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2-14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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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전
第14章 흡정마녀(吸精魔女)의 정체
"학!"
맹렬한 기세로 문사의 순양지기를 흡취하고 있던 흡정마녀는 갑자기
가해진 이 돌연한 기습에 질겁했다.
파팟!
그녀는 반사적으로 문사의 몸에서 떨어지며 옆으로 떼구르르 몸을 굴
렸다.
스스스!
헌데 그녀가 문사에게서 떨어지는 그 순간 태산같이 밀려들던 잠경이
갑자기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아차!'
흡정마녀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녀는 비로소 방금 전의 그 일초가
자신을 문사에게서 떼어놓기 위한 허초(虛招)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죽인다! 요녀!"
스윽!
그런 그녀의 눈으로 한 명의 청년이 살기 가득한 일갈을 토하며 질풍
같이 대웅전 안으로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한 손에 다섯 자 길이의 분수아미자를 든 청년!
바로 이검한이었다.
"당… 당신은!"
이검한을 본 흡정마녀는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이검한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퍼억!
그 직후 화끈한 통증이 그녀의 가슴에 느껴졌다.
"악!"
콰당탕!
흡정마녀의 젖가슴 사이에서 피분수가 확 일며 그녀의 교구가 일 장
밖으로 나뒹굴었다. 이검한이 휘두른 분수아미자가 그녀의 가슴을 벼
락같이 찔러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헌데 분수아미자를 찔러낸 이검한의 안색도 홱 변했다.
흡정마녀의 악명을 익히 들어온 이검한인지라 상대가 비록 여자지만
단번에 척살(刺殺)해 버릴 각오였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내공의
팔 할 이상을 분수아미자에 주입하여 흡정마녀의 가슴을 찔렀다.
그의 이 일초는 워낙 쾌속한지라 흡정마녀는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하
고 젖가슴 사이를 찔려버렸다. 당연히 흡정마녀의 몸은 분수아미자에
꿰뚫려야 했다.
헌데 분수아미자가 막 흡정마녀의 가슴을 꿰뚫고 들어가는 순간 강맹
한 무형의 벽이 분수아미자의 칼날을 저지했다.
그 반동으로 흡정마녀의 교구는 일 장 밖으로 나뒹군 것이다.
"선… 선천강기(先天 氣)!"
이검한은 경악을 토하며 쓰러져있는 흡정마녀의 앞으로 내려섰다. 흡
정마녀의 목숨을 구한 것이 일종의 선천강기임을 알아본 때문이다.
선천강기란 생명을 지켜주는 강대한 힘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 선천강기를 이끌어 내어 사용하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 화식(火食)을 하고 사념(思念)에 오염되면서 천부(天賦)
의 힘인 이 선천강기는 무의식의 세계에 가라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선천강기를 끌어내어 사용하려면 아주 특수한 수련방법이 필요
하다. 그 중의 하나가 흡정대법(吸精大法)같은 사술로 타인의 선천지
기를 흡취하여 내공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흡정마녀는 바로 그같은 사악한 수법으로 자신의 선천강기를 극대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녀의 선천강기가 지금보다 삼성(三成) 정도 더 강해지면 어떤
신병이기(神兵利器)로도 그녀를 해치지 못하게 된다.
이검한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맙소사! 채양보음의 사술로 선천강기를 강화시키는 수법이 있었다니
……!'
그는 내심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실 흡정마녀가 방금 전에 발휘한 선천강기의 태반은 타인의 선천지
기를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같은 기괴한 사공은 이
검한으로서도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물론 이검한이 연마한 옥룡음마(玉龍淫魔)의 옥룡흡정도인술(玉龍吸
精導引術)도 그같은 묘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옥룡흡정도인술을 시전하면 상대의 여자는 생명을 유지해주는
원정지기(元精之氣)를 빼앗겨 죽거나 폐인이 되고 만다.
해서 이검한은 옥룡흡정도인술을 연마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
태였다.
한데 흡정마녀는 그같은 사악한 술법을 서슴없이 연마하고 있는 것이
다.
이검한은 눈을 번득이며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죽여야만 한다! 이 계집을 이대로 방치하면 오래지 않아 무적(無敵)
의 선천강기를 지니게 된다!'
