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과수원집 막내아들)
아무리 사리분간을 잘못하는 아이의 앞에서라도 우리가 입조심을 해야하는 이유가 있다.
비록 그 뜻을 알지는 못해도 말투와 분위기로 세상의 비밀을
깨우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결코 어리석은 존재들이 아니다.
과수원집 막내아들이 자신의 비밀을 알아버린 것은 어쩌면 누적되어온 일련의
사건들의 결과였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 비로소 자신을 향한
모든 세상의 태도의 비밀이 베일이 벗겨지듯 드러난 것은 그가 막 국민학교를 입학한 그 해였다.
막내는 그날 신나게 논길을 뛰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손에는 시험지가 쥐어져 있었다. 빨리 돌아가서 엄마의 칭찬을
듣고픈 마음에 그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친구들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헐레벌떡 집으로 뛰어갔던 것이다.
집에 들어서자 대청마루에는 할머니가 앉아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학교 다녀 왔습니다!” 언제나 그에게 무서운 할머니였지만
오늘만큼은 평소와 다르게 크고 씩씩하게 인사를 했다.
엄마가 있을법한 부엌으로 달려가 차오르는 숨을 헐떡거리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 나 백점맞았어! 올백맞은 사람은 우리학교에 나밖에 없어!”
엄마는 시험지를 건네받아 보고는 어린 막내의 엉덩이를 두들기며 말했다.
“어이구 내새끼 장하다!”
마당으로 나오자 할머니가 다소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가 그리 호들갑이냐?”
“할머니… 저 시험 백점 맞았어요”
엄마와는 온도차가 있더라도 칭찬을 기대했던 막내는 할머니의 차가운 대답을 들어야했다.
“머리는 지 애미 닮았나보네”
막내는 터덜터덜 부엌으로 다가가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들고 말했다.
“엄마! 엄마도 어렸을적에 공부잘했어?”
“무슨 소리야 엄마는 학교 다니지도 못했는데”
“근데 할머니가 나 엄마 닮아서 공부 잘하는거래”
늘 순종적인 며느리였지만, 막내와 관련된 일만큼은 그녀는 시어머님께 할말은 했다.
밖으로 뛰쳐나가 시어머니 앞에서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그는 부엌문간에 서서 지켜보았다.
“어머님! 막내앞에서는 제발 말조심좀 하시라고 그렇게 신신당부 했잖아요!“
”넌 벨도 없냐? 으이그 미련 곰탱이 같은것“
그날밤 막내는 잠자리에 누워 자신을 향한 세상의 태도를 해석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자기와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누나 형들.
어린 막둥이를 귀여워할법도 했건만 늘 자신에게만 벽을 치는듯한 형제들의 행동.
할머니의 싸늘한 태도.
그 중에서도 가장 이해가 안가는 것은 동네어르신들이 그가 인사를 건낼때마다
서로 귀속말로 속닥속닥하는 것이었다.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좋았던 그는 그날밤 자신의 형제들과 어머니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옆에서 코를 골고 자는 어머니를 그는 흔들어깨웠다.
“왜 안자고?”
“엄마… 나 엄마아들 맞지?”
그제서야 반쯤 잠에 취한듯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바뀌었다.
“왜? 누가 너보고 뭐라고 해? 누구야?“
”아니 그냥.. 나 엄마아들 맞지?“
“잘들어. 너 내배 아파서 낳은 내 아들이야. 누가 뭐라고 하거든
엄마한테 와서 말해. 내가 가서 낫으로 목을 확 그어버릴테니까”
한번도 엄마의 그런 말을 들어본적이 없었기에 그는 잠시 안심이 되었다.
그러나 비밀이라는게 어디 감추어질수 있던가?
머지않아 그는 자신이 아버지가 밖에서 낳아온 혼외자식이며,
그를 낳아준 생모는 아버지가 마련해준 집을 팔고 각종 패물들을 들고 도망을 갔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유일하게 놓고 간것은 아들인 자신이었다.
그 이후 그의 세계는 이전과 달라졌다.
친구들과 뛰어놀던 논두렁도 계곡도 뒷산도 모든게 낯설어지고
비현실적인 것이 되었다.
여담이지만 훗날 그를 키워준 그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그는 3일 밤낮을 통곡을 했다. 너무 서럽게 운 나머지
동네사람들이 “그래도 호상이네” 라는 말조차 꺼낼수 없었다고 한다.
