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하숙
백수의 사랑이야기3.
하숙.
난 방송작가가 꿈인 스물 아홉살 꿈 많은 노총각이다.
내가 은행일을 때려 치우고 작가학원을 등록한 지 백일이 지났다.
아직 나에게 빛이 보이지는 않지만 창작활동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하루가 힘들지만 무료하지는 않다.
4년 동안 은행에서 일하고 짤리는 대가로 받은 1300만원, 그리고 그 동안 모은 돈 700만원.
이 돈으로 내가 꿈 꿀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이년이다.
이년 안에 내 꿈을 이룰 수 없다면, 나는 다시 직장을 구해야 하고 예전처럼
내 시간은 어디에 있는지 하늘도 못 본채 이름없는 어느 회사에 몸을 받쳐야 한다.
학원비 30만원이 달이 바뀔때마다 나간다.
하숙비가 또 35만원씩 꼬박 나간다.
한 달에 버는 돈 없이 100만원 가까이 내 통장에서 빠져 나가고 있다.
난 하숙을 한다.
둘이서 쓰는 방을 구하려고 생각을 했었지만 아무래도 창작활동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독방을 쓴다. 두 평 가까운 독방이다.
아직 난 구성작가 단계이다.
언제쯤 버젓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어제는 새벽까지 에이포지 열장 가까이 되는 작은 글을 썼다.
오늘 내가 잠에서 깨었을때 아침 해가 유난히 밝다.
또 늦잠을 잔 모양이다.
오늘 아침은 짤없이 백수와 같이 밥을 먹어야 겠구나.
오늘은 또 무슨 소릴 지껄이는 지 내 두고 볼 것이다.
"쾅. 쾅!"
참 방문 노크하는 소리 대단하다.
저런 걸 딸이라고 낳은 하숙집 아줌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하숙집 아줌마 한갑이 내년 인 오십대 후반의 아줌마다.
딸만 둘을 가진 과부시다.
큰 딸과 작은 딸의 나이 차가 9살이나 난다.
큰 딸과 작은 딸 사이에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십년 전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큰 딸은 시집을 갔다.
먼 나라로. 바깥 분도 사 년전에 한갑 잔치를 하고 몇 개월 뒤
심장 질환으로 삶을 달리 하셨다고 들었다.
하숙 치는 일은 그때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친척도 없고 피붙이라고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작은 딸이 전부다.
그런데 하숙집 아줌마 요즘 고혈압으로 고통을 받고 계시다.
간혹 병원을 가시면 이 집 딸이 밥을 해주는데 그러면 하숙생들은 대부분
중국집에 전화를 하거나 다이어트 한다는 핑계를 대곤 한다.
"백수씨. 밥 안 먹어요?"
"일어 났어요."
제발 문은 열지는 말기를... 나 이집 딸에게 못 볼 꼴 많이 당했다.
팬티만 입고 있는데 그녀가 문을 연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처음엔 좀 놀라는 척을 하더니 요즘은 그냥 멀뚱한 표정으로 한 참을 쳐다 본다.
난 지금 반바지 같은 드렁크 팬티를 입고 있다.
아직 정신을 못차리고 이불위에 앉아 있는데 그녀가 또 문을 열었다.
왜 잠그는 장치가 고장이 난겨.
"그 문 좀 홱 열지 말아요."
"빨리 나오면 이런 일 없잖아요. 다들 먹고 학교 갔는데 백수씨만 남았어요. 빨리 나와요."
그녀는 날 항상 백수라 부른다.
백수인 것이 사실이라서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자기도 백수이면서...
집에서 추리닝을 껴 입고는 방을 나갔다.
널찍한 주방의 식탁엔 아침에 학생들이 먹고 간 반찬 그릇들이 어지러히 놓여있다.
저걸 먹기가 그렇다. 난 저걸 먹지 않는다.
우리 하숙집 백수 아가씨가 마음에 드는 한가지가 내 상을 따로 차려 준다는 것이다.
물론 날 위한 것은 아니다.
자길 위해서 차린 밥상에 난 밥하고 숟가락을 챙겨가지고 눈치보며 아침식사를 한다.
그녀는 아주 고고한 척 하는게 취미인 여자다.
하숙집 아줌마와도 같이 먹을 때가 많은데 요즘 아줌마는 아침상을
차리고 난 후에 바로 병원을 가신다.
병세가 안 좋아 지시지만 아직 혼자서 병원을 찾으실 정도는 되신다.
오늘 아침도 아줌마는 보이시질 않는다.
"백수씨 좀 일찍 일어나서 학생들하고 같이 좀 식사해요."
아직 치우지 않은 큰 식탁의 아래서 작은 밥상을 떡하니 차려놓고,
그 앞에 양반처럼 앉아서는 나를 꼬아 보는 눈빛이 무섭다.
"그 백수씨, 백수씨 그러지 말아요. 자기는 백수 아닌감?"
"뭐에요? 난 대기 발령자에요. 백수씨하고는 차원이 틀려요. 밥 먹기 싫어요?"
돈내고 먹는 밥인데 참 생색을 낸다. 말은 좋다 대기 발령자.
그렇다 그녀는 대기 발령자다. 임용 고시까지 떡하니 합격한 대기 발령자다.
올해로 삼년째 무소식인 대기 발령자다.
하기야 요즘 생물 선생을 찾는 학교가 몇이나 될까?
내년에는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교직원 정년이 단축됐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말이다.
그릇에다 밥을 퍼 가지고 그녀 앞에 앉았다.
밥숟갈은 펐으나 아직 반찬에 손을 못대고 있다.
그녀가 젓가락질을 하고 난 다음에야 반찬에 손을 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뭘 고민하냐? 아무거나 먹지.'
밥상에 있는 반찬이래야 아침에 학생들 먹고 간 반찬 가지수 보다 훨씬 적은데 참 고민도 많이한다.
숲속에 혼자 살면 일곱 난장이를 분명히 찾아 다닐 것 같은 모습이다.
드디어 달래 무침에 손이 갔다.
"잘 먹겠습니다."
그녀는 밥 먹는 속도가 상당히 늦다.
음미하면서 먹기 때문이다. 나야 뭐 배고픈데 그런게 어딨냐?
계속 음미하쇼. 햄 조각은 내 차지다.
그녀는 칼로리가 많은 음식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으... 크르륵."
트림이 나왔다.
아직 공기의 밥을 반도 못 먹은 그녀 앞에서 대단히 큰 실수를 했다.
표정이 심상찮다.
"백수씨? 여자친구 없죠?"
"그래요 없어요."
"여자하고 밥 먹을땐 말이죠. 먹는 속도를 맞추어 줘야 하구요.
또 트림 같은 건 되도록이면 어디 가는 척 일어서 다른 곳에서 하는 것이에요.
저러니 백수에다가 솔로지. 쯔쯧."
참내. 우리집에선 내가 참 귀한 자식인데, 트림을 하던 배를 긁던 아무말 않던데...
집 나와서 설움 참 많이 받는다.
'야이 이뇬아. 나에게 너하고 나이 같은 여동생이 있다.
내 동생이었으면 넌 벌써 맞아 죽었다. 씨.'
"잘 먹었습니다."
"늦게 일어났으니까 자기가 먹은 밥그릇은 씻어 놓고 가세요."
"학생들 그릇도 아직 안 씻었잖아요?"
괜히 따져 보는 것이지요. 항상 제 밥그릇은 제가 씻지요. 괜히 게기는 겁니다.
"이제 늦잠 자면 밥 없어요!"
"왜 나만 갖고 그러세요?"
"우리집 하숙 친 이후로 백수는 동엽씨가 처음이에요."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무이에요?"
"딴 이유가 필요해요? 그럼 만들죠 뭐."
