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천년 2-5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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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5章 독천존(毒天尊)의 선물
망경애(望鏡崖) 아래쪽은 온통 뾰족한 괴석들이 난립해 있는 비좁은
협곡(峽谷)이었다.
"크으! 이렇게 어이없이 암습을 당하다니……!"
협곡의 한쪽에서 문득 한 소리 괴로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괴석들이 난립해있는 사이로 한 그루의 커다란 소나무가 부러진 채
쓰러져 있었다.
그 소나무는 본래 망경애의 절벽 가운데쯤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는데
망경애 위에서 추락한 이검한과 부딪혀 부러져 내린 것이다.
"천… 천우신조였다!"
부러진 소나무 가지 사이 한 명의 청년이 벌렁 드러누운 채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고통스럽게 숨을 몰아쉬는 그 청년은 물론 이검
한이었다.
말 그대로 그가 살아난 것은 천우신조였다. 내공이 흩어진 상태에서
수백 장 높이의 절벽에서 떨어지고도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소나무에 부딪혀 충격이 완화되지 않았다면 제 아무리 나한부동
결을 익혀 금강불괴지체가 된 이검한이라 할지라도 결코 무사하지 못
했을 것이다.
"그 놈 역시 독성부의 제자였던 듯한데… 어째서 이 여자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나를 공격한 것일까?"
이검한은 의아함을 금치 못하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으으으!"
그런 이검한의 품에는 독모 나운벽이 온몸을 덜덜 떨며 안겨 있었다.
이검한이 추락의 충격을 고스란히 흡수한 덕분에 그의 품에 안겨있
던 그녀는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피부는 잘 구워진 가재껍질처럼 새빨갛게 충혈되
어 있었다. 천잔독마가 투여한 최음제의 약효가 극에 달한 것이다.
이검한은 독모 나운벽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침중한 안색을 지었다.
'안 좋다. 제맥구명대법(制脈救命大法)이 풀어지려고 한다!'
독모 나운벽의 내부에서 용암처럼 들끓고 있는 욕정의 요동을 느낀
이검한은 다급한 심정이 되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
태가 올 것이다.
잠시 당혹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이검한은 나직한 한숨을 내
쉬며 결심한 듯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렇게 된 이상 도리가 없다. 이분의 정조에 누를 끼칠 수밖에…!'
인명은 고귀한 것이다. 나중에 추궁을 받더라도 그는 일단 독모를 살
려낼 작정을 한 것이다.
이검한은 결심을 굳히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우선 이슬이라도 피할 곳을 찾아야겠군!'
이어 그는 경련하는 독모의 나신을 끌어 안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협곡을 따라 백여 장 정도 걸어가던 이검한은 두 눈을 반짝 빛냈다.
'동굴이 있군!'
그의 전면 하나의 시커먼 동굴이 입을 쩍 벌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헌데 이검한이 반가운 마음에 앞뒤 생각 없이 총총히 동굴 안으로 걸
어 들어갈 때였다.
"누구냐, 네놈은?"
돌연 이검한의 귓전으로 천둥치는 듯한 사나운 일갈이 들려왔다.
'헉!'
이검한은 귓전이 멍멍해지는 충격을 느끼며 휘청했다. 이 일갈에 실
린 내공은 이검한이 이제껏 만나본 누구보다도 강한 것이었다.
츠츠츠츠!
그와 함께 이검한은 동굴 안쪽에서 두 쌍의 시퍼런 불빛이 자신을 주
시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에 안력을 돋구어 동굴 안을 살피던 이검한은 일순 아연실색하였다
.
'저럴 수가!'
그의 두 눈은 경악으로 한껏 부릅떠졌다.
종유석의 동굴 입구에서 멀지 않은 종유석의 아래 일인일수(一人一獸
)가 뒤엉켜 있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봉두난발의 괴인과 괴
인의 몸을 칭칭 휘감고 있는 괴사(怪蛇) 한 마리가 그들이었다.
괴인을 휘감고 있는 괴사의 길이는 무려 이장(二丈) 정도나 되어보인
다. 그 엄청난 길이에 비해 몸통의 굵기는 어른 팔뚝 정도밖에 안되
어 보이는 그놈은 기이하게도 몸의 반쪽은 붉고 반쪽은 흰색이었다.
