감하게 명숙에게 말을 걸어왔다.
“오빠 내년에 서울에 가신다면서요. 대학가실거예요?”
”가야지.“
나도 데려가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 올랐지만 침을 꿀꺽 삼키며 돌아섰다.
행복한 시절도 잠시… 중학교를 졸업한 명숙은 다시 산골마을에 쳐박히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가겠다고 떼를 썼으나, 이제 명숙의 편을 들어줄 할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명숙은 과수원집 오빠가 있는 서울로 가고싶었다.
명숙과 같은 처지의 여자애들이 서울로 가서 공장을 함께
다니자고 꼬시기도 했다. 명숙은 그녀들과 함께 서울로 가고 싶었으나
공장에 다니면 잠을 안재우는 주사를 놓는데 그걸 맞고 눈이 멀었다더라
하는 소문이 들려오기에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시기를 놓쳤다.
당시에는 큰언니가 시집을 갔기에 명숙은 밥짓고 빨래하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이대로라면 명숙의 앞날은 분명했다.
이대로 집안일하고 농사거들고 막내 뒤치닥거리 하다가 적당히 시집을 갈터였다.
서독은 커녕 서울에 가는 것조차 꿈도 꿀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할까? 명숙은 이미 예쁘고 야무지단 소문이 읍내까지 나있었기에
명숙의 아버지에게 혼사를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산넘어 mm리에 땅많은 그 냥반집 아들있잖아. 이번에 군대갔다와서
장가갈라고 한다던데 그 집 아부지가 명숙이 너를 며느리로 딱 찍었단다.
어뗘 한번 그 집 아들래미 만나볼텨?”
아버지는 이런식으로 명숙에게 혼담을 건냈고 그럴때마다 명숙은 화를 냈다.
“아부지! 딸래미 아직 주민등록증도 안나왔소.”
“으미 독한년. 아부지한테 말하는 꼬락서니 보소. 저런걸 뭐가 좋다고
다들 마누라 삼겠다 며느리 삼겠다 하는건지 원”
명숙의 아버지는 혀를 끌끌 찼다.
과수원집 오빠는 방학때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을 고향에 데려오곤 했다.
장발에 기타를 둘러멘 오빠와 친구들은 명숙의 선망 그 자체였다.
여유있고, 세련되고 세상 모든 비밀을 다 알고있을듯이 보이는 그 사람들.
그 중에는 피부가 하얀 서울 언니들도 있었다. 긴 생머리에
세상 밝은 웃음으로 아무런 악의없이 명숙을 바라보는 그 언니들.
외모로는 누군가에게 꿇려본적 없던 명숙이었으나 서울물 먹은 언니들을 보고는
완전한 자괴감에 빠지고 말았다.
’저런 언니들을 보고 있으면 나같은건 여자로도 보이지 않을거야…‘
밤마다 명숙은 조용히 숨죽여 흐느끼며 이제 자신의 삶은 이 시골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곤 했다.
[출처]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2) (야설 | 썰 게시판 | AI 성인 | 썰 - 핫썰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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