"됐어요. 내가 아예 학생들 먹은 것 까지 다 설거지 할게요."
"그러세요. 그럼 난 음악을 들으며 커피나 한 잔 할까? 커피 한잔 할래요?"
"싫어요."
다소 쌀쌀하게 답을 했으나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달래무침 한 줄기를
입에 넣고는 눈을 감고 음미하 듯 입을 야물거린다.
'하숙집을 확 옮겨 버릴까?'
그러나 학원에서 늦게 들어와도 밥을 차려 주는 하숙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집에 있을 거에요? 나영씨."
"우리 그이 찾으러 가야죠."
"그이가 있기는 있어요?"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백마 타고 올거에요."
하숙집 그녀는 공주다. 병에 걸려도 단단히 걸린 공주다.
그녀는 꼭 오후가 되면 외출을 한다.마로니에 공원을 거닐다 오거나,
혼자 영화를 보고 오기도 하고 대형 서점을 찾아 책도 보고 온다.
요즘은 엄마따라 병원을 가서 대기실에서 고혹하게 앉아 있다가 오기도 한다.
오후에는 집에 있기를 싫어했다.
학생들이 하나 둘 하숙집에 돌아 오면 그녀는 외출을 준비한다.
그것이 일률적이지는 않았는데 이번 달 들어서면서 그녀는 항상
내가 학원을 갈 무렵 외출 준비를 하고 있다.
저녁상을 차릴 때면 돌아 오는 그녀가 요즘 어디를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경북궁 다니고 있나?
그녀에게는 아픈 추억이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일년이 지나던 해에 사귀던 남자와 헤어졌었다.
간혹 그 사람 얘기를 하는데 그리운 표정을 쉽게 읽을 수가 있었다.
무었 때문에 헤어졌는지 정확히는 알수 없으나 대충 짐작하기로 집안 사정때문인 것 같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사를 그녀가 모신다.
그녀는 시집을 가더라도 그러길 원하고 있다.
그녀가 사귀던 사람은 증손이다.
집안에 제사가 일년에 5개나 되는 장손 집안의 세형제 중 장남이라 알고 있다.
그것 때문에 다툼이 자주 있었다는 것을 그녀에게서 들어 알고 있다.
한시가 넘었다. 학원 갈 준비를 해야겠다.
어제 쓴 스토리가 강사님 마음에 들어야 할텐데... 내가 쓴 글이 아직 구성면에서
많이 서툴다고 말씀하시는 강사님이 오늘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 주었으면 좋겠다.
방송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강사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쓴 글을 다시 읽어 보니 그렇게 맘에 들지를 않는다. 너무 조급해 하지는 말자.
욕실에서 세수를 하고 나왔다.
그녀가 식탁에 책을 놓고 앉아 머리핀을 입에 물고는 머리를 올리고 있다.
그녀의 모습 중 가장 섹시한 모습이다.
눈동자를 들고 나를 쳐다 본다.
입술의 핀을 떼고는 묻는다.
"오늘은 언제 들어 올거에요?"
"알 수 없죠. 왜요?"
"또 밥 따로 차려요?"
"그래주면 좋죠. 아마 늦을 거에요."
"늦더라도 집에서 먹어요. 백수가 밖에서 밥 사먹는다고 돈 쓰면 그건 위선이에요."
구박이나 하지나 말지. 말은 저렇게 해도 밥 안 먹었다고 그러면 엄청 구박을 하지요.
"어머님은 안 돌아 오셨어요?"
"시장 봐 온대요."
"몸도 안 좋으신대 시장은 나영씨가 좀 봐오고 그래요."
"엄마가 좋다고 하시는 일이에요. 백수씨가 상관할 일이 아니죠."
"머리 다듬는게 어디 나갈 모양이네요?"
"저도 학원을 등록했답니다."
"학원에 취직 했어요?"
"배우러 다니는 거에요."
"잘 해 보슈."
그녀는 머리에 핀을 꼽고 있다.
오늘 엄청 깨졌다.
강사가 나보고 아직 멀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기죽지는 않을 것이다.
각오를 한 것이기에, 하면 된다,라는 생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학원에서 알게 된 사람과 학원을 나오며 근처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
오늘 강사에게 모욕적으로 깨진 세명이 모여서 술을 마셨다.
나보다 나이가 두살 많은 아저씨와 나보다 한 살이 적은 아가씨하고 마셨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듯 아가씨와 아저씨는 마주 보며 술을 홀짝 거렸다.
아저씨가 아가씨에게 시비를 건 말을 내 뱉었다.
"요즘 드라마들 잘나가는 여자! 그 여자 방송작가들이 다 망쳐났어."
"어머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가씨가 불만이 있어 보였다.
"맨날 삼각관계에다가 불륜에다가 남자 앞에서 질질 짜는 여자들 모습이나 그리지 암.
너도 그럴거면 때려 치우고 시집이나 가."
"뭐에요? 남자 작가들도 그러는 사람 많아요. 그리고
작가들 보고 그렇게 쓰라고 하는 연출자는 남자에요."
이것들이 나는 쳐다 보지도 않고 저네들끼리만 얘기를 하고 있다.
졸라 열 받는다.
"주부층이 주된 시청자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그리고 여자가
여자를 잘 안다고 인기 끄는 작가들이 여잔인 것은 어쩔 수 없죠 뭐."
나는 잘 모르면서 끼어 들어 봤지요. 전혀 나에게 관심을 안 두는군.
그럼 니가 써 새꺄. 쓰지도 못하는게 말은 잘한다.
"그게 아니라니까. 파워 좋은 여자 작가가 연출자를 맘데로 바꾸는 세태여.
발전이 없어. 맨날 그게 그거야. 여자들 머리에서 나오는게 빤하지 뭐."
"뭐에요? 여자가 뭐 어때서요?"
"내가 말이야. 방송 드라마 작가가 된다면 굵직한 남성 드라마를 쓰고 싶어.
그리고 연출자에게 다 맡길거야. 이래라 저래라 안한단 말여."
"써요. 누가 말려요? 시청율이 일퍼센트 넘어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뭐 방송으로 나가지도 않겠지만..."
"뭐여? 니가 오늘 씹혀도 나보다 열배는 더 씹혔어. 실력도 없는게..."
아저씨하고 아가씨하고 말이 오고 감이 심장치 않다.
아직 구성 작가 단계인 것들이 유명한 작가 이름 다 들먹여 가며 서로 씹고 있다.
둘이 사귀는 것 같기도 하다.
서로 다투는 듯한 모습이지만 꼭 건배를 하고 술잔을 비운다.
잘해봐라. 년하고 놈아. 나 간다.
난 얼매 안 마셨으니까 너네가 계산해라.
"어디가? 계산은 같이 해야지."
참내 갈려니까 관심을 주네.
"화장실 좀 가려구요. 얘기하고 계세요."
지하철 역의 화장실에서 소변을 봤다.
'으으... 시원하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 시계를 보니 열한시가 다 되어 갔다.
밥을 사먹자니 먹을 만한 데가 없고 들어가서 밥 내놔,라는 소리는 하기가 어렵겠고...
굶자. 패스를 끊어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사람들 모습이 밥을 굶은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하숙집으로 들어 갔다.
신발이 하나, 둘, 셋, 넷. 아직 한 놈 안들어 왔구나. 꼴등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우리 하숙집 그녀가 식탁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었다.
식탁의 밥상은 이미 치워져 설거지 까지 다 되어 있는 상태였다.
"나영씨!"
"네."
"들어가서 자세요. 여기서 뭐 하는 거에요?"
"인제 들어 왔어요?"
"네."
"밥은 먹었어요?"
"안 먹었으면 차려 주게요?"
"안 먹었죠? 잘됐다. 이것좀 봐 주시겠어요?"
