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아래 헬창 누나와 헬창 삼촌 26
정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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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전
듀스 접전. 숨 막히는 랠리가 이어지며 체육관의 열기는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이제 누나의 몸은 단순히 땀에 젖은 것을 넘어, 마치 물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번들거렸다.
헐떡이는 숨결마다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왔고, 온몸의 모공이 활짝 열려 누나 특유의 진한 체취가 끈적한 열기와 뒤섞여 코트 전체를 지배했다.
누나의 검은색 팬티는 이미 땀과 그 이상의 분비물로 축축하게 젖어, 짧은 반바지 뒤로 그 형태가 선명하게 비쳤다.
허벅지 안쪽은 계속된 슬라이딩으로 쓸려 붉게 달아올랐고, 그 사이를 흐르는 땀방울은 마치 애액처럼 보였다.
누나가 무릎을 굽히고 수비 자세를 취할 때마다, 터질 듯한 엉덩이는 관능적인 곡선을 그리며 뒤로 빠졌고, 그 중심의 깊은 골짜기는 보는 이의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했다.
마지막 스파이크를 위해 누나가 공중으로 솟구쳤다.
누나의 몸은 한계까지 비틀렸고, 그 순간 땀에 젖어 미끄러워진 유니폼이 어깨 한쪽으로 흘러내렸다.
구릿빛 어깨와 쇄골 라인, 그리고 풍만한 가슴의 윗부분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허공에서 정점을 찍는 순간, 누나의 입에서는 승리를 향한 포효와 함께 억눌렸던 교성이 터져 나왔다.
"흐읏…!"
그 소리는 너무나도 야릇해서, 관중석의 몇몇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공이 코트에 내리꽂히고, 승리를 알리는 휘슬이 길게 울렸다.
모든 힘을 소진한 누나는 그대로 코트 위에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린 누나는 양팔로 바닥을 짚은 채, 상체를 숙이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 자세 때문에, 누나의 거대한 가슴은 중력에 의해 아래로 쏠리며 유니폼 밖으로 거의 반쯤 쏟아져 나올 듯했다.
땀과 열기로 상기된 얼굴, 풀린 눈, 반쯤 벌어진 입술. 그 모습은 격렬한 오르가슴의 절정에서 내려온 여인의 그것과도 같았다.
스카우터들은 펜을 내려놓고, 그저 넋을 잃은 채 경이로운 육체의 향연이 남긴 잔상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팀 동료들이 환호하며 달려와 누나의 몸 위로 쏟아졌다.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격렬한 포옹 속에서, 땀으로 미끄러운 살들이 뒤엉켰다.
누나는 동료들의 무게에 밀려 코트 바닥에 완전히 등을 대고 누웠다. 위에서 짓누르는 동료들의 몸과 자신의 거대한 가슴 사이에 갇혀, 누나는 숨이 막힐 듯한 쾌감과 압박감을 동시에 느꼈다.
엉망으로 뒤섞인 땀과 체취, 가쁜 숨소리들이 한데 뭉쳐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참의 환희가 지나고 동료들이 흩어지자, 누나는 텅 빈 코트 위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탈진한 몸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듯 보였다.
누나는 눈을 감고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으로 차가운 코트의 감촉을 느꼈다.
흠뻑 젖은 유니폼은 이미 누나의 몸과 한 몸이 된 듯했고, 허벅지 사이의 축축하고 끈적한 감각이 유난히 선명했다. 경기의 흥분과 육체적 한계가 뒤섞여 만들어낸 묘한 나른함이 온몸을 잠식했다.
그때, 그림자가 누나의 얼굴 위로 드리워졌다. 실눈을 뜨자, 아까부터 유난히 집요한 시선을 보내던 중년의 스카우터가 누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누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엄청난 경기였어, 민지 학생. 오늘부로 자네는 우리 구단 사람이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누나의 몸을 탐색하듯 번들거렸다.
누나는 그의 손을 잡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을 일으키는 순간, 땀에 젖은 가슴골이 깊게 패이며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감사합니다."
누나는 나직하게 대답하며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쳤다. 땀으로 젖은 얼굴과 풀린 눈빛, 살짝 쉰 목소리가 어우러져 묘한 색기를 풍겼다. 스카우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오늘 저녁에 축하 파티가 있는데, 주인공이 빠질 순 없지. 이쪽으로 오게. 자세한 계약 이야기도 나누고."
그의 손가락이 명함을 건네는 척하며 그녀의 손바닥을 은근하게 스쳤다.
보고 있는 나는 살짝 불쾌했지만 누나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체육관을 나온 나는 휴대폰 알림음을 듣고 문자를 확인했다.
