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2-3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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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전
第3章 수정관(水晶棺) 속의 절세미녀
"도대체 이 계집은 누굴까? 이 정도의 미인이면 세상에 이름이 알려
졌어야 마땅한데……!"
천잔독마 갈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곤혹한 표정으로 수정관 속의 미인
을 주시했다.
수정관 속의 이 여인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가사상태(假死狀態)에서 살
아왔다.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 채약(採藥)을 하러 중원에 들어갔던 독천존
서래음은 약초대신 가사상태에 빠진 이 여인을 구해 독성부로 데려왔
었다.
그녀를 어디서 발견했는지 주위 사람들이 물었으나 독천존은 끝내 함
구했다.
그 후 독천존은 여인을 되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독천존의 절묘한 독공과 용독술로도 끝내 여인을 깨어나게 하
지는 못했다.
심지어 혈마대장경상의 연혼대법(鍊魂大法)을 구사해보기까지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여인을 가사상태에서 깨우는 것을 포기한 독천존은 대신 숱한
영약(靈藥)으로 한 가지 신묘한 효능을 지닌 수액(水液)을 만들어 그
안에 여인의 육체를 보존해 두었다.
그 결과 여인은 지난 삼 년 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도 살아있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었다.
그동안 여인의 머릿결은 계속 자라나 지금은 그 머릿결이 온통 수정
관 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현재 여인의 몸 속에는 추측불가의 내공잠력이 응결되어 있었다. 그
것은 독천존이 한 가지 비법으로 만든 신묘한 수액 때문이었다.
-불사회혼액(不死廻魂液)!
이것이 수정관 안에 가득차 있는 액체의 이름이다.
그것은 천여 종의 영약과 극독이 혼합된 액체로 처음에는 마치 진흙
처럼 끈적끈적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맑은 청색의 액체로 화했다.
그것은 지난 삼 년 동안 불사회혼액의 약기운이 거의 모두 신비의 미
소부의 몸에 흡수된 탓이었다.
신비의 미소부는 비단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추측불가의 가공할 내공
과 함께 불사(不死)의 신체(身體)를 지니게 되었다.
해서 천잔독마는 이 여인에게 불사미인(不死美人)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으음! 정말 참기 어렵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해치우고 싶지만……!
"
수정관 속의 신비여인, 불사미인을 노려보던 천잔독마는 자신의 일부
를 움켜잡고 거칠게 숨을 할딱였다.
수정관 속의 신비여인의 육체는 실로 뇌쇄적이었다.
하지만 천잔독마는 감히 그녀를 범하지는 못했다.
여인의 상태는 극히 불안정하다. 욕심을 채우려고 행여 불사회혼액
밖으로 꺼냈다가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른다.
만일 불사미인의 상태에 이상이 생기면 천잔독마의 목숨은 없는 것이
나 마찬가지였다. 한 명 무서운 인물이 그자를 용서치 않을 것이다.
해서 천잔독마는 그동안 불사미인을 꺼내 욕심을 채우고 싶은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눌러 참아왔다.
"이렇게라도 만족할 수밖에!"
천잔독마는 거칠게 숨을 할딱이며 바지를 벗어내렸다. 그리고는 다른
한 손을 수정관에 넣어 그 안에 누워있는 불사미인의 육체를 주물러
대기 시작했다.
"감촉 한번 죽여 주는군!"
천잔독마의 숨결은 급격히 달아올랐다.
그자는 자신이 수정관 속의 여인을 능욕하는 상상을 하며 쾌감에 몸
을 떨었다. 거의 비등점에 이른 그자의 손짓은 더욱 급박해졌다.
헌데 그자가 막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꽈르릉!
돌연 한 소리 굉렬한 폭음이 석실의 입구인 철문쪽에서 들려왔다.
"헉!"
천잔독마는 질겁하며 철문쪽을 돌아보았다.
콰드드득!
그런 그자의 눈에 만년한철로 만든 한 자 두께의 철문이 얼음처럼 으
깨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독천존이냐?"
이어 사나운 일갈과 함께 한 명의 청년이 으깨진 철문 틈으로 성큼
들어섰다.