"뭔데요?"
"찌게요. 밥 줄테니까 한 번 먹어봐요."
식탁에 앉았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밥까지 놓았다.
반찬은 달래무침과 김치하고 시금치 뿐이었다.
고기 반찬은 학생들이 다 먹었나 보다.
찌개가 놓여졌다. 팔팔 끊는 찌개 냄새가 참 좋다.
"나 밥차려 주려고 여기 있었던 거에요?"
잘못하면 감격 할 뻔 했다.
난 진짜 그녀가 오늘 나에게 밥을 차려주려고 식탁에서 찌개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면 그녀를 사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냥 '네.'라고 답해 주었으면 말이다.
"착가하지 마시구요. 오늘 학원에서 배운데로 만들긴 했는데
차마 학생들에게는 못 주겠더라구요. 한 번 먹어 보세요."
"요리 학원 다녀요?"
"네. 엄마가 아무래도 힘이 부치는 것 같아서요."
찌개 맛이 그런데로 좋았지만 오만쌍을 다 찡그리고 그녀를 쳐다 봤다.
"이게 찌개에요? 내가 눈감고 발로 끓여도 이것보다는 잘 끓이겠어요."
별로 표정의 변화가 없을 줄 알았던 그녀가 날 말없이 쳐다 본다.
너무 자존심을 건드린게 아닌가 싶다.
밥숟갈 한번 밖에 안 떠 먹었는데, 그녀가 찌개 그릇을 들고 가버린다.
그리고 싱크대 한쪽에 부어 버렸다. 아까웠다.
저럴 줄 알았으면 다 먹고 말하는건데, 잘못했다.
밥 숟갈을 들고 그녀를 쳐다 보았다.
"밥 다 드시고 치워놓고 들어가세요. 난 자러가야 겠다."
나를 못마땅한 듯 혀를 한 번 차고는 그녀는 자기 방으로 들어 갔다.
다음에도 저런 걸 부탁하면 다 먹고 하고 싶은 말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고는
달래 한 줄기. 시금치 한 줄기. 김치 한 조각으로 밥 한공기를 비워야 했다.
그래도 밥을 먹었으니 다행이다.
내가 밥을 다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오늘 마지막 녀석이 들어 왔다.
"형이 설거지 해요?"
"그렇게 됐다. 넌 밥 먹었냐?"
"아니요."
"찌개 없어. 그냥 굶어라."
"그럴거에요."
짜식이 아주 당연한 듯이 대답을 하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 갔다.
요즘 하숙생들 정이 없어 보인다.
나때는 늦게 들어와도 아줌마한테 인사도 하고 '또 밥 주세요'라는 말도
자연스럽게 하고 했는데... 삭막하다.
그래도 이 하숙집은 주방이 실내에 있고 주인과 같이 살기 때문에 좀 낫다.
아예 여관식으로 지어 가지고 자유만 추구하고 대인관계는 무시한 하숙집들이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옆방에 누가 사는지 한 학기가 지나도 모르는 하숙집에는 사람의 정이 없어지고 있다.
싱크대에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찌개의 냄새가 좋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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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50 /304 날짜 1999년3월31일(수요일) 2:11:56
E-mail hicheol@netsgo.com 이름 이현철
제목 [백수의 사랑이야기3] 하숙 2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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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는 가구가 없다. 그래도 비싼게 많이 있다.
25인치 티비, VTR, 그리고 컴퓨터, 음악을 듣기 위한 미니 콤포넌트.
티비와 비디오는 극본 구성을 위해 자료를 시청하기 위해 필요하였고,
컴퓨터는 글을 쓰기 위해 필요했다.
가구가 없는 이유는 옷도 별로 없고 이불은 그냥 펴놓으면 된다.
옷은 컴퓨터 위에도 놓을 수 있고 티비 위에도 놓을 수 있다.
빨리 내 방 문의 잠금 장치를 고쳐야 겠다.
내가 방으로 들어 왔을 때 벗어 놓은 옷은 헹거에 걸려 있었고
이불도 개어져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다.
하숙집 아줌마 아니면 그녀의 소행인데 그녀가 그랬다면 쪽팔리기 때문이다.
명색이 그래도 여자인데 나만의 공간을 보여주기가 부끄럽다.
밤이 깊어 나는 머리를 쥐어 박으며 졸음을 쫓고 글을 쓴다.
오늘 강사가 씹은 부분을 곰곰히 들여다 보았다.
씨, 나는 괜찮은 거 같은데. 이러다가 각본은 언제 써 보나, 앞날이 걱정 된다.
느는게 담배요. 커피다. 담배 한 갑으로 하루를 버티는 게 힘이 든다.
커피 믹스 한 박스는 일주일을 못 버틴다.
괜히 작가 한다고 집 나와 가지고 일찍 죽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심히 걱정이 된다.
대충 글을 마무리 지었다. 아무래도 또 엄청 깨질 것 같다.
모르겠다. 배째라 그래. 시계를 보니 새벽 세시가 넘었다.
자야겠다.
내일도 그녀가 방문을 홱 열어 버리면 내 대 들것이다.
쫓겨나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눈을 떴다.
그녀가 내 방문을 두들기기 전에 일어 났다.
그런데 기분이 이상하다. 그녀가 내 꿈속에 나타났었다.
묘한 기분이다. 솔직히 기분이 야릇한게 좋다.
"쾅! 쾅! 백수씨 밥 먹어요."
에이. 꿈에서 봤던 그녀의 좋던 기분 다 깨졌다.
빨리 추리닝이라도 하나 걸쳐야지. 추리닝은 어디 간겨.
"잠깐만요."
"왜 안나오는 거에요? 어머나!"
그녀가 문을 또 홱 열었다.
'너 솔직히 아침마다 내 이런 꼴 보고 싶은거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추리닝을 찾다가 오늘처럼 이렇게 처참하게 내 빤스만 입은 꼴을 들킨 것은 첨이다.
다른 날은 그래도 이불 속에 있었거나 이불을 보듬고 앉아 있었는데,
오늘은 완전히 쇼윈도의 마네킨처럼 뻔히 서서 보여 줬다.
"그 문 좀 홱 열지 말라니까요."
"노크 했잖아요."
내 나중에 복수 할 겁니다. 두고 보자.
내 벗은 모습이 보고 싶은지 계속 문 앞에 서 있는 그녀를 쫓아 내고는
추리닝 대신으로 바지하나 걸치고 나왔다.
오늘도 식탁 옆에 작은 밥상을 놓고는 그녀는 공주처럼 앉아 있었다.
내 밥그릇이 놓여져 있는 걸로 봐서 굶기지는 않을 모양이다.
왠일로 내 밥을 퍼 놓았을까. 식탁 위도 치워져 있었다.
"어머님은 오늘도 병원 가셨어요?"
밥상 앞에 앉아서 아까 팬티차림 들킨게 어색해서 물었다.
"네."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파릇한 냉이 무침에 젓가락을 갖다 대며 답한다.
북어국이다. 내 밥그릇 옆에 북어국이 있다.
내가 어제 술 마신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 같이 좀 다니고 그래요."
"백수씨 때문에 못 따라 갔잖아요."
"그럼 아침에 좀 깨워요."
"일어날 자신 있어요?"
"없어요. 그건 그렇다치고 잠금장치 좀 고쳐줘요."
"잠옷 없어요?"
말을 말자. 내가 고치던지 해야지. 북어국이 시원하다.
그녀는 또 고고한 척 먹은 밥을 손으로 가린 입을 야물거린다.
그녀가 국을 한 술 떠 먹고는 묻는다.
"북어국 괜찮아요? 내가 끓였거든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
고개를 한 쪽으로 약간 젖힌 채 날 보고 있다.
