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교회 봉사 활동, 알바 11편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1시경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야, 여보가 한말을 할아버지한테 다 말했어.
그랬더니 뭐래?
할아버지도 좋데. 마지막 가는 길을 도둑질을 하느니 당당하고 허심탄회하게 자기한테 말하고 싶데.
그래?
퇴원 수속은 오늘 다 밟아놓으셨고, 내일 오전에 퇴원해서 집으로 가시기로 했어.
응, 그래?
내가 집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까 당신은 내가 주소 찍어주는 곳으로 와.
같이 가지?
환자인데 셋이 가기는 좀 그렇다. 택시 타고 가면 돼. 주소 찍어주는 곳으로 내일 일 빨리 마치고 와.
두둥! 참 묘한 인연으로 일의 물꼬가 틔였다. 비록 다죽어가는 노인네이지만.
나는 그날 선잠을 자고 출근해서 잔업은 직원들에게 맡기고 일찍 퇴근해서 씻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핸들을 잡았다.
운전하면서 가는 내내 그 할아버지와의 첫 만남을 어떤 대화를 할지, 조건과 룰은 어떻게 할지 여러번 고쳐 생각했다.
생각을 내내 하다보니 네비를 놓쳐 근처에서 배회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호화주택이었다.
1~3층을 다 쓰고 앞뒤에 넓은 잔디 마당이 있는.
이 노인이 정말 열심히 살다 이 모든 것을 두고 가는구나 하는 인생의 덧없음이 순간 느껴졌다.
이 정도 살면 재산도 모아놓은 것이 많을텐데 삶이란 뭔가 하는 생각에 빠져들다, 그런데 이 노인이 파릇파릇한 내 아내와 아픈 몸으로 달콤한 삶의 마지막을 함께 할 거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집 앞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다.
잠시후 아내가 문을 연다.
자갸 왔어? 빨리 들어와.
묵묵히 아내를 따라갔다.
거실에는 화제의 그 노인분이 양복 바지에 흰 와이셔즈를 입고 멍하니 정원을 내다보고 있다
허벅지와 무릎에는 담요를 덮고 고목나무처럼 가만히 소파에 앉아 있다.
사람에게서 풍기는 이미지가 인품이 있어보이고 노인이라고 깜볼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만 병세 때문인지 많이 여워었다.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 인사에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는 노인.
아, 왔습니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어여 여기 앉으세요.
나는 자리에 앉아 노인과 이런저런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이 늙은이가 주책이 심해 죽기 전에 어려운 부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말씀 계속하십시오.
조건을 말하세요.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무슨 조건을 단답니까? 난 겉은 멀쩡해도 내장은 암이 다 퍼져있어 이제는 항암 치료도 받는 것도 지쳤소이다. 다 낳았다고 생각한 게 재발한 거지요. 이제는 조용히 떠나고 싶습니다.
할머니께선 언제 돌아가셨습니까?
내 나이 50이 되기 전에 아내도 암으로 죽었으니 벌써 20년 정도 되었구랴. 그땐 챙겨주지 못하고 떠나보낸 게 못내 아쉽습니다. 아내가 죽고나서야 사업이 풀렸어요. 이 악마같은 돈이 필요할 때는 없다가도 그렇게 필요하지 않을 때는 곁에 와있구려. 허허.
안타까운 사연이시네요.
그래, 우리 바깥양반께서는 제가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습니까?
영감님을 뵈니 다소 마음에 놓입니다. 제 아내가 영감님 간병을 여기서 24시간 하되 일요일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리고 저도 이곳에서 종종 자고 출퇴근을 할 수 있게 방을 내어주십시오.
오, 그래요? 그거야 어렵지 않구만. 또 원하는 게 있습니까?
저는 여기에 있는 동안 영감님께 신경 쓰이게 하지 않을 터이니 저를 개의치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그리고 계속 말씀해보세요.
제가 언제든지 영감님 곁에 왔다가도 신경쓰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필요할 땐 저도 아내의 간병을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 시선은 없다고 생각하고 편히 지내주십시오. 또 있는데 만약 여행을 가고 싶다면 제가 기사를 해드릴테니 미리 말씀해주십시오.
그래요. 그럽시다.
그리고 아픈 몸이시지만 제 아내에게도 배려 많이 해주십시오.
그거야 저도 바깥분 아내분 때문에 내 중년 시절 내 아내가 회상이 되었는데 잘 해드릴 수 밖에 없구랴. 걱정 마시구려.
