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 하루 7

< 숙의 하루 - 한선생의 차안, 숙의 카섹스 ①
숙은 너무나 머리 속이 복잡했던 까닭에, 한선생이 교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말
한 일방적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뭐해? 정신나간 사람처럼? 얼른 타라구.
숙은 망설였다. 오늘 자기가 하루종일 헤매게 된 것이 다 누구 덕분인가. 바로
그저께 이 작자가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렸던 것 때문아닌가. 그녀는 망설였다. 그
의 차를 탄다는 것이 왠지 더 깊은 나락 속으로 한걸음 더 발을 들여놓는 일 같
았기 때문이다. 아니야. 그래선 안돼. 이 사내의 의도가 무엇인지 몰라도, 자꾸
만 깊이 빠져들 수는 없어. 이 정도면 충분해. 마교장, 교육관, 은, 희... 그녀
는 살짜기 입술을 깨물었다.
-죄, 죄송해요... 저 일찍 가야할 일이 있어요.
-일찍 간다구? 어딜?
여전히 한선생은 차창으로 고개를 내민 채 끈덕지게 물어왔다. 숙은 은근히 부아
가 치밀어 올랐지만, 길가에서 그런 모습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그, 그건 아실 필요 없잖아요...
-그래? 그래도 일단 타지, 가는 곳까지 바래다 줄테니...
-그, 그래도 싫어요... 저, 전 그냥 지하철로 가겠어요...!
그러나 그는 이미 숙의 눈치를 간파한 모양이었다.
-흐흠... 날 피하려는 게군... 좋아, 내 한마디만 하지...
한마디? 숙은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 교장 선생님한테서... 봉투 받았겠지...?
!... 한선생이 알고 있다니...? 흠칫, 숙은 당황하여 걷고 있던 발걸음을 멈췄
다. 그는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올려다 보았다.
-후훗, 놀라지 말아... 표정을 보니 받은 게로군... 어때? 은이나 희보다는 좀
이럴 수가, 이 작자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한선생은 꼬리를 쥔 듯 여유있게
말을 이었다.
-좀 놀랐겠지? 예상보다는 많았을 테니... 타. 숙이한테 할 얘기가 있으니까.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인가. 숙은 몸이 부르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은이나 희한테 들었나? 왜 돈이 더 많아진 건지... 그러니 어서 타라구. 아직
여긴 우리 학교 아이들도 많이 다니는 곳이야.
어쩔 수가 없었다. 이 큰길가에서, 주임선생인 이 자와 실랑이를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행여 학생들 중에 누가 보면 어쩔 것인가. 먼저 주변에 학생들이 있
는가를 살피고, 숙은 어금니를 깨물며 한선생 차의 문을 열었다.
-그래, 진작 그랬어야지...
그녀가 타자마자, 그는 가던 방향으로 차를 스타트시켰다.
-어때? 일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지...?
숙은 대꾸하지 않은 채 창밖만을 바라보았다.
-역시 그랬군... 후후... 난 다 알고 있어. 숙이 니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숙은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이 한선생과의 껄끄러운 시간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그것이
-좋아... 대답하기 싫다는 거군. 좋아, 그럼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얘기하자
한선생은 차를 꺾어 교외 쪽으로 나가는 길을 택했다. 그리고는 한동안, 그 역시
말없이 차만을 몰았다.
침묵이 계속되자, 숙은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먼저 의혹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어떻게.. 아신 거죠? 제가 돈을 은 선생이나 희 선생보다 많이 받았다는 걸...?
-왜, 궁금하나?
한선생은 희미하게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럼 그 얘기부터 해주지. 간단해. 마교장이 내게 직접 말했으니까.
아뿔사. 이들은 서로 그런 부분까지도 공유하는구나. 숙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
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럼 이 주임선생은 희가 얘기한 의미, 돈을 더 받는다는
의미도 아는 것일까? 한선생은 이런 숙의 의혹을 이미 알고 있는지, 한발자국 앞
서고 있었다.