밥이 아직 남았으나 국그릇을 들고 남아 있던 국을 벌컥 다 마셔버렸다.
"내가 이만기하고 씨름하면서 끓여도 이것보다는 잘 끓이겠다."
그렇게 말하고 상을 잡았다. 상 엎어 버릴까봐서.
그녀가 국을 한 숟갈 떠서 먹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먹던 달래랑 냉이를 같이 먹으며 남아 있던 밥을 비웠다.
"설거지 할 거죠?"
"늦게 일어 났으니까 해야 겠죠 뭐."
"잘 아시네요."
놔 두세요 오늘은 제가 할게요, 이 말을 언제쯤 그녀가 할까?
그 말 하면 내 진짜 감격한다.
"설거지 다하고 빨래도 좀 걷어 오세요."
돌아가시겠다 진짜.
내가 하숙을 하는 건지, 그녀 집에서 밥 얻어 먹는 대가로 식모살이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집 말고는 밤에 밥 얻어 먹을 만한 하숙집이 없을 것 같다.
자취를 하면 굶어 죽을 것 같고, 설거지를 다하고 옥상으로 갔다.
학생들 빨래는 셀프다.
우리 하숙집 욕실에는 커다란 세탁기가 있다.
학생들 옷은 각자 빨아서 자기 방 앞에 있는 테라스에서 말린다.
옥상에는 그녀와 아줌마의 빨래들만 있다. 몇 번 내가 빨래를 걷어 다 준적이 있다.
그녀의 속 옷이 걸릴 만도 했지만 아직 그런 기회를 접해 본 적은 없다.
하기야 공주가 아무곳에나 그런 걸 내 걸리 없다.
앗! 오늘은 속 옷이 있다.
참으로 낯익은 추리닝 옆에 걸린 또한 참 낯익은 칼라 사각팬티와 허연 난닝구. 혈압이 땡긴다.
"이봐요. 나영씨."
"왜요?"
급하게 돌아 와 붉은 얼굴로 그녀에게 소리쳤지만 그녀는 참 담담한 표정이다.
언제 커피를 끓였는지 찻잔을 식탁에 놓고는 가계부를 펼치려다 나에게 아주 뻔뻔한 얼굴을 돌렸다.
빤스를 손에 쥐고는 보여 주었다.
"이거 나영씨가 빨은 거에요?"
"지금 성희롱 하는 거에요?"
"네?"
"세탁기가 빨았어요. 내가 미쳤다고 그걸 빨아요."
"그럼 빤스가 날개가 있어서 빨래 줄에 가 걸렸어요?"
"내가 가져다가 세탁기에 넣었어요.
어떻게 속 옷을 돌돌 말아 비디오 장식장에다 넣어 놓을 수 있어요? "
저렇게 대담하게 나오니 할 말이 없네요. 왜 내 옷을 빨았대요.
"제 방에 왜 들어 온 거에요?"
"비디오 보러요. 그 재밌는 비디오 있으면 혼자 보지 말고 같이 좀 봐요."
"비디오 봤어요? 제 방에 함부로 들어와도 되는 거에요?"
"이 하숙집의 주인 딸로서 전 모든 방에 들어 갈 수 있는 특권이 있어요. 모르셨나요?"
"잠금 장치 고쳐줘요. 빨리."
"직접 고쳐요. 동엽씨가 고장 낸 거잖아요."
"앞으로 제 방에 있는 물건 손대지 마세요."
"치. 기껏 빨아 줬더니... 나도 이제 아니꼬와서 그 방 안들어간다."
왜 불쌍한 표정 지으면서 날 보는데요.
그녀가 아주 귀여운 눈망울을 슬프게 위장하고 날 쳐다 보고 있다.
그 모습을 외면한 채 빨래를 들고 아무말 없이 내 방으로 들어 왔다.
내 이불은 또 언제 개어 논겨. 밖의 그녀가 괜히 떠 올랐다.
꿈 속의 그녀의 느낌은 좋았던 기억도 생각이 났다.
그녀가 내가 없을 때 내 방에 들어 와 비디오를 보곤 한다.
혼자 있는 하숙집이 심심하기도 하겠다.
그녀가 안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뭐.
"밖에 나영씨 있어요?"
개어 놓은 이불위에 앉아서 밖의 그녀를 불렀다.
"왜 부르는데요."
"딴 거 손대지 말고 그럼 비디오만 봐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괜히 말했다.
고맙다는 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에그 학원 갈 시간까지 이렇게 이불에 기대어 잠이나 자자.
잠이 들었다고 생각 될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렸다.
"쾅! 쾅! 나 지금 나갈거든요. 혹시 엄마 오면 내가 장 봐가지고 온다고 전해 주세요."
안에서 내가 뭘 하는지 전혀 생각 안하고 단지 저렇게 쾅쾅,대고는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는 그녀가 참 대견스럽다.
나는 저렇게 뻔뻔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잠 다 깨 버렸다. 씨.
그래도 그녀는 착한 여잡니다. 어머님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지요.
그녀는 어머님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공주고 나를 아주 하찮게 대하지만 착한 여자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녀는 살림도 잘 할 거 같아요.
우리 하숙집에 그녀 좋아하는 놈 들 많지요.
애인 없는 놈들은 다 그녀를 좋아 하고 있지요. 단지 연상이라는 게 흠이지만.
그녀가 밥은 참 잘하는데 요리 실력이 없어요.
요즘 아줌마가 몸이 안 좋은 관계로 그녀가 밥을 차리는 경우가 많아요.
하숙생들이 반찬을 외면하긴 하지만 불평은 안 하더라구요.
모두 그녀를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나도 그녀를 좋아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상형을 들어 보면 나하고는 전혀 맞지를 않더군요.
포기를 했지요.
그리고 아웅다웅하며 살고 있습니다.
"어머님 오셨어요."
"응. 총각 혼자 집에 있었어?"
"네."
학원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하숙집 아줌마가 돌아 오셨다.
안색이 별로 안 좋으시다. 아줌마는 고혈압 때문에 심장 질환이 많으시다.
요즘은 나다니시는 것도 힘이 드시는지 얼굴에 땀이 고이셨다.
그녀가 발령이 나면 하숙치기가 힘들 것 같다.
내년에도 그녀가 발령이 안 났으면 좋겠다.
"나영씨가 시장 봐 온다고 하던데요."
"그래. 총각 일 봐."
아줌마는 힘없는 모습으로 방으로 들어 가셨다.
내가 괜히 걱정이 된다.
오늘도 깨졌다. 강사새끼가 씹는게 취미인가 보다.
드라마 보면서 좀 배우랜다.
요즘 드라마 어떤게 인기인지 보면서 경향을 파악하라며 날 졸라 씹었다.
'씨바. 이 학원 아니면 갈 데 없는 줄 알어?' 생각해 보니 갈데가 없다.
등록금 낸 것도 아까웠다.
아직 구성작가인데 드라마 봐서 뭐하나...
드라마 작가되기 힘들다.
작가로 등록된 사람은 700여명인데 제대로 활동하는 사람은 20명 안팍이라고 들었다.
지금 심정은 이년안에 700명 안이라도 들어갔으면 좋겠다싶다.
한번 씹힐 때마다 미래의 하루 하나가 걱정으로 변한다.
계속.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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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202 /304 날짜 1999년4월30일(금요일) 3:2:8
E-mail 이름 이현철
제목 하숙 -3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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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 -3
오늘은 학원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갈 생각이었다.
매일 하숙집에 늦게 들어가는 것이 미안했다.
학원에서 알게 된 그 총각, 처녀가 날 붙잡았지만 일단 외면을 했다.
일단 그들이 술 마시자는 유혹은 이겨냈다.
