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2-25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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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25章 간악(奸惡)한 음모
"날수낭랑! 어머님께 무슨 짓을 했느냐?"
서옥경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본당 안에는 독모 나
운벽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이남일녀가 더 있었다. 상반신을 훌렁 벗은 건장한 사내 두
명과 일신에 상복을 걸친 이십 세 전후의 미소부 한 명이 바로 그들
이었다.
상복의 미소부는 가녀린 몸매에 창백한 안색을 지니고 있다. 첫눈에
번쩍 뜨여지는 대단한 미모를 지녔으나 옥용은 지극한 슬픔에 젖어
병색마저 완연해 보였다.
서옥경은 그 미소부가 누구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화선자(梨花仙子) 모옥당(茅玉堂)!
바로 죽은 벽안독효 염천월의 아내다. 그녀는 염천월과 결혼한 지 불
과 석 달만에 남편을 잃어 미망인이 되었다.
지금 그녀는 한 자루 창을 들고 독모 나운벽의 목젖을 겨냥하고 있었
다. 여차하면 그녀는 날카로운 창 끝으로 나운벽의 목을 꿰뚫어 버릴
기세였다.
상황이 그 지경이니 서옥경이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다해도 어
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호호호! 안심해라. 저 계집은 비록 치욕은 당했으나 아직 몸을 더럽
히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날수낭랑이 요사한 교소를 터뜨렸다. 이성을 잃은 그녀의 눈동자는
광기에 젖어 번득이고 있었다.
"하지만 저 계집은 언제라도 내 수하들의 노리개가 될 수도 있다!"
그녀는 요악하게 웃으며 본당 안에 있는 두 명의 사내를 가리켰다.
상반신을 발가벗고 있는 두 사내는 음욕에 가득한 눈을 희번덕이며
독모 나운벽의 나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자들의 음탕한 시선을 느낀 듯 독모 나운벽의 풍염한 몸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서옥경은 그같은 상황에 이를 악물었다.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녀는 이를 바득 갈며 날수낭랑을 쏘아보았다.
"호호호! 과연 현명하구나! 말을 안 해도 알다니……!"
날수낭랑은 광기어린 눈빛을 번득였다.
"네가 천월이를 죽임으로써 우리 염가는 손이 끊기게 되었다. 그러니
이제 네가 염가의 혈통(血統)을 이어주어야겠다!"
그녀의 말에 서옥경은 흠칫하며 아미를 찡그렸다.
"무슨 소리냐?"
날수낭랑은 그녀의 말에 대답대신 본당의 뒤를 향해 외쳤다.
"이제 그만 나오세요, 상공!"
"흐흐흐!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인가?"
스읏!
순간 음흉한 웃음소리와 함께 한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벽안독군(碧眼毒君) 염가비(廉訶匕)!"
나타난 사내를 본 서옥경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나타난 자는 오십 전후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인인데 등이 꾸부정하
게 곱은 곱사등인데다가 인상은 아주 추괴했다. 툭 튀어나온 뻐드렁
니에 보기 흉한 들창코, 기이하게도 두 눈은 푸르스름한 색깔을 띤
채 희번덕이고 있었다.
-벽안독군(碧眼毒君) 염가비(廉訶匕)!
바로 벽안독효 염천월의 생부로 운남십삼독종(雲南十三毒宗)의 일 인
이다.
그자를 본 서옥경은 비로소 깨달아지는 것이 있어 안색이 싹 변했다.
"서… 설마 너희들은!"
"호호호! 그렇다. 내 조건은 네가 나 대신 상공의 씨를 받으라는 것
이다!"
날수낭랑은 안색이 일변하는 서옥경을 쏘아보며 광기어린 교소를 터
뜨렸다.
"뭐… 뭐라고?"
서옥경은 어이가 없어 그만 입을 딱 벌렸다.
그러나 날수낭랑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나는 천월이를 낳았을 때 난산으로 인해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해서 너의 몸을 빌어 천월이의 동생을 볼 작정
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서옥경에게 벽안독군과 동침하여 염씨일족의 대를
이을 아이를 낳으라는 것이었다.
서옥경은 너무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혀버렸다.
