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엄마 명숙이 8

당시 하루하루 메말라가는 그녀를 보는것은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 그녀는 폐기음식이나 마른안주 같은 것들과
맥주캔을 봉투에 담고는 집으로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d가 없으니 밥도 제대로 안챙겨먹는게 분명했다.
그래서 였다. 그녀에게 근사한 밥한끼를 대접하고 싶었다.
“어머님! 제가 고기한번 사드리고 싶어요”
아무생각없이 ‘무심하게’ 툭 내뱉은 말이었다. 마침 월급날이기도 했고.
잠시간 침묵이 흘렀기에 나는 그녀가 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집에 많아 고기…”
그녀의 입에서 ‘무성의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때 나는 ‘푸훕’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나의 ‘무심함’에 그녀가 ‘무성의’ 로 응대한것은.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도 그 상황이 이해가 갔는지
함께 따라 웃기 시작했다.
먼동이 터오는 새벽. 고요하고 적막한 편의점안.
고된 노동후에 몸을 짓누르는듯한 피로감.
그 상황에서 그녀와 나는 정말 미친듯이 몇분을 깔깔대며 웃었다.
배를 움켜잡고 눈물까지 훔치며 미친것처럼 웃어댔다.
‘무심함’과 ‘무성의’가 만나 이렇게 훌륭한 결과를 도출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정말이야. 지난번에 니가 사온 소고기 냉동실에 많이 남아있어”
그녀는 깔깔대며 말했다. 그말에 우리는 또 한번 빵터졌다.
“아니요~~~ 그게~~~~ 그런말이 아니잖아요~~~?
집에서 고기먹으면 준비도 해야하고~~ 설거지도 해야하고~~~
어머님 귀찮잖아요~~~?”
나는 약간 애교스럽게 그녀에게 앙탈을 부리듯 말했다.
“그럼 니가 와서 해!”
그말에 다시 우리는 빵터지고 말았다.
한바탕 웃음이 휘몰아치고 나니 뭔가 활력이 생기는듯 했다.
포스 정산을 할때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매장바닥에 더 힘을주어 걸레질을 했다.
그제서야 나는 d의 힘을 느낄수가 있었다.
d와 함께 새벽일을 할때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
그것은 d가 힘든 상황마저 웃음과 농담으로 승화시키는
그만의 힘 덕분이었다.
그는 마치 모든것이 놀이인양 행동했다.
작은 것에서도 농담거리를 발견하고 삶의 활력으로 치환시키는 것.
건전한 낙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d만의 능력이었다.
그는 특이한 단골손님들의 성대모사를 하고
취객들의 진상행동을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말했다.
우리는 욕설을 섞어가며 서로를 디스하기도 했고,
웃음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서로 자학을 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그 고된 새벽을 버티기 위한 우리만의 방법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농담이었다.
그 후 나는 d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단골손님들의 성대모사를 하고, 취객들의 진상행위를
스포츠 중계하듯 말하고 때때로 과잉일정도로 자학을 했다.
나만의 바보짓들을 연구하여 명숙앞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명숙은 그녀 특유의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와 맞지 않게 어려보이고 세련된 외향과는 다르게
웃을때는 목젖이 보일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며 찐 아줌마스러운
바이브를 풀풀 풍겼다.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껄껄거리는 웃음소리는 마치 늘
등산복을 입고 다니며 막걸리를 마시는 아재들의 그것을 연상케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않고 그녀를 놀려댔다.
“어머님! 지금 어떻게 웃고있는지 아세요?”
하며 다소 과장스럽게 그녀를 흉내내면 그녀는 눈을 흘기며
그 작고 앙증맞은 주먹을 나에게 휘둘렀다.
그녀가 웃을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녀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수있었다.
다시 주말새벽의 편의점은 d와 함께하던 그때처럼 활력이 돌았다.
그날 나는 잠을 뒤척일정도로 다소 긴장했다.
그녀와 드디어 단둘이서 만나기로 한 그날.
나는 아침일찍 일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거울앞에서 오랫동안 옷을 바꿔입어가며 거울속의 나를 쳐다봤다.
‘미리 이발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헤어스타일도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잘보이기 위해 옷을 골라본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젤을 바를까? 젤은 좀 오반가? 아참 나 젤없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결국은 신입생때 과팅자리에 입고갔던
검정색 재킷을 꺼냈다. ‘무난하지만 어려보이지 않게’ 가 그날의
컨셉이었다. 그렇게 차려입고 강의실에 가니 동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오늘 소개팅나가?”