그러나 집으로 오는 길에서 맡은 돼지 갈비의 냄새의 유혹은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지갑에 돼지 갈비 몇 인분은 사먹을 돈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학원을 마치고 바로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으나 저녁때는 훨씬 지났다.
에라 모르겠다.
냄새가 나는 식당으로 들어 갔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도란도란 모여서 술 한잔에 이야기 하는 모습이 분위기 있어 보였다.
"아줌마. 여기 돼지 갈비 2인분하고 밥 주세요."
2인분이 제법 많았다. 하지만 먹다가 일인분을 추가 시켰다.
다 먹고 나니 배가 상당히 불렀다.
기분이 좋다.
날씨도 따뜻하고 배도 부르고 난 행복한 놈이다.
"다녀왔습니다."
하숙집에 도착하니 열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냥 내 방으로 들어 가도 되겠지만 그래도 기분으로 주인 아줌마 방에 노크를 하고 내가 왔음을 알렸다.
"그래."
아줌마의 목소리는 그렇게 힘있게 들리지는 않았다.
집안에 제법 익숙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내 방으로 들어 갔다.
옷을 갈아 입고 내 앞날을 위한 비디오나 한 편 볼 생각으로 앉았다.
"똑. 똑."
"누구세요?"
"저에요. 나영이."
"왠일로 쾅쾅,이 아니고 똑똑,이에요? 무슨 일인데요?"
들어 오라는 말은 안했는데 우리 하숙집 그녀는 문을 홱 열고는 모습을 드러 내었습니다.
귀여운 소녀같이 웃는 그녀의 미소는 제법 사랑스런 모습이다.
"밥 안 먹었죠?"
"예?"
밥 먹었다고 말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미소 지으며 특별히,라는 말 때문에 차마 그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조용히 식탁으로 와요. 내 오늘 특별히 맛있는거 해 놨거든요. 나도 아직 저녁 안 먹었어요."
무슨 특별한 걸 해 놓았을까. 식탁으로 나갔을 때 그녀는 밥 두 공기를 퍼 놓고 있었다.
한 공기가 다른 한 공기에 비해 유난히 많다.
"무슨 특별히 맛있는 것을 맛있는 것을 해 놓았는데요?"
적은 밥이 담긴 그릇쪽에 앉았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가 앉은 쪽의 밥그릇을 다른 쪽의 밥이 많이 담긴 그릇으로 바꿨다.
과연 저걸 먹을 수가 있을까 싶다.
그냥 밥 먹었다고 말할까도 생각을 했는데 기껏 차려주는 밥을 거절했다가 정작 배가 고플때 못 얻어 먹을까바 참았다.
"오늘 기분으로 고기를 좀 샀죠. 돼지고기라서 좀 그렇지만 학원에서 얻어온 양념을 잘 재웠어요."
그녀가 가스렌지에서 들고 온 냄비 속에는 갈비찜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배가 불러서 행복했던 기분이 갑자기 사그러 들었다.
"이거 혹시 나만 주는 거에요?"
"그렇긴 한데 착각은 하지 마세요.
그냥 백수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누가 그러길래 주는 거니까요.
감격해 하는 것 정도는 봐 줄수 있어요. 맛있게 드세요."
내 앞에 앉은 그녀를 쳐다 보았다.
날 무끄러미 쳐다 보는게 얄밉게 느껴졌다.
아주 지능적으로 날 괴롭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 먹고 뭐해요?"
"시간이 늦었는데 이거 먹으면 살 안쪄요?"
"나요? 그래요 나 조금만 먹을테니까 동엽씨 많이 먹어요. 치사하다 진짜."
먹기 싫어 한 말인데 반응이 잘 못 왔다.
지금 내 배는 아주 풍만한 상태다.
여기서 더 먹었다간 풍만함에 지쳐 터져버릴 것도 같았다.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삼키기가 어려웠다.
도저히 먹을 자신이 들지 않았다.
"나영씨."
"왜요?"
맞은 편에서 밥을 조금 떠서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었다.
그녀가 날 쳐다 보는 모습이 현재까지는 밝다.
"나 지금 돼지 고기 먹으면 안되는데요."
"왜요?"
그녀의 표정에 조금 의외라는 듯한 감정과 조금 기분이 나쁘다라는 감정이 섞여 들어있다.
"몸살 감기가 온 것 같거든요."
"괜찮아요. 그럴수록 많이 먹어야 돼요. 백수가 아프기 까지 하면 안되지요."
그놈의 백수라는 말은 꼭 들어 가는구나.
오늘 왜 내가 집에 오면서 밥을 사먹어 가지고 이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지금까지 늦게 들어 왔다고 밥을 차려 주지 않은 적이 없겄만 왜 그랬을까?
그녀의 미소가 솔직히 좋다. 깨기가 싫었다. 꾸역 꾸역 먹었다.
"맛있어요?"
솔직히 맛있는지 없는지 상관이 없다.
그냥 다른 기분좋았던 때를 생각하며 억지로 먹고 있으니까.
"네."
"다음에 내가 양념해서 한 번 만들어 줄테니까 오늘 이 맛 잘 기억해 두었다가 비교해 주세요."
"네."
이 놈의 밥그릇은 도대체 얼만큼의 밥을 담고 있는 것일까?
진짜 힘겹다.
그래도 내가 이 밥을 비워 가고 있는 것은 내가 착하기 때문일까?
포기를 했다고 생각한 그녀에게 아직 관심을 많이 두고 있기 때문일까?
밥을 다 먹었다. 하지만 아직 고기는 남아 있다.
그녀도 밥공기를 비웠다.
고기를 나보고 다 먹으라 할 것 같다.
그녀가 그 말을 할까봐 두려웠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냥 내가 설거지를 할테니까 동엽씨는 들어가서 쉬세요."
"예. 그럼 전 이만."
움직이기가 버겁다.
과하면 체한다. 이말을 실감했다.
내가 베스트 작가가 되어서 돈을 왕창 벌어도 과하지 않게 어려운 백수들 도와주고 해야 겠다.
체하지 않게 말이다. 방으로 가지 않고 화장실로 가서 아까 식당에서 먹은 고기까지 토해 냈다.
그녀가 토하는 소릴 들을까봐 조심스럽게 토해 냈다.
토하면서 생각해 보니 그녀가 나한테 참 잘해 주는 것도 같다.
왜 나만 고기를 해 준겨?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녀가 치운 식탁에 앉아 가계부를 적고 있다.
날 보지 않는다.
굳이 말을 건네기가 그렇다.
그냥 방문을 열었다.
"동엽씨?"
"네?"
뭐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 괜히 놀랐다.
그녀가 해 준 음식을 토해 냈다는 것이 나에게 약간은 죄책감을 주었나 보다.
"부탁하나 해도 되죠?"
"네."
아직도 날 쳐다 보지 않는다.
뭔가를 적으며 부탁을 말하는 그녀는 공주는 아니더라고 상류층의 자세가 되어 있다.
"들어 줄 거에요?"
"뭔데요?"
"다음주 화요일날은 목욕도 좀 하시고 열한시 안에 집에 오세요."
내가 목욕 잘 안하는 것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늦게 들어와도 열한시를 넘겨 본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그게 부탁이에요?"
"그때 다시 부탁할게요. 하여간 그 부탁할 것의 전제 조건이니까 꼭 그래 주세요."
"알았어요."
다음주 화요일이면 사일이 남았다.
부탁하면서 전제 조건을 다는 그녀를 존경스럽게 한 번 쳐다 보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토하고 나니까 속이 쓰리다.
글 구상을 위해서 비디오를 보다가 그냥 잤다.
속이 쓰리긴 했지만 잠에는 장사가 없다.
햇살이 좋은 것이 꿈 꾸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시계를 보았다. 12시에 가까웁다. 목이 뻐근하다.
