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값 15

여자의 값 15
멀리서 희정과 그녀의 남편이 손을 잡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남편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못했다.
희정은 내 모습을 일찌감치 알아챈 모양인지 일부러 내 눈을 피한다.
조금 헝클어진 머리와 힘들게 내딛는 발걸음을 보니 왠지모를 흐뭇함이 느껴진다.
나는 오늘도 이렇게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곤 유유히 집으로 가기 위해 차에 탔다.
그때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
‘진짜 콘돔 끼고 한거 맞아?’
‘당연하지. 니가 아까 줬잖아. 왜?’
‘근데 왜 자꾸 그게 새어나오는거 같지.,’
‘뭐가?’
‘...좆물...’
‘푸흡... 뭐 콘돔에 구멍이라도 났나보지. 큭..’
‘..놀리냐?...후...’
‘어쨌든 수고했고, 다음에 봐.’
나는 웃음을 내뱉으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
.
.
일주일 쯤 지났을까..
또다시 내 핸드폰에 그녀의 이름이 떴다.
‘왜 또 무슨 일이야?’
‘그냥.. 심심해서.’
.
.
.
“아아아!! 조금만.. 살살..!”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내 좆맛 못 본 여자는 있어도 한번만 본 여자는 없다고!”
“아으으응..!!”
.
.
.
그녀의 집과 멀찌감치 떨어진 XX모텔에서 우린 긴 밤을 보냈다.
“후아.. 근데.. 남편은 뭐하는 사람이야?”
“으읍......그냥.. 회사 다녀. 그렇게 큰 데는 아냐.”
입가에 내 정액이 뒤범벅 된 그녀가 티슈로 얼굴을 두어번 닦더니 말했다.
“...너는?”
“알아서 뭐하게? 칫..”
“왜. 이렇게 깊은 사인데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서.”
“..그냥.. 네일 샵 하고 있어.”
“오.. 그거 요새 돈 된다던데. 어디서 해?”
“아냐.. 그냥 아빠가 건물 하나 줘서. 그거 관리할 겸.. XX동 쪽이야.”
“아, 그래? XX동이면 우리집이랑도 별로 안 머네.”
꽤나 흥미로운 대화였다.
이십대 후반에 건물주라니..
어쩐지 얼굴에서 살짝 귀티가 나긴 했다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널브러진 그녀의 몸매를 훑어보고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나가서 피면 안돼?! 진짜 담배 냄새 토할 거 같다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열고 나갔다.
엘리베이터에 문이 열리고 한 커플이 어깨동무를 한 채 히히덕거리며 내린다.
그때 나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바로 희정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끼고선 내리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그 사람이었다.
그 놈은 당연히 나를 알아보지 못한 채 여전히 옆의 여자와 재잘대며 모텔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쳇... 너도 똑같구나...’
나는 콧방귀를 뀌며 엘리베이터에 탔다.
.
.
.
어쨌든 그렇게 나는 그녀와 자연스럽게 불륜을 시작한 것이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 했던가.
우리의 로맨스가 딱 알맞게 달콤할 때 쯤이었다.
“나.. 말할 게 있어.”
“뭔데..?”
“나.. 생리를 안해.. 벌써 이틀 지났는데.. 이런 적이 없었거든..?”
“....그냥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닐까?”
“....”
그녀는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다가 가방을 뒤져 무언가를 꺼내 내게 보여준다.
임신 테스트기였다.
그것에는 빨간 줄 두개가 선명하게 그어져 있었다.
“....”
“혹시나 싶어 해봤는데...”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다른 남자는..?”
“무슨.. 내가 그렇게 헤픈 년인 줄 아냐?”
뭔가 말이 앞뒤가 안맞는 듯 했지만 난 대답할 수 없었다.
“남편은? 치료받고 있잖아?”
“그게.. 병원에서도 힘들대. 무정자증이란게...”
“그럼.. 내 애라는 거네?”
“.....응.. 그럴거야..... 그러게! 조심 좀 하지!...휴...”
그녀는 이 상황을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헷갈리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힘들게(?)얻은 아이일테니까..
“남편도 언젠간 알게 될텐데..”
나는 멀리 지나다니는 차들의 불빛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어찌해야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기에 그녀가 적극적으로 대책을 마련해 줬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내가 남편한테 말할게.”
“어떻게?”
“뭐.. 하.. 나도 사실 어떡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대신 오빠도 나와 줘야 해.”
“삼자대면?”
“응..”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막막했다.
.
.
.
.
그 주 주말.
나는 그녀의 연락을 받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엔 손님이 별로 없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멀리 테이블에 앉은 부부가 보인다.
남편은 아직 무슨 일인지 하나도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앉아.”
“..누구..?”
그녀의 남편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고 서로의 할 말이 없어질 때 쯤 내가 말문을 열었다.
“..네가 설명할래?”
“..으응..”
희정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여보. 사실...”
그녀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져 갔다.
“무슨 일인데?”
남편은 아직까지 상황 파악이 안되는 듯 보였다.
“나 사실은... 하.. 조금 충격적일지도 모르곘지만.. 말을 해야할 것 같아서..”
“...?”
“나.. 사실은, 이 남자 아이를 가졌어.”
“....뭐?”
남편의 표정은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나는 잠자코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미안...해...”
“무.. 무슨.... 이런.....!”
“오빠도.. 내 심정 알잖아.. 흐흑...”
희정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너.. 정말.. 너무해....!”
“하.. 정말 미안해... 근데... 근데... 나... 이 아이 낳고 싶어..,”
“......”
“...죄송합니다.”
나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
남편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아내를 뺏긴 이 상황에 대한 슬픔일까. 아내를 임신시키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한심함일까.
나는 이 남자가 딱해 보였다.
“..이런 씹.... 빌어먹을 새끼들아!.... 네가 어떻게..!”
남편의 슬픔은 분노로 변한 듯 했다.
남편이 테이블을 쾅 치며 소리를 지르자 몇 안되는 카페의 손님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이렇게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이 너무나 창피했기에 결국 입을 열고야 말았다.
“그쪽도 떳떳하진 않잖아요?”
희정과 그녀의 남편이 묘한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저번 달이었나? XX동 XX모텔에서 말이죠?”
“....?”
“아주 좋아 죽으시던데? 젊은 아가씨 끼고서... 풋...”
“... 무슨 말하는 거야?”
희정이 놀란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네 남편.... 아니, 이제 남편도 아닐테고, 암튼 이 사람 말이야. 그때.. 큭.”
‘벌떡’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겉옷을 챙겨들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카페를 나가버렸다.
“.....쟤도 바람 핀거야....?”
희정이 허탈한 표정으로 도망가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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