그 날 나는 평소와는 다른 불편한 옷과 맘에 들지않는 헤어스타일과
무엇보다, 그녀와 단둘이서 편의점을 벗어나 함께 한다는
설레임에… 강의내용따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20분이나 앞서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마른입술에 침을 바르고 손을 연신 부비며 긴장감을 없애고자 노력했다.
약속장소 앞 매장의 반투명한 유리에 비친 나를 쳐다보면서
옷매무새를 만지거나 머리카락을 정리하곤 했다.
그렇게 두리번 두리번 그녀를 기다리는데…
저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광화문의 백만 인파속에 있다해도 나는 그녀를 찾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베이지색 면바지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중단발은 곱게 포니테일로 묶었고 은색 목걸이와
귀걸이도 눈에 띄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사회초년생 직장인
이라해도 믿을 정도였다.
”오셨어요”
“가자” 우리는 다소 수줍게 인사를 하고는 고기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함께 나란히 걸으며 한번 그녀를 흘끔 쳐다보고는
그녀에게 다소 짖궂은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 화장하셨네요?”
“아줌마 놀리지마라” 그녀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오늘은 제가 다 할테니까 어머님은 그냥 드시기만 하세요”
불판앞에서 집게를 들고 내가 말했다.
평소 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런 자리에 소주가 빠질수는 없었다.
우리는 함께 잔을 부딪히며 “짠”을 외쳤다.
나는 불판에 노릇노릇 잘익어진 고기두점을 상추에 쌌다.
그 위에 파무침을 가득 올리고 김치, 쌈장과 구워진 마늘까지 올려서
쌈을 쌌다.
“어머님! 아~~~ 하세요” 나는 쌈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입을 벌려 내가 건네준 쌈을 입에 받아 넣었다.
그녀의 양볼이 터질듯이 부풀어올랐다.
그런 그녀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가슴이 다시한번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뭐라 말을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네?” 내가 그녀에게 몸을 기울이며 묻자 그녀는
다시 웅얼웅얼 양볼 가득한 얼굴로 알수없는 말을 내뱉었다.
겨우겨우 쌈을 씹어 삼킨후에 그녀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뭘 이렇게 많이 넣었어? 턱 빠지는 줄 알았잖아”
나는 한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님 많이 드시라구요!”
그날의 술자리는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명숙이 입대한 d의 걱정을 늘어놓을때 나는 d는 군체질이다
그는 어딜가든 살아남을 아이다라며 그녀를 달랬다.
d와 내가 어린시절 치던 사고들을 이야기를 할때 그녀는
그녀특유의 찐 아재스런 웃음을 보였다.
편의점 운영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을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진중히 들어주었다.
“제가 더 열심히 할께요” 내가 할수있는 말이란 이것밖에 없었다.
소주 한병 비우기도 버거운 나는 그날 그녀와 도합 3병의 소주를
해치웠다. 나는 그녀가 계산을 할까봐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먼저 계산까지 해두었다.
그렇게 기분좋게 알딸딸함을 느끼며 자리는 끝이났다.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 주기 위해 우리는 다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너 치사하게 말이야~~ 화장실 간 사이에 몰래 계산을 하고…
이런건 어른이 내는거야” 그녀는 다소 나무라듯 나에게 말했다.
평소 술에 취한 느낌이 싫어서 가급적 술을 멀리하는 나였지만
그날 만큼은 더 취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활기차게 말했다.
“그럼 어머님이 2차로 맥주사주세요”
그녀는 아무말없이 그냥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 어머님! 맥주안사주실거에요?”
나는 아무말없이 그저 걷고있는 그녀를 향해 앙탈을 부리듯 물었다.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어디 허름한 호프집 정도를 생각하던 나에게 그녀는 뜬금없는
대답을 날렸다.
“집에 있어. 맥주”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건 생각지도 않은 시나리오 였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 우리는 식탁에 나란히 앉았다.
식탁위에 무드등만이 켜져있는 어둑한 거실.
분위기는 다소 어색해졌으나 나는 그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력했다.
평소처럼 농담과 바보짓을 하면서… 그런 상황에 그녀도
웃음을 터뜨리곤했다. 그러나 이 분위기의 기저에 깔린 묘한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맥주를 두캔정도 더 비우고
나니 알딸딸을 넘어 몽롱함에 접어들고 있었다.