내 꿈을 꾸기에는 늦은 시간인가?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고 몸도 피곤하다.
오늘은 10시간을 넘게 잤다.
뭐여, 왜 안 깨운걸까?
생각해 보니까 우리 하숙집 그녀가 날 이 시간까지 자게 놔 둔 적이 있었나 싶다.
어그적 밖으로 나왔다.
깨끗이 닦여진 식탁.
그리고 그 옆에 밥 보자기로 씌워져 있는 그녀의 밥상.
"나영씨!"
그냥 아침에 그녀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이 허전했나 보다.
별로 찾고 싶지는 않았지만 한 번 불러 보았다.
"나영씨! 이 나영. 야이 나영아. 나영이 어디 갔냐?"
하숙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나 밥 굶는겨? 그건 아니었다. 그
녀의 밥상에는 밥이 예쁘게 차려져 있었다. 참 예뻤다.
내 밥이 아닌 것도 같았으나 분명 거기에 있는 쪽지로 봐서 내 밥이 틀림 없었다.
그녀는 하숙생들 밥을 차려 주고 난 다음 어머님과 병원을 갔다.
왜 날 깨우지 않았을까?
내가 밤 늦게 까지 글쓰고 하는 것을 알고서 그랬을까?
그랬다면 참 고마운 여자다.
'국은 냄비에 있으니 데워 드세요.'
작은 것에도 세심한 면이 있다.
괜찮은 여자네.
그러나 맨날 백수라 놀리는데... 하여간 잘 먹겠슴다.
거의 매일 그녀의 눈치를 보던 이 밥상에서 나 혼자 밥을 먹을려니 참 편했다.
다리 쭉 펴고, 배까지 긁어 가며 또한 트림도 맘 놓고 할 수 있었다.
그 좋구먼... 그래도 그녀가 있으면 하는 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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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203 /304 날짜 1999년4월30일(금요일) 3:4:33
E-mail 이름 이현철
제목 하숙 -4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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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 - 4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하숙집 아줌마가 돌아 오셨다.
그러나 그녀는 없었다.
"어머님 오셨어요?"
"응. 신군이 설거지를 하는구먼."
"아침에 안 좋으셨어요?"
"그건 아닌데. 그냥 요 며칠 소화가 안된다고 말했더니 영이가 부득이 아침에 같이 가자고 해서. 별 거 아니야."
"어머님, 빨리 좋아 지셔야 할텐데요."
"그래. 영이 저걸 봐서라도 그래야 할텐데 계속 안 좋네. 그 설거지 내가 할테니까 신군은 들어가."
"아닙니다. 제가 할게요. 들어 가 쉬세요."
하숙집 아줌마의 이마에 땀이 고였다.
그녀는 어디 간겨?
모시고 갔으면 또 모시고 와야 되는 거 아닌가?
좀 헛갈린다 말이야.
어제 글 작업을 못했던 관계로 오늘 오후는 책 보면서 구상 연습을 해야했다.
책에다 줄 긋는다고 뭐구상하는 것이 달라 질 것은 없었지만 미래를 위해 작문 연습도 틈틈히 해 놓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성을 가진 신 경숙이라는 소설가도 작가와 전혀 별 관계없는 어느 전문대를 나와서 떨어지는 문체를 많은 책들을 베껴 쓰가며 다듬어 갔다고 했다.
나도 뭐 언제 글을 써 봤냐.
줄 그어 가며 베워야지.
에이 씨. 줄 긋는 것은 좋은데 왜 담배가 없는겨.
상관 없는 불만인가? 하여간 불만 있다.
먼지 낀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그 햇 빛 속에 번지는 담배 연기, 풋풋히 썩어 가는 곰팡이 냄새가 나는 어느 골방에서 덥수룩하게 자란 턱수염이 멋있는 작가의 입에 물린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 꽁초.
그리고 명작을 쓴다.
근데 이놈의 하숙방 창은 맨날 누가 닦는겨?
깨끗하다. 그리고 내가 방을 지저분하게 쓰지만 곰팡이 냄새가 나지 않는다.
턱수염? 어제 면도 했는데 턱수염은 무슨... 코 털이 좀 삐져 나와 있을래나?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
담배가 떨어졌다.
추리닝 차림으로 우리 하숙집 어떤 놈의 농구화를 꼽쳐 신으며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파랗고 햇살은 따스하다.
내 얼굴이 부시시 할 것이고 머리 모양새가 그리 단정하지 않을텐데... 그리고 이 시간에 내 나이 또래가 추리닝 입고 담배 사러 가면 짤없이 백수라고 생각 할 것이다.
뭐 백수를 백수라 생각하는데 뭐라 그럴 수 있나.
담배 파는 수퍼가 좀 멀리 있었다.
담배 한 갑을 샀다.
기분으로 그 앞에서 한 대 폈다.
음 그래 이맛이야.
집으로 천천한 걸음으로 하늘도 한 번 보고 퇴교하는 초등학생들에게 인사도 해 주며 걷고 있는데 누가 날 불렀다.
"백수씨."
아무리 내 지금 모습이 백수처럼 보여도 그렇게 대 놓고 말하면 기분 졸라 나쁘지.
실 내 주위를 살폈다.
지나가던 초딩이 날 멀뚱히 쳐다 봤다.
"내 이름이 백수야."
씩 웃어 주고는 뒤 돌아 봤다.
아주 반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 하숙집 그녀를 보았다.
햇살 아래 그 모습이 화사하다.
바람에 산들거리는 주름 치마사이로 하얀 다리가 참 곱다.
저 공주가 지금 내 모습을 보고 아는 체 하기가 그랬을 터인데 아주 반갑게 날 아는 체 했다.
물론 이유가 있었겠지. 그녀는 장을 봐 왔다.
양 손에 뭘 많이 들었다.
분명 저걸 나에게 맡기려고 날 불렀을 것이다.
확 도망을 가 버릴까? 낼 아침부터, 아니다 당장 오늘 밤부터 밥이 없을 것이다.
그녀에게로 갔다.
그래 내 들어 줄 것을 당연히 생각했나 보다.
아예 짐을 내려 놓고 날 기다리며 한 발자국도 앞으로 오지 않는 그녀는 진찌 존경스러운 상류층 사람이다.
"들어 드려요?"
"으음."
단지 그녀의 입을 열지도 않고 내는 그 소리와 고개 숙임으로 나는 그 무거운 것을 들어 주어야만 했다.
이 여자 힘이 장산겨? 이걸 어떻게 들고 왔남?
그녀를 아래 위로 꼬아 봤다. 옆에서 빈 손으로 걷는 그녀가 웃는다.
그렇게 자주 웃지 마요. 정 붙으니까.
"그 백수란 소리 안 할수 없어요?"
"동엽씨 백수 맞잖아요."
이 뇬이 진짜.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웃는 얼굴이라서 참았다.
놀리는 웃는 얼굴이 아니라 그냥 좀 사랑스런 웃는 얼굴이라 참았다.
그래 이렇게 걷는 것이 기분 좋다.
니도 백수니까 날 그렇게 부를 수 있겠지.
학원에서는 또 꿈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하는 강사와 씨름하며 오늘 하루 분량의 과정을 끝 마쳤다.
책을 많이 읽어라고 했다.
나보고 특히 그랬다.
나보고 고등학교 때 국어 점수를 물어 보았다.
그냥 답을 안했다.
말하면 분명 놀릴 것 같아서 말이다.
내일은 주말이라고 또 술 먹으러 가자고 그 년,놈들이 꼬셨으나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 내일은 주말이다.
뭐 하나? 확 우리 하숙집 그녀를 꼬셔다가 영화나 보러 갈까?
