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아래 헬창 누나와 헬창 삼촌 17
정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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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6 23:59
나는 외국에 나가 계신 아빠에게 먼저 문자로 약속 시간을 정한 다음 PC로 화상 통화를 걸었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아빠의 얼굴이 화면에 떴다.
아빠 역시 내 얼굴을 간만에 보는 것일 텐데도 오랜만이라는 인사보다도 용건부터 물었다.
[웬일이냐? 안 하던 화상 통화로 얘기를 다 하자 하고.]
"삼촌 방을 정리하다가 엄마 아빠가 젊었을 적에 찍은 사진을 담은 앨범을 발견했어요."
[그런데?]
"뭔가 좀, 아니. 너무 이상해서 말이에요."
나는 젊은 시절의 엄마가 찍힌 사진을 앞에 내밀었다.
그 사진을 잠시 응시하던 아빠는 눈치를 못 챈 듯 내게 물었다.
[이 사진이 뭐가 어떻다는 거냐?]
"날짜 말이에요."
나는 사진 하단에 찍힌 날짜를 가리켰다.
"여기 나온 대로라면 이 사진은 2001년 7월 29일에 찍은 거 맞죠?"
[그렇게 찍혀 있으니 그날이 맞겠지.]
"그렇다면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누나가 태어난 날은 2001년 8월 18일이라고요."
즉, 엄마는 출산을 코앞에 두고 있을 시기다.
원래대로라면 만삭이었어야 정상이지만 사진에 찍힌 엄마 배는 전혀 부르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모순을 지적하자 심드렁하던 아빠의 눈이 살짝 휘둥그레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아빠는 금방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글쎄. 찍힌 날짜에 오류가 있었던 거겠지. 그 사진도 정확히 언제 찍은 건지 기억이 안 나는데.]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거든요. 실은 이 사진의 모순을 보고 나서 제일 먼저 알아봤는데요."
[알아보다니?]
"혈액형이요."
[.....]
내 혈액형은 AB형이고, 누나는 O형이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 부모님의 혈액형인데 아빠는 본인 혈액형을 A형이라 알려 주셨었고, 엄마는 B형이라고 하셨었다.
하지만 두 분의 실제 혈핵형은 모두 AB형이다.
AB형은 O형의 유전자를 갖지 않기 때문에 O형의 자녀가 태어날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문제가 안 되지만 우리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누나가 태어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잠시 침묵을 가진 아빠는 내게 물었다.
[민지도 알고 있는 거냐?]
"아직은 말 안 했어요."
나처럼 누나도 스스로 깨닫는다면 모를 일이지만 누가 알려 주지 않는 이상은 앞으로도 쭉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지금처럼 입 다물고 있어라. 괜히 일 키우지 말고.]
"그 전에 설명부터 해 주시면 안 돼요? 어째서 남의 자식인 누나를 아빠와 엄마가 키우고 계셨는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네 가슴속에 묻어두고 있어라. 알아서 좋을 거 없으니.]
여태껏 친남매라고 생각했던 누나가 사실은 나와 같은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심정으로 묻어둬라?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아빠만 아니었다면 뭔 소똥 씹어먹는 소리냐며 더 수위 높은 반문으로 쏘아붙였을 것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혈육도 아닌 가짜 누나는 집에서 내쫓아 주기를 바라나?]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아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긴 언젠가 알아차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다만. 너야 옛날부터 쓸데없이 눈치가 빨랐으니.]
그냥 눈치 빠르다 하면 되지 쓸데없이는 왜 붙이는 거야?
[그래, 알았다.]
"어? 말씀해 주시게요?"
[말해야지. 알려 주지 않으면 누나한테 말하겠다고 애비를 협박이라도 할 기세이니.]
"무슨 비밀인지도 정확히 모르는데 그렇게까지는 안 하거든요. 끽해야 아빠랑 영원히 말을 안 섞는 정도겠죠."
[그래. 넌 정말 내 아들이 맞구나.]
진담 반 농담 반이 섞인 얘기 덕분에 무거웠던 아빠의 분위기가 조금 풀린 듯 했다.
[민지의 부모는......]