아마 혀도 약간은 꼬였으리라.
그렇게 가늘어지는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하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d가 인복이 참 많은거같아. 너같은 친구도 있고.
너랑 일하다 보면 니가 무슨 사장같아. 나보다 매장관리도 더 열심이고
청소도 꼼꼼히 하고… 친구가 하는일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쉽지 않은데… d가 참 좋은 친구를 뒀네.
d가 인복이 많아”
나긋하고 아련하게 들리는 그녀의 그말에 나는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말을 듣자 나는 인생에서 딱 한번.
딱 한번만 솔직해져 보기로 했다.
“저 d 때문에 그러는거 아니에요. 어머님 때문에 그러는거에요”
예상했듯이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왜? 너는 내가 그렇게 좋니?”
그녀의 말끝이 다소 떨리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눈도 깜빡이지 않은채 말했다.
“네. 너무 좋아요. 어머님이 너무 좋아요”
나는 술김에 이런말을 하는게 아니라는걸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10년을 꾹꾹 눌러담았던 그 한마디의 육중한 무게감을
확실하게 그녀에게 전달하기 위해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힘을 주며 말했다.
“어.머.님.이.너.무.좋.아.요”
퇴근 시간이 되면 그녀는 폐기음식이나 마른안주 같은 것들과
맥주캔을 봉투에 담고는 집으로 힘없는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d가 없으니 밥도 제대로 안챙겨먹는게 분명했다.
그래서 였다. 그녀에게 근사한 밥한끼를 대접하고 싶었다.
“어머님! 제가 고기한번 사드리고 싶어요”
아무생각없이 ‘무심하게’ 툭 내뱉은 말이었다. 마침 월급날이기도 했고.
잠시간 침묵이 흘렀기에 나는 그녀가 졸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였다.
“집에 많아 고기…”
그녀의 입에서 ‘무성의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때 나는 ‘푸훕’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나의 ‘무심함’에 그녀가 ‘무성의’ 로 응대한것은.
내가 웃음을 터뜨리자 그녀도 그 상황이 이해가 갔는지
함께 따라 웃기 시작했다.
먼동이 터오는 새벽. 고요하고 적막한 편의점안.
고된 노동후에 몸을 짓누르는듯한 피로감.
그 상황에서 그녀와 나는 정말 미친듯이 몇분을 깔깔대며 웃었다.
배를 움켜잡고 눈물까지 훔치며 미친것처럼 웃어댔다.
‘무심함’과 ‘무성의’가 만나 이렇게 훌륭한 결과를 도출하다니…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었다.
“정말이야. 지난번에 니가 사온 소고기 냉동실에 많이 남아있어”
그녀는 깔깔대며 말했다. 그말에 우리는 또 한번 빵터졌다.
“아니요~~~ 그게~~~~ 그런말이 아니잖아요~~~?
집에서 고기먹으면 준비도 해야하고~~ 설거지도 해야하고~~~
어머님 귀찮잖아요~~~?”
나는 약간 애교스럽게 그녀에게 앙탈을 부리듯 말했다.
“그럼 니가 와서 해!”
그말에 다시 우리는 빵터지고 말았다.
한바탕 웃음이 휘몰아치고 나니 뭔가 활력이 생기는듯 했다.
포스 정산을 할때 그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매장바닥에 더 힘을주어 걸레질을 했다.
그제서야 나는 d의 힘을 느낄수가 있었다.
d와 함께 새벽일을 할때는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았다.
그것은 d가 힘든 상황마저 웃음과 농담으로 승화시키는
그만의 힘 덕분이었다.
그는 마치 모든것이 놀이인양 행동했다.
작은 것에서도 농담거리를 발견하고 삶의 활력으로 치환시키는 것.
건전한 낙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가능한 d만의 능력이었다.
그는 특이한 단골손님들의 성대모사를 하고
취객들의 진상행동을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말했다.
우리는 욕설을 섞어가며 서로를 디스하기도 했고,
웃음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서로 자학을 하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그 고된 새벽을 버티기 위한 우리만의 방법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농담이었다.
그 후 나는 d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특이한 단골손님들의 성대모사를 하고, 취객들의 진상행위를
스포츠 중계하듯 말하고 때때로 과잉일정도로 자학을 했다.