같이 가 주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비디오나 봐야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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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204 /304 날짜 1999년4월30일(금요일) 3:6:47
E-mail 이름 이현철
제목 하숙 -5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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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 -5
주말이라서 좋은 것은 오후가 좀 여유롭다는 것이지 뭐 별 다른 느낌은 없다.
왜? 난 백수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왠일로 일찍 일어나 학생들과 밥을 같이 먹었다.
학생들은 별 신경을 안 썼는데 하숙집 그녀가 날 의아한 눈빛으로 자꾸 쳐다 보았다.
내게 국을 떠 주면서 이상한 말까지 했다.
"사람이 변하면 몸에 안 좋다던데..."
"누나. 저도 국 좀 더 주세요."
내 옆에서 밥 먹던 녀석이 국을 더 달랬다.
그녀가 밥 이외의 음식 중에서 그런데로 맛있게 하는 것이 있다면 우거지 국.
그래 아침에 먹는 우거지 국은 속을 개운하게 한다.
"니가 퍼 먹어."
저거 하숙집 경영하는 집 딸 맞냐?
그래도 내 옆의 녀석은 싫은 표정 짓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녀석이 먹던 국 그릇을 가져간다.
그렇게 긴 머리는 아니지만 싸구려 핀이지만 단정히 꼿고 또한 싸구려 주름 치마에 단추 달린 스웨터가 참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아침을 준비 한 그녀가 녀석들에게는 예쁜 누나임에 틀림없다.
그래 꾸미지 않아서 그렇지 국을 퍼는 그녀의 뒷 모습은 참 아름답다.
그녀가 국을 떠와 내 옆 녀석에게 주었다.
그런데 왜 나한테 말을 거는거야.
"백수씨, 세수는 했어요."
씨바 취소다.
나 혼자 있을 때 백수 소리 하는 거 참을 수 있다 이거야.
그러나 이렇게 청중이 많은데서 꼭 아픈데를 긁어야 한단 말인가.
"안했어요."
먹던 밥을 뺏어 가는게 어딨냐. 진짜 저거...'너 씨 울 동생이었으면 벌써 맞아 죽었다.'
"세수하고 와요."
"나도 세수 안 했는데."
내 옆에 있던 그 녀석이 말했다.
"넌 빨리 밥 먹고 니 방 가."
차별 대우 심하다. 학생은 세수 안해도 밥 먹을 수 있고, 백수는 꼭 세수를 해야 밥을 주는겨?
밥 먹기 위해서 세수를 했다.
코피가 흘렀다.
뭐 힘든 거 하는 것도 아닌데 코피가 흘렀다.
코피를 물로 씻으며 거울을 봤다. 나이 든 모습.
막막한 그림자가 끼어 든 내 얼굴은 그렇게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
벌써 덤성 치솟은 턱수염들.
아직 코에는 피가 멈추지 않았지만 씩 웃었다.
그래 웃자. 지금 내 신세가 조금 처량해 보일 지는 모르지만 난 꿈을 꾸고 있다.
세월이 흐른 뒤 뒤돌아 봤을 때 웃을 수 있도록 이 생활을 꾸미자.
코 끝에 있는 피를 닦고 피가 흐르지 않자 욕실을 나왔다.
다시 식탁으로 갔다.
내 옆의 녀석은 밥을 다 먹고 자기 방으로 가 버렸다.
식탁에는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내 자리에는 그녀가 뺏어 갔던 밥 그릇이 다시 놓여 있었다.
밥솥 앞에서 밥을 퍼고 있는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는 내 자리에 앉았다.
국이 참 시원하다.
얼라리요?
"왜 내 옆에 앉아요?"
"내 맘이에요."
그녀가 퍼고 있던 밥은 자기 밥이었다.
그 밥그릇과 국그릇을 들고 와서는 내 옆에 앉았다.
"나영씨 밥 늦게 먹잖아요."
"우리 하숙집에 밥 늦게 먹는 사람이 있어서 그랬어요."
"이번엔 백수가 아니라 사람이네요?"
"내가 옆에 앉은게 불만이에요?"
"불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영광이지요. 암 공주랑 같이 먹는데..."
"그럼 나에게 감사하는 맘으로 맛있게 먹어요."
그래 그녀에게 농담이 통할리 없지.
마마 맛있게 드시오.
모르겠다.
내 옆에 그녀가 앉으니까 조심스러워 지기는 하지만 기분은 좋다.
"커억."
앗 실수다.
나도 모르게 트림이 나왔다.
그녀가 날 째려 보았다.
겁난다.
"저러니까 여자 친구가 없지."
그녀는 아주 고풍스럽게 젓가락질을 하고 있다.
"잘 먹었습니다. 내가 설거지 좀 도와줘요?"
"됐어요. 내가 할테니 동엽씬 쉬세요."
어이구. 내 이름을 그래도 알긴 아네.
아침에 밥을 먹으니까 속 쓰린게 없어서 좋다.
오전에 방에서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비디오를 봤다.
구상 연습으로 보는 비디오라서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졸았다. 벽에 기대어 베개를 껴앉고 졸았다.
"쾅! 쾅!"
그녀구나 싶다.
"왜요?"
"커피 타 줄테니까 비디오 같이 봐요."
"커피 벌써 타왔죠?"
그녀가 뭐 물어 보고 커피 탈 그런 사람이 아니다.
뻔히 커피 들고 와서 노크하는 것이 틀림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래 그렇게 두손에 뭘 들었으니까 문을 바로 홱 못 열었지.
"문 좀 열어 줘요."
그녀는 커피 두잔을 가지고 내 방으로 들어 왔다.
이제 뭐 별 신경 안 쓴다.
"뭐 봐요?"
"몰라요. 재미 디따 없어요."
"다시 돌려서 봐요."
거절하면 또 뭐라 그러겠지.
반도 더 본 비디오 테잎 다시 앞으로 돌렸다.
"커피 들어요."
"그래요. 잘 마실게요."
주말의 여유로움과 커피라... 싫지는 않다.
커피 먹으면 누가 잠 안 온다고 했을까?
처음 볼 때도 수면제 같았던 비디오. 잠이 쏟아 졌다.
그녀가 내 옆에 앉아 있다.
졸린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또렷한 눈동자로 비디오를 감상하고 있다.
저게 재밌을까? 다시 졸았다.
"동엽씨?"
자다가 그녀가 부르길래 깼다.
"어깨에 머리 좀 치워 주실래요?"
옴마나! 내가 졸다가 그녀의 어깨에 내 머리를 기대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계속 티비 모니터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다.
고개를 바로 세우고 다시 졸았다.
"그렇게 잠이 와요?"
좋은 꿈 꿀수도 있었는데 또 그녀가 깨웠다.
눈을 떠 보니 아까와 반대편으로 머리를 숙인채 침까지 조금 흘리며 졸고 있던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녀가 참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다.
"다 봤어요?"
"네."
"잼 있던가요?"
"볼 만 하던데요."
"상류층 영환가 보네요."
"네?"
"아닙니다."
"흠. 잘 봤어요. 점심 안 먹어요?"
"하숙집에서 점심은 안 주잖아요. 나 잘래요."
"라면이라도 먹을래요?"
"허! 참."
"왜 웃어요?"
"그냥요."
그래 웃음이 나온다.
왜 웃음이 나왔냐 하면은 자꾸 저런식으로 나에게 친한 척 해 주다가 내가 자길 좋아하기라도 하면 어쩔려구 저럴까,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녀의 웃는 모습은 사랑스럽다.
라면까지 먹으니까 잠이 더 온다.
그래 자자.
내일은 외출을 해 볼까? 무슨 일로? 목욕이나 할까?
그녀가 부탁한 일도 있고 그래 내일은 목욕이나 가자.