실신을 할 정도로 통곡을 하는 막내아들을 보며 마을사람들은
혀를 끌끌차며 이렇게 말했다.
“지 배 아파 낳은 자식들보다 낫구먼”
천상 난봉꾼이자 그래도 성실하고 이재에 밝은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그래도 가산을 불려가며 리를 대표하는 부자에서 읍내에서도 손꼽히는 땅부자집으로
과수원집을 키웠다. 여자에게 잘못 빠져서 한번의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가 이룩한 성과에는 비할바가 못되었다.
“나 아니었으면 니들은 저기 저 명숙이네처럼 남의 땅이나 빌어먹고 살았을거다”
명숙의 집안을 들먹이며 그렇게 자신이 이 집안의 가산을 책임지는 권력자임을 과시했다.
그러나 명숙의 집안의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던 그의 조모는 그럴때마다 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그 집안이 우리동네에서 대대로 존경받던 먹물집안이여”
그런탓에 어릴적부터 그는 명숙이 신경이 쓰였다.
선머슴아 처럼 남자애들을 두들겨패고 다니는 조그만 아이.
늘 꺄르륵거리며 거침없이 뛰어다니던 아이.
우리집 과수원에 몰래 들어와서 복숭아를 서리하던 아이.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들어 한번은 몰래 잘익은 걸 하나 건네주기도 했다.
과수원집 막내아들은 형제들과는 다르게 똑똑하고 성적이 좋았다.
사실 그가 공부를 열심히 한것은 그곳을 떠나기 위함이었다.
어머니의 관심과 애정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였으나, 그래도 그는 늘 그곳에서
이방인임을 느꼈다. 어머니도 그의 그런 마음을 눈치챘는지
“너는 이 시골바닥에서 살지말고 서울로 가서 너 하고싶은대로 살어라”
라고 말씀 하시곤 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자
그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래도 내새끼 얼굴 잊어먹지 않게
방학때만큼은 꼭 내려와 있으라” 라고 말을 했다.
“x 상병님! 누가 면회왔지 말입니다. 아주 이쁜 여자라던데요?”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면회 올 여자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한 그는 몇번의 미팅도 하고 동아리의 여자동기나 선후배들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왠지 여우같아 보이는 그녀들에게 내심 반감이 있는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어머니같이 곰같은 여자가 좋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면회실에 가서 두리번 거리다가 의외의 얼굴을 마주쳤다.
거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서툴게 화장을 한 명숙이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니 어이가 없기도 하고, 왠지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볼때마다 어린티를 조금씩 벗고 제법 여성스럽게 변해갔지만
이제는 정말 어엿한 성인여성처럼 보였다.
앞에서 이러지고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명숙의 모습에
자연스레 웃음이 터져나왔다.
상상이나 했을까? 이런 좁고 허름한 시골여관에 명숙과 단둘이 있게 될줄은
사실 그는 갈등을 하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끓어오르는 성욕과
낳아준 생모가 남기고간 트라우마가 그의 내면에서 서로 다투고 있었다.
그는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거친 숨소리를 내뿜고 앉아있는
명숙에게 말했다.
“너 알지? 나 밖에서 낳아온 자식인거?”
명숙은 다소 주눅이 든것처럼 대답했다.
“그게 왜요? 저 그냥 오빠 보고싶어서 왔어요…”
그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출처]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과수원집 막내아들) (야설 | 은꼴사 | 썰 게시판 - 핫썰닷컴)
https://hotssul.com/bbs/board.php?bo_table=ssul19&page=1695&sod=asc&sop=and&sst=wr_hit&wr_id=202503
[재오픈 공지]출석체크 게시판 1년만에 재오픈!! 지금 출석세요!
[EVENT]07월 한정 자유게시판 글쓰기 포인트 3배!
이 썰의 시리즈 | ||
---|---|---|
번호 | 날짜 | 제목 |
1 | 2023.05.07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9) (61) |
2 | 2023.05.03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8) (47) |
3 | 2023.05.02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7) (51) |
4 | 2023.05.02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6) (47) |
5 | 2023.05.01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5) (47) |
6 | 2023.04.27 | 현재글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과수원집 막내아들) (53) |
7 | 2023.04.26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3) (62) |
8 | 2023.04.25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2) (56) |
9 | 2023.04.25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1) (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