-그리고... 알고 있나? 다른 사람, 은이나 희보다 돈이 왜 더 많은지?
제발... 그건 아닐꺼야. 숙은 낮에 희가 한 말을 확인할까 두려웠다. 아닐꺼야.
아니어야 해. 교장 선생이... 마교장이 나와 자고 싶어 웃돈을 준 것이리라는
걸...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한선생은 그녀가 벌써 긴장하고 있는
것조차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다.
-모른다면... 얘기해 줄까...?
한선생의 자가용은, 어느새 한적한 한강변의 고수부지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느
새 변두리로 빠졌는지, 숙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낯선 강변이었다. 한선생은 차
를 세우고는 여유만만하다는 듯 의자를 뒤로 쭉 빼젖혔다.
-그것도 어려운 건 아니야. 마교장이 그것도 다 얘기했으니까.
아아... 숙은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렴, 다 말했지, 아니 정확히는 내게 부탁했던 거야... 여선생들을 대주는
것은 나니까.
-더, 더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들어야 할 걸... 그래, 어제 그 말을 하더군. 숙이 너랑 잘 수 있겠느냐
어떻게 이런 일이...! 그들은 마치 그녀를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듯이 얘기하
고 있지 않은가. 마치 주고받는 물건처럼 - 한선생은 허세를 부리며 담배를 빼어
물고 칙, 불을 당겼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을 것 같나? 푸훗... 물론 돈을 더 받았으니 알겠군.
맞아, 된다고 했지... 몇푼 더 주면, 알아서 벌릴 거라구...!
-이, 이건 말도 안돼!
숙은 분노의 눈물을 글썽이며 그를 쏘아 보았다.
-왜, 그러기 싫어? 내가 보니까 니가... 곧 유부녀가 될 영이나, 닳고 닳은 은이
보다는 몸매가 더 낫던데... 히프도 큼지막하고 말이야...
더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모욕을 받으면서까지 이 자리에 있는다는 것이
-나, 난 내릴꺼야, 내리겠어요...!
그러나 그 말에 한선생은 콧방귀도 안뀌고 있었다.
-어이, 숙이... 여기가 어딘 줄이나 알아...? 쿡쿡... 여기서 다른 차를 타려면
한 한시간은 걸어야할 걸?
어이가 없었다. 애초에 이런 오지로 끌려온 그녀의 실수였다. 그녀는 악이 받혀
소리를 질렀다.
-그럼, 데려다 줘요! 다 필요 없어, 돈이고 뭐고! 그리고 당신과 잔 것도, 내겐
그냥 실수일 뿐이야!
-흐흐흐... 좋아, 실수라... 그럼 어쩔 거야? 돈 따위는 돌려 주고, 넌 그냥 그
만 둔다? 이것 봐, 순진한 아가씨... 그럼 마교장이 가만 있을 것 같나? 넌 혼자
학교를 때려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넌 우리 학교의 비리를 다 알고 있는 년
인데... 나야 몰라도, 마교장은 어떨 것 같나...?
황당한 협박에 저항하던 숙이 한선생을 돌아보자, 한선생은 짐짓 딴청을 피우며,
다만 손동작만을 했다. 그의 손은, 날을 세워 목에 대어지더니 쓰윽, 베어지는
시늉을 했다.
-잘 들어, 숙이... 아니 숙쌤... 물론 정말로 죽거나 하지는 않겠지. 하나...
니 년은 평생 그렇고 그런 여자로 시집 한번 못가고 늙어 죽어야할 걸...!
세상에 - 너무나 끔찍한 협박이었다. 그것은.
-숙이 아버님이... 공무원이시지 아마...? 그것도 꽤 높은... 하기야, 그런 빽이
있으니 니가 웃돈 주고도 강사자리 따낸다는, 우리 학교같은 사립학교에 임시교
사로 올 수 있던 거겠지만 말이야...
한선생은 숫제 자기 독백을 하듯이 늘어놓고 있었다.
