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사랑-----4
야근을 자처하며 시간을 때우다 밤 9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 앞치마를 두른 민주가 환하게 웃으며 마중을 나왔다.
낮의 불안함은 찾아볼 수 없는 평온한 얼굴이었다.
"어, 피곤하네."
무표정을 가장한 채 안방으로 직행해 문을 닫았다.
불도 켜지 않은 채 협탁 틈새로 손을 밀어 넣어 차가운 단말기를 꺼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내가 하은이와 집을 나선 직후인 오후 3시 20분 무렵으로 타임라인을 빠르게 돌렸다.
미세한 공기 소음 뒤로 민주가 거실에서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하철을 탄 하은이의 목소리였다.
[하은 : 야, 민주야! 나 진짜 지하철역 걸어오는 내내 심장 터져서 죽는 줄 알았다.
갑자기 나한테 왜 화장 안 했냐고 물어보는데, 욕조에서 너랑 씻다가 급하게 지운 거 들켰나 싶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
[민주 : 아이고, 깜짝이야…… 그냥 무심코 한 말이겠지.
우리 그이 성격에 눈치챘으면 가만히 안 있었어.
워낙 무던하잖아.]
[하은 : 그래도 안심하지 마. 아까 안방 화장실 들어갔을 때 내 붉은 머리카락 본 건 아니겠지?
변기 근처나 욕조 흔적 싹 청소해 둬.]
[민주 : 맞아, 그때 진짜 심장 내려앉는 줄 알았어.
전화 끊고 샅샅이 청소할게.]
[하은 : 그리고 안방 서랍에 너랑 쓰던 그 기구 있잖아.
급하게 닦아 넣느라 정신없었는데 잘 넣어둔 거 맞지? 온열 기능 때문에 만졌으면 바로 티 났을 텐데.]
[민주 : 걱정 마,
깊숙한 곳에 있어서 그이가 평소에 꺼내 보지도 않아.
진짜 대낮에 갑자기 들이닥칠 줄은 몰랐네.
걸쇠 안 걸어놨으면 거실에서 우리 둘이 안고 있는 거 그대로 들킬 뻔했잖아.]
[하은 : 앞으로 평일 낮엔 절대 집에서 만나지 말자.
형부 외근 스케줄 확실할 때만 만나.]
[민주 : 그래, 오늘 진짜 조상님이 도왔어.
퇴근하고 오면 내가 의심 안 하게 비위 좀 잘 맞춰줄게. 밤에 다시 톡 해.]
뚝, 소리와 함께 녹음이 끊겼다.
조롱은 없었지만, 들키지 않아 안도하는 아내의 생생한 목소리가 나를 더 깊은 지옥으로 끌고 들어갔다.
"여보? 안에서 자? 저녁 다 됐는데 나와서 먹어."
문밖에서 들려오는 민주의 다정한 목소리.
방금 전 녹음기 너머로 비위를 맞춰주겠다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 깊숙이 찌르고, 어둠 속에서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지독한 연극의 2막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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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호 | 날짜 | 제목 |
| 1 | 2026.05.22 | 위대한 사랑-----38 완결 (3) |
| 2 | 2026.05.22 | 위대한 사랑-----37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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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
키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