"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 집어치워라!"
그녀는 치욕과 분노를 금치 못하며 버럭 소리쳤다.
"호호호! 그럼 고귀한 독모께서 사내들의 노리개가 되었다가 죽는 꼴
을 보아야겠구나!"
날수낭랑은 서옥경의 말에 싸늘하게 웃었다.
서옥경의 교구가 부르르 경련했다. 그녀는 분노와 수치, 그리고 당혹
과 갈등으로 어찌해야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자신의 정조를 지키자니 가엾은 어머니 나운벽이 참변을 당할 판국이었
다.
그렇다고 추괴하기 이를 데 없는 벽안독군과 살을 섞는다는 것은 생
각만 해도 닭살이 돋는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비록 미망인이 되었지만 정조를 지켜야할 대상이 생겼
다. 어느덧 서옥경은 이검한을 위해 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어머니 나운벽의 목숨이 백척간두에 매달려 있는 것을.
더 이상 서옥경은 갈등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좋… 좋다! 너희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며 입을 열었다. 자신의 정조보다는 어머니 나
운벽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 살아있는 한 언제고 복수는 할 수 있을
테니…
'용서해라, 이검한!'
그녀는 이검한의 모습을 떠올리며 비통한 심정이 되었다.
"호호호! 잘 생각했다. 네가 우리 염가의 아이만 낳아주면 천월이의
일은 잊도록 하겠다."
날수날랑은 기다렸다는 듯 득의의 교소를 터뜨렸다.
"우선 이걸 먹어라!"
그녀는 한 알의 환약을 서옥경에게 던져주었다.
"이게 무엇이냐?"
서옥경은 환약을 받아들며 아미를 찌푸렸다.
그녀의 물음에 날수낭랑은 요사한 눈빛을 번득이며 말했다.
"사실 네 독공은 우리 중 누구보다도 강하다. 행여나 관계 중에 상공
을 인질로 삼거나 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
서옥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교활한 계집!'
그녀는 내심 속셈을 들키자 절로 숨결이 거칠어졌다.
"이게 무언지 알고나 먹어야 할 것이 아니냐?"
서옥경은 싸늘한 눈빛으로 날수낭랑을 쏘아보았다.
날수낭랑은 그런 서옥경을 주시하며 요악하게 웃었다.
"냄새를 맡아보면 스스로 알 것이다!"
서옥경은 더 이상 묻지 않고 손에 들린 환약을 코로 가져가 냄새를
맡아보았다.
순간 그녀의 봉목이 크게 부릅떠졌다.
환약은 매캐하면서도 그윽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만일 보통사람이
그 냄새를 맡으면 오장육부가 절로 시원해지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서옥경은 그렇지 못했다. 독공을 연마한 그녀에게 그것은 오
히려 극약이라 할 수 있었다.
"웅, 웅황정(雄黃精)이로구나!"
그녀는 교구를 비틀거리며 경악과 분노의 신음성을 발했다.
-웅황정(雄黃精)!
그것은 모든 독과 극성인 영약이다. 해독과 보혈 작용에 특출한 효능
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독공을 연마한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
다. 마치 보통 사람이 독에 중독 당한 것과 똑같은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웅황정이 모든 독과 상극이기 때문이었다.
'간, 간악한 계집!'
서옥경은 새삼 날수낭랑의 악독한 심보에 치를 떨었다.
웅황정으로 만든 환약을 복용하면 서옥경은 웅황정에 중독되어 저항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랴. 그녀의 손에 어머니의 목숨이 걸려있는 것이다.
서옥경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웅황정을 복용할 수밖에 없었다.
"부디 약속을 지켜라, 날수낭랑!"
그녀는 이를 갈며 웅황정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싸아하게 입 안을 가득 메우는 웅황정의 냄새.
"흑!"
쿵!
서옥경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며 그대로 힘없이 바닥으로 나뒹굴었
다.
"호호호! 드디어 걸려들었구나!"
"옥경아!"
날수낭랑의 득의의 교소에 독모 나운벽의 비통한 울부짖음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날수낭랑은 교소를 터뜨리며 남편 벽안독군을 돌아보았다.
"호호호! 어서 시작하세요, 상공!"