살의를 굳힌 이검한은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흡정마녀를 무서운 눈으
로 내려다 보았다.
이검한은 공포에 질려 자신을 올려다보는 흡정마녀의 눈동자가 왠지
어디선가 본 듯 낯익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천륜을 거역했으니 죽일 수밖에 없다!"
그는 싸늘하게 일갈하며 오른손을 쳐들었다.
쩌저저정!
그러자 삽시에 그의 오른손이 시퍼런 벼락으로 뒤덮였다.
"고… 고독강살(孤獨 煞)!"
흡정마녀는 이검한을 올려다보며 공포에 찬 신음을 발했다.
고독강살!
그렇다! 지금 이검한의 우수에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강력한 파
괴력을 지닌 파천황강살(破天荒 煞)이 운집되어 있었다.
제 아무리 흡정마녀의 선천강기가 강하다고 해도 아직은 미완성인지
라 이검한의 파천황강살에는 견디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검한의 우수가 내리쳐지면 숱한 사내들을 희생시킨 흡정마녀
의 교구는 박살날 수밖에 없었다.
헌데 바로 그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호호호! 내가 누군지 아직도 기억나지 않으세요, 이공자?"
갑자기 흡정마녀가 교소를 터뜨렸다.
사라락!
이어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긴 머리카락을 위로 쓸어 올
렸다. 그러자 아주 청순한 미소녀의 얼굴이 봉두난발 아래에서 드러
났다.
그 소녀의 얼굴을 본 순간 이검한은 눈을 부릅떴다.
"소… 소저는!"
봉두난발 속에서 드러난 소녀의 얼굴은 이검한도 잘 아는 낯익은 얼
굴이었기 때문이다.
"구… 구양소저!"
이검한은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비칠 한 걸음 물러섰다.
-구양소소(九陽素素)!
그렇다! 소녀는 바로 구양소소였던 것이다.
용서받지 못할 효웅 유령마제 구양수를 아버지로 둔 죄로 유운학에게
무참히 겁간당했던 비운의 소녀!
그 청순하고 가련했던 소녀가 불과 몇 달 만에 희세의 마녀로 화신하
여 이검한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이검한은 믿어지지 않는 표정으로 실성한 듯 중얼거렸다.
바로 그 직후였다.
"조심하게!"
옆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이 일었다. 소리를 지른 것은 바로 흡정
마녀, 아니 구양소소에게 양정을 갈취당해 죽을 뻔했던 비범한 문사
였다.
퍼억!
흠칫하던 이검한은 아랫배에 격렬한 통증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두
눈을 부릅떴다.
구양소소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독을 바른 한 자루 비수를 그대로 이
검한의 아랫배에 쑤셔 넣은 것이다.
"크윽!"
콰당탕!
이검한은 고통의 비명과 함께 뒤로 벌렁 나뒹굴었다. 거리가 너무 가
까운데다가 예상치 못한 불의의 기습인지라 제 아무리 이검한이라고
해도 피할 수가 없었다.
나뒹군 이검한의 아랫배는 삽시에 시뻘건 피로 물들었다.
"호호호! 잘 걸렸다. 어리석은 놈!"
구양소소는 깔깔 교소를 터뜨리며 발딱 일어났다.
이검한은 경악의 눈을 부릅떴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구양소저?"
비틀거리며 일어선 그는 불신과 회의를 금치 못했다.
두 달 전만 해도 순진무구하기 이를 데 없던 구양소소가 아니던가?
유령마제 구양수 같은 자에게서 어찌 저토록 착한 딸이 나왔을까 의
심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그런 구양소소가 지금 희대의 악녀로 변신하여 이검한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바득! 나는 세상 모든 사내놈들의 씨를 말려버리기로 작정한 몸이다
. 그리고, 네놈 역시 더러운 사내놈 중의 한 명이다! 더 이상의 이유
는 필요 없겠지?"
구양소소는 살기가 뚝뚝 돋는 눈으로 이검한을 노려보며 앙칼진 음성
으로 말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이검한은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그 동안 무엇인가 끔찍한 일을 당했구나!'
그는 구양소소의 신변에 어떤 참극이 발생했음을 감지했다.
그러자 구양소소에게 암습당했다는 분노보다 오히려 연민의 감정이
앞섰다.