또한 이마 위에는 마치 혹같이 붉은 덩어리가 달려 있는 것이 마치
머리가 두 개 달린 듯이 보였다.
"음양쌍두신망(陰陽雙頭神 )!"
그 괴사를 본 이검한의 입에서 절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음양쌍두신망(陰陽雙頭神 )!
전설의 영물로서 천지간의 음기(陰氣)와 양기(陽氣)를 흡수하여 살아
가는 괴물같은 뱀이다.
그렇게 만년을 살면 놈은 용으로 변신하여 등천할 수 있다고 한다.
이놈은 몸에 두 가지 보물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또 하나의 머리처럼 보이는 혹이다.
사황정(蛇皇精)이라 불리는 그것을 복용하면 영원히 젊음을 누리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보물은 음양쌍두신망의 내단(內丹)이다.
음양쌍두신망이 오랫동안 천지간의 음양지기를 흡수하여 생성하는 그
내단의 이름은 음양단정(陰陽丹精)인데 그것을 무림인이 복용하면
무궁무진한 내공과 함께 음양강살(陰陽 煞)이란 강력한 기운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같은 이유로 음양쌍두신망은 무림인들이 꿈에라도 발견하기를 원하
는 영물이었다.
하지만 지난 오백 년 내에 음양쌍두신망은 단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바로 그 음양쌍두신망이 지금 이검한의 눈앞에 있는 것이다.
'음양쌍두신망을 보게 되다니…!'
이검한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음양쌍두신망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헉!'
그러다가 그는 또 한번 크게 놀랐다.
놀랍게도 괴노인은 왼쪽 가슴이 박살난 채 마땅히 심장이 있어야 할
부분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믿어지지 않게도 구멍난 그 심장 부위에 음양쌍두신망의 몸통
이 끼워져 있지 않은가?
이검한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그는 믿어지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크크! 네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 왔는지 모르나 노부의 손에 죽
어 주어야겠다. 혈황(血皇)의 졸개!"
괴노인은 음험한 눈을 번득이며 이검한을 향해 입을 열었다.
"혈황!"
이검한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귀하를 이렇게 만든 것이 혈황이란 말이오?"
그는 경악하여 오히려 되물었다.
그러자 괴노인은 움찔했다. 이검한이 혈황을 알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이내 그자는 눈을 부라리며 냉갈을 내질렀다.
"이놈! 그따위 수작을 부리면 노부가 속아 넘어갈 줄 알고… 헉!"
말을 하던 그는 돌연 두 눈을 경악으로 부릅떴다. 비로소 괴노인은
이검한의 두 팔에 축 늘어진 채 안겨있는 독모 나운벽을 발견한 것이
다.
"이… 이놈! 운벽에게 무슨 짓을 했느냐?"
그는 두 눈을 부릅뜨며 천둥치는 듯한 폭갈을 내질렀다.
카아아!
그 직후 주인의 뜻을 알아챈 음양쌍두신망은 돌연 몸을 쭉 뻗치며 그
대로 이검한을 덮쳐왔다.
이검한과 괴인 사이의 거리는 이 장 정도였다.
하지만 음양쌍두신망이 그 거리를 덮쳐드는 속도는 마치 전광석화와
도 같아 단번에 이검한의 눈앞으로 짓쳐 들어왔다.
"감히!"
이검한은 사나운 일갈을 내지르며 독모의 몸을 한 팔로 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맹렬히 음양쌍두신망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쾅!
키아앙!
폭음과 함께 음양쌍두신망의 괴로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놈은 고통
스러운 듯 고개를 비틀며 물러섰다.
"고… 고독혼(孤獨魂)!"
갑자기 괴노인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나왔다. 비로소 그는 이검한의
허리춤에 찔려진 신도(神刀) 고독혼을 발견한 것이다.
"이놈! 고독마야 연늙은이의 제자냐?"
괴노인은 온통 경이의 표정으로 이검한을 노려보았다.