그녀의 말에 나운벽의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안돼! 옥경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녀는 다급한 음성으로 찢어지듯 외쳤다.
그러나 벽안독군은 들은 척도 않고 서옥경에게 다가갔다.
"크크! 하여간 최고의 씨받이로군! 피부가 검은 것이 좀 마음에 안들
긴 하지만……!"
그자는 음탕한 웃음을 흘리며 뜨거운 욕정의 눈을 번득였다.
찌익!
그자는 찢다시피 거칠게 서옥경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나운벽은 절망하며 치를 떨었다.
"안돼! 흐윽! 차라리 나를 죽여라! 이 나쁜 년놈들!"
그녀가 비통하게 울부짖으며 오열하는 사이 벽안독군의 음탕한 손길
에 의해 서옥경의 의복은 완전히 벗겨져 있었다.
불빛 아래 적나라하게 드러난 여체… 서옥경의 검은 피부는 불빛에
반사되어 야릇한 색감을 풍기며 번득이고 있었다.
서옥경은 무기력하게 쓰러진 채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용, 용서해라. 검한!'
그녀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그녀의 눈꼬리를 타고 뜨
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육체가 음적의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죽은 남편 대
신 이검한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이유랄까?
"흐흐! 훌륭한 몸매로군!"
벽안독군은 욕정에 충혈된 눈을 희번덕이며 손으로 서옥경의 풍만한
육체를 쓰다듬었다.
그자의 까칠한 손이 피부에 닿자 서옥경은 나신을 떨며 진저리를 쳤
다.
그것을 본 날수낭랑의 눈빛이 표독하게 변했다.
"무엇하는 거예요? 당신은 단지 그 계집의 몸에 씨를 뿌리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녀는 벽안독군이 서옥경의 육체를 희롱하자 앙칼진 음성으로 외쳤
다. 비록 복수를 위해 서옥경의 몸에 씨를 뿌리라고는 했지만 벽안독
군이 서옥경의 육체에 흥미를 보이자 절로 질투심이 솟구친 것이었다
.
벽안독군은 날수낭랑의 날카로운 경고에 일순 움찔했다.
"흘흘! 알았소, 부인!"
그자는 대답과 함께 서둘러 바지를 벗어내렸다.
망아암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벽안독군의 며느리 이화선자
모옥당은 절로 아미를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차라리 이 두 계집을 죽여 없애는 편이
제대로 된 복수가 아닐까?'
그녀는 내심 중얼거리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녀도 물론 서옥경 모녀에 대한 극도의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그렇
다고 해도 같은 여자로서 서옥경이 겁탈 당하는 꼴은 차마 보기 민망
한 것이었다.
'미쳤다. 모두!'
이화선자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 시부모가
자행하고 있는 만행은 도저히 제정신을 지닌 사람으로서 행할 수 없
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그녀는 그저 마귀같은 두 남녀가 하는 짓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흐흐흐! 우리 염씨를 위해 튼튼한 아들을 낳아 주어야겠다!"
벽안독군은 거칠게 숨을 할딱이며 서옥경의 하체를 벌렸다.
서옥경은 벽안독군의 징그러운 몸이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
끼며 치를 떨었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크악!"
돌연 단말마의 비명이 망아암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터졌다.
"헉!"
막 서옥경의 몸에 지워지지 않은 낙인을 찍으려던 벽안독군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다.
현재 망아암 일대에는 수백 명의 벽안독마가 고수들이 은신해 있었다
. 헌데 짧은 비명 소리가 한 차례 들린 후 아무런 반응도 없지 않은
가?
"무슨 일이냐?"
벽안독군은 급히 바지를 추스리며 버럭 외쳤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상, 상공!"
날수낭랑은 공포에 질려 급히 벽안독군의 곁으로 다가섰다.
이화선자 모옥당과 두 장한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급히 망아
암 밖으로 뛰쳐나와 주위를 경계했다.
숨막힐 듯한 긴장감이 장내를 휘감았다.
망아암의 주위를 제외한 다른 곳은 모두 칠흑같은 어둠 속에 잠겨있
었다.
