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 01
네코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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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전
여자친구 --- 01
“야 우리 과 남자애들 영문과 여자애들이랑 과팅 결정됐다!”
“우와-!”
행정학과내에서도 다른 과 여자애들이랑 친하기로 유명한 한 남학생이 그렇게 말하자 강의가 끝나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던 남학생들이 일제히 환
호성을 질러댔다.
“뭐야. 웃겨.”
그러나 여자애들은 짜증난다는 듯 하지만 전혀 신경은 쓰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야유만 보낼 뿐이었다.
“야 빨리 나와서 접수해. 10명 선착순이다.”
주선자 남학생이 그렇게 외치자 남학생들이 우르르 달려 나간다.
자리에 앉아 가만히 얘기를 듣던 환우도 재빨리 줄을 섰다.
앞에 서 있는 남자애들의 숫자를 세어보니 다행이 아홉 번째이다.
자기 뒤로 선 몇몇 남학생들이 투덜대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휴우….’
환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흐뭇하게 자기차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촌구석의 남중 남고를 나온 환우는 여자친구를 사귀어보기는커녕 여자의 손도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상경해 행정학과에 11학번으로 입학해 처음해보는 미팅이니 어찌 기대되지 않을 수가 있으랴….
부푼 마음을 안고 고개를 내밀어 앞을 보기 몇 차례 드디어 환우의 순서가 돌아왔다.
이름을 적던 주선자 남학생은 환우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이름을 적는다.
“좋아. 최환우…. 이제 마지막이네.”
“야 나 된 거야? 확실히 적은 거지?”
환우가 재차 확인하자 남학생이 웃는다.
“야 여기 적었잖아. 너나 약속 펑크내지마라. 자 다음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환우는 기분 좋게 자리로 돌아와 주선자 남학생이 말하는 일정을 수첩에 받아 적기까지 했다.
이미 머릿속은 다가오는 봄날은 여자친구와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
3일 후 드디어 과팅 날이 되었다.
학교 앞 호프집에서 만난 스무 명의 남녀학생….
환우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앞에 마주 앉아 자기들끼리 도란거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여학생들 중에 유난히 환우의 눈을 사로잡는 여학생이 있었다.
‘진짜 예쁘다….’
눈에 띄게 하얀 피부에, 약간은 도도할 것 같은 눈매를 가진 그녀….
가끔씩 긴 머리를 시원스레 쓸어 넘기는 가느다란 손가락조차 아름답다.
자기소개 시간에 그녀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안녕-. 이은빈이라고 해.”
“와-!”
예쁜 여학생답게 남자애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엄청났다.
각자 간단한 소개를 하고 신나는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미팅 분위기보다는 일반적인 술자리 분위기였다.
환우의 눈은 처음부터 찍은 은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환우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눈이 마주치거나 하진 않았지만 환우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술자리가 즐거웠다.
이런 저런 게임도하면서 조금씩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 도중 과팅을 추진했던 남학생이 일어나 제안을 했다.
“자 이제 우리 사랑의 작대기 한 번 해보자. 만취되기 전에 찍어야지 만취돼서 찍고 난 후 다음 날 자기가 누구 찍었는지 기억도 못하면 안 되잖아.”
남학생의 개그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린다.
“자 이제 그럼 젓가락 들고 내가 하나둘셋 하면 찍는 거야. 자 하나, 둘….”
젓가락을 든 채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은빈의 모습을 힐끔거리는 환우의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셋-!”
환우는 떨리는 손으로 은빈을 향해 젓가락을 내밀었다.
하지만 은빈의 젓가락은 누가 봐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찰나의 일이었지만 환우의 눈엔 그런 그녀의 손동작이 한없이 느리게 보인다.
젓가락이 가른 운명에 여기저기서 부끄러워하는 웃음 또는 낮은 탄식소리가 들려온다.
은빈을 찍은 남학생은 두 명이었다.
환우와 행정학과에서 가장 잘생긴 남학생인 정혁...