-이것 봐, 그런 시나리오는 어때? 고위 공무원, 그것도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 높
은 양반의 외동딸이, 돈 받고서 술 따르고, 몸까지 팔았다...? 킥킥... 이것 봐,
숙이... 자네 혼자 생각엔 쉽겠지. 너 혼자 정교사 자리 때려치고 학교 그만 두
면 말이야... 하지만 그래 봐. 물론 너희 아버님이... 막기는 막겠지만... 원래
그런 것은 소문이 더 무서운 법이거든...
숙의 눈에서 당장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치사한 자들... 이제 가족까지 끌어
들이려 하다니...
-아니, 그 정도까지 안가도 돼... 그냥 그렇게만 얘기하자구... 처녀 여선생이,
중년 남자 선생하고... 그것도 보직있는 유부남 선생하고 말이지... 그렇고 그런
짓으로 학교를 나갔다... 글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어때, 숙이 너와
내가 그저께 호텔에서 밤새 헐레 붙었다는 것, 그건 빼도 박도 못할 사실이잖아?
숙은 너무나 엄청난 현실 앞에 말문이 막혔다. 안돼, 아니야... 어떻게 내게 이
런 일이...
-그럼 숙이, 넌 아마 성씨라도 갈기 이전엔 평생, 어디 좋은 혼사자리라도 하나
들어오겠어...?
아아... 숙은 너무나 기가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단 하룻밤, 단 하룻밤의
실수가 이런 결과를 초래하다니...
-내가 왜 오늘 출장이라고 회사를 비웠겠나...? 어디 보시지, 그 서랍 안의 사진
을...
이건 또 무슨 얘기인가? 사진이라니...? 그녀는 바로 자기 앞 조수석의 서랍을
열어 보았다. 그 안에서 후두둑, 몇장의 사진이 떨어져 내렸다.
이럴 수가! 그것은 다름 아닌 폐쇄회로의 카메라에 찍힌 스틸사진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흐릿하나마 그저께의 호텔 방문을 들어서는 한선생과 그녀의 모습이
차례차례 찍혀 있었다. 숙은 너무나 놀라 까무러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어, 어떻게 이, 이런 사진들이...!
-간단해.
한선생은 짐짓 숙의 코앞에 손가락을 들이대고는 엄지와 검지로 지폐를 세는 시
늉을 해보였다. 그런...!
-후훗, 은이나 희같은 년들은 몰라도, 숙이 넌 조금 콧대가 셀 것 같아서 말이
야... 그래서 준비해둔 거지... 보라구, 난 그동안 챙긴 것도 있고...구를마큼
구른 놈이야. 나 혼자만 총대 메면 되지... 하지만 너희 부모님이 이런 사진을
본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건 정말 엄청난 사실이었다. 아무리 흐릿한 스틸사진이라고 해도, 그곳에는 분
명히 호텔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숙의 얼굴과 그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숙은 절
망감에 두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정말,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할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아아...
-단... 좋은 소식도 있다는 것을 알아둬...
좋은 소식이라니?
-이 사진들... 아직 마교장이 모른다는 점이야... 글쎄, 그 늙은이가 알면 어떻
게 될까?
결과는 뻔했다. 마교장이라면... 한층 더 악랄하게 이용해먹을 것이다. 나와 자
는 것은 물론이고... 숙은 이런 생각이 들자 치가 떨려왔다.
-그리고... 너도 그렇겠지? 늙은이한테까지 당한다는 것은... 그렇게 되면 뭐야,
나중엔 이놈 저놈과 전부 다 자줘야할 것 아니야...?
생각하기도 싫었다.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때였다. 이제껏 잠자코 있던
한선생이 은근히 숙의 쪽으로 몸을 기울여 왔다. 동시에, 그의 한손이 그녀의짧
은 치마를 걷어 올리며 은근히 허벅지를 더듬어 올라왔다. 그녀는 뱀같은 그의
손길에 놀라 흠칫, 다리와 몸을 움츠렸다.
-그러니... 나하고 협상을 맺는 거야... 이런, 왠 일이야? 거들을 입었군...