이검한!
청년은 물론 그였다. 그가 파천황강살로 연혼동천의 철문을 박살내고
들어온 것이다.
"웬놈… 헉!"
버럭 분노의 폭갈을 내지르던 천잔독마의 두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
떠졌다. 성큼 안으로 들어선 청년의 허리춤에 찔려진 한 자루 뭉뚝한
기형장도를 보았기 때문이다.
"고… 고독혼(孤獨魂)! 고독마야의 제자냐?"
쿵! 쿵!
천잔독마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비명을 지르며 비틀 비틀 뒤로 물러
섰다. 그자는 한눈에 고독마야 섭장천의 상징인 신도(神刀) 고독혼을
알아본 것이다.
"네놈, 독천존이 아니구나!"
이검한은 눈빛을 싸늘하게 번득이며 천잔독마를 노려보았다.
그는 눈앞의 이 추괴한 늙은이의 외모가 말로만 들은 독천존의 그것
이 아님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물… 물론 노부는 독천존이 아니다! 노부는 그의 사제인 천잔독마
갈양이라는 사람이다!"
천잔독마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이검한의 눈치를 보며 급히 말했다.
이검한이 찾는 것이 자신의 사형이고 독성부의 당대 지존인 독천존임
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때문이다.
순간 이검한의 검미가 꿈틀했다.
"천잔독마 갈양?"
"헤헤! 그렇다. 노부는 고독마야와 아무런 원한도 없다. 다시 말해서
너와 싸울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천잔독마는 간교한 웃음을 흘리며 슬금슬금 옆걸음질을 쳐서 입구 쪽
으로 이동해갔다.
그자 역시 독성부 내에서도 적을 찾을 수 없는 유수한 독공고수였지
만 고독마야의 이름에 압도되어 감히 이검한과 싸울 엄두를 내지 못
하는 것이다.
"좋다. 본인이 원하는 것은 독천존 서래음의 목숨이지 늙은이 따위의
목숨에는 관심도 없다!"
이검한은 도망갈 기회만 엿보는 천전독마를 노려보며 싸늘하게 냉갈
했다.
"헤헤, 잘 생각했다."
그러자 천잔독마는 안도의 눈빛으로 간교한 웃음을 흘렸다.
이검한은 그자를 냉엄한 눈빛으로 주시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늙은이가 이 석실에서 살아나가려면 본인의 두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만 한다!"
그의 말에 천잔독마는 일순 움찔했다.
"무, 무엇이냐? 알고 싶은 것이?"
그는 주춤 멈춰서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이검한은 쥐새끼를 연상케 하는 천잔독마에 대한 혐오감을 굳이 감추
려 들지 않으며 싸늘한 음성으로 물었다.
"먼저 독천존 서래음의 행방이다. 그 늙은이는 지금 어디 있느냐?"
천잔독마는 흠칫했다.
그러나 이내 그자의 두 눈에 간교한 빛이 스쳐갔다.
그자는 코끝을 찡그리며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흘흘! 못 가르쳐줄 것도 없지. 그 작자는 지금 옛 대리왕궁의 터에
세운 수운각(水雲閣)에 머물고 있다!"
"수운각!"
이검한은 나직이 되뇌이며 눈을 번득였다.
'이자는 제 사형과 사이가 나쁜 듯하군. 한데 독천존은 왜 사이가 나
쁜 이자에게 중요하고도 중요한 연혼대법을 맡겼단 말인가?'
그는 가슴 속에 떠오르는 한 가닥 의문을 느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다시 천잔독마를 향해 물었다.
"두 번째 질문을 하겠다. 혈마대장경 중 연혼편은 지금 어디 있느냐?
"
천잔독마는 이검한의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즉시 대답했다.
"그것은 저쪽 시렁 위 서가에 있다!"
천잔독마는 이검한의 뒤쪽 서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검한은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죽어랏! 이놈!"
꽈르르릉!
천잔독마가 음독한 일갈과 함께 이검한을 향해 맹렬한 일장을 후려쳐
왔다. 이검한이 한눈을 파는 틈을 타서 기습을 한 것이다.