* * *
밤이 깊은 공원은 인적이 끊겨 고요했다.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길을 밝히는 그곳에 익숙한 실루엣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낮 경기 때와는 달리 헐렁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누나는 한결 편안해 보였다.
짧은 반바지와 배꼽이 드러는 크롭탑.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것은 여전해서 헐렁한 옷 위로도 거대한 가슴의 윤곽이 뚜렷했다.
누나는 벤치에 앉아 다리를 꼬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내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내 모습을 확인한 누나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왔어?"
누나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툭 던져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걸음 다가온 누나에게서는 갓 샤워를 마친 듯한 비누 향과 함께 누나 특유의 달콤하면서도 짙은 체취가 섞여 풍겨왔다.
낮의 격렬했던 경기의 흔적인지 얼굴에는 아직 옅은 피로감이 서려 있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장난기로 반짝였다.
"오늘 경기 봤어? 이 누나가 아주 그냥 코트를 찢어 버렸는데."
누나는 자랑스럽게 가슴을 쭉 내밀며 으스댔다.
그 움직임에 따라 헐렁한 크롭탑 안에서 육중한 가슴이 묵직하게 흔들렸다.
그러다 문득 누나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씩 웃으며 팔을 뻗어 내 목을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내 얼굴이 누나의 가슴팍에 파묻혔다.
비누 향과 체취가 뒤섞인 농밀한 향기가 코를 찔렀고, 말캉하고 거대한 감촉에 뺨에 그대로 느껴졌다.
"우리 민우, 누나 보고 싶었어?"
누나는 만족스러운 듯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마치 큰 강아리를 귀여워하듯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 친근하고 스스럼없는 스킨십에는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 대한 반가움과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남녀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 또한 공존하고 있었다.
누나의 몸에서 전해져 오는 뜨거운 체온이 공원의 서늘한 밤공기를 데우는 듯 했다.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그동안 별일 없었고?"
누나는 옆에서 툭, 질문을 던졌다. 누나는 벤치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댄 채, 한쪽 팔을 등받이 위로 길게 뻗어 내 어깨 뒤를 감쌌다. 그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누나의 몸이 내 쪽으로 살짝 기울었고, 달콤한 체취가 더욱 짙게 풍겨왔다.
"밥은 잘 챙겨 먹고 다니냐? 엄마가 잔소리 안 해?"
누나는 꼬치꼬치 캐묻는 대신, 짐짓 무심한 척 툭툭 던지는 말투로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누나의 눈빛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내 얼굴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살이 빠지지는 않았는지, 안색은 괜찮은지, 마치 제 새끼를 챙기는 어미새처럼 꼼꼼하게 훑었다.
나는 나의 괜찮은 안부를 누나에게 전했다.
내 대답을 가만히 듣던 누나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씨익 웃으며 내 어깨를 감쌌던 팔로 나의 목을 헤드락처럼 가볍게 걸었다.
"그래도 누나 없으니까 허전했지? 솔직히 말해봐. 밤마다 누나 끌어안고 자던 버릇 때문에 잠 설친 거 아니야?"
농담 섞인 말과 함께 누나의 몸이 더욱 밀착되었다. 헐렁한 크롭탑 아래의 부드럽고 거대한 가슴이 팔과 등 뒤에서 뭉근하게 짓눌러오는 감촉이 생생했다. 누나는 내 귓가에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대고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아니면… 혹시 다른 거 하느라 잠을 못 잤나? 우리 동생, 이제 성인이잖아."
누나의 뜨거운 숨결이 귓바퀴를 간질였다. 섹드립을 던지면서도 누나의 표정은 너무나 천진난만해서, 오히려 더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내 반응을 살피며 킥킥거리던 누나는 이내 헤드락을 풀고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아무튼, 잘 지낸다니 다행이네. 나는 뭐… 보다시피 똑같지. 너무 승승장구해서 가끔 시시하기도 하고."
누나는 과장되게 투덜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두 팔을 위로 쭉 뻗는 움직임에 크롭탑이 위로 딸려 올라가, 탄탄한 복근과 배꼽이 밤공기 속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잠시 동안의 정적.
"안 그래도 오늘이나 내일 누나를 만날 생각이었는데 먼저 불러내줘서 잘 됐어. 실은 누나한테 꼭 전할 중요한 얘기가 있었거든."
"무슨 얘기?"
"삼촌 말이야. 어제 출소했어."