"사정은 잘 모르겠으나 이래서는 아니되오, 구양소저!"
이검한은 탄식하며 구양소소를 설득하려 했다.
"소저는 젊고 아름다운 분이오. 자신의 몸을 악의 구렁텅이에 던져
더럽히는 일은 그만 두시오!"
"호호호! 내가 아름답다고?"
구양소소는 조소를 터뜨렸다.
"보아라! 이곳으로 이미 수백 명의 사내가 드나들었다. 이런 시궁창
이 네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느냐?"
그녀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거침없이 걷어올리고는 다리를 벌려 은밀
한 곳을 내보이며 악을 썼다.
비범한 인상의 문사를 겁탈한 흔적이 역력한 그 민망한 모습에 이검
한은 탄식하며 시선을 돌렸다.
"제발 스스로를 파괴하는 짓 따위는 하지 마시오!"
"웃기지 마라! 더러운 위선자 놈!"
구양소소는 그런 이검한을 향해 바득 이를 갈며 악을 썼다.
연민과 동정에 찬 이검한의 태도에 그녀의 방심은 온통 모멸과 억울
함으로 가득차 올랐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이 청년이 지금껏 상대해온 사내들과
는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검한에게는 여심을 이끌어들이는 강한
흡입력이 있고 그것은 구양소소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검한에게 방심(芳心)이 끌리고 있었
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이미 뭇 사내들에게 더럽혀진 몸이었다.
유운학에게 무참하게 더럽혀지는 순간 그녀의 마음은 이미 죽었다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은 결코 이검한을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이 구양소소를 억울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네… 네놈은 지금 내 손에 죽게되자 어떻게 이 위기를 넘기고 살아
볼까 허튼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네놈의 그 따위 치졸한
수법에 속아 넘어갈 줄 아느냐?"
구양소소는 악을 쓰듯 외치며 비수를 불끈 움켜쥐었다.
그녀의 비수는 금석을 무베듯 할 정도로 아주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십여 종의 극독이 묻어 있어 어떤 내가고수라도 일단 살짝이라도 그
어지면 전신이 마비되고 만다.
구양소소는 이검한 역시 예외없이 자신의 독비에 찔려 저항불능의 상
태가 되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녀가 알 리 만무했다. 이검한은 독천존 서래음으로부터 전
수받은 무형독강(無形毒 )을 연마하여 그 어떤 극독에도 중독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검한은 탄식하며 재차 진심어린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직도 늦지 않았소. 악업으로부터 발을 빼시오, 소저!"
구양소소는 그 말에 앙칼진 눈빛을 번득였다.
"더 이상 헛소리를 못하게 해주마!"
그녀는 악을 쓰며 재차 독비로 이검한의 가슴을 무찔러왔다.
"휴우!"
이검한은 그 모습에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콰드득!
"악!"
경악에 찬 비명과 함께 무엇인가 부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검한은 오른손을 펼쳐 구양소소가 무찔러온 독비를 막아냈다. 당연
히 그의 손바닥은 독비에 꿰뚫려야만 했다.
하지만 다음순간 그의 오른 손바닥을 찌른 독비가 오히려 얼음조각처
럼 산산이 박살나버린 것이 아닌가? 이검한의 장심에서 일어난 파천
황강살이 독비를 박살낸 것이다.
"흐윽! 중독당하지 않았다니……!"
구양소소는 손목을 쥐고 비틀거리며 경악성을 발했다.
이검한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무겁게 탄식했다.
"미안한 일이지만 소저의 무공을 폐쇄해버릴 수밖에 없소! 소저 자신
과 더 이상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이어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천천히 오른손을 쳐들었다.
이검한은 구양소소의 무공을 깨뜨려버릴 생각을 한 것이다. 이대로
방치해두면 구양소소는 오래지 않아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제어하지
못할 무서운 마녀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었다.
구양소소의 얼굴이 온통 공포로 물들었다.
"흐윽!"
이검한이 파천황강살을 일으켜 자신의 아랫배를 겨누자 그녀는 사색
이 되었다.
이검한이 파천황강살을 내치면 비록 선천강기가 보호하고 있다고 해
도 그녀의 아랫배 단전은 그대로 박살나고 말 것이다. 단전이 박살난
다는 것은 곧 영원히 무공을 연마하지 못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안돼! 내가 어떤 수모를 당하며 이룬 공력인데……!'