이검한은 힐끗 음양쌍두신망을 흘겨보며 무뚝뚝한 음성으로 물었다.
"귀하는 누군데 할아버지를 아시오?"
"크크읏! 노부가 누구냐고?"
괴노인은 이검한을 노려보며 음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의 그 강퍅
한 웃음 속에는 왠지 모를 처연함이 깃들어 있었다.
괴노인은 이검한을 노려보며 내뱉았다.
"노부가 바로 네게 그 칼을 물려준 늙은이를 죽게 만든 장본인이다!"
"뭐… 뭐라고?"
이검한은 아연실색했다.
고독마야 섭장천을 죽게 만든 것은 천하오대극독(天下五大劇毒) 중
하나인 무형지독(無形之毒)이고 당금 무림에서 그 무형지독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늙… 늙은이가 바로 독천존(毒天尊) 서래음(西來音)?"
이검한은 경악으로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는
눈앞의 괴인이 자신의 불구대천지수라는 사실조차 잠시 잊을 지경이
었다.
"크하하! 그렇다. 본좌가 바로 독성일맥의 어리석은 지존 서래음이다
!"
괴노인은 고개를 젖히고 광소를 터뜨렸다.
-독천존(毒天尊) 서래음(西來音)!
그렇다! 괴노인은 바로 독성부의 지존이며 사방무제(四方武帝)중 한
명인 독천존 서래음이었다.
천잔독마 갈양은 독천존 서래음이 혈황과의 싸움에서 패해 죽었다고
말했었다.
헌데 그런 그가 심장이 음양쌍두신망에게 파먹힌 처참한 모습으로 살
아있는 것이다.
독천존 서래음의 처절한 한과 분노가 서린 웃음소리에 이검한은 흠칫
하며 정신을 차렸다.
"바득! 잘 만났다. 늙은이!"
쩌어엉!
정신을 차린 이검한은 독모를 급히 바닥에 내려놓고 신도 고독혼을
뽑아들었다.
"할아버지의 원수! 죽어랏!"
촤아앙!
그는 사나운 일갈과 함께 고독혼으로 독천존의 목을 후려쳐갔다.
카아아!
쐐애액!
그 순간 한 가닥 날카로운 괴성이 터지며 희고 붉은 그림자가 섬전같
이 이검한의 목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물론 그 놈은 음양쌍두신망이
었다.
이검한은 눈썹을 꿈틀했다.
"감히!"
분노가 극에 달한 이검한은 고독혼에 파천황강살(破天荒 煞)을 실어
벼락같이 후려쳤다.
퍼억! 우두두둑!
직후 뼈와 내장이 으깨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음양쌍두신망의 목
부위가 자끈동 부러져 나갔다.
"사황(蛇皇)!"
독천존 서래음의 입에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나왔으나 이미 늦은 후였
다. 음양쌍두신망은 목 부위의 척추와 내장이 으깨져 그대로 즉사해
버린 후였다.
"쯧쯧! 영물을 이렇게 무참하게 죽이다니, 네놈도 네 할애비만큼 무
정한 놈이구나!"
독천존은 의외로 끌끌 혀를 찰 뿐 화를 내지는 않았다.
이검한은 그런 독천존을 향해 고독혼을 겨누며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
다.
"태연한 척 하지 마라! 늙은이! 늙은이도 곧 음양쌍두신망의 뒤를 따
라 저 세상으로 가게 될 테니!"
그의 말에 독천존은 허허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흐흐흐! 네 말은 사실이다. 노부는 앞으로 일식경(一食更) 이상은
살지 못한다. 왠지 아느냐?"
이검한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일 년 전, 노부는 혈황이란 놈과 싸워 심장이 으깨지는 중상을 입었
다. 그놈은 노부가 죽었다고 여기고 이 망경애 아래로 던져 버렸었지
!"
독천존은 머리가 잘려 죽은 음양쌍두신망의 시신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노부는 죽지 않았다. 바로 이놈 음양쌍두신망 덕분이었다!"
독천존 서래음이 제 아무리 독공의 달인이고 막강한 내공을 지녔다고
하나 심장이 박살나고서는 살 수가 없었다.
