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5)
여담이지만 나의 어머니가 그날 편의점에 나타나서 명숙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잠깐 얘기좀 나누시죠?” 라고 말하고 명숙과 밖으로 나가 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그 사건이 있기 훨씬 이전에 나의 어머니와 명숙은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d와 국민학교 같은반 짝꿍이던 시절이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학부모 참관수업이란게 있었다.
당시 맞벌이를 하던 나의 어머니도 그날 만큼은 다니던 회사에 휴가를 내고
참관수업을 하러 학교로 오셨다. 그리고 같은 장소에…
명숙도 학부모로 왔던 것이다.
나의 어머니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그날 나는 어머니가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 조차 관심밖이었다.
그날 반 아이들의 분위기 또한 어수선했다.
앞에 앉아있던 아이들이 뒤를 돌아보며 d에게 물었다.
“너희 어머니셔?” d는 그런 상황이 익숙한듯 멋쩍어했다.
당시 어린 내 눈에 봐도 명숙은 다른 모든 어머니들 사이에서 홀로 빛나고 있었다.
다른 어머니들과 다르게 꾸미려 애쓴 흔적조차 없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명숙을 더욱 빛나게 했다.
기껏해봐야 여대생쯤으로 보이는 명숙은 d의 누나라고해도 믿을 정도였다.
가끔 길거리에서 그녀에게 농을 걸며 꼬시려 드는 남자들도 있었다.
그럴때마다 명숙은 “유부녀. 국민학교 다니는 아들있음”
이라고 이마에 써놓고 다니고 싶을 정도였다.
당시 그녀는 이미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고향을 떠나 꿈에 그리던 남자와 사랑을 하고, 그의 아이를 낳고
그의 아내가 되어 아무런 경제적 부담없이 살아가는 삶.
그녀는 매일매일이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d가 사춘기에 접어들자 안그래도 활달하고 사교적이었던 d는 집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남편은 일년의 삼분의 일을 지방으로 출장다녔기에 명숙은 집에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다.
신혼때 남편은 출장을 가면 거의 매일 전화를 했다.
매일하던 전화는 일주일의 한번으로 2주에 한번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d가 어릴적 남편은 집으로 퇴근을 하면 어김없이 그녀를 번쩍안아들고 침대로 가서
명숙을 뜨겁기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 빈도 또한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명숙은 자신이 권태를 느끼는 것 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다.
호강에 겨워 요강에 오줌을 싸고 있는거라고 느꼈다.
든든하고 멋진 남편과 착하고 인정많은 아들.
원래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으나 알뜰살뜰 모아 불린 자산들.
그녀는 그때 너무도 많은 것을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d가 중학교에 입학하자 명숙은 비로소 자신의 배움에 대한 꿈을 이루려했다.
그녀자신이 마치지 못한 배움에 목말라있기도 했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d를 위해서 이기도 했다.
훗날 아들이 며느리감을 데려왔을때 어느 정도 면이라도 세워주기 위해서…
그녀는 방송통신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방송통신 고등학교는 한달에 한번 학교 교실에 모여 실제 수업을 했다.
같은 반 학생의 대부분은 그녀의 이모 삼촌뻘들이었다.
“젊은 처자가 어쩌다가 고등학교도 못나왔데?”
오지랖 넓은 같은반 어르신들이 명숙에게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명숙이 자신의 나이와 중학생 아들이 있음을 밝히자 어르신들은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워했다.
“아이고… 애가 애를 낳았구만”
방송통신고의 오프라인 모임은 수업을 위한 것이 아닌 사실상
친목과 사교를 위한 모임이었다. 그들은 매일같이 큰 식당을 예약해서
수업이 끝나면 고기를 굽고 서로 술을 따랐다.
그 술자리에서 자신의 큰오빠뻘 되보이는 남자가 추근덕거리기에
명숙은 딱한번 그 모임에 참석한 이후로는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
명숙의 남편은 젊은 나이에 회사에서 임원으로 승진을 했다.
남들은 부러워했지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현장일이 체질에 맞았지만 임원이 된다는 것은 현장을 떠난다는 말과 동일했다.
명숙은 남편이 이제 지방출장을 다니지 않고 매일 집으로 퇴근한다는 사실만으로 좋았다.
그러나 명숙이 한가지 간과한것이 있는데 그가 임원이 된다는 것은
그가 거래처와의 영업을 위해 거의 매일같이 술자리를 해야한다는 말이었다.
접대를 해야하거나 접대를 받아야만 하는 자리가 그가 다니던 회사의 임원의 자리였다.
그는 대한민국의 샐러리맨 답게 꾸역꾸역 그 일을 했다.
일주일에 3일 정도는 만취해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을 보며 명숙은 자신이 오판했음을 깨달았다.
한숨을 푹푹 쉬는 남편에게 이런말을 하기도 했다.
“회사 그만두고 우리 장사나 할까? 나 뭐든 잘할 자신있어”
매일매일 영혼없이 출근을 하고, 술이 떡이되어 퇴근하는 남편을 보며
명숙은 남편의 그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명숙의 남편도 회사를 벗어나 관련된 직종에서 자기 사업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던 그때에… IMF가 터져버렸다.
지금은 역사책에 기록된 사건이지만, 이글을 쓰는 나도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들의 삶도 IMF 이전과 이후로 나눌수 있을만큼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온국민이 실직과 도산의 공포을 갑작스럽게 맞딱들였다.
명숙의 남편은 다행히도, 하지만 결과적으론 불행히도,
실직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준비하던
퇴사와 창업은 물거품이 되었다. 또한 거래처들의 도산이나
사업축소로 인한 매출의 감소를 버티기 위해 더욱 더 건실한
사업체와의 거래를 위한 영업을 뛰어야만 했다.
생각해보면 d의 아버지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실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의 스트레스와 술이 원인이었을 것이다.
매일매일 안색이 어두워져 가는 남편을 보는 명숙의 가슴은 찢어져만 갔다.
마음같아선 회사로 쳐들어가 남편을 끌고나와 어디 공기좋은 시골에
감금하고 싶을 정도였다. 훗날 명숙은 그때 그러지 못했음을 두고두고 자책했다.
명숙의 남편은 d가 고3이던해에 결국 쓰러져버렸다.
병원에서는 이미 손을 쓸수 없을정도로 간경변이 심하다고 했다.
말그대로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명숙은 이내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남편이라는 큰 산의 그림자처럼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녀가 큰 산이되어
남편을 구해내리라 다짐했다. 다행히도 명숙에게 금전적 여유는 있었다.
명숙은 남편을 정성스럽게 간호하면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용하다는 한의원부터 외국에 가서 치료를 받는 방법까지 모조리 알아보았다.
가산을 털어가며 한의원을 전전하고 대학병원들을 다녔다.
대학병원에서는 명숙의 결기에 난감해했다. 시한부라는 말을 꺼낼때마다
담당의사에게 사정사정을 하며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미국의 병원이라도 소개시켜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온 신경이 남편의 회복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명숙은 아들인
d가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휴학하고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 또한 몰랐다.
엄청난 돈과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그 모든 노력은 단지 시한부를 연장하는 것에 그쳤다.
몹시 추웠던 그해 늦겨울. 남편은 온몸이 새카맣게 타 버렸고,
그의 삶을 짓눌러오던 그 어깨에 올려진 모든 짐들을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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