구양소소의 봉목이 일순 처절한 빛으로 물들었다. 스스로 사내들에게
몸을 벌려 이룩한 선천강기를 잃을 수는 없었다.
"이거나 먹어라!"
팟!
다음순간 구양소소는 악을 쓰며 하나의 구슬을 이검한에게 내던졌다.
"어리석은!"
이검한은 싸늘하게 호통치며 호신강기를 시전했다. 이미 한차례 암습
을 당했던 터라 대화를 하면서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퍼억! 푸스스!
이검한의 호신강기와 충돌한 구슬은 그대로 폭발하며 분홍빛 독무를
확 퍼트렸다. 아마도 그 독무에는 강력한 최음성분이 들어있을 것이
다.
하지만 미리 준비가 되어있던 이검한에게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
다.
그리고 누구 못지 않게 영리한 구양소소 역시 그것을 알고 있었다.
파앗!
분홍빛 독무가 순간적으로 이검한의 주의를 분산시킨 틈을 타서 그녀
는 떼구르르 몸을 굴려 자신이 겁탈하던 문사를 덮쳐갔다.
'아차!'
이검한이 비로소 구양소소의 진짜 의도를 알아차리고 경각했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바득! 가까이 오면 이놈의 멱을 따버리겠다!"
구양소소는 마혈이 짚혀 누워있던 문사를 잡아일으켜 자신의 앞을 가
렸다. 그녀의 날카로운 손톱이 문사의 목에 겨누어져 금방이라도 그
어버릴 기세였다.
"구양소저! 당신은 정말……!"
이검한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구양소소가 설마 인질을 잡아
자신을 위협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호호호! 위대하신 고독마야의 제자분께서 설마 자기 때문에 타인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으시겠지?"
구양소소는 요사한 표정으로 웃었다.
"구양소저! 더 이상 죄를 짓지 마시오!"
저벅!
이검한은 침중하게 말하며 한 걸음 구양소소에게 다가섰다.
"오지 말라고 했다!"
순간 구양소소는 사납게 악을 쓰며 문사의 목젖을 손톱으로 슬쩍 그
었다.
"큭!"
문사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주르르르!
이어 여자의 그것을 무색하게 하는 뽀얀 그의 목젖부분의 피부가 예
리하게 갈라지면서 새빨간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것을 본 이검한은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구양소소는 여
차하면 정말로 인질로 잡은 문사를 죽일 기세였기 때문이다.
"타락했군! 아주 철저하게……!"
마침내 이검한의 두 눈에서도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 인정하긴 싫
었지만 구양소소는 예전의 그 순진무구하던 소녀가 아니었다.
"마지막… 경고요! 어서 그분을 놓아주시오!"
이검한의 음성이 착 가라앉았다. 목소리는 비록 낮게 가라앉았지만
그 안에는 전에 없던 싸늘한 살기가 서린 것을 깨달은 구양소소는 자
신도 모르게 바르르 몸을 떨었다.
이 순간 왠지 모를 설움같은 것이 구양소소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
었다.
구양소소 자신이 만났던 숱한 사내들 중 거의 유일하게 광명정대(光
明正大)한 성품을 지닌 이검한으로부터 구제불능이 마녀로 치부당하
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녀의 방심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것이다.
"호호호! 날 죽일려면 죽여라! 하지만 혼자 죽지는 않겠다!"
구양소소는 악을 쓰면서 문사를 끌고 뒷걸음질쳤다.
"경고하겠소! 문밖으로 나서면 소저를 해칠 수밖에 없소!"
이검한은 제 자리에 우뚝 선 채 침중하게 말했다.
"호호호! 마음대로 해라!"
하지만 이검한은 악에 받친 교소를 터트리며 문사를 끌고 대웅전 밖
을 향해 뒷걸음질쳐 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행여나 이검한이 기
습할까봐 문사의 목을 움켜쥔 손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마침내 구양소소의 발이 대웅전의 문지방을 넘었다.
"경고는 분명히 했소!"
이검한의 입에서 침중한 일갈이 터졌다.