그러면 되었습니다. 영감님 간병 잘 받으시고 제 아내에게서 돌아가신 할머니의 추억을 많이 느끼시기 바랍니다.
노인은 무릎 담요 속에서 흰 봉투를 꺼내어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에게 건네준다.
이거 받으세요.
아내는 나를 빼꼼히 쳐다보더니 받는다.
봉투에는 3천만원이 들어있소이다. 크다면 큰 돈이지만 내겐 쓸 수도 없는 허무한 돈이외다. 남의 부인에게 내 아내의 기억을 되살려달라고 하는데, 사실 이 돈도 적은 돈이겠지요. 그리고 저 이제 얼마 못삽니다. 내 사는 동안 매달 오늘 날짜에 이 돈을 드리겠소이다.
영감님, 감사함 잘 받겠는데 큰 돈 때문에 이런 허락한 건 아님은 기억해주십시오.
고맙구랴. 내가 마지막 길에 자식 복은 없어도 사람 복은 있구랴. 그리고 나도 하나 부탁합시다. 내가 통증으로 심하게 아파해도 두분은 나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마시구랴. 난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싫소이다. 이 약속 꼭 지키시구랴.
네에, 잘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절대로 날 병원으로 보내시면 안됩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어르신.
그리고 이곳에 있는 동안 바깥양반의 존재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 터이니 두분도 내 집에서 평소 부부처럼 지내셔도 됩니다. 다만, 이 집의 주인은 나이니 최종적인 결정은 배려 차원에서 나에게 있다는 걸 이해해주시구랴. 그리고 바깥양반에게도 종종 심부름을 시키겠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나 내가 죽거든 내 친지에게는 절대로 알리지 마세요. 친지도 많지도 않습니다만, 알리고 싶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화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시구려. 나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안방에 가서 눕겠습니다. 바깥양반은 저쪽 건너방을 쓰셔도 좋습니다.
네, 어르신.
그리고 간병인 양반, 이제부터는 이름으로 부를테니 그리 아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 좀 안방으로 부축 바랍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노인을 부축하려고 했는데 아내가 눈치를 준다.
그리고나서 아내가 노인을 안다시피해서 안방으로 데리고 간다.
안방에서 노인을 눕히고 나니 노인은 나는 이제 되었으니 옷을 갈아입고 오시구랴. 남편분과 얘기도 나누시고 오셔도 좋습니다.
안방에서 나온 아내는 나더러 건너방으로 오라며 내 손을 잡는다.
건너방을 열어보니 방은 넓었고 트윈침대가 있고, 창문 앞에 작은 소파와 테이블이 있다.
아내는 테이블 위에 포개진 옷을 들고 갈아입는다.
오래된 패션의 옷이었다. 무릎까지 오는 치마 그리고 하얀 블라우스.
그리고 아내가 커피색 팬티스타킹을 신는다.
비록 노인이지만 누군가의 제 2의 아내가 되는 모습이 한츳 흥분되고 섹시하기만 하다.
나는 아내에게 질문했다.
여보, 옷이 왜 이리 구닥다리야?
돌아가신 할머니 옷이래. 젊을 때 가셨으니 그나마 다행히 할머니 옷이 아니네.
이 노인분이 당신을 단단히도 죽은 아내를 빙의하려나 보네.
몰라. 변태 신랑 때문에 죽은 사람 옷도 입어보고. 안방 옷장 열면 잔뜩 있어. 말 시키지마.
그래? 진짜 재혼도 않고 죽은 아내를 많이 생각했나 보구나.
나 장깐 옷 입은 거 보여주고 올테니까 자기는 여기서 쉬고 있어.
(순간 아내를 부르며) 여보, 들어가더라도 안방문은 항상 닫지 말고 조금씩 열어놔! 알았지.
몰라, 이 변태 신랑아. 으이구.
내 방을 열어놓고 안방으로 들어간 아내가 문을 닫아버린다. 그러다 잠시 후 문을 1/3 정도 열어둔다.
나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리와요. 내 옆에 누워서 나 좀 기대게 해줘요. 내 옷도 편한 걸로 갈아입혀주고.
네에. 할아버지. 잠시만요.
벌써? 진도가 이렇게 빠르단 말인가?
정적이 흐르고, 나는 침대 위에 누워 뛰는 심장을 달랜다.
그리고 한 30분이 지나 안방 곁에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노인은 아내를 꼭 껴안고 둘은 아무 말이 없다.
이 썰의 시리즈 (총 12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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