그같은 상황은 중인들로 하여금 절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었
다. 보이지 않는 사신의 손아귀가 숨통을 조여오는 듯했기 때문이다.
숨막힐 듯 팽팽한 긴장감 속에 무서운 적막이 흘렀다.
저벅! 저벅!
적막한 어둠 속에서 묵중한 발자국 소리가 울려왔다.
그 발자국 소리는 나직했으나 중인들의 귓전에는 마치 그 소리가 천
둥소리처럼 크게 들렸다.
벽안독군 등은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저벅! 저벅!
이윽고 어둠 속에서 하나의 인영이 성큼성큼 걸어나와 궁등의 불빛
속으로 들어섰다. 강인한 인상에 수려한 용모를 지닌 청년이었다.
"네… 네놈은!"
"고… 고독전신!"
"검한아!"
중인들의 입에서 서로 다른 비명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나타난 청년은 물론 이검한이었다. 그는 철익신응을 타고 독성부로
날아가다가 이곳에서 심상치 않은 불빛을 발견하고 망아암을 찾아온
것이었다.
"무, 무엇하는 거예요? 어서 저 두 계집을 사로잡지 않고?"
날수낭랑이 흠칫 정신을 차리며 찢어지는 듯한 음성으로 외쳤다.
파앗!
두 장한이 벼락같이 망아암 안으로 뛰쳐들었다.
동시에 벽안독군은 급히 손을 뻗어 자신의 발치에 누워있는 서옥경의
손목을 움켜쥐려 했다.
순간 이검한의 두 눈에서 무서운 신광이 작렬했다.
쩌엉!
이검한의 등에 짊어져 있던 목검이 환상처럼 뽑혀졌고 동시에 그의
왼손 두 손가락이 본당 쪽으로 겨누어지는 것을 이화선자 모옥당은
모았다.
"케엑!"
"크악!"
세 마디의 처절한 비명이 거의 동시에 터져나왔다.
본당 안으로 덮쳐가던 두 장한은 두개골이 박살나 허연 뇌수를 뿌리
며 즉사했다. 이검한이 날린 지력이 그자들의 머리통을 단번에 박살
내버린 것이다.
"크아악! 내 다리!"
뿐만 아니라 서옥경의 손목을 움켜쥐려던 벽안독군이 두 다리를 부여
안고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
도로 빠른 한줄기 검기가 그자의 두 발목을 싹둑 잘라버린 것이다.
잘려진 그자의 두 발은 바닥에 떨어진 채 펄떡거렸으며 벽안독군은
잘린 두 발목에서 피분수를 토하며 데굴데굴 굴렀다.
"여보!"
날수낭랑은 비명을 내지르며 벽안독군에게로 달려갔다. 그녀가 달려
갔을 때 벽안독군은 이미 극도의 충격과 과다한 출혈로 기절한 상태
였다.
"흐윽! 여보!"
그녀는 기절한 벽안독군의 몸을 끌어안고 비통한 오열을 터뜨렸다.
이검한은 싸늘한 눈으로 벽안독군의 모습을 주시했다.
'저 자는 염천월의 애비로군!'
그는 염천월의 눈빛이 푸르스름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이내 모든 사정
을 이해할 수 있었다.
"죽엇!"
스팟!
그때 이화선자 모옥당이 앙칼진 음성으로 외치며 한 자루 비수로 이
옥경의 가슴을 찔러갔다. 그녀는 서옥경이라도 죽여 남편의 복수를
하려는 것이다.
"물러서랏!"
이검한이 싸늘한 일갈과 함께 가볍게 손을 흩뿌렸다.
"악!"
모옥당은 애처로운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나뒹군 그
녀의 소복 치마가 걷혀지며 그녀의 허연 허벅지가 드러났다.
"왜 서소저를 못살게 구는 것이오, 당신들은?"
그는 유령같이 서옥경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침중한 어조로 일갈했다
.
"왜냐고?"
모옥당은 이를 갈며 발딱 일어섰다.
"저 계집은 내 지아비를 죽인 원수다. 복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그녀는 이를 악물며 표독한 음성으로 외쳤다.
그런 그녀의 원독에 찬 눈빛에 이검한은 움찔했다.