남자애들이 너무 예쁜 은빈은 맺어질 확률이 적다고 생각했는지 둘을 빼고 아무도 찍지 않은 것이다.
은빈을 가리킨 젓가락은 두 개였지만 그녀의 손에 들려진 젓가락은 하나….
그리고 그 젓가락은 환우가 아닌 그녀를 찍은 또 다른 사람인 정혁을 가리켰다.
은빈이 자신을 찍은 환우를 살짝 쳐다본다.
오늘 그녀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환우였지만 재빨리 고개를 돌려 눈을 피하며 젓가락을 내렸다.
‘역시…. 못 오를 나무는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생각해보면 그녀와 얘기 한 번 해본 적도 없잖아. 그런 그녀를 찍다니 쪽팔리게….’
자신이 기대했던 모든 상황이 무너진 뒤에야 현실로 돌아온 환우는 그제야 자신을 가리키고 있는 단 하나의 젓가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여학생.
아니 자기소개 할 때 한 번 보긴 했었던 것 같다. 물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정도로 평범한 여학생….
못생긴 것은 아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하얀 얼굴에 커다란 눈이 꽤나 귀여운 여학생이었다.
여학생은 환우가 자신을 쳐다보자 고개를 푹 숙인다.
환우는 그런 그녀의 이름을 기억해내려 했지만 기억이 날리 없었다.
이윽고 술자리는 남녀가 섞여 앉아 진행이 되었다.
아니 젓가락이 맞은 사람들끼리 앉다보니 자연스레 섞였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었다.
환우는 정혁의 옆에 앉아 밝은 미소로 대화하는 은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와 말 한 번 섞은 것도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괜스레 가슴이 쓰리다.
*
과팅이 끝난 스무 명의 남녀학생들은 술집에서 나와 자연스레 끼리끼리 붙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개중에는 혼자 서서 짜증나는 얼굴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학생들도 있었다.
환우도 혼자 멀거니 서서 정혁의 옆에 붙어 웃고 있는 은빈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 이제 더 놀 사람들은 놀고 집에 갈 사람은 집에 가고 좋은 데 갈 사람은 좋은 데 가고….”
주최자 남학생의 말에 몇몇 여자애들이 야유를 보낸다.
‘집에나 가자….’
환우가 쓸쓸히 발길을 돌려 그곳을 빠져나오려 할 때 누군가가 외투소매를 잡았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아까 자신을 찍었던 여학생이다.
“응, 응?”
적잖이 당황이 되었다. 갑자기 자신의 소매는 왜 잡는 거지….
“저, 저기….”
생각보다 높은 음색의 귀여운 목소리를 가진 여학생.
“나랑 더 놀다 갈래…?”
순간 환우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 얌전해 보이는 여학생이 겉보기와 달리 엄청나게 적극적이다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놀다 가자는 게 무슨 의미일까하는 생각까지….
환우는 그런 생각들을 거치고 난 후에야 여학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백육십정도 돼 보이는 키에 보통의 몸매 어깨까지 내려오는 평범한 머리….
아기같이 맑은 얼굴이 특색이라면 특색일까?
굉장히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시, 싫어?”
이젠 살짝 떨리기까지 하는 여학생의 말에 환우는 결론을 내려야했다.
“아, 아냐. 싫기는…. 그 그래….”
결국 둘은 근처 술집으로 들어갔다.
소주 한 병과 간단한 안주를 시키고도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앉아 있는 두 사람….
어색한 침묵이 오랫동안 이어진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여학생 쪽이었다.
예의 그 높은 음색의 목소리로….
“저.. 저 술 잘 마시니? 난 되게 못 마셔….”
“아 아…. 응. 난 좀 잘 마시는 편이긴 해. 좋아하기도 하고.”
환우의 대답에 그녀가 어색하게 웃는다.
“그.. 그렇구나….”
다시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진다.
그러나 이내 여학생이 소주를 따더니 어색한 동작으로 환우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른다.
“바.. 반가워.. 화.. 환우야….”
환우는 그녀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이름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아. 으응…. 그, 근데 저기 미안한데 난 너 이름을 기억 못해….”