나만의 바보짓들을 연구하여 명숙앞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명숙은 그녀 특유의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와 맞지 않게 어려보이고 세련된 외향과는 다르게
웃을때는 목젖이 보일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며 찐 아줌마스러운
바이브를 풀풀 풍겼다.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에 껄껄거리는 웃음소리는 마치 늘
등산복을 입고 다니며 막걸리를 마시는 아재들의 그것을 연상케했다.
그럴때마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않고 그녀를 놀려댔다.
“어머님! 지금 어떻게 웃고있는지 아세요?”
하며 다소 과장스럽게 그녀를 흉내내면 그녀는 눈을 흘기며
그 작고 앙증맞은 주먹을 나에게 휘둘렀다.
그녀가 웃을때 나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녀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수있었다.
다시 주말새벽의 편의점은 d와 함께하던 그때처럼 활력이 돌았다.
그날 나는 잠을 뒤척일정도로 다소 긴장했다.
그녀와 드디어 단둘이서 만나기로 한 그날.
나는 아침일찍 일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거울앞에서 오랫동안 옷을 바꿔입어가며 거울속의 나를 쳐다봤다.
‘미리 이발을 했어야 했는데…’ 나는 헤어스타일도 영 맘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잘보이기 위해 옷을 골라본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젤을 바를까? 젤은 좀 오반가? 아참 나 젤없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결국은 신입생때 과팅자리에 입고갔던
검정색 재킷을 꺼냈다. ‘무난하지만 어려보이지 않게’ 가 그날의
컨셉이었다. 그렇게 차려입고 강의실에 가니 동기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 오늘 소개팅나가?”
그 날 나는 평소와는 다른 불편한 옷과 맘에 들지않는 헤어스타일과
무엇보다, 그녀와 단둘이서 편의점을 벗어나 함께 한다는
설레임에… 강의내용따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20분이나 앞서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마른입술에 침을 바르고 손을 연신 부비며 긴장감을 없애고자 노력했다.
약속장소 앞 매장의 반투명한 유리에 비친 나를 쳐다보면서
옷매무새를 만지거나 머리카락을 정리하곤 했다.
그렇게 두리번 두리번 그녀를 기다리는데…
저멀리서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광화문의 백만 인파속에 있다해도 나는 그녀를 찾을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베이지색 면바지에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하얀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중단발은 곱게 포니테일로 묶었고 은색 목걸이와
귀걸이도 눈에 띄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사회초년생 직장인
이라해도 믿을 정도였다.
”오셨어요”
“가자” 우리는 다소 수줍게 인사를 하고는 고기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함께 나란히 걸으며 한번 그녀를 흘끔 쳐다보고는
그녀에게 다소 짖궂은 말투로 말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 화장하셨네요?”
“아줌마 놀리지마라” 그녀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오늘은 제가 다 할테니까 어머님은 그냥 드시기만 하세요”
불판앞에서 집게를 들고 내가 말했다.
평소 술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런 자리에 소주가 빠질수는 없었다.
우리는 함께 잔을 부딪히며 “짠”을 외쳤다.
나는 불판에 노릇노릇 잘익어진 고기두점을 상추에 쌌다.
그 위에 파무침을 가득 올리고 김치, 쌈장과 구워진 마늘까지 올려서
쌈을 쌌다.
“어머님! 아~~~ 하세요” 나는 쌈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입을 벌려 내가 건네준 쌈을 입에 받아 넣었다.
그녀의 양볼이 터질듯이 부풀어올랐다.
그런 그녀가 너무 귀여워서 나는 가슴이 다시한번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뭐라뭐라 말을 하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네?” 내가 그녀에게 몸을 기울이며 묻자 그녀는
다시 웅얼웅얼 양볼 가득한 얼굴로 알수없는 말을 내뱉었다.
겨우겨우 쌈을 씹어 삼킨후에 그녀가 눈을 흘기며 말했다.
“뭘 이렇게 많이 넣었어? 턱 빠지는 줄 알았잖아”
나는 한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님 많이 드시라구요!”
그날의 술자리는 즐겁게 흘러가고 있었다.
명숙이 입대한 d의 걱정을 늘어놓을때 나는 d는 군체질이다
그는 어딜가든 살아남을 아이다라며 그녀를 달랬다.
d와 내가 어린시절 치던 사고들을 이야기를 할때 그녀는
그녀특유의 찐 아재스런 웃음을 보였다.