숙은 머리 속이 아뜩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모든 일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는 모두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있을 것인가... 그녀는 결정
을 내려야만 했다. 괴로웠다. 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부모님까지 거론
된 이상, 함부로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대체 어째야하는 것일까...
그녀는 문득 큰 한숨을 쉬고, 플레어스커트 속안으로 깊숙히 들어와 거들을 더듬
고 있는 한선생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찌 되었건 최악의 경우는 막아야했다. 그
대가가 무엇이건 간에.
-협... 상이... 뭔가요...?
-푸하핫, 이제야, 내 말귀를 알아 듣는군...!
한선생은 짐짓 너털웃음을 지으며 숙의 치마 속에서 손을 빼냈다.
-내 조건은 그거야. 학교 밖에서 숙이 니가 연애를 하든, 남자를 만나든, 간섭은
않겠어. 단, 넌 앞으로 내 말만 듣는 거야. 학교 안에서는... 내가 시키는 대로
만 하면 돼. 물론, 걱정은 하지마. 봤다시피, 난 변태는 아니니까...
숙은 분노로 인해,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이 사내가 원하는
것은 그거구나... 날, 날 노리개로 삼으려는 것이었어... 그녀는 터져나오는 욕
을 삼키며, 어금니를 악 물었다. 그녀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한선생님이... 내게 보장하는 것은 뭔데요...?
-글쎄, 뭘까? 우선... 비밀의 보장이겠지. 너랑 나의 관계, 저 사진... 모든 것
에 대한 비밀 말이야. 아 참, 또 하나 있군... 그래, 보장하지, 숙이 너의 정교
사 채용. 거기에, 두둑한 보너스까지... 나도 마교장 정도는 돈 굴리는 재주가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여기서 내가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파멸, 모든 것의 파멸이었다. 그럼 그 반대의 경우는... 내가
한선생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지금으로서는 그 밖에 떠오르는 길이란 없었다.
좋아, 이렇게 된다면...
숙은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아니야... 그렇다면... 나도 노릴 수 있는 것은 모
두 노려야 해. 지금 어쨌든 이 남자가 원하는 것은 희도 아니고 은도 아닌, 다름
아닌 나니까. 그녀는 자기의 결정이 불러올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받아들여야 하
는 자신이 너무나 비참했다.
-아니... 하나 더... 보장해줘요...!
-하나 더? 뭔데?
-날... 마교장에게 넘기지 말아요...
그랬다. 이것만이 유일한 숙의 무기가 될 수 있었다. 시이소를 타는 것은 아니지
만, 어쨌든 마교장도 그녀를 원하고 있으므로, 이 둘 사이의 견제를 성립시켜야
했다. 그녀의 요구에 한선생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건... 조금 다른 문제인데...
-왜요? 자신 없나요...?
일부러 숙은, 목소리를 차갑게 낮추었다. 원래 남자들이 독점욕이 강하다는 것
은, 그녀도 어느 정도의 연애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지금
이 작자의 자존심을 건드려 놓으면, 언젠가는 유용하게 써먹을 순간이 올 것이
다. 잠시 멈칫거리던 표정의 한선생이, 마침내 동의의 표시로 핸들을 주먹으로
쿵 쳤다.
-좋아... 노력하지... 아니, 장담하지... 나도 그따위 늙은이와 구멍동서를 맺을
생각은 없으니까.
-좋아요.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난 내일이라도 당장 교장 선생님과 침대 속에서
당신이 날 가로채려 했다고 말하겠어요.