쏴아아아!
역겨운 비린내와 함께 그자의 손바닥에서 시커먼 독무(毒霧)가 확 일
어나 이검한을 덮어 씌웠다.
'욱!'
그 독무를 한 모금 들이마시는 순간 이검한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
며 휘청였다.
"이 늙은이가!"
이검한은 휘청이면서도 분노의 일갈을 토하며 시커먼 독무 속에다 오
지(五指)를 튕겨냈다.
쩌러러렁! 빠카카캉!
그의 손에서 마치 무쇠를 두드리는 듯한 쇳소리가 일어났다.
그와 함께 달궈진 부젓가락 같은 다섯줄기의 시뻘건 지강(指 )이 독
무 속을 뚫고 들어갔다.
"크윽!"
파라라락!
직후 독무 속에서 고통에 찬 신음성과 함께 옷자락 펄럭이는 파공성
이 일었다.
"흩어져라!"
쏴아아아!
이검한은 급히 장력을 날려 시야를 가린 독무를 흩어버렸다.
"교활한 늙은이!"
직후 그는 격분하여 발을 굴렀다. 어느 사이에 천잔독마는 석실 밖으
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석실의 바닥에는 그 자가 달아나면서 흘린 듯한 검은 핏자국만이 남
아 있을 뿐이었다.
'어디 얼마나 멀리 달아날 수 있는지 보자!'
이검한은 이를 부득 갈며 급히 서가로 달려갔다.
다행히 천잔독마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 기삼(其三) 연혼편(鍊魂篇)>
서가 위에는 그같은 표지의 낡은 비급 한 권이 놓여 있었다.
바로 혈마대장경 중 마지막 한 권인 연혼편이었다.
'이건…!'
헌데 연혼편을 집어들던 이검한은 움찔했다. 기이하게도 연혼편의 뒤
쪽 부분이 뜯겨져 나가고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독마야가 연혼대법이 악용될까 우려하여 연혼편의 마지막 한
구절을 뜯어내기는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검한의 수중에 들린 연혼편은 절반 가까이 뜯겨지고
없는 것이 아닌가?
이검한은 형형하게 눈을 번득였다.
'연혼편이 둘로 찢겼다니, 무슨 사연이 있는 게로군!'
그는 반 부의 연혼편을 품 속에 넣고 급히 천잔독마를 추격하기 위해
석실 밖으로 뛰쳐 나가려 했다.
다음 순간 이검한의 몸이 언뜻 굳어졌다. 비로소 그는 석실의 가운데
놓인 수정관과 그 속에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혹시 연혼대법으로 만들어진 실혼마인(失魂魔人)이 아닐까?'
이검한은 마치 무형의 손길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수정관으로 다가갔
다.
'허억!'
그리고 수정관 안을 들여다보던 이검한은 두 눈을 부릅떴다.
'아… 아름답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그만큼 수정관 속의 미소부는 아름다웠던 것이다.
이검한이 이제껏 본 여인들 중 가장 아름다웠던 여인은 누란왕후(樓
蘭王后) 흑요설(黑瑤雪)이었다. 신강(新疆) 일대에서 천년제일미인(
千年第一美人)으로 불렸던 누란왕후의 아름다움은 실로 전율스러운
것이었다.
헌데 이검한은 그 누란왕후 흑요설에 못지 않은 미녀를 다시 보게 된
것이다.
불사미인(不死美人)!
이 여인은 비단 아름다울 뿐 아니라 우아한 기품과 고결한 분위기가
절로 배어흐른다.
누란왕후 흑요설이 기승스럽고 화려한 장미라면 이 여인은 우아한 국
화 같다.
이검한은 불사미인의 아찔한 미태(美態)에서 쉽사리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것은 사내라면 누구나 똑같은 심정일 것이다.
잠시 불사미인을 살펴보던 이검한은 대충 그녀의 현재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여인은 지금 연혼대법으로 무서운 마력을 키우고 있다. 만일 연
혼대법이 완성되어 이 여인이 깨어난다면 어찌할 수 없는 절세마녀(
絶世魔女)가 될 것이다!'