"호호호! 그런다고 누가 무서워할 줄……!"
깔깔 웃던 구양소소의 두 눈이 갑자기 부릅떠졌다.
"갈(喝)!"
돌연 이검한의 입에서 한소리 사나운 고함이 터진 것이다.
구양소소에게 인질로 잡혀있던 문사는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듯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구양소소는 갑자기 온몸이 시큰거리며 뼈란 뼈는 모
조리 부서져 버리는 듯한 충격을 받고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이검한
이 발한 고함소리에는 내공을 일거에 흩어버리는 무서운 힘이 실려있
었던 것이다.
-복마사자후(伏魔獅子吼)!
바로 포달랍궁의 절기들 중 가장 강한 복마신공(伏魔神功)이 처음으
로 이검한의 입에서 발휘된 것이다.
복마사자후신공은 소림사의 사자후(獅子吼)신공처럼 듣는 이의 내공
을 흩어버리고 내장에 충격을 주는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소림사의 사자후신공과 다른 점이라면 이 복마사자후신공은 표적을
정해서 그 사람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과 마공(魔功)을 익힌 자에
게 특히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이검한이 복마사자후신공을 익히고 있는 줄 몰랐던 구양소소는 꼼짝
없이 제압당하고 만 것이다.
"흐윽! 음… 음공(音功)도 익히고 있었다니……!"
바닥에 널브러진 채 바르작거리는 구양소소의 얼굴에 통한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의 옆에는 함께 넘어진 문사가 여전히 하체를 드러낸
민망한 모습으로 넘어져 있다.
"소저가 자초한 고통이오!"
이검한은 침중한 표정으로 구양소소에게 다가갔다.
"바득! 죽여라! 날 살려두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해주겠다!"
다가서는 이검한을 노려보며 구양소소는 발악하듯 외쳤다. 절망에 찬
그녀의 두 눈이 새파란 광기로 번득인다.
추잡한 사내들에게 스스로 몸을 벌려 온갖 수모를 당한 끝에 이룩한
선천강기다. 그걸 잃는 것은 구양소소에게 목숨을 잃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다.
"복수할 거야! 열 배 백 배로! 네놈하고 관련있는 계집들을 전부 다
른 사내놈들의 노리개로 만들어버리겠어! 호호호! 귀왕서시 음월방이
창굴에 던져져 몸을 파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 날 죽여
라!"
부르르르!
이검한의 몸에 세찬 경련이 스쳤다. 구양소소의 악다구니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기 때문이다.
비록 악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구양소소는 지혜롭기 이를 데 없는 여
인이다. 설령 무공을 잃더라도 그녀가 그 좋은 머리를 이용하면 귀왕
서시 등 자신과 관계가 있는 여인들이 위해를 당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이검한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렸다. 구양소소가 구체적으로 귀왕서시까
지 들먹이며 악다구니를 쓰자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살기가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른 것이다.
쩌저정!
이검한의 오른손이 시퍼런 벼락에 휘감긴 채 쳐들려졌다.
'그래요! 어서 날 죽여줘요!'
구양소소는 이를 악물고 이검한의 손을 올려다 보았다.
유운학에게 복수를 못한 것은 한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무공을 잃을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았고, 기왕 죽어야하는
것이라면 한때 자신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이검한의 손에 죽고 싶은
것이 지금 구양소소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구양소소는 결코 그같은 내심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표독한 시선으로 이검한을 노려보았다.
파천황강살이 운집된 이검한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스읏!
이어 그의 손이 천천히 구양소소의 가슴을 노리고 내리쳐져 왔다.
'죽는… 구나!'
구양소소는 자신의 가슴으로 무지막지한 역도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
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헌데 이검한의 손이 막 구양소소의 가슴을 박살내려고 할 때였다.
"아… 아미타불! 그래서는 안됩니다, 은공!"
다급한 여인의 불호성(佛號聲)과 함께 막 구양소소의 가슴을 으깨버
리려던 파천황강살의 기운이 싹 사라져버렸다.
"……!"
구양소소는 부르르 떨며 급히 눈을 떴다.
화라라락!