그가 이곳 망경애 아래에서 음양쌍두신망을 만난 덕분에 죽지 않고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음양쌍두신망은 희세의 영물이다.
그놈은 자신의 몸을 독천존과 결합하여 독천존의 심장 역할을 해주었
다.
그리고 그 대가로 그놈은 독천존의 일신의 내공과 독공을 야금야금
흡수해갔다.
독천존의 내공과 정수를 모두 흡수한 음양쌍두신망은 무려 오백 년을
수련한 효과를 얻을 수가 있었다.
해서 그놈은 자원하여 독천존의 심장노릇을 해온 것이다.
그런 음양쌍두신망이 죽었으니 독천존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장이 없는 상태로는 그 어떤 고수도 살아있을 수
가 없으니…
이검한은 냉혹한 눈으로 독천존을 내려다 보았다.
"하여간 늙은이는 내 손에 죽어야할 운명이다! 저절로 숨이 끊어지기
전에 내 손으로 먼저 늙은이의 추악한 목숨을 끊어주겠다!"
그는 서서히 칼을 쳐들었다.
"유언이 있으면 해봐라. 늙은이의 후손에게 유언 정도는 전해줄 테니
……!"
그의 말에 독천존은 음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흘흘! 유언 따위는 없다. 다만 아직 앞날이 창창한 어린 놈을 저승
으로 동반하고 가게 된 점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무슨 헛소리냐?"
이검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검미를 꿈틀했다.
독천존은 그런 이검한을 올려다 보며 음산하게 히죽 웃었다.
"흐흐흐! 이해가 안 가면 네 양손을 보거라!"
"헉!"
반사적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던 이검한은 두 눈을 부릅떴다.
언제부터였을까? 고독혼을 든 그의 양손이 시커멓게 물들어 가고 있
지 않은가?
"무… 무형독강(無形毒 )?"
이검한은 신형을 비틀 하며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양팔이 급격히 저려오기 시작했다.
따다다당!
마침내 이검한의 양손은 삽시에 마비되어 신도 고독혼이 요란한 소리
와 함께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흐흐흐! 너 어린 놈은 조심을 했어야 했다. 명실상부한 우내제일인
고독마야조차 독살시킨 노부 서래음이 아니더냐?"
독천존은 이검한의 모습에 유쾌한 듯 광소를 터뜨렸다.
"이… 이런 어이없는……!"
쿠웅!
이검한은 마침내 두 다리까지 마비되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 독천존이 기척도 없이 투사한 무형독강이 이검한의 전신으로 급속
히 퍼져가는 것이다.
나한부동결(羅漢不動訣)도, 천외약선이 일천 종의 영약으로 만들어
놓은 철골대력단(鐵骨大力丹)의 약효도 독성일맥 최후최강의 비예인
무형독강만은 막아내지 못했다.
"흘흘! 이제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을 할 수 있겠군!"
독천존은 기이한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협… 협상?"
"그렇다. 사실 노부는 너를 죽일 수 없는 입장이다!"
"무슨 헛소리냐?"
독천존의 말에 이검한은 검미를 꿈틀하며 냉갈을 내질렀다.
"너 어린놈을 죽이면 노부가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여자도 함께 죽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천존은 탄식하며 한 옆에 누워있는 독모 나운벽을 돌아보았다.
독모의 상태는 이미 위험한 지경이다. 이검한이 구명수법으로 억눌러
놓았던 욕화가 폭발하기 직전인 것이다.
이검한은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어 입을 쩍 벌렸다.
"혹… 혹시 저 여자가 늙은이의……!"
"그렇다. 그녀는 바로 노부의 다섯 번째 아내다!"
독천존은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두 눈은 독모에 대한
애정과 근심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검한은 독모(毒母)라는 특별한 칭호에서 어렴풋이 나운벽의 정체를
짐작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독천존 서래음에게서 직접 그녀의 정체
를 확인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당혹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여인이 역시 독천존 서래음의 아내였구나!'
이검한의 얼굴이 난감하게 이지러졌다.
독모 나운벽을 살리려면 사내의 양정(陽精)이 다량 필요하다.