그는 불사미인이 그 아름답고 풍만한 육체 속에 추측불가의 엄청난
내공을 담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그 힘을 악인이 사용한다면 실로 끔
찍한 일이 벌어지리라.
당혹하여 검미를 모은 채 염두를 굴리던 이검한은 이윽고 지그시 입
술을 물었다.
'아직 미완성인 지금 죽여야만 한다! 저항력이 없는 여인을 해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그는 결심을 굳히며 우수에 파천황강살을 일으켰다.
쩌러러렁!
이검한의 손이 시퍼런 노을에 휘감겼다.
파천황강살의 파괴력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
는다. 처들려진 이검한의 손이 내리쳐지기만 하면 불사미인이 말 그
대로 불사지체라 해도 내부가 으깨어져 죽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검한은 파르르 떨기만 할 뿐 불사미인을 내리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눈에 갈등의 빛이 일렁거렸다.
"휴우!"
마침내 이검한은 탄식하며 힘없이 손을 떨구고 말았다. 여인의 그윽
하고 기품서린 얼굴에 시선이 닿는 순간 도저히 살수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저항인 여자를 죽일 수는 없다! 비록 크나큰 후환이 된다 하더라
도…!'
이검한은 탄식하며 빙글 돌아섰다.
스읏!
다시 한번 불사미인을 돌아본 그는 곧 석실을 뛰쳐 나갔다.
몸을 날리며 이검한은 이를 부득 갈며 살광을 폭사했다.
'연혼대법으로 마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니… 용서치 않겠다! 독천존
! 천잔독마!'
쐐애애액!
이검한은 곧 한 줄기 연기처럼 변하여 연혼동천 밖으로 사라져갔다.
* * *
야인산의 동남쪽 산록에는 광활하기 이를 데 없는 궁궐의 터가 자리
하고 있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온통 주위에 잡초만 무성했지만 화려하고 웅대한
전각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그곳이 바로 대리왕부의 유적이었다.
-대리왕부(大理王府)!
그들은 남송(南宋) 시대까지 반독립 상태의 왕가를 유지했다.
하지만 남송이 대원(大元) 제국에게 멸망하면서 대리왕부도 함께 무
너지고 말았다.
화려하던 궁궐은 불타버리고 수많은 금은보화들은 모두 약탈당했다.
쿠빌라이!
바로 그가 대리왕부를 초토화시킨 것이다.
쿠빌라이가 대리왕부를 초토화시킨 것은 한 가지 보물을 얻기 위해서
였다고 전한다.
얻기만 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전설의 보물!
그러나 쿠빌라이는 끝내 대리왕부의 비보(秘寶)를 얻지 못했다. 대리
왕부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남명왕야(南冥王爺)가 그 보물과 함께 어
디론가 실종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대리왕부의 폐허가 자리한 동쪽은 지면이 뚝 끊기며 천야만야한 단애
가 나타났다.
그 단애 위에 우뚝 서면 멀리 곤명호(昆明湖)가 보인다.
단애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곤명호는 마치 거대한 거울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곳 단애는 망경애(望鏡崖)라 불리운다.
망경애 위 한 채의 전각이 그림처럼 세워져 있었다.
-수운각(水雲閣)!
전각의 처마에는 그같은 편액이 걸려 있었다.
어느덧 밤은 깊어 삼경(三更) 무렵이었다.
스읏!
문득 한 줄기 인영이 어둠을 뚫고 질풍같이 수운각 앞으로 날아내렸
다.
"누구냐?"
수운각 안에서 한소리 여인의 교갈이 들려왔다. 우아하면서도 기품이
배어있는 음성이었다.
여인의 교갈이 들리자 어둠 속에서 나타난 장한이 수운각을 향해 정
중히 포권하며 말했다.
"속하 염천월(閻天越)이옵니다, 주모님!"
이 장한의 나이는 이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데 기이하게도 눈빛이
짙푸른 벽안(碧眼)이었다.