'이 여자가 염천월의 미망인!'
그는 가슴이 무거워졌다. 염천월이 비록 대역죄인이기는 하지만 그자
의 죽음으로 불행해진 사람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당신들은 뭔가 잘못 알고 있군!"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모옥당은 흠칫하며 이검한을 노려보았다.
"잘, 잘못 알다니? 무얼 말이냐?"
이검한은 싸늘한 안색으로 잘라 말했다.
"염천월이란 패역한 놈을 때려 죽인 것은 바로 나다! 서소저와 백모
님은 그자의 죽음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뭐, 뭐라고?"
"천, 천월이를 해친 것이 네놈이라고?"
모옥당과 날수낭랑의 안색이 핼쑥하게 변했다.
"그렇다. 그대들은 복수의 대상을 잘못 택한 것이다!"
"그, 그럴 수가!"
날수낭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신형을 휘청했고, 모옥당은 창백한 안
색으로 이검한을 노려보며 원독의 이를 갈았다.
"바득! 이 자리에서 우리를 쳐죽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안 그러면
네놈은 언제고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그녀는 이검한을 노려보며 악을 썼다. 처절한 한이 서린 눈빛에서는
뜨거운 원한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눈빛을 접한 이검한의 가슴은 천근만근의 무게에 짓눌리는 듯했다
.
하지만 그는 짐짓 음산한 표정으로 말했다.
"계집을 죽이는 것은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일이다! 좋게 말할 때 가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 마음이 변하기 전에!"
"크흑! 이, 이 악독한 놈!"
모옥당은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원한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모옥당에 비해 정작 염천월의 생모인 날수낭랑은 냉정을 쉽게
회복했다.
'저놈은 혈황이란 놈마저 죽인 초고수다. 지금 복수하겠다고 날뛰어
봤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그녀는 내심 중얼거리며 재빨리 염두를 굴렸다.
'분하지만 다음 기회를 보아야만 한다. 제놈도 인간인 이상 헛점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기절한 남편 벽안독군을 안고 비칠거리며 일어섰다.
"오, 오냐! 복수는 삼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했다. 언제고 네놈의
목숨을 잘라내주고 말겠다!"
그녀는 한서린 일갈과 함께 비칠 뒤로 물러섰다.
"가, 가자! 아가야!"
그녀는 원한에 치를 떨고 있는 모옥당을 향해 말했다.
모옥당도 자신이 이검한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깨닫고 입술을 깨물며
뒷걸음질쳐 날수낭랑을 뒤따랐다.
"내 이름은 모옥당이다! 네놈의 손에 고인이 된 염천월이란 분의 아
내다. 내 이름을 잊지 마라, 절대로!"
몸을 날리며 그녀는 이검한을 향해 한서린 독갈을 내질렀다.
그와 함께 두 여인의 모습은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이검한은 탄식하며 두 고부(姑婦)가 사라지는 것을 주시했다.
'휴우! 원한은 원한을 낳는다더니……!'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 무얼하는 것이냐? 어서 도와주지 않고."
그때 이검한의 뒤에서 미약한 여인의 할딱임이 들려왔다.
놀라 돌아보던 이검한의 시야로 서옥경이 고통스럽게 할딱이는 것이
보였다. 이검한은 한눈에 서옥경이 어떤 약물에 중독당했는지 알아보
았다.
'웅황정!'
그는 급히 서옥경에게로 다가갔다.
천약활인경(千藥活人經)의 전수자인 그인지라 웅황정이 독공을 연마
한 서옥경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녀의 몸 속에 스며든 웅황정을 태워버려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옥경의 일신독공은 웅황정의 약기운과 상쇄되어 영
영 무공을 잃게 될 것이다.
"안심하십시요, 소생이 곧 편안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이검한은 축 늘어진 서옥경을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흐윽!"
이검한의 품에 안겨 서옥경은 격하게 울음을 터뜨렸다. 안도감의 큰
파문이 지금 그녀의 교구를 휘감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비로소 깨달고 있었다. 자신이 이검한을 얼마나 의지하고 있
는지를 말이다.
'잘된 일이다!'
