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18
북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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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우영이 에게.”
머리말을 쓰는데도 몇 시간이 넘게 걸렸단다.
“보고싶은 우영이 에게.”
이렇게 썼다가 지우고,“내 우영이 에게”
이것도 그렇고,“사랑하는 우영이”
는 좀 우습고,“귀여운 우영이 보아요”
도 어설프고,아무튼 몇 번인지 썼다가 지우고, 다시 또 쓰고 했단다.
그냥, 평범한 말이긴 하지만, 위에 쓴 머리말대로 하기로 했어.그렇지만 내 맘이 여러 가지 언어로 함축되어있다는 것을 잊음않돼.알았지?너는 어떻게 지내니?내 생각, 조금은 하는 거니?나는 온통 네 생각뿐이란다.
정말이야!나도 네 생각을 자꾸만 지우려고 해도 그 때뿐.. 다시금 너의 서글서글한 눈망울이 나를 꼼짝못하게 하고 만단다.
'이러면 안되지', 하지만 어느 샌가 너를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해서, 깜짝 놀라곤 한단다.
가끔은 내 생각을 해주는 거니?왜 너였지?내가 처음 받아들인 남자가...나는 늘 꿈꾸어 왔단다, 백마 탄 기사를...그런데 그게 너였을 줄이야.네가 백마 탄 기사하고는 너무 다른 이미지인 줄은 알아.또 왕자님처럼 고귀한 품위와 근엄함을 찾아볼 수는 없어.멋진 옷에 늘씬한 키의 귀공자도 아니 긴해.그렇지만 너는 나를 가져간 첫 남자야.나의 처녀를 훔쳐간 도둑이지.아니 도둑놈이지..흐음, 화났니?그래도 귀여운 도둑이야, 너는...나의 소중한 도둑이기도하고..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어.때로는 불타오르는 질투심에 견딜 수 없어.너를 독점하고 있는 큰언니에게도,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나서 온 종일 안절부절을 못하고 쏘다니기도 벌써 여러 차례였단다.
너의 곁에 있지못하는 사이에 너를 큰언니에게 뺐기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으로 견딜 수가 땐, 너의 곁으로 모든 것을 팽개치고 달려가고픈 마음을 너는 알기나 하는 거야?새벽 어둠을 가르는 기적이, 얼마나 나의 애를 태우는지 너는 모를 꺼야.너 있는 쪽으로 내달리는 기차가 또 얼마나 부러웠던지...머지않아 겨울방학이야.너를 만난다는 것이 나를 이렇게 신명이 나게 할 줄을 예전에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어.너를 만나는 날까지 내가 어찌 살아낼까...하지만 곧 너를 만난다는 생각이 나의 가슴에 물밀 듯 차 오르면, 몸서리치도록 보고싶어지는, “우영”
의 모습을 수없이 그리며 하루 하루를 보낸단다.
너의 손길이 닿았던 나의 구석구석에서 너를 향한 그리움이 연기처럼 하얀 숨을 내뿜으며, 짜릿했던 그 순간 순간들을 다 기억하고 있단다.
나의 “우영”
아,이제 너를 만나면, 너를 '꼬옥' 안아버릴 꺼야. 아니 너에게 '푸욱' 안겨버릴 테야.언니에게만 빠지지 말고, 나에게도 관심을 가져 줘. 너의 작은 손짓 하나가 나를 못 견디게 한다는 것을 네가 어찌 알겠니.여자는 꽃과 같아서, 자꾸 다듬고 가꾸어 주고 물도 자주 주어야한다는, 평범하고도 자연스러운 진리를 이제 고등학생인 우영이가 과연 얼마나 알 수 있을까?그리고, 너무 무리(?)하지마.농익은 아줌마의 교태에 녹아나지는 말고.으응, 이건 농담이야.처녀가 별소릴 다아 하지?하지만 이렇게 라도 다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내 마음을..무얼 사다 줄까?우영이 에게,무얼 좋아하니?시집, 음반, 아니면 모락모락 김을 쏟고있는 큼지막한 찐빵?네게 줄 선물을 이젠 골라야 할까봐.'예쁘게 담아 가지고 아무도 모르게 네게만 준다'는 생각만 해도 내 몸이 짜릿하게 떨려오는 걸...아, 벌써 날이 밝아오나봐.어느새 밖이 화안해졌어.이제 그만 자야될까봐.좋은 꿈(네 꿈, 그리고 내 꿈) 많이 꾸고, 며칠 기다리고 또 며칠만 지나면 보게될 네 얼굴을 그려보며 이만 쓸게.안녕!나의 귀여운(??하는) 우영이...(추신) 1). 큰언니를 제외한 다른 여자에게 눈독 드리면 혼난다.
2). 편지지를 자알 살펴볼 것. 3). 그리고, 나의 입술자국에 너의 두툼한 입술을 '꽈악' 포갤 것.항상 순진하지는 않지만, 너에게만은 순진한 척 하는 “순진”
이가 썼고, 때마침 감미롭게 흐르는 “Seal with a kiss”
를 들으며, 그렇게 봉해 보았음.
편지를 접으며, 나도 모르게 입가엔 미소가 흘렀다.
또 어떤 건지 설명을 딱히 할 수 없는 만족감이 나를 뿌듯하게 했다.
