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6
조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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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전
정기공연이 끝난 직후, 대강당 로비와 동아리 방 앞은 완전히 난리였다. 공연 끝나고 막이 내리자마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동아리 어디예요?”, “가입 어떻게 해요?” 하면서 물어보는 통에 선배들이 급하게 안내 표지판을 붙였다. 특히 우리 '000' 부스 앞은 줄이 길게 섰다. Metallica 인트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앙코르까지 무대를 흔들어놨으니, 락에 관심 있는 애들이 죄다 몰린 거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제일 인기를 끌었다. 보컬이다 보니 무대 위에서 제일 눈에 띄었고, 공연 끝나고 내려오니까 여학생들 서너 명이 다가와서 “보컬 오빠! 사인 좀 해주세요!” 하면서 공연 팜플렛을 내밀었다. 처음엔 당황해서 “사인요? 그냥 이름 써드릴게요” 하면서 적어줬는데, 나중엔 줄이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오상기는 기타 솔로로 팬 생겼고, 강기원은 드럼 치는 힘 때문에 “근육 어디서 나와요?” 소릴 들었지만, 그래도 보컬이 제일 많았다. 선배들이 옆에서 “야, 신입생인데 벌써 스타 됐네” 하면서 놀렸다.
동아리는 원래 그룹사운드(우리 6명 락밴드), 통기타부, 일반부원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뉘어 운영됐다.
그룹사운드는 실제 무대에 서는 정예 멤버들
통기타부는 어쿠스틱 기타 치는 애들 위주로 잔잔한 세션
일반부원은 그냥 음악 좋아해서 MT 가고 술자리 하고 뒷풀이 즐기는 애들
그전까지는 총 인원이 40명 정도였는데, 그 공연 하나로 신입생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서 한 번에 30명 가까이 가입했다. 가입 신청서 받는 테이블이 붐비고, 선배들이 “이름 학번 전공 쓰고, 원하는 파트 체크해” 하면서 정신없었다.
결국 그 해 말쯤엔 동아리 총원이 거의 70명에 육박했다. 연습실이 좁아서 통기타부 애들은 복도에서 연습하고, 그룹사운드 연습할 땐 일반부원들이 옆에서 구경하고, MT 가면 버스 두 대를 빌려야 할 정도가 됐다.
나는 그 인기 덕분에 동아리 홍보 담당 비슷한 역할까지 맡게 됐다. 신입생들이 “보컬 선배님!” 하면서 따라다니고, 공연 때마다 무대 앞에 내 이름 적힌 플래카드가 더 많아졌다.
그 공연 하나가 동아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작은 연습실 밴드에서 캠퍼스 대표 음악 동아리로 커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서 있었다는 게… 지금도 가끔 꿈만 같다.
그때가 진짜 내 인생의 정점이었던 것 같다. 정기공연 하나로 동아리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보컬이라는 이유만으로 여학생들이 줄 서서 사인해달라고 하고, SNS DM도 매일 터지고… 솔직히 머리가 좀 컸다. “나 지금 뜨는 중이야”라는 착각이 제대로 들었다.
처음엔 그냥 캠퍼스 여기저기서 만나는 여학생들이었다. 건축과 과방에서 과제 도와준다고 따라온 애, 도서관에서 마주쳐서 같이 밥 먹게 된 애, 축제 준비위원회에서 만난 애… 데이트 신청 들어오면 거의 다 OK 했다. 한 번에 두세 명이랑 동시에 연락하고, 주말엔 이 여자랑 영화 보고 토요일 밤엔 저 여자랑 술 마시고. 그때는 그게 멋진 줄 알았다.
그러다 점점 선을 넘기 시작했다. 동아리 안으로 손이 들어갔다.
통기타부에 들어온 예쁘장한 1학년 여학생, 연습 끝나고 “선배, 코드 좀 가르쳐주세요” 하면서 가까이 붙어 앉아 있길래… 어느 날 연습실에 둘이 남아서 자연스럽게 키스하고, 그 뒤로 몇 번 더 만났다. 일반부원 중에 MT 때부터 눈길이 갔던 애도 있었다. 술자리에서 일부러 옆에 앉히고, 새벽에 텐트 안에서… 그랬다.
심지어 그룹사운드 연습 구경 오는 여자 후배들까지. “보컬 선배님 목소리 진짜 좋아해요” 하는 말 한마디에 취해서, 연습 끝나고 뒤풀이에서 슬쩍 손잡고 나와서 학교 뒤편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고.
그때 수연이랑은 이미 권태기였다. 수연이는 드럼 치는 선배로서 내 옆에 있었지만, 내가 다른 애들과 노는 걸 알면서도 “너 지금 좀 위험해”라고만 말하고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도 조용히 끝났다.
동아리 안에서 소문이 슬슬 돌기 시작했다. 처음엔 “보컬 선배 인기 많네” 하면서 웃던 분위기가, 나중엔 여자 부원들이 나를 볼 때 눈빛이 달라졌다. 어떤 애는 내가 다가오니까 일부러 피하고, 어떤 애는 또 일부러 더 가까이 오고. 그 복잡한 시선들이 오히려 더 자극이 됐다.
이 여자 저 여자 건드리면서 느꼈던 그 쾌감, 우쭐함…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어린애 짓이었다. 그때는 그게 자유롭고 멋진 삶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냥 내가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던 거였다.
결국 그 해 말쯤, 동아리 안에서 제대로 터졌다. 내가 건드린 애 중 하나가 다른 부원한테 울면서 털어놓았고, 그 소문이 퍼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혔다.
그 후로 한동안 동아리 방에도 제대로 얼굴 못 들었다. 무대 위에서 마이크 쥐고 서 있던 그 화려함이, 한순간에 부끄러운 기억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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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
큰등바다
수코양이낼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