이검한의 품에 안겨 오열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독모 나운벽의 눈가에
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 *
"바득! 청산이 변치 않는 한 언제고 복수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
다!"
망아암에서 멀지 않은 계곡에서 이를 갈며 몸을 날리는 두 여인이 있
었다.
표독스러운 인상의 중년미부와 가녀린 몸매의 미소부!
바로 날수낭랑과 이화선자 모옥당이었다.
피눈물로 얼굴을 물들인 날수낭랑의 두 팔에는 두 다리가 잘린 채 기
절한 벽안독군 염가비가 축 늘어진 채 안겨있었다.
헌데 두 여인이 막 그 계곡을 통과할 때였다.
"흐흐흐! 네년들에게 복수할 기회는 없다!"
두 여인의 귓전으로 사악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화라락!
이어 하나의 인영이 유령처럼 날아내려 날수낭랑과 이화선자 앞을 가
로막았다.
"네, 네놈은!"
"고독전신!"
두 고부의 입에서 거의 동시에 비명이 터져나왔다. 급급히 멈춰서는
두 여인의 앞을 가로 막은 자는 이검한과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이게 어찌된 일인가? 이감한은 지금 망아암에서 서옥경의 치료에 몰
두하고 있지를 않은가? 그런 그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이, 이놈! 살인멸구할 작정이구나!"
"피, 피하세요!"
두 여인은 사색이 되어 비칠거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녀들은 자신들 앞에 나타난 자의 복장이 망아암
에 나타났던 이검한의 그것과 다른 사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크크큿! 뿌리를 남겨두면 봄이 되면 또 다시 잎이 돋는 법! 화근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사내는 음산하게 눈을 번득이며 두 여인에게로 다가섰다.
"죽어랏!"
모옥당이 용기를 내어 먼저 사내에게 덮쳐들었다. 날수낭랑이 달아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크흐흐! 어딜!"
쩌어엉!
사내는 음악하게 웃으며 지력을 튕겨내었고 두 줄기 지력은 그대로
모옥당과 날수낭랑의 연마혈을 후려쳤다.
"악!"
"흐윽!"
두 여인은 비명을 지르며 무기력하게 나뒹굴었다. 날수낭랑의 팔에
안겼던 벽안독군 염가비의 몸뚱이도 고깃덩이처럼 옆으로 나뒹굴었다
.
"흐흐! 이로써 염가의 맥도 끊기는 것이다!"
사내는 히죽 웃으며 염가비의 가슴에 발을 올려놓았다.
"아, 안된다!"
날수낭랑이 기겁하며 외쳤다.
그러나 사내의 발은 무자비하게 밝아내렸다.
순간 염가비의 가슴은 섬뜩한 뼈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으깨
어져 무너져 내렸다. 벽안독마가의 가주인 벽안독군 염가비의 실로
허무한 최후였다.
"안돼!"
모옥당의 비명소리 속에서 날수낭랑의 몸이 축 늘어졌다. 지아비가
눈앞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보는 순간 그대로 아득히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네… 네놈은 악마다! 인간도 아니다!"
모옥당은 염가비를 발로 밟아 죽인 사내를 보며 울부짖었다.
"크크! 바로 보았다. 나는 네년 말대로 인간이 아니다!"
사내는 음험하게 눈을 번득이며 두 여인에게로 다가갔다.
모옥당은 발갛게 번들거리는 그자의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본능
적으로 깨닫고는 몸서리를 쳤다.
"크크크! 내가 악마라는 증거를 이제 보여주겠다!"
사내는 히죽 웃으며 날수낭랑의 치맛자락에 손을 가져갔다.
"안… 안돼!"
찌익!
모옥당의 비명과 날수낭랑의 치마가 찢기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터졌
다. 치마가 찢기며 날수낭랑의 허연 하체가 드러났다.
"흐흐! 나이에 비하면 제법 괜찮은 몸이로군!"
그자는 음험하게 웃으며 발로 기절한 날수낭랑의 다리를 좌우로 벌리
면서 자신의 하의도 벗어 내렸다.
그자가 하의를 벗어 내리자 못 볼 것을 본 모옥당은 질끈 눈을 감았
다. 그런 모옥당의 귓전으로 사내의 뜨거운 숨소리가 진동했다.