그렇게 도도하고, 쌀쌀하기만 했던 순진누나가 이렇게 나에게만, 마음을 열어서 속을 다 내보일 줄이야.연희엄마에 대한 질투심뿐 만은 아니지만, 나의 관심을 끌려고 하는 모습이 선하게 다가옴을 느끼고 있었다.
연희엄마도 그렇다.
그런 점은 한 술 더 떠서, 은근히 순실누나나, 특히 순진누나에 대하여 자주 묻곤 하다가, 어떤 때는 아예 닦달하듯 나를 몰아세우기도 하는 것이었다.
순실누나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순옥누나와 다정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면, 눈꼬리가 살짝살짝 치켜 올라가서 날카롭게 짜려보는 것을 언제부터인지 등뒤로 따갑게 느끼곤 했었다.
조금은 둔한 듯 싶은 순실누나 까지도 여자들끼리 보이지 않은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당기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으나, 앞으로는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나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세 자매가 서로를 견제하고 질투하는 사이로 어느덧 치닫게 한 건 바로 나 때문이 아닌가?세 여자의 눈초리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주시하고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런 일들이 내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 되기도 했었다.
그렇다 곤해도, 세 여자에게 골고루 ---순진누나의 표현대로하자면--- 물을 주는 것쯤이야, 왕성하고 팔팔한 나에게는 아무런 지장도 없었던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었다.
순진누나가 돌아오면, 세 여자를 한 날에 방문(유린?)해 보리라고 마음먹었고,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떠올라, 혼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자는 다 도둑놈'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나도 남자임에 틀림없었다.
순영누나와 순미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김약국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순미는 어쩐지 젖비린내가 나는 듯 했고, 또 내 여자로 이미 점을 찍힌 지 이미 오래여서, 내 관심은 은근히 순영누나에게 쏠려있었다.
받아야 할 빚이 있었다.
지난 여름방학, 수영을 하다가 순영누나의 가랑이 속 거무스레한 음모를 만져 보지 않았던가...나의 발딱 일어선 방망이를 순영누나의 가냘픈 손에 쥐어주고, 까칠한 수풀을 얼른 비벼대기도 했었던 터여서, 순영누나는 나와 눈빛이 마주치면, 귀밑이 발그래 지면서 얼른 고개를 돌리고하는 폼이 여름방학 때 있었던 그 일을 부끄러워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둘이서만 있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생각보다는 빨리 그런 기회가 찾아오고 말았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작은고모 댁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산골로 시집을 갔던 막내고모는 마을 어귀까지 배웅을 나오며, 이것저것 보따리에 챙겨주면서, 신신당부했다.
“우영아, 잘 가지고가서 엄마 드려라. 그리고 고맙다고 하고.”
“알았어요. 고모 인제 들어가요.”
떠밀 듯 작은고모를 떼어놓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힐긋힐긋 돌아다보면, 작은고모는 장승처럼 서서 손을 흔들며 언제까지고 서 있었다.
가난한 집에 시집을 가서인지, 이제는 그 가난함이 작은고모의 모습에 많이도 배어서, 나까지도 가슴이 찡하던 터였다.
걸음을 빨리 해서 언덕을 돌며, 아직도 서 있는 막내고모에게 길게 손을 흔들고, 마악 달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는지 언덕을 넘었다.
걸음을 천천히 하며, 이마에 범벅이 된 땀과 작은고모에 대한 안쓰러움으로 눈가에 번졌던 물기를 손으로 쓰윽 훔쳐버렸다.
기인 다리로 간신히 버티며 서있는 포플러 그늘아래에서, 비스듬히 졸고 있는 “버스”
라고 쓰인 푯말이 보였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먼지를 뽀얗게 날리고 기어오는 버스가 보였다.
워낙에 인적이 드문 산골이어서 인지, 먼지를 뿌옇게 날리며 다가오는 고물버스이지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털털거리며 이내 출발을 했고, 나는 빈자리를 두고 버스 일부러 뒤쪽으로 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어머! 우영아!”
깜짝 놀라며 반기는 목소리가 들렸다.
화안한 웃음을 띠고있는 순영누나가 눈에 들어왔다.
“응, 누나. 웬 일이야?”
나도 반가워서, 옆자리를 톡톡치는 순영누나의 손짓을 따라 엉덩이를 붙이며 옆으로 다가앉았다.
보기 좋은 엉덩이가 얼른 눈에 들어왔다.
옆으로 다가앉으며, 탱탱한 순영누나의 엉덩이와 일부러 마주쳤다.
얼른 엉덩이를 빼며, 순영누나가 말했다.
“어디 갔다오니?”
“으응, 작은고모 댁에...”
“그으래...”
순영누나의 말꼬리가 내려앉았다.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한동안은 별 말이 없었다.
까만 스커트가 하얀 블라우스와 더불어 잘 어울려서, 청순한 순영누나의 이미지를 그대로 잘 나타내고 있었다.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하던 순영누나의 눈길이 나를 보았다.
나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개를 슬며시 돌리더니, 손수건을 꺼냈다.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힌 내 이마를 떨리는 듯 조심스럽게 만지더니, 닦아주기 시작했다.
향긋한 내음이 코끝을 마구 들쑤셨다.
바싹 다가선 내 얼굴이, 우윳빛 목덜미 사이로 묻힐 듯 다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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