그런 그녀의 눈으로 한 명의 중년비구니가 표표히 대웅전 앞으로 날
아 내리는 것이 보였다. 마흔 살 전후로 보이는 중년의 비구니인데
비록 핼쓱하긴 하지만 아주 아름답고 기품 있는 용모를 지닌 여인이
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와 몸에 걸친 잿빛의 승포가 그녀의 얼굴에 서린
깊은 고뇌를 한층 더 비감하게 만들어준다.
"어… 어머니!"
"해부인!"
그 중년비구니를 본 구양소소와 이검한의 입에서 비명같은 신음이 터
져나왔다.
-유령부인(幽靈婦人) 해옥정(海玉鼎)!
그렇다. 두 사람 앞에 나타난 이 아름다운 비구니는 바로 유령마제
구양수의 아내인 유령부인 해옥정이었다.
혈마대장경을 노린 유운학에게 암산당해 죽을 뻔했다가 이검한의 절
묘한 금침대법 덕분에 되살아났던 그녀가 머리를 파르라니 깎은 비구
니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소협! 모두가 이 죄 많은 계집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소소를 용
서해주세요!"
장내에 내려선 유령부인 해옥정은 즉시 이검한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파리한 그녀의 두 뺨으로 뜨거운 눈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유령부인의 그같은 모습을 본 이검한은 절로 가슴이 아파와 끌어올렸
던 파천황강살을 풀어버렸다.
딸을 살리기 위해 아들같은 자신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유령부인
을 보니 그녀의 딸이 제 아무리 천하의 악녀라고 해도 선뜻 살수를
펼칠 수가 없었다.
"제발 소소를 살려주세요! 소소가 저지른 죄값은 이 계집이 대신 치
르겠으니 제발……!"
이검한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알아차린 유령부인은 더욱 간절하게
이검한을 향해 두 손을 마주 빌며 애원했다. 세상 사람이 다 욕을 하
고 저주하는 마녀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구양소소는 그녀의 하나뿐인
딸인 것이다.
"비굴하게 빌지 말아요! 저놈도 유운학과 다를 바 없는 사내놈이라구
요!"
유령부인이 이검한에게 간절히 자비를 구하는 모습을 본 구양소소가
악을 쓰며 외쳤다. 어느덧 그녀는 복마사자후에 당한 타격에서 다소
회복되는지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소소야! 그렇게 말하면 못쓴다!"
유령부인은 질겁하며 딸의 말을 막았다. 행여나 이검한의 마음이 다
시 바뀔까 두려운 그녀였다.
"이소협이 죽어가던 에미를 되살려준 은공이란 걸 잊었느냐?"
그녀는 이검한의 눈치를 살피며 필사적으로 딸을 진정시키려고 애썼
다.
하지만 한번 발작을 일으킨 구양소소는 유령부인으로서도 통제할 수
가 없었다.
"호호호! 은공이라구요? 차라리 어머니는 그때 돌아가시는 게 좋았어
요! 그랬다면 유운학, 그놈에게 그런 짓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럼 나도 여한없이 목숨을 끊어버렸을 테죠! 복수를 한답시고 더러
운 사내놈들에게 깔려가며 섭혼흡정공(攝魂吸精功)을 익히는 일도 없
었을 테고……!"
"소… 소소야!"
유령부인은 찢어지는 비명같은 신음을 토해냈다. 그런 그녀의 안색이
밀랍같이 창백해졌다. 엄청난 심적 충격을 받은 기색이 역력했다.
'유운학!'
이검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유운학이란 이름을 듣는 순간 모든 사
정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유령마제 구양수는 혈마대장경을 되찾을 욕심으로 유운학의 어머니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유린했다. 만일 이검한이 제때 그 만행의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다면 그녀는 그때 죽고 말았을 것이다.
유운학은 어떤 경로로든 자신의 어머니가 구양수에게 죽음을 당할 뻔
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아니, 죽었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복수귀가 된 그자는 구양수가 아니라 가엾은 유령부인 모녀를
찾아내 입에 담지 못할 분풀이를 한 것이다.
'그랬구나! 그래서 순진무구하던 구양소저가 표변하여 일대마녀가 된
것이고……!'
대강의 사정을 짐작한 이검한은 자기도 모르게 앓는 듯한 신음을 흘
려내었다.
"……!"
"……!"
잠시 장내에 죽음같은 적막이 흘렀다.