"돌아가신 거죠? 그리고 아빠는 누나의 부모님하고 가까운 사이이고."
[......]
아빠는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표정이었다.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우는 이유야 뭐, 그 아이의 친부모가 이미 별세를 했거나 아이를 버렸거나인데 아빠 성격에 버린 자식을 데려다 키울 리는 없잖아요."
[말 끊지 말고 들어.]
"예......"
아빠는 진실을 알려 주셨다.
내 짐작대로 누나의 친부와 친모는 모두 운명하셨다고 한다.
누나의 친부모님은 아빠와는 오랜 친구 사이라고 한다.
누나의 생부와 생모는 일찍이 사고로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원에서 만난 사이인데 아빠가 그 둘을 처음 만난 건 아주 어릴 때였다.
알고 보니 누나의 생일은 친부모님의 기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누나의 친부는 진통을 시작한 자신의 아내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했지만 그 도중에 하필이면 교통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친부는 그 순간에 사망했지만 친모 쪽은 그 때 당시에는 아직 살아 있었다.
누나의 친모는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남아 있는 기력을 모두 쥐어짜내 누나를 출산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역시나 사고로 입은 충격이 커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났다.
누나의 부모님들은 둘 다 천애고아였던 처지라 그 둘을 대신하여 누나를 키울 혈육이 없었다.
그래서 아빠는 오갈 곳이 없던 누나를 거두어 누나를 자신의 친딸처럼 여태까지 키워 왔던 것이다.
가만히 아빠가 하는 얘기를 듣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오랜 친구의 자식이라도 보통 그렇게까지 하나?
고아원으로 보내는 선택지도 있었을 텐데.
난 그 앨범 속 사진들을 본 기억을 떠올렸다.
생각이 나는 것 같다.
아빠, 삼촌이 젊었을 적에 찍었던 그 사진 속에 분명히 누군지 모를 남녀가 있었다.
그분들이 누나의 친부모님들이었나?
그리고 한 가지 더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 사진 속에서 누나의 친모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빛이었다.
"혹시 아빠 말이에요. 옛날에 누나 친엄마한테 남다른 감정이라도 품고 있었던 거 아니세요?"
[무슨 그런......!]
아빠가 처음으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니라면 무덤덤하게 넘겼을 테고 설사 맞더라도 내가 아는 아빠라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둘러댔을 것 같은데 뭐지, 이 격한 반응은?
아빠 본인도 스스로 그걸 자각했는지 금방 평정심을 되찾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돌아왔다.
[아무튼 그런 거 아니니 괜한 오해 마라. 그리고 단단히 당부하는 거지만 누나한테 쓸데없는 소린 일절 하지 말거라. 혹시 민지 귀에 들어가는 날에는 절대 널 용서치 않을 거다.]
그 얘기를 끝으로 아빠 쪽에서 통화를 끊었다.
저 반응은 사실상의 긍정이라는 거겠지? 아빠가 누나 친엄마를 좋아했다는 거.
엄마는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내가 만약 엄마 입장이었고 그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로 누나를 입양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누나랑 한지붕 아래에서 살면 누나를 보는 시간도 많아질 테고 그 때마다 자연스럽게 누나의 친모를 떠올리게 되겠지.
그럼 아빠는 더더욱 누나의 친모를 잊기 힘들어질 테니 내가 엄마였다면 분명히 반대했을 것이다.
아니, 가만......
누나를 볼 때마다 누나의 친엄마를 떠올린다고?
그리고 누나의 친엄마를 바라보는 눈빛.
나는 급히 삼촌 방으로 가 앨범을 펼쳤다.
내가 보고자 하는 건 문제의 그 사진이 담긴 페이지였다.
있다.
지금 다시 봐도 분명 누나의 친엄마를 바라보는 아빠의 눈빛은 연정을 품은 상대를 보는 시선이었다.
그런데 그런 눈빛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빠만이 아니었다.
사진 속에 찍힌 또 다른 인물.
"삼촌......"
누나의 친엄마를 보는 삼촌의 눈빛은 아빠의 것과 똑같은, 아니. 그 이상의 감정이 담긴 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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