그자의 용모로 보아 색목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눈빛이 푸른색을
띠는 것은 아마도 어떤 특이한 독공(毒功)을 연마한 때문인 것 같았
다.
"염공자가 여긴 웬일인가? 이 야심한 밤에?"
삐걱!
의아함이 배인 음성과 함께 수운각의 문이 열리며 한 명의 여인이 문
간으로 나섰다. 아주 기품있게 나이가 든 마흔 살 가량의 중년여인이
었다.
일견하기에도 자애롭고 후덕한 인상을 지닌 이 여인은 그렇게 미인이
라고는 할 수가 없다. 그저 평범을 약간 상회하여 밉상이 아닌 정도
의 미모의 소유자다.
하지만 비록 용모는 평범하지만 이 여인에게는 남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깊은 심지가 엿보이는 온유한 기품과 보는 사람을 절로 편하게
만들어주는 그윽한 분위기가 그것이었다.
아무리 흉악한 자라도 이 여인 앞에 서면 절로 마음이 순해질 것이다
.
얼굴은 평범하지만 여인의 몸매는 아주 매혹적이었다. 비록 나이 탓
에 날씬하던 처녀시절의 체형은 많이 무너졌지만 여인의 몸매는 여전
히 감미롭고 육감적이다.
특히 눈같이 흰 피부가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끈다.
여인은 잠자리에서 나온 듯 삼단같은 머릿결을 어깨까지 풀어 늘어뜨
리고 있었으며 몸에는 얇은 잠옷 하나만을 걸친 모습이었다.
그 얇은 잠옷을 통해 상당히 살이 오른 중년 여인의 풍만한 육체의
곡선이 부드럽고 완만하게 드러나 보였다.
"주무시는 데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주모님!"
여인이 문간에 나타나자 염천월이라는 장한은 곁눈질로 그녀의 몸매
를 훔쳐보며 포권했다.
여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염공자가 이 야심한 밤중에 찾아온 것을 보면 무슨 일이 있
는게로구먼!"
그녀는 기품있는 음성으로 말하며 염천월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사실 주모님께 한 가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
습니다!"
"긴히 할 말이라니?"
여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름이 아니옵고……!"
염천월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여인의 옆으로 다가갔다.
여인은 그런 염천월의 태도에 별다른 경계심을 느끼지 않고 그자의
말을 기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염천월은 여인의 실종된 남편이 총
애하던 독성부의 후진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 염천월은 여인의 지척까지 이르렀다.
"제가 찾아온 것은 주모님의 정조(貞操)가 필요해서입니다!"
그자는 여인의 옆으로 바짝 다가서며 히죽 웃으며 속삭였다.
"뭐라고?"
여인은 처음에는 염천월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설마 남편이 총애하던 독문의 후기지수가 자신의
정조 운운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의아함에 잠긴 표정을 지을 때였다.
"흐흐! 모르시겠다면 직접 가르쳐 드리지!"
팟!
염천월은 음악하게 웃으며 벼락같이 손을 뻗어 여인의 아랫배를 후려
쳤다.
퍽!
"악!"
한 소리 비명과 함께 여인의 교구가 그대로 뒤로 벌렁 나뒹굴었다.
워낙 무방비 상태였고 또한 지척간의 기습인지라 상당한 무공을 지닌
그녀였건만 피하고 어쩌고 할 틈조차 없었던 것이다.
"크흑! 이… 이게 무슨 짓인가, 염공자!"
여인은 뒤로 벌렁 나뒹군 채 경악의 신음성을 발했다.
그녀는 기해혈(氣海穴) 부위에 타격을 받아 전신이 뻣뻣하게 경직됨
을 느끼며 아연함을 금치 못했다.
바로 그때였다.
"흘흘! 잘했다. 천월!"
한 소리 음산한 웃음소리가 여인의 귓전으로 파고들었다.
스스스!
이어 한 명의 추괴한 노인이 장내로 날아내렸다. 그자는 얼굴에 혹이
주렁주렁 매달린 추악한 용모에 염소 수염을 기른 곱사등이 노인이
었다.
"다… 당신이!"