내 입에서 나온 '삼촌'이라는 단어에, 누나의 얼굴에서 장난기 넘치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벤치 등받이에 기대어 있던 누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가로등 불빛이 누나의 굳어진 얼굴 반쪽을 비추었고, 반대쪽은 깊은 어둠에 잠겼다. 공원의 시끄럽던 귀뚜라미 소리마저 순간 멎는 듯한 정적이 흘렀다.
누나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누나의 눈빛은 더 이상 장난스럽지 않았다. 그 안에는 놀람, 당혹감, 그리고 그 밑바닥에 깔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의 소용돌이가 담겨 있었다. 몰카 사건과 징역형. 과거의 상처가 담긴 단어들이 내 입을 통해 흘러나올수록, 누나의 표정은 점점 더 읽기 어렵게 변해갔다.
"……출소했다고?"
한참 만에, 누나가 마른 입술을 열어 나직하게 되물었다. 목소리는 낮게 잠겨 있었고, 평소의 호탕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누나는 내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려 어두운 공원 한쪽을 응시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짙은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원망이나 분노보다는, 차라리 허탈함에 가까운 감정이 묻어났다. 누나는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에는 나에 대한 미안함이 어렸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철없는 행동이 결국 동생에게까지 상처를 주고, 이런 짐을 지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이 느껴지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인간… 아직도 정신 못 차렸을 텐데."
누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삼촌'이라는 호칭 대신 '그 인간'이라는 말을 썼지만, 거기에는 경멸보다는 차라리 질긴 악연에 대한 체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누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장난스러운 스킨십이 아니었다. 괜찮다는 듯, 걱정하지 말라는 듯, 묵직한 위로를 담아 내 어깨를 꽉 감싸 안는 단단한 손길이었다.
"알려줘서 고맙다. 그래도… 너한테서 직접 들으니까 좀 낫네."
누나는 애써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입가에만 걸려 있을 뿐, 눈에는 닿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흔들리는 마음을, 누나라는 책임감으로 억지로 다잡으려는 듯한 위태로운 미소였다.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 것 같아 나는 누나에게 이실직고했다. 사실은 누나와 삼촌의 은밀한 관계를 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내 입에서 나온 그 말은, 고요한 공원에 던져진 작은 돌멩이처럼 파문을 일으켰다. 누나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에서 힘이 스르르 풀렸다. 누나는 천천히 나에게서 몸을 떼어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내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 누나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뭐라고?"
누나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자신이 잘못 들었기를 바라는 듯한, 실낱같은 희망이 섞인 되물음이었다. 하지만 내 확고한 표정은 그것이 착각이 아님을 명백히 말해주고 있었다. 누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이 보였다. 동생에게만큼은 숨기고 싶었던, 자신의 가장 부끄럽고 치졸했던 과거의 비밀이, 가장 믿었던 동생의 입을 통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누나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허공을 헤맸다. 입술을 달싹였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호탕하고 당당하던 평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발가벗겨진 채 군중 앞에 내던져진 듯한 수치심과 당혹감이 누나의 얼굴을 뒤덮었다. 누나가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멋지고 든든한 누나'의 가면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언제부터… 어떻게…"
누나는 간신히 말을 쥐어짰지만,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 것조차 비참한 듯 했다. 누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짧게 자른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누나의 표정을 가렸다.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누나는 마른세수를 하듯 두 손으로 얼굴을 거칠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누나의 눈가는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미안해."
누나의 입에서 나온 것은 변명이나 해명이 아니었다. 진심이 담긴, 짧고 무거운 사과였다. 누나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너한테… 그런 모습 보여서 미안해, 민우야."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더 이상 숨거나 회피하려는 기색이 없었다. 자신의 치부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동생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한 사람의 맨 얼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누나, 내가 굳이 이 얘기를 하는 건 사과받으려고 그래서가 아니라......"
"미안."
내가 설명하려는데 누나는 다 듣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 버렸다.
"......"
진짜로 추궁하려는 의미에서 한 말이 아닌데.
누나는 모를 수도 있지만 누나를 향한 삼촌의 집착은 누나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오죽하면 오래 전에 짝사랑했던 여자를 그 딸에게 투영해서 볼 수 있냐고.
지난 몇 년 동안 삼촌의 그 집착이 사라졌을 거라고 보지 않는다.
분명히 삼촌은 또다시 삼촌과 조카의 관계도 잊고 누나의 몸을 탐하려 들 것이다.