편의점 운영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을때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진중히 들어주었다.
“제가 더 열심히 할께요” 내가 할수있는 말이란 이것밖에 없었다.
소주 한병 비우기도 버거운 나는 그날 그녀와 도합 3병의 소주를
해치웠다. 나는 그녀가 계산을 할까봐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
먼저 계산까지 해두었다.
그렇게 기분좋게 알딸딸함을 느끼며 자리는 끝이났다.
그녀의 집까지 바래다 주기 위해 우리는 다시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너 치사하게 말이야~~ 화장실 간 사이에 몰래 계산을 하고…
이런건 어른이 내는거야” 그녀는 다소 나무라듯 나에게 말했다.
평소 술에 취한 느낌이 싫어서 가급적 술을 멀리하는 나였지만
그날 만큼은 더 취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활기차게 말했다.
“그럼 어머님이 2차로 맥주사주세요”
그녀는 아무말없이 그냥 집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아~~~ 어머님! 맥주안사주실거에요?”
나는 아무말없이 그저 걷고있는 그녀를 향해 앙탈을 부리듯 물었다.
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어디 허름한 호프집 정도를 생각하던 나에게 그녀는 뜬금없는
대답을 날렸다.
“집에 있어. 맥주”
순간.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건 생각지도 않은 시나리오 였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고 나서 우리는 식탁에 나란히 앉았다.
식탁위에 무드등만이 켜져있는 어둑한 거실.
분위기는 다소 어색해졌으나 나는 그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노력했다.
평소처럼 농담과 바보짓을 하면서… 그런 상황에 그녀도
웃음을 터뜨리곤했다. 그러나 이 분위기의 기저에 깔린 묘한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맥주를 두캔정도 더 비우고
나니 알딸딸을 넘어 몽롱함에 접어들고 있었다.
아마 혀도 약간은 꼬였으리라.
그렇게 가늘어지는 정신을 붙잡으려 노력하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d가 인복이 참 많은거같아. 너같은 친구도 있고.
너랑 일하다 보면 니가 무슨 사장같아. 나보다 매장관리도 더 열심이고
청소도 꼼꼼히 하고… 친구가 하는일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주기 쉽지 않은데… d가 참 좋은 친구를 뒀네.
d가 인복이 많아”
나긋하고 아련하게 들리는 그녀의 그말에 나는 정신이 또렷해졌다.
그말을 듣자 나는 인생에서 딱 한번.
딱 한번만 솔직해져 보기로 했다.
“저 d 때문에 그러는거 아니에요. 어머님 때문에 그러는거에요”
예상했듯이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왜? 너는 내가 그렇게 좋니?”
그녀의 말끝이 다소 떨리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눈도 깜빡이지 않은채 말했다.
“네. 너무 좋아요. 어머님이 너무 좋아요”
나는 술김에 이런말을 하는게 아니라는걸 확실히 보여주기 위해
10년을 꾹꾹 눌러담았던 그 한마디의 육중한 무게감을
확실하게 그녀에게 전달하기 위해
한글자 한글자 또박또박 힘을 주며 말했다.
“어.머.님.이.너.무.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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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2023.08.27 | 친구엄마 명숙이 5 (96) |
17 | 2023.08.22 | 친구엄마 명숙이 4 (91) |
18 | 2023.08.21 | 친구엄마 명숙이 3 (101) |
19 | 2023.08.15 | 친구엄마 명숙이 2 (119) |
20 | 2023.08.15 | 친구엄마 명숙이 1 (193) |
21 | 2023.05.11 | 친구엄마 명숙이(그녀의 이야기 마지막) (53) |
22 | 2023.05.07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9) (66) |
23 | 2023.05.03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8) (54) |
24 | 2023.05.02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7) (59) |
25 | 2023.05.02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6) (54) |
26 | 2023.05.01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5) (53) |
27 | 2023.04.30 | 친구엄마 명숙이(그녀의 이야기4) (39) |
28 | 2023.04.27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과수원집 막내아들) (59) |
29 | 2023.04.26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3) (69) |
30 | 2023.04.25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2) (63) |
31 | 2023.04.25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그녀의 이야기1) (110) |
32 | 2023.02.07 | 친구엄마 명숙이(외전) (117) |
Joy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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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당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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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Comments
잘보았습니다. 다음편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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