꼽추노인을 본 여인의 입에서 경악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천잔독마(天殘毒魔) 갈양(葛陽)!
추괴한 꼽추노인은 바로 독성부의 부문주인 그자였다.
"어서 오십시요, 부문주!"
염천월은 천잔독마를 향해 히죽 웃으며 포권했다.
-벽안독효(碧眼毒梟) 염천월(閻天越)!
벽안의 청년은 바로 저 운남십삼패(雲南十三覇) 중 벽안독마가(碧眼
毒魔家)의 소가주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본래 독천존 서래음은 독성부 휘하세력인 운남십삼패와의 관계를 돈
독하게 하기 위해 각 문파에서 한 명씩의 후기지수를 독성부에 보내
독성일맥(毒聖一脈)의 상승절기를 익힐 기회를 주었었다.
이름하여 독문십삼영(毒門十三英)!
그들은 개개인이 실로 인재 중 인재들이었다.
독천존 서래음이 독문십삼영을 독성부로 받아들인 이유는 사실 자신
의 대(代)를 이을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서래음은 지독히도 처복(妻福)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거푸 상처(喪妻)하여 무려 다섯 번이나 장가를 들어야만 했다.
차례로 얻었던 네 명의 아내는 그에게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모
두 죽어버리고 말았다.
특별히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닌데 그의 아내가 된 여인
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시집온 직후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죽곤 했던
것이다.
당연히 자식이 생길 리가 없다.
네 명이나 되는 아내들을 차례로 먼저 떠나 보내게 되자 독천존은 두
번 다시 장가를 가고 싶지가 않았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자식을 낳아 독성부의 명맥을 이어야만 하는 막중한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오랜 세월 망설인 끝에 독천존 서래음은 다섯 번째 장가를 들게
되었다.
장가를 들기 전에 그는 먼저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아내가 될 여자는 출신이나 미모를 떠나 건강을 최우선적인 조건으로
삼아 뽑았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가 될 여자가 선발되자 합방(合房)하기 전에 그녀
로 하여금 일 년 간 한 가지 무공을 연마하도록 시켰다.
-성결피독신공(聖潔避毒神功)!
오직 독성부의 지존만이 익힐 수 있는 내공심법이다.
이름 그대로 이 무공을 익히면 모든 독에서 자유스러워질 수가 있다.
최상승의 독공을 익히려면 여러 가지 극독을 상식(常食)하여 독인(毒
人)이 되어야만 한다.
나중에 독에 대한 면역력(免疫力)이 생기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처음
에 독을 먹기 시작할 때는 독의 기운을 못 이겨 죽거나 미쳐버릴 수
가 있다.
그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 독성부의 역대 장문인들이 창안해낸 내공심
법이 바로 성결피독신공이다.
성결피독신공은 몸 속에 들어오는 모든 사악한 기운을 중화(中和)시
켜서 자양분으로 삼게 해주는 묘용이 있다.
이 성결피독신공이 있기에 역대 독성부의 문주들은 두려움 없이 다량
의 극독을 상식하여 빠른 시일 내에 독인(毒人)이 될 수가 있었다.
독천존 서래음은 전례를 깨고 오직 문주만이 익힐 수 있는 그 성결피
독신공을 아내가 될 여인에게 수련하도록 시켰다.
어렴풋이 네 명의 아내가 거푸 죽은 것이 독성부 사상 최강의 독인(
毒人)이 된 자신의 체액(體液) 때문임을 짐작한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성결피독신공을 익힌 그의 다섯 번째 아내는 그와 합방했음에도 불구
하고 건강했다.
뿐만 아니라 그를 위해서 아이까지 잉태해주었다.
독천존 서래음은 뛸 듯이 기뻐했다. 마침내 그는 가문을 이를 후사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상들에게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고 기뻐하던 서래음은 오래
지 않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의 다섯 번째 아내는 지독한 난산(難産) 끝에 딸을 낳아버린 것이다.
불행은 그걸로 끝나지가 않았다.
