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아래 헬창 누나와 헬창 삼촌 30
정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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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전
며칠 후, 누나는 내가 지내는 사택으로 왔다. 누나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았다. 누나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거실로 달려왔다.
"민우야! 대박! 완전 대박!"
누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외치며, 소파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그대로 달려들어 와락 껴안았다. 땀으로 젖은 누나의 몸에서 익숙한 체취가 확 끼쳐왔다.
"나, 나 이길 것 같아! 아니, 이겼어! 거의 이긴 거나 다름없어!"
누나는 내 등을 꽉 끌어안은 채, 귓가에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누나의 목소리에는 어떠한 그늘도 없이 순수한 기쁨만이 가득했다. 누나의 말에 따르면, 처음의 불리했던 상황이 극적으로 반전되었다.
누나와 스카우터의 불미스러운 사건은 처음에는 누나에게 이렇다 할 증거가 없고 오로지 누나의 증언 뿐이라 증거 불충분으로 오히려 누나 쪽이 폭행죄와 명예회손죄로 고소당해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과거 그 스카우터에게 비슷한 피해를 입었던 다른 선수들이 용기를 내어 증언하기 시작했고, 이는 언론에 대서특필되며 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여론은 완전히 누나의 편으로 돌아섰고, 궁지에 몰린 스카우터와 협환가 내몰리는 상황으로 돌아선 것이다.
"이제 그 새끼 콩밥 먹는 건 시간문제래! 변호사 아저씨가 그랬어!"
누나는 나에게서 몸을 떼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 두 뺨을 잡았다. 누나의 눈동자는 희망과 자신감으로 반짝였다. 억울함의 눈물이 아닌, 기쁨과 안도의 눈물이 누나의 눈가에 그렁그렁 맺혔다.
"다... 다 네 덕분이야. 그날 네가 없었으면... 나 진짜 어떻게 됐을지 몰라."
누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누나는 내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하며 누나는 다시 한 번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 어떤 말보다도 강한, 뜨거운 포옹이었다.
누나는 내 목에 팔을 감고 매달리듯 안겨왔다. 남자를 정신없게 만드는 익숙한 체취가 코끝을 간질였다. 누나는 예전처럼, 아니, 그 이전보다 더욱 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진짜... 진짜 고마워, 민우야."
귓가에 속삭이는 누나의 목소리는 살짝 잠겨 있었지만, 더 이상 슬픔이나 분노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안도감과 깊은 애정만이 담겨 있었다. 누나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누나의 등이, 격렬했던 감정의 파도가 이제야 잔잔해졌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잠시 후, 누나는 스르르 몸을 떼고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은 그 어떤 때보다도 눈부시게 빛났다. 눈가에는 미처 닦아내지 못한 눈물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더 이상 절망을 담고 있지 않았다. 대신, 나를 향한 절대적인 신뢰와, 가족애를 넘어선 듯한 뜨거운 무언가가 담겨 반짝였다.
"아, 목마르다!"
누나는 갑자기 분위기를 바꾸며, 내 등을 팡팡 두드렸다. 언제 울었냐는 듯, 호탕한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누나는 주방으로 가며 물었다.
"냉장고에 맥주 있어?"
"어. 안에 봐 봐."
누나는 냉장고를 열고 맥주 두 캔을 꺼내왔다. 한 캔을 내게 건네며, 누나는 장난스럽게 윙크를 날렸다.
"자!"
그녀는 내 손에 들린 캔에 자신의 캔을 가볍게 부딪혔다. '치익-'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시원한 탄산이 터져 나왔다. 누나는 거품이 넘치기 전에 맥주를 한 모금 크게 들이켰다. "크아-" 하는 아저씨 같은 소리를 내며 입가를 훔치는 모습이 영락없는 평소의 누나라는 걸 보여주는 듯 했다.
내 주변은 그렇게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여 갔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놀라운 소식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나와 누나, 아빠, 엄마가 함께 모인 식탁에서 누나는 마치 저녁 메뉴를 말하듯 툭, 하고 그 이야기를 꺼냈다.
"나, 미국 갈 것 같아."
김치가 잔뜩 묻은 젓가락으로 밥을 크게 한 숟갈 뜨며 하는 누나의 말에 나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아빠가 내게 대신 설명했다.
"미국 대학팀에서 민지한테로 연락이 왔다."
"미국이요?"
"캘리포니아에 있는 대학팀이다. 'UCLA 브루인스(UCLA Bruins)'라고, 미국 대학 여자 배구 리그에서 최상위권에 속하는 팀이지."
누나가 말했다.
"거기 감독이 직접 연락했는데 내 플레이 영상을 예전부터 지켜봤다고 하더라."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는 주체할 수 없는 설렘과 기대를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그 스카우터 사건 때 보인 정신력을 아주 높게 평가했대.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한 선수라고."
최악의 위기가, 오히려 최고의 기회로 돌아온 아이러니한 상황. 그것은 누나의 실력과 멘탈을 증명하는 완벽한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갈 거야?"
"가야지."
대답한 사람은 엄마였다.
"전액 장학금은 물론이거니와 선수 전용 기숙사에 최고 수준의 트레이닝 시설까지 제공해 주고 졸업 후에는 프로 리그 진출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고 하는데 이런 파격적인 조건을 마다할 이유가 있겠니?"
우리집이야 돈 문제는 걱정할 것 없지만 배부르다고 굴러들어온 살찐 고기가 싫을 이유는 없다. 게다가 얘기를 들으니 그 외의 조건들도 분명 엄마 말씀대로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누나의 표정에 복잡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누나는 밥알이 붙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젓가락으로 반찬만 뒤적거렸다. 호탕한 누나답지 않은 망설임이었다.