구양소소도 자신이 너무 흥분하여 남이 알아서는 안 되는 너무도 수
치스러운 비밀까지 누설한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입을 다물어버린 것이
다.
주저앉은 구양소소는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바닥만 바라보고 있
었다.
그녀는 감히 고개를 들어 이검한을 바라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자신
이 당한 수치스러운 일을 안 이검한이 어떤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
을까 너무도 두려웠기 때문이다.
유령부인 역시 질끈 눈을 감은 채 입안으로 나직이 불호만 외우고 있
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파리한 뺨 위로 끊임없이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결국… 난 그녀를 해칠 수가 없구나!'
이윽고 이검한은 길게 탄식을 토했다.
구양소소가 당했을 비참한 일을 떠올리자 더 이상 그녀에게 살심을
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검한은 그런 내심을 누르고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일은 불문에 부치겠소! 하지만 오늘 이후로 또 다시 소
저가 사람을 해쳤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땅끝까지라도 찾아가 응징할
테니 그리 아시오!"
"……!"
바르르르!
고개를 떨구고 있던 구양소소의 교구에 세찬 경련이 스쳤다.
위로의 말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따뜻한 어조를 원했
다. 세상 모든 사내들을 증오하더라도 이검한에게만큼은 악감정을 품
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헌데 이검한은 그런 그녀의 기대를 철저하게 짓밟아버렸다.
"호호호! 어련하시겠어요? 고독마야의 제자인 대단한 분이시니 무림
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당연히 저같은 마녀는 처단하셔야지요!"
구양소소는 발작하듯이 웃어제꼈다.
"소… 소소야!"
유령부인이 안타깝게 외쳤으나 구양소소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좋아요! 사라져 드리죠! 당신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구양소소는 표독하게 외치며 교구를 일으켜 세웠다. 아직 복마사자후
신공에 당한 후유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이 휘청거렸다.
"치워요!"
구양소소는 급히 다가와 부축하려는 유령부인의 손길을 매몰차게 뿌
리쳤다.
그리고는 비틀비틀 걸음을 옮겨 폐찰 밖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소소야! 같이 가자!"
유령부인은 허둥지둥 구양소소를 따라 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어 던
진 구양소소의 표독한 일갈이 그녀의 발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귀찮게 따라오면 혀를 물고 죽어버릴 거예요!"
구양소소의 말이 괜한 협박이 아님을 잘 아는지라 유령부인은 그 자
리에 못 박힌 듯이 서서 움직이지 못했다.
유령부인의 눈물 젖은 애달픈 시선을 뒤로하고 구양소소는 천천히 폐
찰 밖으로 사라져 갔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힘겹게 발을 끌며 사라지는 그녀의 자그마한
뒷모습이 너무도 애처로워 이검한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한바탕 악몽을 꾸셨다고 생각하십시오!"
이검한은 한숨을 쉬며 바닥에 쓰러져 있는 문사에게 다가가 그의 혈
도를 풀어주었다.
"허어 참! 이런 남사스러울 데가……!"
문사는 급히 하의를 추스르며 고소를 지었다. 너무도 놀랍고 민망한
일을 당했건만 문사의 표정에는 경망스러운 놀람이나 흥분의 빛이 전
혀 보이지 않았다.
'묘한 분이군! 무공을 전혀 익히지 않았는데도 고독할아버지같은 절
대자(絶對者)의 기도가 풍기지 않는가?'
이검한은 새삼 눈앞의 문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귀가 유달리 크다는 것 외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인상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 평범한 얼굴 어디에선지 태산준령(太山峻嶺)같
은 위의(威儀)가 풍겨져 나온다.
그것은 짐짓 꾸민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도라고
할 수 있었다.
"신세를 졌군, 그래. 이 은혜를 어찌 갚는다?"
문사는 턱의 그리 많이 나지도 않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간단한 행동거지 하나하나에도 남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위엄과 기
품이 서려있었다.
"그렇군! 그래도 내가 자네보다 몇 살 더 먹은 것 같으니 괜찮다면
나를 형이라고 불러도 좋네!"
잠시 생각하던 문사는 마치 큰 선심이라도 쓰듯이 그렇게 말했다.