그의 다섯 번째 아내는 난산(難産)의 후유증으로 아기집이 망가져서
두 번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전례를 깨고 장문인만이 익힐 수 있는 성결피독신공까지 아내에게 전
수하여 아이를 얻으려고 했던 독천존으로서는 낙심천만일 수밖에 없
었다.
독천존의 아내와 측근들은 그에게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후사
를 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독천존은 하늘이 자신에게 자식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여기고
그같은 주위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가 다시 장가를 들지 않기로 결심하는 데는 딸같이 어린 다섯 번째
아내에 대한 지극한 애정도 작용했다.
비록 빼어난 미녀는 아니지만 너무도 착한 이 어린 아내를 독천존은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녀를 두고 다시 장가를 든다는 것은 이제 생각
할 수도 없었다.
그렇기는 해도 독성일맥을 잇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원래 손이 귀한 독성일맥 서씨 집안에는 달리 대를 이을 사람이 없었
다.
이에 독천존은 한 가지 편법을 생각했다.
운남무림의 그 누구도 감히 흠잡을 수 없는 고귀한 신분의 데릴사위를
맞아들여 딸과 사위의 아이로 독성일맥을 잇게 하려 한 것이다.
-흑수선 서옥경!
독천존이 여자인 흑수선 서옥경을 후계자로 지명한 데에는 나름대로
고충이 있었다.
알다시피 독성부는 일개문파가 아니라 운남성 일대를 지배하는 사실
상의 왕조(王朝)다.
만일 운남성 내의 문파에서 후계자를 고른다면 다른 문파들이 반발하
여 힘들게 이루어놓은 운남무림의 통합을 와해시킬 여지가 있다.
또 남자를 후계자로 내세우면 시의와 질투가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만일 후계자가 여자라면 그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것
도 그 여자의 출신이 일국의 공주인 고귀한 신분이라면 더더욱 그렇
다.
운남무림의 호걸들은 그 여인을 흠모하고 경외할지언정 질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독성일맥의 전통이 여자가 가문을 잇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만 데릴사위를 들여 가문을 이을 수는 있었다.
해서 독천존은 후계자로 맞아들인 흑수선 서옥경의 배필을 고를 겸
해서 운남십삼패(雲南十三覇)의 후기지수들을 받아들여 독문십삼영(
毒門十三英)으로 길렀던 것이다.
결국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독문십삼영 중 한 명의 뛰어난 영재가 그의 후계자인 흑수선 서옥경
과 눈이 맞아 결혼하게 된 것이다.
-독군자(毒君子) 여절영(如絶影)!
그가 흑수선 서옥경에게 선택된 행운아였다.
운남십삼패 중 독왕벽(毒王壁)의 후계자인 그는 비록 무공을 배우는
자질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보기 드물게 진중하고 착한 심성의 소
유자였다.
독군자 여절영과 흑수선은 금술 좋은 부부가 되었으며 두 사람 사이
에는 애정의 결실로 아들 하나가 생겨났다.
-서운악(西雲岳)!
아이의 성이 아버지나 어머니의 성이 아닌 서씨(西氏)인 것은 그가
태어나자마자 독천존 서래음의 양자(養子)로 입적(入籍)되었기 때문
이다.
장차 서운악이 자라서 단절된 독성일맥을 잇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독군자 여절영이 중원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돌연 실종되어 영영 돌아
오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의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흑수선 서옥경은 본의 아니게 생과부로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낙심하지 않고 나름대로 무공 연마에 몰두하여 남편이
돌아올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상이 독천존이 딸을 후계자로 맞아들이고 십 삼 명의 인재를 기르게
된 이유였다.
벽안독효 염천월-!
그자는 독문십삼영 중 일곱 번째 인물이었다.
평소 그자는 총명하고 눈치가 빨라 독천존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헌데 그런 그자가 천잔독마와 한통속이 되어 자신의 주모인 이 고귀
한 여인을 암습한 것이다.
-독모(毒母) 나운벽(羅雲碧)!
이것이 암산당한 중년여인의 이름이었다.
그녀가 바로 독천존 서래음이 마지막으로 얻었던 다섯 번째 아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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