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6)
그야말로 그녀의 세계는 무너져내렸다.
원래 신을 믿지 않는 명숙이었지만 신이 있다면 멱살을 잡고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명숙은 남편이 느낀 평생의 걸친 죄책감과
상실감을 알고있었다. 내색은 안해도 남편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와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에게 죄책감과 상실감이라는 상반된 두 감정을
그의 두 어깨에 짊어지고 살았다. 명숙은 남편을 길러준 그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실신할 정도로 통곡하던 남편을 보며 한없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한번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는 늘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그 맘고생을 하지는 않았을텐데 하며 자책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그의 그런 어머니에 대한 부채의식이 늘 그의 삶을 짓눌렀음을
그녀는 똑똑히 알고있었다. 남편은 한없이 행복한 순간에도 늘 이방인으로 살았음을..
그런 그가 너무 안쓰러워서 그녀의 마음은 무너져내렸다.
그가 그 짐을 내려놓기전… 그러니까 생물학적인 사망선고 직전 그녀는
새카맣게 변해버린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고 연신 입을 맞추며
남편의 귀에 속삭였다.
“당신 잘못한거 하나도 없어. 나랑 같이 살아줘서 고마워.
당신 덕분에 내 인생 행복했어. 고마워 태어나줘서.
고마워 내 남편이 되어줘서…“
그녀의 세상은 정지한듯 그 자리에 멈추어져 있었지만,
세상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장례를 치루고 화장터를 가고
납골당에 갈때도 그녀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었다.
망자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 그가 없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했다. 그녀는 솔직히… 남편을 따라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가 세상의 끈을 놓치못한 이유는 그녀의 아들..
d가 세상에 존재했기 때문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고3때
아버지가 쓰러지셨다. 명숙의 신경은 온통 남편에 가 있었기에
d의 수능과 입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둘 겨를이 없었다.
그럼에도 d는 꿋꿋이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갔다.
훗날 안 사실이지만 d는 학교를 휴학하고 돈을 벌러 다니기까지 했다.
어느날 그가 통장을 건네며 병원비에 보태 쓰시라고 말했을때
명숙은 또한번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자신의 무능함을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한없이 멈춰져있던 그녀의 삶에 새로운 시간을 흐르게 만든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d에대한 책임감 덕분이었다.
d는 남들이 대학생활을 즐기고 미팅을 해야할 무렵 집안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휴학을 했다. 그녀는 그런 d가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상실감을 만끽할 여유조차 사치라고 느꼈다. 그녀는 재빨리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
자식을 건사해야할 책임감에 또다시 직면했다.
요리에 자신이 있었기에 식당을 할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d가 창업을 위해 부동산을 돌아다닐때 부동산 사장님으로 부터
qq동 먹자골목 목 좋은 곳에 아주 좋은 매물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편의점으로 그 앞을 지나다니는 유동인구가 어마어마하며 권리금이 쎄게 붙은만큼
자리값을 하는 곳이라고 소개를 했다. d는 그 편의점을 인수하자고 명숙에게 말했다.
직접 시장조사를 하기위해 편의점앞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었는데
손님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들락거렸다 했다.
두려운 마음이 앞섰지만 d의 확신을 따라 서둘러 계약했다.
모아둔 자산은 망자가 된 남편의 병원비를 하느라 많이 날렸기에
명숙은 자신이 살아온, d가 태어나고 자란 그 집을 팔기로 했다.
남편이 죽은후로는 혼자서 살아갈 자신이 없는 집이었기에
흔쾌히 매물로 내놓았고, 땅값 비싼 서울 지역이라 그런지 예상보다
비싼 가격으로 빠르게 팔렸다.
이사를 하는 날 명숙은 깊은 상념이 잠겼다.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집이었다. 명숙은 d가 보지 않는 곳에서
숨죽이듯 울음을 터뜨렸다. 한 세월이 무심히 지나간 느낌이었다.