ㅡ계속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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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애정비사外 / 검색결과
번호 #212 /304 날짜 1999년5월8일(토요일) 22:21:45
E-mail 이름 이현철
제목 하숙 ㅡ6편
원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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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 ㅡ6
새벽에 아무도 몰래 하숙집을 빠져 나왔다.
일찍 자니까 일찍 일어나진다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았다.
새벽 어둠이 물러 가고 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의 분위기는 여유로움이랄까?
뚜렷하지 사람들의 영상에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이 보인다.
"어허!"
에헤라 좋다. 물이 깨끗하다.
목욕탕 내의 사람들이 아직 많지 않다.
발가 벗은 채 삶의 표정이 잘 나타나지 않는 대중탕 내의 사회는 아주 평등하다.
물안개 쌓인 이 곳에는 말이 많이 없어졌다.
평등하지만 아주 개인적이다.
때를 다 밀고 등 밀어 줄 사람을 찾았지만 없다.
이 곳도 평등하지 않았다.
저 배 나온 허연 아저씨는 때밀이가 등을 밀어주었다.
그리고 안마까지 해 주었다.
사우나실에서 땀 빼면서 깔려 있던 수건에 등 붙여 밀고, 으...
냉탕에서 개 헤엄 한 번 치고 나왔다. 시원하다.
목욕탕을 나왔다.
밝은 아침 공기, 어허! 개운하다.
내 삶도 이렇게 개운해졌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도 사람들의 걸음 걸이는 빠르다.
선명하게 드러난 사람들의 영상에는 오늘이 일요일이지만 여전히 바쁘다는 것이 보인다.
그래도 나는 천천히 걸었다.
우리 하숙집이다.
꿈이 있고 미소가 스미는 곳이다.
밥 짓는 냄새가 여기서 맡을 정도다.
하숙집으로 들어갔다.
아침을 하숙집 그녀 혼자서 만들고 있다.
아줌마가 많이 편찮으신가? 아니면 그녀가 혼자 하겠다고 우긴 것일까?
하여간 익는 밥 냄새가 곱다.
"어휴, 아침 일찍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백수가..."
또 그녀가 시비를 건다.
냄비에 국 끓인 찬들을 넣고 있던 그녀가 빼꼼이 내가 들어 옴을 보더니 말을 걸었다.
"그 아침에 좋은 말로 인사 좀 해 주면 어디 덧나요? 헛갈리게 말이야."
그녀가 씩 웃었다.
"그래. 어디 갔다 왔어요? 머리가 젖었네."
"수영하고 왔지요."
"그래요? 저기 새로 생긴 수영장 갔다 왔어요?"
"뭐 거기서만 수영할 수 있나?"
"나도 수영이나 배울까? 언제 한 번 같이 갈래요?"
허허. 같이 갈래요? 요즘 들어 그녀가 같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내가 만만한가? 아니면 좋은 건가?
정말 그녀 데리고 수영이나 하러 갈까?
그렇지만 오늘 내가 갔다온 곳은 여자가 못 가는 곳인데...
"밥이나 해요. 나 목욕하고 왔어요. 남탕 갈 자신 있으면 같이 가고."
그녀가 날 빤히 쳐다 보며 말을 못하고 있다. 이겼다 하하.
학생일때가 좋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 학생들의 모습에는 새벽에 본 영상이 들어 있었다.
졸린 눈을 뜨지 못하고 하품을 하며 식탁으로 나온 녀석도 있었으나 삶에 찌든 모습은 아니다.
그래 이 하숙집에 찌든 모습은 없다. 나도 답답함은 있으나 아직 삶에 찌들지 않았다.
음악을 틀어 놓고 긍정적으로 앞 날을 생각 해 보았다.
그래 해 보자.
짧은 글 하나를 지어 볼 생각이다.
아자! 아이 캔 두 잇.
"쾅! 쾅!"
앗, 방해자다.
우쒸, 글 좀 써 보려고 다짐을 했는데 방해자가 나타났다.
"뭐해요?"
"글 씁니다."
"바빠요?"
"글 씁니다."
"약속 같은 거 없죠?"
"글 씁니다."
"나랑 같이 어디 좀 갈 수 있어요?"
"글 씁니다."
"맛있는 거 사 줄게요."
"어디 가는데요?"
아, 글 써야 하는데. 요즘 식욕이 당겨서 탈이다.
"시장 가는데."
"어제 장 봐 왔잖요."
"반찬 사러 가는 거 아니에요. 뭐 살게 좀 많아요."
"그래서 내 짐꾼 되어 달라구요."
"으응."
한 번쯤 그냥 빈말이라도 나하고 같이 걷는 게 좋아서, 아니면 그냥 같이 가고 싶다,라는 대답 해 주면 어디 덧 날까?
"뭐 사줄건데요?"
"뭐 먹고 싶은데요?"
"스테이크요."
"현철아!"
"걔는 왜 불러요?"
"차라리 걔 데리고 가려구요."
"그럼. 슈퍼 슈프림 피자요."
"현철아!"
씨바. 진짜 그녀석하고 가라고 그래 버릴까 보다.
"알았어, 순대요."
"좋아요. 내 특별히 찹쌀 순대 사 줄게요."
집에서 입는 추리닝 말고 밖에서 입어도 좀 덜 쪽팔리는 패션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 다녀 올게요."
"내가 말한데로 잘 보고 사와야 돼. 아무래도 불안하네. 같이 가자니까."
"염려 마세요. 짐꾼도 있는데요 뭘."
그녀가 엄마에게 인사하는 걸 들었다.
짐꾼? 백수보다는 낫네.
"신군이 같이 가려나 보네."
하숙집 아줌마가 방에서 나오셨다. 잘 몰랐는데 손을 좀 떠신다.
"네."
"그럼 잘 다녀 오게나."
하하. 그녀가 내 옆에서 걷는다.
허리까지는 분명 아가씬데 무릎 밑에까지 흘러 내린 주름 치마는 아줌마 복장 같다.
뭘 보나 이사람아.
"왜 웃어요?"
"치마 하나 사 드려요?"
"동엽씨가 왜 내 치마를 사줘요?"
"맨날 그 치마잖아요."
"이게 편해요. 그리고 나 백수에게 치마 받아 입을 정도까지 옷 없질 않으니까 염려 마세요."
괜히 말했다. 무안하다.
말 없이 걸었다.
나중에 짐이 무거워도 들어 주지 말까 보다.
"삐쳤어요?"
"백수는 안 삐칩니다."
"삐쳤구나?"
"삐쳤으면?"
"장난으로 치마 사 준다고 한 것 아닌가?"
"아무리 장난으로 말했다고 그렇게 답하면 서운하죠."
"그럼 미안해요."
저 상류층 여자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장 볼게 무거운가 보다.
일요일 점심때가 못 된 이른 시간이지만 시장은 활기가 있었다.
재래 시장은 그 만의 맛이 있다.
저거 보면 알기나 할까? 내 보기에는 똑 같거만 그녀가 뒤적거린다.
"그게 뭐에요?"
"냉이도 몰라요?"
"그럼 그 옆에 것은 뭐에요?"
"고사리잖아요."
그녀가 풀 종류를 제법 많이 샀다.
저걸로만 반찬을 만든다면 내 단식 투쟁할 것이다.
어물전으로 갔다.
그래 생선도 사야지.
그녀가 제법 큰 생선을 들고 한참을 들여다 본다.
진짜 뭐 보면 알고 저러나, 의심이 간다.
"그건 뭐에요?"
"도미잖아요. 동엽씨 아는 거 뭐 있어요?"
그녀가 상당히 비싼 도미를 한마리 떡하니 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죽은 물고기들을 샀다.
내가 들고 있는 짐이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건어물전으로 가서 문어 다리도 사고, 돌아 다니면서 깨끗한 과일과 대추도 샀다.
"제사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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