“아…. 응. 괜찮아. 괜찮아. 그럴 거라 생각했어. 내 이름은 소은이야. 유소은….”
아기 같은 얼굴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서로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몇 마디 말도 나누지 않으며 술만 홀짝 거린다.
그러다 환우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는 왜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한 나를 찍었을까….
물어보는 것이 예의가 아니란 생각도 들었지만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저.. 저기 소은아….”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은은 환우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든다.
“으, 응?”
“그.. 근데 왜 날 찍은 거…야?”
“아….”
다시 살짝 고개를 숙이는 그녀….
환우는 그런 그녀를 보고는 재빨리 말했다.
“아….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않아도 돼.”
“아, 아냐…. 사실은….”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녀는 잠시 심호흡을 한다.
그리곤 고개를 들어 환우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주일 전쯤에 너를 본 적이 있어.”
“나, 나를?”
순간 그녀가 스토커인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 환우였다.
“으, 응…. 그때 너가 학교 앞 지하철역에서 계단 위까지 할머니 짐 들어다 드리고, 버스 타는 곳까지 안내해드린 다음에 할머니 버스타시는 거 기다렸
다가 나중에 웃는 얼굴로 인사까지 하면서 보내드리는 거 봤었어….”
환우는 소은의 말에 깜짝 놀랐다. 확실히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그거 보고선 아 저사람 참 착한사람이구나 생각했었어.”
“그래서 과팅에 나온 거야?”
환우의 질문에 소은이 놀라 손사래를 친다.
“아, 아냐. 그때는 그냥 너 한 번 봤을 뿐이고, 과팅도 친구들이 나가자고해서 억지로 끌려나오듯 나온 건데…. 근데 별 생각 없이 나왔는데 그때 봤던
너가 보여서 정말 놀랐어…. 그래서 괜히 가슴이 두근거려서….”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고개를 푹 숙인다.
환우는 보이진 않았지만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구나….”
환우의 얼버무리는 듯한 대답으로 분위기는 다시 어색해졌다.
사실 지금 환우의 머릿속엔 눈앞의 유소은이란 이 여학생보다 아까 봤던 이은빈이란 예쁜 여학생의 생각으로 꽉차있었다.
유소은이란 여학생이 자신을 붙잡고 조금 더 놀다 가자고 하고 자신을 찍은 이유를 설명하기 전까진 솔직히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겨우 전에 한 번 봐서라는 것을 알자 더 이상의 두근거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니잖아.’
환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충분히 두근거릴만한 이유였다.
그러나 그 상대가 이은빈이 아니라 유소은이라는 것이 더 이상의 설렘을 일으키지 않았다.
다시 눈앞의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살짝 고개를 숙인 채 부끄러워하고 있는 그녀….
은빈에 비해선 조족지혈이지만 그래도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마음이 이렇다니….
소은처럼 자신에게 저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면 확실히 말만 잘하면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환우에겐 이 눈앞의 소은에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저 은빈의 얼굴만이 잔뜩 떠오를 뿐이었다.
환우가 아무 말이 없자 소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근데 넌 은빈이 찍었었지…?”
“응? 응….”
소은도 봤던 모양이다.
“그럴 만도하지…. 은빈인 여자가 봐도 엄청 예쁘니까….”
환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소은이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우리 그, 그래도 친구로 지낼 수 있잖아. 응? 저, 전화번호 알려줄래? 가끔 만나서 놀 수 있지? 그치?”
“으, 응…. 당연하지.”
환우는 얼떨결에 그녀의 핸드폰을 받아 자신의 번호를 입력했다.
“헤헤…. 고마워.”
핸드폰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으며 좋아하는 그녀….
환우는 순간 그녀가 무척이나 순수한 미소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집에서 나와 소은은 학교에서 보면 꼭 인사하자는 말을 남기고는 쫄래쫄래 사라져갔다.
환우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간 바라보았지만 머릿속엔 온통 아까 정혁과 떠난 은빈의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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