새로 인수한 편의점은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명숙은 평일주간을
d는 가장 손님이 많은 주말야간을 맡았다. 매출은 높았지만,
본사에 내는 돈이며 가게 월세며 건물 관리비며 아르바이트생 월급을 주고나면
수지맞은 장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업무강도가 강한 주말야간이 문제였다.
시급을 아무리 높여도 장기간 일하는 사람을 구하기 힘들었다.
그녀가 아들과 함께 주말야간을 하기로 결심한 그날
아들 d가 쓸만한 알바를 구했노라 말을 했다.
알고보니 그 알바생은 아들의 초등학교 동창인 x라 했다.
그러고보니 x는 남편의 장례식에도 와서 제 집안일인양 음식을 나르고
새벽에 아무도 없는 접객실 구석에 누워 쭈그리고 자던게 생각났다.
말은 안했어도 x랑 친하게 지냈었구나 라고 명숙은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발인전날 그 x가 식사는 꼭 하셔야 한다며
밥과 육개장을 퍼나른 후 ‘식사는 꼭 챙겨드셔야 한다며’
밥 생각없는 자신을 억지로 끌고가던 순간도 생각이 났다.
밥 생각이 없었기에 소주한병을 가져다 달라는 말에 군말없이 소주를 가져다 주고
억지로 술한잔을 목으로 넘기고 밥 한숟갈을 뜰때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비워진 잔에 소주를 다시 따르던 x가 생각이 났다.
명숙은 x를 떠올리면 헛웃음이 났다. 몰래 자신을 훔쳐보던
그 꼬맹이가 이제 어른이 됐구나 라고…
x가 주말야간 알바를 시작한 이후로 d의 모습도 자연스럽게 이전으로 돌아간듯했다.
밝고 명랑해진 모습을 보니 명숙도 안심이 갔다.
어느날 d는 새로이사한 집들이를 하러 x가 온다고 했다.
음식을 준비한다고 하니 d는 그저 술과 배달음식이면 된다며 말했다.
가볍게 집에서 친구끼리 놀자는 것인줄 알고 명숙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었는데
x는 멀끔한 차림에 손에는 대형마트에서 산 한우선물세트를 들고 나타났다.
명숙은 그걸 보고 참으로 x답다고 생각했다.
계절은 신록이 푸르른 늦봄을 향하고 있었고 다시 일상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편의점에 어느정도 시스템이 구축되고 안정을 찾아가던 무렵
d가 불현듯 폭탄선언을 했다. 군입대를 하겠노라며.
명숙은 내심 d가 그렇게 서둘러 군대를 가는것이 못마땅했다.
그녀의 만류에도 d의 결심은 확고했다.
d는 사실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어했고 전공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다.
이제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d는 자신의 꿈을 위해 일단 군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다.
입대전까지 자신의 후임을 구해두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d는 자신의 친구 x가 주말야간을 빈틈없이 채워줄거라 믿고 있었다.
명숙은 명문대에 다니는 x가 굳이 편의점 알바를 하는게
이해가 안되었으나 d의 자신만만함을 믿었다.
저리고 아픈 심정으로 d를 훈련소로 보냈다. d는 군대에
가기 직전까지 자신의 후임을 뽑고
편의점일에 헌신적이었다. 명숙은 그게 너무도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그렇게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안된 주말야간의 새 알바생이
울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도저히 못하겠노라고.
명숙은 난감했다. 그렇다고 주말야간을 x에게 오롯이 혼자 맡기기도 곤란했다.
명숙은 결심을 할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주말야간 알바를 하고
기존이 명숙이 하고 있던 평일오전은 새로운 사람을 구하겠다고.
그 결심을 밝히자 x는 즉각적인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젊은 우리도 하기 힘든 일이에요. 어머님 못하세요.
주말은 평일이랑 달라요. 감당하기 힘드세요”
하지만 어쩔수 없었다. x는 자신이 혼자 주말야간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남의 자식에게 그런 짐을 떠넘길 수는 없었다.
결국 명숙은 아들의 친구인 x와 함께 주말야간을 함께 책임지기로 결심했다.
[출처]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6) (야설 | 은꼴사 | 놀이터 | 썰 게시판 - 핫썰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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