기분이 심란해진 나는 술이라도 한 잔할 겸 누나와 나의 소꿉친구인 대성이 형에게 연락했다.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공원 입구 쪽에서 묵직한 엔진음이 밤의 정적을 깨고 다가왔다. 헤드라이트의 강렬한 불빛이 어둠을 가르며 내가 앉아있는 벤치를 비췄다. 곧이어 굉음이 멎고, 육중한 바이크에서 긴 다리를 뻗어 내린 대성 형이 헬멧을 벗었다. 기름때가 살짝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지만, 대성이 형에게서는 기계유와 쇠 냄새가 섞인 독특하고 남성적인 향기가 풍겼다.
"웬일이냐, 이 시간에 공원에서 보자고 하고."
대성이 형은 바이크에 몸을 기댄 채,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대성이 형은 내 표정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이내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었음을 직감했다. 대성이 형의 눈빛에서 장난기가 살짝 옅어졌다.
"표정이 왜 그래? 누구한테 돈 떼였냐?"
대성이 형은 벤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벤치가 형의 무게에 살짝 삐걱거렸다. 대성이 형은 주머니에서 구겨진 담뱃갑을 꺼내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라이터를 켜는 '찰칵'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대성이 형의 얼굴을 잠시 비췄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인 대성이 형은, 허공으로 희뿌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민지한테 연락 왔던데. 너랑 같이 있다고."
대성이 형은 담배를 든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물었다. 형의 시선은 내가 혼자 있다는 사실과, 어딘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번갈아 훑고 있었다.
"싸웠냐? 그 성질머리랑 싸우고 네가 이길 리가 없는데."
대성이 형은 짐짓 가볍게 농담을 던졌지만, 목소리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소꿉친구로서, 대성이 형은 누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누나가 나를 두고 먼저 자리를 뜰 정도라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나 느끼는 듯 했다. 대성이 형은 말없이 내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형의 깊은 눈은 재촉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대성이 형은 일단 나를 바이크 뒷자리에 태워 밤바람을 맞게 한 다음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대성이 형은 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 이미 잠자리에 든 모양이었다. 새삼 나는 집 안을 힐끔 봤다. 고등학생 때 누나랑 같이 스터디하러 온 것이 마지막이었는데 어느 덧 나도 성인이 되었다니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대성이 형은 냉장고에서 캔맥주 몇 개와 마른안주를 대충 꺼내 거실 바닥에 늘어놓았다.
"자, 마셔. 일단 마시고 얘기해."
대성이 형은 캔맥주 하나를 따서 나에게 건네고는, 자신도 한 캔을 따서 단숨에 반쯤 비웠다. "크하-" 하는 소리와 함께 형의 목울대가 시원하게 움직였다. 대성이 형은 소파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쭉 뻗고 앉아, 말없이 술을 마시는 나를 지켜보았다.
내가 몇 잔을 연거푸 비우고 나서야, 대성이 형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좀 괜찮냐?"
대성이 형은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섣불리 묻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옆에서 잔을 채워주고, 함께 마셔주는 것. 그것이 오래 알고 지낸 사이끼리 그나마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위로라고 생각해서인 듯 했다. 거실에는 텔레비전 소리 대신, 우리 두 사람이 캔맥주를 따고 목으로 넘기는 소리만이 간간이 울렸다.
"민지… 그 자식, 보기보다 속 깊고 여려. 특히 네 앞에서는 더 그래."
한참의 침묵 끝에, 대성이 형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형은 천장 어딘가를 응시하며, 마치 혼잣말처럼 툭 던졌다.
"야, 너 민지가 쌈박질하다가 우는 거 본 적 있냐?"
"아니. 한 번도."
"사실 이거 비밀인데 동네 애들이랑 싸우다가 운 적 있다. 몇 번 안 되지만."
"누나가?"
그 씩씩한 누나가 싸우다 깨져서 우는 건 상상이 안 되었다.
"싸움이 끝나고 나서 상대방 애들 다 돌아가고 나면 그 때 말이야. 무슨 계집애가 독기라도 품었는지 엉엉 안 거리고 최대한 울음을 참으려고 훌쩍거리기만 하는 게 어찌나 안쓰럽던지. 그리고 다 울고 나면 나랑 건우한테 자기가 울었다는 거 너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고 으름장까지 놓았다니까."
"그런 일이 있었어?"
"심지어 그것도 민지가 운동해서 몸 만들기 전 얘기다. 그 때부터 그 기집애한테서 싹수가 보이더라."
대성이 형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술을 한 모금 더 마셨다. 과거를 회상하는 그의 눈빛이 잠시 아련해졌다.
대성이 형은 빈 캔을 찌그러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냉장고로 걸어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술 더 가져올게."
"그 때부터 누나 좋아한 거야?"
"......"
냉장고 문을 열던 대성이 형의 움직임이 순간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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