만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사가 말하니 전혀 다르다. 문사를 형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슨 크나큰 특혜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영광입니다. 소제는 이검한이라고 합니다!"
이검한은 문사에게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가 진심
으로 남에게 고개를 숙여보기는 고독마야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검한(劍恨)이라… 왠지 사연이 느껴지는 이름이로군!"
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성은 주(朱)씨네. 나중에 북경에 들를 일이 있으면 이걸 자금성
수문장에게 보이고 주대인(朱大人)을 만나러 왔다고 하면 안내해줄
걸세!"
문사는 끼고 있던 큼직한 반지를 뽑아서 이검한의 손가락에 끼워주었
다. 금으로 만든 반지인데 중앙에 정교한 용(龍)이 조각된 황옥(黃玉
)이 끼워져 있었다.
'주씨! 역시 이분은 황실의 요인이었구나!'
이검한은 장강수룡이 죽어가면서도 이 문사를 꼭 구해야만 한다고 했
던 것을 떠올리며 나름대로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그의 신분을 꼬치
꼬치 캐묻는 것은 실례일 것 같아 자세히 물어보지는 않았다.
"감사합니다. 소제가 지닌 물건들은 모두 살기가 짙은 것이라 무엇을
드려야 할지……!"
대신 이검한은 황룡금지환(黃龍金指環)의 대가로 문사에게 줄 만한
물건이 없나 찾으려 품속을 뒤적거렸다.
"난 괜찮으니 우선 저 부인이나 위로해드리게나. 상심이 큰 것 같으
니……!"
문사는 답례할 물건을 찾으려는 이검한에게 손을 저어보이며 유령부
인에게 눈짓을 했다.
"……!"
유령부인은 마치 망부석이라도 된 듯이 굳어진 채 구양소소가 사라진
폐찰의 산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정하십시오. 영애(令愛)는 지혜로운 분이니 별일 없을 것입니다!"
이검한은 유령부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남녀간에 유별한 예의범절이 있지만 이검한 자신은 치료를 위해 그녀
의 속살을 만진 적도 있었던 터라 별로 거리낌이 없었다.
그것은 유령부인도 마찬가지였다.
"흐윽!"
유령부인은 참았던 오열을 터트리며 와락 이검한의 품에 얼굴을 묻었
다. 그녀에게 이검한은 사내가 아니라 자신을 치료해준 의원이었다.
그러하기에 저절로 마음이 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달 전 용문에서 당한 일로 그녀는 실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구
양소소도 그 충격으로 실성하여 용문의 계곡을 뛰쳐나가 버렸다.
처음에 유령부인은 자살하여 더럽혀진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모진 것이 목숨인지 스스로 목숨을 끊지도 못했다. 결국 그녀
는 도피처로 불문(佛門)을 찾아 귀의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그녀는 흡정마녀에 대한 소문을 듣고는 직감적으로 그녀가
자신의 딸인 구양소소임을 알고 하산했다.
그들 모녀가 용문의 한적한 계곡으로 이주하여 짐을 풀었을 때 짐 속
에 섭혼마경(攝魂魔經)이 끼어있었다.
조조(曹操)의 무덤에 수장되어있던 사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인 그
것이 어떻게 두 모녀의 짐 속에 섞여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유령마제 구양수가 제딴에는 딸을 위해 그것을 몰래 두 모녀
의 초라한 이삿짐에 집어 넣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섭혼마경이 결국 구양소소를 망치게 되었다.
구양소소는 유운학에게 복수할 심산으로 섭혼마경에 실린 마공들 중
가장 사악한 섭혼흡정공(攝魂吸精功)을 익히기 시작한 것이다.
흡정마녀가 딸인 것을 확신한 유령부인은 필사적으로 흡정마녀의 종
적을 추적했고 결국 오늘 이곳에서 겨우 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구양소소는 이미 옛날의 그 착하고 순진무구한 소녀가 아니라
마음속까지 마성에 빠진 마녀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이검한은 자신의 품에 안겨 오열하는 유령부인을 끌어안고 다독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운학! 구양소저가 아니라도 내 손으로 반드시 네놈을 잡아죽이고
말겠다! 짐승같은 놈!'
결의를 다지는 이검한의 두 눈이 새파란 살기로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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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메딕 후기작성시 10,000포인트 증정


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