한선생은, 의외의 당돌한 숙의 요구에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숙이 최
대한 자신의 줏가를 올려 놓으면, 그럴수록 그는 그녀에게 매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 은이나 희가 이 남자와 잤다고 해도, 지금은 다소 경우가
틀릴 수 있었다. 여기 이 한선생은, 자기가 먼저 숙을 원했기에 그녀를 불러 들
인 것이고, 또 그렇기에 사진까지 모아가며 준비를 한 것이다. 그리고, 만년 2인
자인 자기가, 교장도 어쩔 수 없는 여자를 혼자서만 농락할 수 있다는 것은, 어
느 정도 짜릿한 구미가 그로서는 당기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난 한선생의 정부가 되는 것이구나... 숙은 왠지 허탈한 허무
가 밀려 왔다. 이 작자는, 드디어 내게서 얻고자 했던 모든 것을 얻었어... 하지
만 난, 결코 정복당하지 않을 거야. 엊그제 이 남자와 잘 때, 흥분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건 본능이었어.어쩔 수 없는 본능... 이제는 그 본능에 다라
내 자신을 내맡겨야 하겠지... 마음, 마음에 없는 일이라도, 이젠 본능에 흥분하
고, 본능으로 버텨야할지도 몰라... 그것도 언제나 이 사내가 원하는 때에 맞춰
서...
그런 생각을 하자, 왠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숙은 속으
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이 모두를 앙갚음하고 말거야. 내
가... 당신들의 노리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말겠어.
-이것 봐... 이제 결심을 굳힌 모양이지...? 좋아,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본
론으로 넘어가야지?
본론... 이라니?
-흐흐흐... 오랜 만에 야외에서 재미 좀 봐야할 것 아냐?
한선생의 눈동자가 음흉하게 빛나고 있었다. 설마... 여기서...?
-여... 여긴 차안이잖아요?
-그럼 어때?
-그, 그래도 누가 보면...!
-큭큭... 걱정 말아... 여긴 걸어서는 못오는 곳이라구...
갑자기, 한선생이 숙이 앉아있던 조수석의 시트를 확, 뒤로 젖혔다.
-어멋!
-이년아... 이젠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할 걸? 아까부터 니 엉덩이가 생각나서
근질거리던 참인데...
놀란 그녀가 엉겁결에 허리를 일으키자, 한선생의 손이 거칠게 그녀의 머리채를
쥐고 있었다.
-자, 이렇게... 이리 와봐...
맙소사! 한선생의 손은 그녀의 머리채를 한쪽으로 이끌고 있었다. 숙은 이내 그
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끙... 니가 풀러 봐...!
아아... 이, 이건 말도 안돼, 이런 곳에서...! 숙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한선생의 손아귀는 무지막지하게 그녀의 고개를 유도하고 있었다. 제발... 그러
나 숙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장소는 이미 커다란 무엇이 들어가 있기라도 한듯이 불룩하게 솟아올라 있
었다. 하는 수 없이 숙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망설이던 두손을 뻗어 그의 부분을
감싸고 있던 것들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끄르고 , 풀고, 내리고... 그리고 마
지막 헝겊을 내리자, 막혀있던 봇물이 터지듯 한선생의 물건이 불쑥 튀어나와 숙
의 뺨에 부딪혔다.
-세, 세상에...
그녀는 어처구니없는 탄성을 질렀다.
-왜, 이년아, 감탄은 그만하고, 얼른 시작해 봐...
어째야 좋은 것일까. 숙으로서는 이런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예상 밖의 장소에
서 예상 밖의 요구라니... 그러나 한선생의 손이 거칠게 그녀의 머리를 눌러대는
통에, 그녀는 고개를 낮추어야만 했다.
그리고 곧이어, 새빨간 숙의 입술이 벌어져 손님을 맞았다.
-계속, 계속하라구, 숙이...
사실 숙에게 이런 경험은 많지 않았다. 아예 경험이 경험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
만, 어쨌든 특이한 상황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녀의 경험이 미숙한 탓일까. 한
선생은 적나라한 말까지 서슴지 않으며 요구하고 있었다.
-아니, 더 깊이... 꽉 물어 봐, 그래, 그렇게... 엇, 어윽...
흡... 아흡... 그의 손이 아직도 그녀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목구멍까지 들어찬 그의 장대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 아니... 혀, 혀로...