하지만 독천존은 그녀를 구해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 자신의
목숨이 이제 밥 한 끼 먹을 시간만큼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독천존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그녀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죽도록 마음 고생만 시킨 주제에 이제
는 죽어 가는 것을 보고도 구해줄 수가 없으니……!"
독공으로 천하제일이라 불리던 인물답게 독천존 서래음은 한눈에 어
린 아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래서 네게 제안을 하는 게다. 그녀의 목숨과 네 목숨을 교환하자
고……!"
독천존이 두 눈을 의미심장하게 빛내며 말했다.
그의 말에 이검한은 안색이 싹 변했다.
"설… 설마 나보고 그녀를……!"
그는 비로소 독천존의 의도를 깨달았다. 살고 싶으면 독모와 교합하
여 그녀를 살리라는 것이다.
이검한이 이해한 듯 하자 독천존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
다.
"네 짐작 대로다. 너도 노부의 아내가 사내의 양정을 받아들여야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운남성 일대에서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내는 외부인인 너밖에 없다!"
그의 말에 이검한은 펄쩍 뛰었다.
"그런 짓은 절대로 할 수 없다! 하물며 늙은이는 나의 철천지원수가
아니냐? 원수의 마누라인 그녀를 내가 왜 살려야한단 말이냐?"
그는 강경한 어조로 잘라 말했다.
독천존은 그런 이검한의 반응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했다.
"무어라고 해도 좋다. 노부는 지금부터 네게 무형독강의 심결을 구술
해줄 것이다. 그것을 운용하면 무형독강의 독기를 다스릴 수 있다!
무형독강에 침습당해서 노부와 함께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할 것인지,
아니면 노부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는 전적으로 네 자유다!"
이어 그는 눈을 감고 한 가지 심결을 암송하기 시작했다.
-무형독강(無形毒 )!
독성일맥 최후최강의 독공으로서 오직 장문인과 장문인이 될 제자 사
이에 구결(口訣)로만 전해져 오는 우내최강의 독공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껏 무형독강을 십이성까지 연마한 자는 전무했다.
독천존 서래음도 그저 무형독강의 본래 위력의 삼 할 정도를 발휘할
수 있을 뿐이었다.
만일 무형독강을 극성으로 연마한다면 백 리 밖의 적에게도 독기를
불어넣어 죽일 수 있다고 한다.
짧은 순간 이검한의 안색은 곤혹감과 갈등으로 여러 차례 변했다.
'도리가 없다!'
그러다가 그는 이내 결심을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곳에서 개죽음을 할 수는 없다. 우선 위기를 넘긴 뒤 무형독강
의 심결을 뇌리에서 지워버리리라!'
결심을 굳힌 이검한은 독천존의 구술에 귀를 기울였다.
곧 그는 무형독강의 구결에 몰입해 들었다.
스스스!
그러자 그의 전신으로 번져가던 무형독강의 기운이 자연스럽게 심맥
으로 유도하며 그의 진원지기와 합류했다.
'흘흘! 결국 노부가 이긴 것이다. 애송이 녀석!'
독천존은 삼매경에 빠져드는 이검한을 바라보며 득의의 미소를 지었
다.
"기다려라! 혈황! 내 대신 네놈에게 진 빚을 갚으러 갈 놈이 있을 테
니!"
그는 유쾌한 듯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런 독천존 서래음의 얼굴에서는 급격히 생기(生氣)가 사라
지고 있었다.
* * *
이검한은 무형독강의 심법으로 일주천(一周天)하고 깨어났다.
무형독강의 심법은 실로 신묘하기 이를 데 없어 어느덧 이검한의 몸
에 침투했던 무형독강은 말끔히 제거된 후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 독천존 서래음은 이미 숨이 끊어져서 이 세상 사람
이 아니었다. 제 아무리 고수라도 심장이 없어진 상태에서는 잠시도
목숨을 부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마풍운록 서열 제사위에 올랐던 일대독종 독천존 서래음!
그가 독성부의 바로 지척에 자리한 망경애 아래에서 쓸쓸하게 최후를
마친 것이다.