나지막이 흘러나온 그 한마디에 식탁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누나는 나를 보지 않고, 밥그릇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을 이었다.
"근데 가면 돌아오는 데에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누나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꿈에 그리던 기회 앞에서, 누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언제나 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누나의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가족을 넘어선 감정으로 서로를 탐했던 그날 이후, 우리의 관계는 이전보다 더욱 끈끈하고 애틋해져 있었다. 누나에게 '미국행'은 단순한 유학이 아니라, 가족을 두고 떠나야 하는 어려운 선택이 되어 버린 것이다.
누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팀 브로슈어를 내 쪽으로 밀었다.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환하게 웃는 선수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태양 아래 건강하게 그을린 피부, 탄탄한 근육, 자신감 넘치는 표정. 그 모습은 마치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누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브로슈어를 내려다보는 누나의 눈동자는 동경과 갈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고,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눈빛에는 다시 무거운 책임감과 망설임이 가득 찼다. 그 좋은 조건을 앞에 두고도, 누나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맞은편에 앉아계시던 아빠가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으셨다. 그 소리에 나와 누나의 시선이 동시에 아빠에게로 향했다. 아빠는 말없이 우리 두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훑어보셨다.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그 눈빛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 깊었다. 누나가 무엇 때문에 그 좋은 기회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복잡하고 미묘한 공기의 정체를 이미 알고 계시는 것이다.
한참 동안 우리를 바라보시던 아빠는, 잠시 창밖을 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기셨다. 이윽고, 아빠는 다시 우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고는,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민우, 너도 같이 가라."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나와 누나는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를 쳐다보았다. 누나는 당황한 나머지 "네? 아빠, 그게 무슨..." 하고 되물었지만, 아빠는 누나의 말을 손짓으로 막았다.
"네가 가서 민지 곁에 있어 줘라. 누나가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려면 옆에서 챙겨줄 사람이 필요할 거다."
아빠의 말은 단순한 제안이 아닌, 결정에 가까운 통보처럼 들렸다. 아빠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서 너도 영어 배우고, 넓은 세상 구경도 해라. 전폭적으로 지원할 테니 생활비는 걱정하지 말고."
그것은 단순히 딸의 성공을 위한 지원이 아니었다. 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꿰뚫어 본 아버지의 결단이었다. 아빠는 누나의 꿈과, 그 꿈을 위해 남겨져야 할 나, 그 모든 것을 지키려는 듯 단호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 순간, 누나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놀라움과 안도감으로 크게 확장되었다.
"여보, 민우는 이미 여기서 자리잡았는데 어딜 간다는 거예요?"
엄마의 현실적인 질문에, 순간 들떴던 식탁의 공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엄마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아빠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제야 모두의 머릿속에 내 현 직장이라는, 나의 현실이 떠올랐다.
그 질문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누나였다. 방금 전까지 아빠의 파격적인 제안에 놀라움과 안도감으로 흔들리던 누나의 눈빛이 순식간에 죄책감으로 물들었다. 누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꿈 때문에 동생의 안정적인 직장까지 포기하게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이 누나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맞아요, 엄마. 민우는 직장도 있고… 그냥 제가 혼자…"
누나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려던 순간, 아빠가 단호하게 그 말을 끊었다.
"그깟 직장이 대수야?"
아빠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힘이 있었다. 아빠는 엄마를, 그리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기회라는 게 몇 번이나 오는 줄 알아? 민지한테는 지금이 바로 그 기회야. 그리고 민우, 너한테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 더 넓은 세상 보고 경험하는 게, 그깟 밥벌이보다 백배 천배는 더 중요해. 청원경찰 그거, 평생 할 직장도 아니잖아."
아빠는 마치 내 마음을 읽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시선을 누나에게로 돌렸다.
"민지야, 너는 네 동생이 평생 그 좁은 경비실에 앉아서 사는 걸 보고 싶어? 아니면 너랑 같이 더 큰 세상에서 훨훨 나는 걸 보고 싶어?"
아빠의 직설적인 질문에 누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떨리는 손으로 밥그릇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굳게 닫힌 입술과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는, 아빠의 말이 그녀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찔렀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빠는 묵묵히, 우리 남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에 아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현관 쪽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었다. 그저 담배라도 한 대 피우러 나가시는 건가 싶었지만, 아빠는 현관문을 열기 직전, 나를 향해 턱짓으로 짧게 신호를 보냈다. '잠깐 따라 나와라.' 무뚝뚝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아빠 특유의 방식이었다.
그 눈짓의 의미를 알아차린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움직임에 누나와 엄마의 시선이 동시에 꽂혔다. 특히 누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와 아빠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런 누나에게 괜찮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아빠의 뒤를 따라 집 밖으로 나섰다.
'철컥-' 하고 현관문이 닫히자, 집 안의 어수선한 공기와는 다른, 서늘한 밤공기가 훅 끼쳐왔다. 아빠는 아무 말 없이 아파트 복도 끝, 창문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굳게 다문 입과 넓고 듬직한 등이,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는 것을 짐작게 했다. 복도 창문 너머로, 멀리 도시의 불빛들이 아득하게 펼쳐져 있었다. 아빠는 창문 틀에 한쪽 팔을 기대고 서서, 한참 동안 말없이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그 침묵이, 곧이어 터져 나올 말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엄마도, 아빠도 누나랑 제 관계 알고 일부러 떼어놓으셨잖아요."
"전에 출소했던 니네 삼촌이 나한테 연락했었다. 민지를 만나게 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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