그러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그 짧은 순간에도 요령이 생기고 있었다. 곧 한선
생의 손이 느슨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숙이 혼자서 열심히 고개를 아래위로 움
직이게 되었다. 그 때마다 흡착음이 그의 국부와 그녀의 혀 사이에서 새어나왔
하아... 이, 이런 건 처음이야... 여자란 원래 '받아들이는' 구조여서일까. 숙은
혹시라도 이런 것에 대해 보거나 듣게 되면, 어째서 저 경우에도 여자가 흥분하
는 것일까? 라고 의아하게 여긴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고, 또 지금처
럼 노골적인 경우가 되고나니, 뭔가가 조금씩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자꾸만 무언
가가 가슴 속에서 요동치며 울렁이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자기만의 노력봉사인줄
알았던 것이, 묘하게 그녀를 자극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입이란, 특히 애정관계에 있어서는 가장 - 깨끗하고 성스러운 역할을
하는 곳인데, 그곳에 지금 가장 지저분하다고 할 수도 있는 배설기관 중의 하나
가 가득 들어차 있다... 이런 상상을 행위 중에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숙은 엉덩
이사이가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원래 인간의 아름다움이란, 곧 추함
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일까.
한선생은 숙의 머리채가 연신 왕복하는 광경을 묘한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
다. 그것은 정복자의 쾌감, 바로 그것이었다. 양가집 규수, 그것도 시집도 안간
처녀가 자신의 힘에 굴복되어 이런 망측함까지도 무릅쓰고 있다... 그리고 그것
도 여자로서 가장 하기 힘든 행위 중의 하나를... 그는 야릇한 성감 아닌 또 하
나의 쾌감을 누리며, 자신의 기둥이 그녀의 침을 묻히고 번들거리는 숙의 입술
속으로 보였다 말았다하는 광경을 관찰하고 있었다.
-으윽, 이, 이봐... 그, 그만...
-쭈웁... 하읍...
그녀의 머리를 끌어당겨 한선생이 억지로 물건을 빼내자, 어느새 숙의 눈동자는
아쉬움마저 내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자기 손으로 그의 물건을 쥔채 가쁜
숨을 골랐다.
-자, 이제... 나머지 것들도 벗어 버리라구...
-하아... 여, 여기서요...?
-그래, 얼른, 여긴 볼 사람 아무도 없어...
-그, 그래도...
숙은, 이제 본능이 원하는 대로 따르기를 작정한 터였다. 비록 주위가 어두워져
다행이긴 했으나, 께름직한 기분은 약간 들었다. 그러나, 일단 한선생의 노리개
가 되주기로 작정한 이상, 뭔가 더 대담한 모습을 보여 그를 단단히 묶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차피, 그녀 스스로도 억제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도달하고 있었다.
-그, 그럼 고개좀 돌리세요...
-젠장, 뭘그래? 어차피 볼 것 안볼 것 다본 사이에...
숙은 별 수 없이 자신이 앉은 시트 위에서 옷을 벗어야만 했다. 그녀가 블라우스
의 단추를 끄르려는 것을 한선생이 제지했다.
-아냐, 아래만 벗어. 못 참겠어, 빨리!
-아, 알았어요...
그녀는 의외로 그의 말에 고분고분해지는 자신이 놀라웠다. 이걸까. 본능과 마음
의 차이는 이렇게 종이 한장도 안되는 것일까. 하지만 그녀는 문득 고개를 세차
게 흔들었다. 아니야. 난 복수하고 말거야. 언젠가는, 언젠가는 이 주임선생이란
작자도 날 위해 꼼짝없이 당하게 해주고 말겠어...
거들을 입었기에, 먼저 스커트를 벗는 수밖에 없었다. 탁 트인 장소의 차안에서
치마마저 벗는 것이 겁이 났지만, 현재로서는 대담해질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치
마를 벗어 뒤쪽 시트로 던지자, 다음은 팬티스타킹의 차례였다. 숙은 앞 유리창
에 다리를 뻗고, 바지를 벗는 자세로 팬티스타킹을 벗어버렸다. 그 광경을 옆자
리의 한선생은 감탄하는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야, 니 년은... 화장실에서 불편하지도 않니...?