죽어있는 독천존의 얼굴은 더할 수 없이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 아마도 후사를 이검한에게 모두 맡겼다는 안도감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할아버지의 복수는 또 못하고 말았구나!'
독천존 서래음의 시신을 보며 이검한은 만감이 서린 표정이 되었다.
유성신검황 혁련휘, 유령마제 구양수에 이어 독천존 서래음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응징하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평온한 표정으로 죽어있는 독천존 서래음의 시신 앞의 돌바닥에는 깨
알같은 글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독천존이 죽기 전에 이검한
에게 남긴 유언(遺言)이었다.
-혈황이라는 자를 조심해야 한다. 놀랍게도 그자는 노부의 무형독강
에도 끄덕하지 않았다!
글의 서두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혈황이 무형독강조차도 견디어냈다고?'
이검한은 침음하며 글을 읽어내려 갔다.
-놈이 노부의 무형독강을 견디어 낸 것은 두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첫 번째는 그자가 전설적인 문파 약왕림(藥王林)의 비전지보 만년웅
황정(萬年雄皇精)을 지니고 있을 경우다. 만년웅황정을 지니고 있다
면 무형독강을 막아낼 수도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본문 사상 최강의 고수자셨던 한 분 여걸의 진전을
그놈이 이어 받았을지도 모른다. 이백 년 전, 그분 여걸은 쿠빌라이
의 초청을 받고 신강(新疆)의 한곳 비역으로 떠나셨는데 그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당시 그분은 본문의 가장 무서운 신병인 만독신마
편(萬毒神魔鞭)을 지니고 가셨으며…
거기까지 읽은 이검한은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만독모모다!'
만독모모(萬毒母母).
쿠빌라이에 의해 유인되었던 최강의 무사들 십왕(十王)!
만독모모는 바로 그 십왕 중에서도 제일인자로 꼽히던 일세여걸이 아
닌가?
그 만독모모는 놀랍게도 독성부의 고인이었던 것이다.
'혈황이란 자가 만독모모의 진전을 얻었을 가능성이 크군!'
이검한은 독천존이 남긴 글을 읽으며 침중한 안색으로 고개를 끄덕였
다.
만독모모의 가공무쌍할 독공이 혈황의 수중에 들어갔다면 이는 실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만독모모님과 함께 사라진 만독신마편은 이 세상의 그 어떤 호신강
기라도 단번에 녹여버릴 수 있는 무서운 만독강살(萬毒 煞)을 지니
고 있다.
그 만독신마편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무형독강뿐이다.
무형독강을 육성(六成) 이상 연마하면 만독강살을 역류시켜 오히려
만독신마편의 사용자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다!
이검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무형독강으로 만독신마편을 이길 수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군!'
그는 내심 중얼거리며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돌렸다.
글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노부는 네 할애비 곁으로 가거니와 저 세상으로 가기 전에 네
게 두 가지 선물을 남기는 바이다.
첫 번째 선물은 연혼동천(鍊魂洞天)에 숨겨놓은 불사미인(不死美人)
이다. 만일 네가 인연이 있어 옥룡음마(玉龍淫魔)의 옥룡경(玉龍經)
을 얻는다면 너는 불사미인에게서 천년내공을 얻을 수 있다. 옥룡경
상의 옥룡흡정도인술(玉龍吸精導引術)을 시전하면 불사미인의 몸 안
에 응결된 내공의 정화를 네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참고로 적어두자면, 그녀는 차마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어느 황족(皇
族)의 부인이었다. 그 일이 벌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의 일
이다. 남편이었던 황족이 죽자 측근들이 가엾은 그녀에게 남편을 따
라 순사(殉死)를 강요했던 모양이다. 결국 그녀는 천일몽(千日夢)이
라는 극독을 다량 복용하여 가사상태(假死狀態)에 빠진 채 남편의 무
덤에 함께 묻혔다.
중원으로 채약을 하러 갔다가 우연히 그 소문을 들은 노부는 의분을
참지 못하고 황릉(皇陵)에 침입하여 그녀를 구해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천일몽의 독기운이 골수까지 미쳐 노부의 독공으
로도 깨울 수가 없었다. 해서 그녀를 불사회혼액(不死廻魂液)에 담가
생명을 유지하게 만든 것이다.
