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없음....4
그냥 모른 채 슬그머니 넘어가면 오죽 좋았을까.
하지만 침묵을 견디지 못한 지수는 본인이 그냥 못 본 척 넘어가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지수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현석의 청바지 사이에 낀 허연 천 조각을 가리키며 억지로 목소리를 높였다.
"어…? 이거 내 팬티잖아! 이게 왜 네 방에서 나와?!"
"나… 나도 당황해서……. 그, 글쎄? 그게 왜 내 방에서 나오지? 누나가 혹시 어제 술 취해서 흘린 거 아냐?"
현석이 혀를 깨물고 싶을 만큼 어설픈 대답을 내놓자, 지수의 눈자위가 크게 일렁였다.
본인의 치부를 들킨 것처럼 당황한 지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억지로 현석을 쏘아붙였다.
"미쳤냐?! 내가 내 속옷을 동생 방에 흘리고 다니게?! 너 혹시…… 자위하려고 내 거 몰래 가져간 거지?!"
말도 안 되는 억지였다.
자기가 어제 술에 취해 벌인 행동이 감당이 안 되니, 괜히 동생을 이상한 변태로 몰아서 상황을 모면하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평소의 현석이었다면 "내가 미쳤냐? 누나 할머니 같은 팬티를 왜 가져가!"라며 길길이 대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어찌 되었든 어젯밤에 내가 누나를 어떻게 했다는 묵직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어설프게 반박하다가 어젯밤의 진짜 진실이 밝혀져 서로 얼굴을 못 보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그래, 차라리 내가 누나 팬티를 훔쳐 자위나 한 파렴치한 놈이 되는 게 훨씬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뱉었다.
"미…… 미안해……."현석이 얌전하게 혐의를 인정하자 지수는 오히려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일부러 더 크게 오버를 하기 시작했다.
"이 새끼, 진짜 미쳤나 봐! 한 번만 더 누나 팬티로 자위했다간 그냥 콱 죽인다?!"지수는 오른팔을 휙 들어 올리더니 손바닥으로 현석의 목을 댕강 치는 흉내를 냈다.
붉어진 얼굴로 잔뜩 도끼눈을 뜨고 소리를 지르는 꼴이, 제발 이 분위기를 장난으로 넘겨보자는 처절한 발악처럼 느껴져 현석은 마음이 씁쓸했다.
그렇게 상황이 일단락되는가 싶던 순간, 지수가 침대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널브러진 이불을 정리해 주는 척하며 홱 들추어냈다.
"이것 봐, 이것 봐! 그렇게 빨가벗고 자니까 이렇게 이불에 이런 거 다 묻히고 있잖아!"
지수의 거친 손길에 걷힌 이불 밑, 침대 시트 한가운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곳에는 불투명한 액체가 흥건하게 묻었다가 하얗게 마른 자국이 큼지막하게 얼룩져 있었다.
지수의 손가락이 정확히 그 오염된 흔적을 가리키고 있었다.
현석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반사적으로 더듬거렸다.
"나… 나… 아냐……!"본능적인 변명이었지만, 씨도 안 먹힐 소리였다.
공식적으로 이 방에서 속옷까지 다 벗고 혼자 잠들어 있던 사람은 현석이었으니, 그 자국이 현석의 몸에서 나왔다는 사실만큼은 어떻게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지수는 혀를 쯧 차며 다 안다는 듯 음흉하게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그렇겠지. 누나는 다 이해한다……."
"……어?"
"오줌 아닌 거 다 이해한다고......."
남자들은 오줌 말고 아침마다 몽정 같은 걸 한다며? 그러니까 속옷은 입고 잤어야지! 이거 이불 빨래 어떻게 하라고 그래?!"
지수의 당당한 핀잔에 현석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로 누나가 이 액체의 정체를 모르는 건지, 아니면 어젯밤 두 사람이 몸을 섞으며 흘린 흔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연기를 하는 건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지수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겠다는 듯 하얗게 마른 얼룩이 묻은 시트를 둘둘 말아 쥐었다.
결국 그날 아침은 현석이 모든 억울한 오명과 변태 취급을 뒤집어쓴 채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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