그러나 숙은 자질구레한 질문에 시간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거들과
팬티는 한꺼번에 끌어내려 버렸다. 이제 그녀는 윗도리는 완벽하게 입고, 하체는
완전히 적나라한 기묘한 차림이 되었다.
-어, 얼른 이 위로 올라와...! 아, 아니, 그쪽 말고...!
한선생은 그녀가 스스로 자신의 몸 위로 올라올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것도
계기판 쪽을 바라보는 후배위로.
-이, 이럼 됐어요...?
숙은 엉거주춤, 좁은 시트 위로 올라와 무릎을 꿇고 그에게 등을 보였다. 한선생
은 숙이 자리를 잡자 양 손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붙잡아 넓게 벌렸다. 뒤쪽으로
그녀의 엉덩이사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다른 애무를 하지 않았는데도, 숙의
뒤쪽은 젖어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잡아 봐... 그래, 그렇게...
한선생이 그녀의 엉덩이를 붙잡아 유도하자, 숙은 스스로 손을 뻗어 그의 물건을
쥐고 안내했다. 잠시 후, 위치가 맞춰진 그녀의 엉덩이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창 밖을 내다보는 자세인 숙의 입술이, 무언가 안타까운 희구로 인해 점점 벌어
지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벌려진 그녀의 입에서 알 수 없는 무언의 비명이
터져나온 것도 잠시, 숙의 저 아래쪽 엉덩이는 그 중심부에 뿌리를 꽂은채 황급
히 상하로 철썩철썩, 그의 하복부에 요분질을 치기 시작했다.
한선생은, 풍만한 숙의 엉덩이가 출렁거리며 오르내리는 것을 넋이 나간 채 지켜
보고 있었다. 그의 뿌리가 허연 거품을 뒤집어쓰고 점점 빠르게 그 사이로 삼켜
지고 있었다. 숙의 엉덩이는 원을 그리기도 하고, 상하로 움직이기도 하며, 전후
로 마찰하기도 했다. 그는 양 손에 힘을 주고 그녀의 둔부를 단단히 붙들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물건이 뽑혀버리거나, 그녀의 엉덩이가 어디론가 튕
겨져 나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남자의 헐떡거리는 숨소리와, 가쁜 여자의 신
음이 차안을 가득 울리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땀에 차 철썩이는 살소리가 간
간히 끼어들었다.
역설적으로, 차밖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9월이 깊어가는 강변에는 이따금씩 막
피어난 갈대가 바람에 우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한대의
차가 있었다. 차창을 올린 차는, 희미한 실내등만을 킨채, 리드미컬하게 진동하
고 있었다. 그 앞자리에 탄 두 남녀의 움직임이 차체에 전달되어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두 남녀는 분명 차창에서 보기에는 둘다 정상적인 차림을 하고 있었
다. 그 아래쪽에는, 땀과 음수로 젖어 미끌거리는 다 벗은 하체들이 있을지라도.
오분이 지나고, 십분이 지났다. 그리고 갑자기, 남자 위의 여자가 허리를 활처럼
휘었다. 그녀의 얼굴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르는 액체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리
고 잠시 후, 그녀의 몸이 반대로 꺾어져 핸들 위로 거세게 무너져 내렸다.
빠 앙 - 인적 없는 강변에 클랙션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마치 한
정사의 끝을 세상에 알리듯.
고수부지에서 차를 몰고 나오는 동안, 한선생은 차를 몰며 여유있게 담배까지 피
워 물고 콧소리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숙은, 돌아오는 내내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지금 이 옆자리의 사내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열려진 차창 문틈으로 찬 바람이 흘러 들어오자, 땀에 젖은 살갗은
시원하게 닿고 있었다.
땀이 식는 그 느낌, 그것은 불과 몇십분 전의 이 차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녀
의 머리 속에 떠오르게 만들었다. 아무리 인적 없는 강변이라 하여도, 그들은 정
사의 소음이 새나가지 않도록 차창을 모두 닫고 있었고 - 한선생은 꼭 필요한 만
큼만 그녀의 옷을 벗도록 강요했었다.