'황릉(皇陵)!'
이검한은 일순 흠칫했다.
독천존 서래음은 불사미인의 남편인 황족이 누구였는지 차마 밝힐 수
가 없다고 했지만 의도적인지 실수인지 황릉이란 이름을 거론했다.
'설… 설마 불사미인이 황후(皇后)란 말인가?'
이검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금으로부터 삼 년 전이라면 확실히 황제(皇帝)가 붕어(崩御)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의 황제가 거푸 세상을 떠났다.
바로 최강의 무인황제(武人皇帝)라 불렸던 영락제(永樂帝)와 그의 장
자(長子)로서 황위를 이어받았던 인종(仁宗) 홍희제(洪熙帝)가 불과
몇 달 간격으로 유명을 달리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불사미인이 영락제의 총비(寵妃)거나 홍희제의 황후(皇后)
였단 말인가?'
이검한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일 순장(殉葬)당한 것으로 알려진 황제의 여인을 독천존 서래음이
빼내 되살린 것이 알려지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다. 제 아
무리 막강한 세력을 지닌 무림 문파라도 황실에 죄를 짓고서는 무사
할 수가 없는 법이다.
'이 일은 비밀에 부쳐져야만 하리라!'
이검한은 침중한 표정이 되어 다시 독천존이 남긴 글로 시선을 돌렸
다.
-두 번째 선물은 동굴 안쪽에 있다. 그것은 네가 직접 찾아보도록 하
거라.
이만 줄이거니와 노부와의 계약을 잊지 마라. 오늘 이후 운벽은 바로
네 여자이니라!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염체 없는 부탁을 하자. 음양쌍두신망의 사황
정(蛇皇精)은 운벽에게 양보해달라는 것이다. 사황정을 먹으면 운벽
은 다시 젊어지게 될 것이다.
노부의 단 한 가지 소망은 운벽이 젊음을 유지한 채 행복한 여생을
보내는 것 뿐이다.
독천존의 글은 그렇게 끝나 있었다.
다 읽고 난 이검한은 당혹하여 쓴웃음을 지었다.
'괘씸한 늙은이로군. 내게 이런 골칫덩이를 남기고 죽다니…!'
하지만 이제 그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쨌든 자신은 독천존 서래음에게 목숨의 빚을 졌다.
그리고 심각해진 독모 나운벽의 상태가 더 이상 망설이고 갈등을 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온몸이 불덩이같이 달아오른 그녀의 입에서는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뜨거운 신음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검한은 흘낏 옆을 주시하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옆에서는 나운벽이 차마 눈뜨고 보기 민망한 치태를 보이며 욕
정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녀의 섬섬옥수는 쉴새 없이 자신의 예민
한 곳을 쓰다듬고 주물러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몸부림만으로는 결코 그녀의 내부에서 들끓는 불길을 끌
수가 없었다.
이검한은 한숨을 쉬며 바닥에 뒹굴고 있는 사황정을 주웠다.
그리고는 그것을 욕화에 몸부림치고 있는 나운벽의 입에 넣어주웠다.
타는 듯한 갈증으로 할딱이고 있던 나운벽은 차가운 물체가 입가에
닿자 허겁지겁 받아먹었다. 만일 그녀가 제 정신이었다면 아무리 영
원한 젊음을 주는 영약이라지만 뱀의 머리에 난 혹인 사황정 따위는
먹지 않았을 것이다.
'괴롭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이검한은 나운벽의 치태에 얼굴을 붉히며 일어섰다.
그리고는 독천존 서래음의 시신을 안아들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원
래 작은 체구였던 데다가 지난 일 년 간 완전히 곡기를 끊은 탓에 독
천존 서래음의 시신은 너무도 가벼웠다.
동굴을 나선 이검한은 가능한 양지바른 곳에 독천존 서래음의 시신을
매장했다.
인적이 닿은 적이 없는 망경애 아래에 작은 돌무덤이 하나 새로 생겼
다. 일세를 풍미했던 천하제일독인의 무덤치고는 너무도 초라한 무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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