'이, 이건 꿈이야!'
점점 거칠어지는 사내의 숨소리를 들으며 모옥당은 몸서리를 쳤다.
지금 옆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녀에게는 현실의 일로 느껴지지를 않았
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어느 순간 사내의 뜨거운 숨결이 모옥당의 얼굴로 옮겨졌다.
찌익!
날카로운 소성과 함께 자신의 하의가 찢겨지는 것을 느끼며 모옥당은
아득히 정신을 잃었다.
* * *
"호호호!"
새벽 무렵, 참극이 벌어진 계곡에서 여인의 실성한 듯한 웃음소리가
터졌다.
"천월아! 어디를 가느냐? 이리 오너라!"
여인의 음성과 함께 한 명의 반라의 여인이 비칠비칠 계곡 밖으로 걸
어나왔다.
하의가 벗겨진 표독스러운 인상의 그 중년여인은 바로 날수낭랑이었
다.
그녀는 해죽해죽 웃으며 계곡 밖으로 걸어나왔다. 초점이 풀린 몽롱
한 눈동자로 미루어 그녀가 이미 제정신이 아님을 알아볼 수가 있었
다.
"날 두고 가지 마라, 천월아!"
날수낭랑은 구름 위를 걷는 걸음걸이로 계곡을 나섰다.
"아아! 그러시면 안됩니다!"
직후 구슬픈 음성과 함께 또 한 명의 여인이 비칠대며 계곡 밖으로
달려나왔다.
의복이 갈가리 찢긴 이십대 초반의 미소부는 물론 이화선자 모옥당이
었다. 그녀의 몸에도 능욕당한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었다.
'바득! 이검한! 이 원한은 죽어 귀신이 되어도 잊지 않겠다!'
모옥당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날수낭랑의 뒤를 쫓아갔다. 생
각 같아서는 혀를 물고 죽고만 싶다.
하지만 엄청난 충격으로 실성해버린 날수낭랑을 방치하고 자결할 수
도 없는 일이다.
"호호호!"
날수낭랑의 실성한 웃음소리와 함께 두 여인은 멀리 사라져갔다. 과
연 벽안독군 염가비를 살해하고 두 여인을 능욕한 자는 누구란 말인
가?
"잘했다, 비룡! 이로써 이가놈을 천하공적으로 만들어줄 증인이 두
명 생긴 것이다!"
사라지는 두 여인의 뒷모습을 보며 요사한 눈빛을 번득이는 여인이
있었다.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온통 핏빛인 혈의여인!
그녀는 바로 혈영공주 하후진진이었다.
하후진진 옆에는 희여멀겋게 생긴 청년이 야비한 음소를 흘리며 서
있었다.
옥도공자 옥비룡!
바로 그자였다. 천잔독마의 성형수술로 이검한과 똑같은 용모를 지니
게 된 이 간교한 효웅이 날수낭랑을 겁탈한 장본인이었다.
"헤헤! 속하도 놀랄 정도로 그 계집들이 감쪽같이 속아넘어 갔습니다
, 여제님!"
옥비룡은 음험하게 웃으며 하후진진에게 굽신거렸다.
"그 말투가 뭐냐? 경박하구나!"
히죽거리는 옥비룡에게 하후진진이 싸늘한 눈빛을 던졌다.
"시, 시정하겠습니다!"
옥비룡은 찔끔하여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나 이미 하후진진은 그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놈은 결코 내 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검한!'
하후진진은 이를 바득 갈며 섬뜩한 살기를 토해냈다.
'곧 폭풍천왕의 시체가 남해로 도착할 것이고, 그것이 네놈을 지옥으
로 떨구어보낼 기폭제가 될 것이다!'
하후진진의 눈가로 배시시 미소가 번져 흘렀다.
무슨 소리인가? 그녀는 폭풍천왕의 내공을 갈취한 것으로 부족하여
그를 죽이기까지 했단 말인가?
만일 그녀 말대로 폭풍천왕의 시체가 폭풍군도까지 흘러들어간다면
그것은 실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중원무림과 남해무
림이 격돌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므로…….
과연 하후진진은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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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