숙은 상의를 벗지 않았었고,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랫도리... 숙은 허전한 느
낌을 치마 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거들, 방금 전의 그런 일들이 없기를 바라며
껴입은 그것은,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이다. 하기야 속옷을 아무리 덧입는
다 하여도 종내 그 속옷이 벗겨지지 않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녀는 그것을
바랬던 것이다. 전철 안 치한의 침투, 더 나아가선 이 한선생같은 사내의 손길..
. 거들은 그 아무 것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숙의 거들은 이제 그녀의 핸드백 속에 차곡히 접혀진 채 쑤셔 넣어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그녀는, 똘똘 말아 구겨진 상태로 팽개쳐진 속옷뭉
치 - 거들과 팬티 - 를 주워 들고 그 안에서 팬티를 끄집어내 입어야만 했다. 지
금 운전하고 있는 바로 이 사내 앞에서.
격렬한 정사였을 것이다. 그래서 숙은 벗지 않았던 상의와 브래지어가 후줄근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차창의 바람이 차가웠다. 아아, 그 살갛에서 식어가
는 땀은 정말 그녀를 불쾌하게 만들고 있었다. 땀, 그것은 그녀의 행위, 한선생
의 허벅지 위에서 헐떡였던 그 행위가 본능이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본능, 어쩔 수 없는 본능, 그 본능의 정사가 말하는 것은 이제 단순한 흥분과 쾌
락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돈에 대한 욕심, 협박에 대한 공포, 살아 남으려
는 욕구 - 이제는 그런 모든 본능이 어우러진 숙의 몸뚱아리였다. 그리고 그것은
숙을 몸서리치게 하고 있었다. 본능, 그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랫입술을 깨물
었다. 인간적인 감정이 전혀 없는 사내에게, 이제는 그것도 그가 원할 때마다,
그녀는 그 본능을 드러내야만 한다...
비참했다. 그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 무엇이라 해도.
-이 동넨가, 집이?
한선생은 어느새 그녀가 가르쳐준 집 근처까지 와서 멈추고 있었다.
-어디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지.
그는 호의를 베푸는 척 하고 있었다. 어금니를 깨물며, 숙은 그제서야 눈을 뜨고
거리를 보았다.
-아녜요. 전 여기서 내리겠어요.
공연히 그의 선심쓰는 듯한 위선을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또 그러다가 집안 식
구들 눈에 띄일 위험도 있다. 한선생은 뭔가 아쉽다는 듯 차문을 여는 그녀를 돌
아 보았다.
-어디서 저녁이라도 먹지 않겠어? 아니면 술 한잔 할까?
막 몸을 내리려던 숙의 양미간이 찌푸려졌다. 그저 한번 몸을 허락한 것을 가지
고 이 남자는 마치 숙의 정부라도, 아니 애인이라도 된 듯한 눈치다. 그녀는 돌
아보지도 않고 쌀쌀맞게 대꾸했다.
-됐어요. 저 피곤해요.
-피곤해? 푸훗...
철썩, 조수석에서 막 둔부를 들던 그녀 엉덩이를 한선생은 귀엽다는 듯 치고 있
-그래... 피곤할테지, 그럼 나중에 또 놀러 가자구. 큭큭...
숙은 출발하는 한선생의 차 뒤에 남겨진 채, 한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아...
저 웃음소리. 한선생은 피곤하다는 그녀의 대답이 못내 야릇한 모양이었다. 길가
에 선 그녀의 귓가엔 그의 능글맞은 웃음이 맴돌고 있었다.
집에 들어와서도, 숙은 저녁 생각이 없다며 일찍 자리에 누웠다. 밥이라도 먹고
자라는 어머니의 성화를, 그녀는 몸이 안좋다는 핑계를 대고 물리쳤다. 아버지
역시도 걱정하는 목소리로 이것저것을 캐물었지만, 그녀는 얼버무리며 넘긴 채
방안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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