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7)
솔직히 말하자면 명숙에게 어린시절 x는 도무지 속을 알 수없는 존재였다.
x가 그녀의 집에 놀러올때 그는 d의 다른 친구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다른 아이들이 1.5배속의 속도와 우렁찬 목소리로
우당탕탕 사고를 치고 다니는 반면, x는 0.7배속으로 다니고
다른 아이들보다 30데시벨 정도 낮은 목소리로 대화했다.
그러나 어쩐지 차가워보이는 x의 눈빛뒤에 음흉한 능구렁이가 있을지
무해하지만 세상에 잔뜩 겁먹은 어린아이가 있을지는 모를 노릇이었다.
그런 아이가 자신을 몰래 훔쳐보고, 추근덕거리는 남자들과 같은
눈빛을 자기에게 보인다는게 명숙에게는 신기하고도 소름끼치는 일이었다.
“에이~ 그건 아니지. 나를 무슨 속이 시커먼 음흉한 인간으로 봤네”
훗날 나에대한 이런 인상을 명숙이 나에게 고백했을때 나는 펄쩍 뛰며 억울해했다.
명숙은 깔깔대며 말했다.
“음흉한거 맞잖아. 어디 감히 친구 엄마를…”
그날 나는 단단히 삐져버렸고, 명숙은 그런 나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주말야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노동의 강도를 필요로했다.
끊임없이 사람과 물류가 쏟아져 들어왔고, 정신없이 쌓인 것들을
치워내야했다. 게다가 취객들의 객기를 상대하는 일까지 해야했다.
x가 왜 극구반대를 했는지 명숙은 단 몇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알아버렸다.
x는 잠시도 숨돌릴 틈도 없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계산대에 손님들이 몰려있으면 포스 앞으로 와 계산을 했고,
빈 진열대에 물품들을 채워넣었다. 취객들이 남기고 간 라면국물이나
쓰레기들을 처리하고 테이블위를 쉴새없이 닦았다.
그러는 와중에 손님들이 물품이 있는 곳을 물어보면
친절하게 응대하는 일까지 했다.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였다.
내 아들이 어디가서 저런 취급을 받는다면 당장 그만두라고 말할 정도로
극한 노동을 x는 불평없이 해냈다.
동이 틀 무렵이 되자 그나마 한숨돌릴 여유가 생겼다.
명숙은 이미 기진맥진이 되어 쓰러질 것 같았으나 x는
그 시간에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창고에 대충 널부러져 있는
박스를 접어 차곡차곡 쌓아두고, 라면국물통을 버리고,
쓰레기통을 일일이 뒤져 캔이나 페트병 같은 것들을 골라내며
분리수거를 하고, 종량제 봉투를 꾹꾹 눌러담아 입구를 테이프로 봉쇄하고
쓰레기 버리는 곳까지 들고가서 그것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매장 입구앞에 널부러져 있는 담배꽁초들을 모아 버리고,
정말이지 옆에서 보는 명숙이 지칠 정도였다.
명숙은 알고있었다. x는 명숙이 편하게 일을 할수있도록 자처해서
저런일들을 다 하고 있다는 것을.
“잠깐 쉬었다 해라. 병나겠다”
명숙은 안쓰러운 듯 말했으나 x는 도리어 식품 진열장 앞으로 가서
김밥이니 샌드위치같은 것들을 뒤적이며 말했다.
“아 예! 폐기된거 뒷정리만 하고요”
x는 더이상 자신을 갈망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어린애가 아니었다.
한편으론 잠깐 서운하기도 했다. 명숙은 속으로…
‘그래 학교가면 이쁜애들이 얼마나 많겠어’ 라고 생각했다.
젊잖고 예의 바르게 x는 명숙을 대했다.
무엇보다 명숙 자신이 x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주말은 매일이 전쟁터 같았고, 조금 한가해지는 새벽이 되면
다리며 허리며 어깨며 안아픈곳이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않고 그저 멍하게 앉아있거나
탕비실의 책상에 엎드리기도 했다.
x는 그런 명숙에게 어린시절 보내던 갈망어린 눈빛대신
연민으로 가득찬 눈빛을 보냈다. x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명숙이 그렇게 느꼈다.
아들 친구가 연민을 느낄 정도로 스스로가 나약함을 보인다는게
명숙으로썬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으나, 명숙은 이팔청춘이 아니었다.
체력은 예전같지 않았고, 몸은 쓰면 쓸수록 청구서를 내밀었다.
어느날 멍하니 앉아 발바닥을 두드리고 있을때 x는 명숙이 앉아있는
의자 밑으로 무릎을 꿇고 다가와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어머님! 제가 마사지좀 해드릴께요”
“아니야 괜찮아. 너도 좀 쉬어”
“괜찮아요. 제가 해드리고 싶어서 하는거에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눈을 쳐다보며 말하는 x가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
민망함과 부끄러움의 감정 사이에 명치끝을 때리는 울렁거림이 숨어있었다.
요즘말로 말하자면 ’잠깐 심쿵했다‘는 말이다.
명숙은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애써 x에 대한 어떤 민망한 상상을
지워내려했다. 그 뒤로 x는 간혹 쉬고있는 그녀의 어깨며
종아리 같은 곳을 마사지했다. 우악스럽게 힘으로 하기보다는
x의 성격다운 조용하고 섬세한 터치였다.
명숙은 아들친구의 마사지를 받으면 노곤해짐을 느꼈다.
전쟁과도 같았던 그날 새벽 명숙은 의자에 앉아 뒤에있는
담배진열장에 등을 기댄체 눈을 감고있었다. 잠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잠깐 꾸뻑 졸듯이 정신을 놓고 있을때 옆에 앉아있던 x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님! 제가 고기한번 사드리고 싶어요.”
뜬금없는 질문이었고 말투또한 건조한 툭 내뱉는 말투였다.
명숙은 대답할 힘조차 없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명숙은 아주 무성의하고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집에 고기 많아…”
다시 잠깐의 침묵이 흘렀고, x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명숙도 그제서야 그 상황이 이해가 됐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명숙과 x는 둘밖에 없는 그 편의점에서 몇분간을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눈물이 날정도로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온 웃음이었다.
그렇게 몇분을 배가 찢어지게 웃고나자 피로가 다소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뒤로 x는 뭔가 달라진 사람처럼 굴었다. 마치 개그맨 시험을
보려고 준비하는 사람처럼 명숙 앞에서 바보짓들을 했다.
x의 이런모습은 그전에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다.
‘얘가 원래 이런 애였나? 혹시 어디 아프기라도 한건가?‘ 싶을 정도였다.
가게에 웃음이 돌기 시작하자 몸의 활력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사실 알고있었다. 그녀를 위해서 일부러 저런 행동을 한다는 것을…
연민으로 느껴지던 x의 눈빛이 연민 이상의 무엇이 더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명숙을 고개를 저었다.
’이 나이에 무슨 주책맞은 생각이야‘
다만 명숙은 한가지만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x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고 그가 있음으로해서 그 전쟁터같은
주말야간을 버틸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때론 그 주말을
왜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명숙이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출처]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7) (토토사이트 | 야설 | 썰 게시판 - 핫썰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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